<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38화>
‘이 개잡놈이!’
종배수가 마닐라로 떴다는 소식에 몸을 부들부들 떨던 김정식이 한인 식당의 사장을 가만히 응시한다.
“이 사장.”
“예, 예!”
김정식의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사장.
차갑게 가라앉은 김정식의 눈이 주위를 둘러본다. 그에 구경을 나왔던 사람들이 시선을 피하고, 김정식은 다시 사장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이 필리핀이 어떤 나라인지 알 거야.”
아래서부터 위까지 돈이면 다 되는 나라.
거기에 김정식은 폭력까지 한 손에 쥐고 있다.
“태풍은 언젠가 지나가기 마련이지.”
이건 그저 작은 자연재해일 뿐이다. 잠시 몸을 피하면 다칠 일 없는 재난.
경찰청장이 몰락했다? 그럼 다음에 올 경찰청장을 꼬드기면 된다.
아니, 경찰청장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이 세부의 모든 정치인 중 자신의 돈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얼마 전 큰 변을 당한 박 사장 기억하지?”
철렁!
사장의 낯빛이 파랗게 질린다.
막탄에서 국밥을 파는 박 사장. 집으로 가는 길에 강도에게 당해 지금도 혼수상태다.
그의 잘못은 하나다. 술에 취해 김정식의 카지노 근처에서 고성방가를 한 것. 고작 그뿐이었다.
“예, 예!”
“허튼 생각은 안 할 거라고 믿어. 우리 오래 봐야지?”
사장은 고개를 더 조아리며 바들바들 떨었고, 코웃음을 친 김정식은 비서를 봤다.
“가자.”
김정식은 차에 올라탔고, 그런 그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던 사장은 이를 악물었다.
“태풍은 지나가기 마련이라고? 그럼 왜 피하는데?”
‘빌어먹을 새끼!’
김정식은 몰랐다. 자신이 몸을 피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균열이 일어났다는 것을 말이다.
왕은 그 어떤 환란에도 자리를 지키는 법이었다.
* * *
본청의 소회의실.
종혁과 백이도 과장을 비롯한 외사수사과 형사들이 다시 모였다.
“이름 정만근. 나이 67세.”
20년 전,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의 민형사 사건 민원 담당 직원으로 재직.
“주로 세부를 비롯한 센트럴 비사야 지역의 한인 교민사건을 담당한 걸로 나와 있습니다.”
“잠시만.”
“예, 과장님.”
“원래 그렇게 구역별로 담당했던 거야?”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보통 그때그때마다 사람을 정하는데 정만근은 센트럴 비사야, 정확히는 세부에서 접수되는 모든 한인 사건에 개입하며 스스로 출장을 자처했다고 한다.
“보통 아래 연차, 혹은 신입들이 출장을 도맡는데, 정만근만 유독 세부행을 자처했다고 합니다.”
마닐라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한인이 사는 세부. 그렇다 보니 나중엔 아예 센트럴 비사야의 담당이 되었다.
이 말에 소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눈이 빛난다.
“……계속해.”
“주필리핀 대사관에서 1990년부터 1997년까지 근무했으며, 이때 재산 상황을 살펴보면 처남과 처제의 명의로 잠실 아파트 2개, 아내 명의로 상가 하나, 경기도 수원에 사촌 명의로 땅 8천 평을 구매한 걸로 나옵니다.”
이것들 모두 1995년에서 97년 사이에 형성한 재산이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런데 대사관 직원의 월급이 그렇게 세?”
“절대 아니죠. 아무튼 정만근은 이 기간 동안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외환은행에서 거액의 달러를 여러 번 나누어 환전한 정황이 포착됐고…….”
그렇게 환전된 돈의 행방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이렇게 돈을 환전할 때마다 정만근 친척들의 재산이 증식되었다.
“대사관 직원의 특권으로 검문검색을 피했나 보군.”
“그런 걸로 판단이 됩니다.”
이후 필리핀에서 귀국한 정만근은 타국을 전전하다 퇴직, 현재는 수원 외곽에 전원주택을 지어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다음으로 김근성. 나이 52세. 1998년부터 세부를 비롯한 센트럴 비사야를 담당한 직원으로…….”
1995년도부터 주필리핀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그는 정만근처럼 민형사 사건 민원 담당이었다.
그러다 1997년 한 해 정만근과 8번 이상 출장을 함께했고, 이후 정만근이 물러나며 자연스럽게 센트럴 비사야를 담당하게 됐다.
그런데 이놈은 더 가관이었다.
압구정에 꼬마 빌딩 한 개, 합정동에 50평대 아파트 한 개 등 대사관 직원의 월급으로는 절대 형성할 수 없는 재산을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이후 2006년 근무지가 태국으로 바뀌었고, 현재까지도 태국에서 근무하는 걸로 나옵니다.”
이후 현재 근무하고 있는 대사관 직원의 약력까지 모두 읊은 외사수사과 형사는 자리에 앉았고, 소회의실엔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거…… 그쪽 대사관에서도 안 것 같지?”
“그렇겠죠. 그렇지 않으면 그런 꿀단지를 제 발로 걷어찰 리가 없잖아요.”
외교부의 치부다. 자칫 잘못하면 외교부와도 싸워야 할 수 있었다.
이걸 알아차린 외사수사과 경찰들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그때였다.
“저…….”
작년에 순환 보직을 마치고 외사수사과에 들어온 경찰대 출신의 김두호 경위가 손을 든다.
“센트럴 비사야 경찰청장이 입건된 이상, 김정식의 처벌은 확정된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움직이는 걸까.
“필리핀 법도 꽤 센 걸로 알고 있는데요. 교도소도 열악하고.”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그의 모습에 형사들이 피식 웃는다.
종혁은 김두호를 바라봤다.
“뇌물 그까짓 거 해 봐야 몇 년일 것 같습니까?”
김정식의 입이 열리길 무서워하는 필리핀의 권력가들이 움직일 테니, 1년 이하로 살다 나올 확률이 높다.
세부 한인 교민들을 핍박한 것도 잘해 봐야 특수협박죄, 한국으로 송환해 재판을 받게 해 봤자 2년 이하다.
“그렇게 나온 놈이 뭘 하겠습니까?”
다시 필리핀으로 기어 들어가 군마파와 갱단들을 다시 불러 모아 다시 왕처럼 군림할 거다.
그때가 되면 그나마 남아 있을지 모를 증거는 아예 사라질 것이고, 이미 한 번 해 봤던 놈이니 금세 예전의 성세를 복구할 거다.
“그러니 이렇듯 살인으로 잡아들이려는 겁니다.”
그 누구도 비호할 수 없게.
교도소에서 썩다 뒈져 버리게.
“그딴 개새끼가 도로를 활보하는 꼴을 봐선 안 돼죠. 그래도 우리가 경찰인데. 안 그렇습니까?”
종혁의 그 말에 외사수사과 형사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진다.
“당연하지!”
“그런 개새끼는 교도소에서 뒈져야 해!”
순간 뜨겁게 달아오르는 소회의실.
종혁은 백이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떡하실래요? 여기서 스톱하실래요. 아님…….”
“에라이!”
분위기를 이따위로 달궈 놓았는데 스톱을 하라는 소릴 어떻게 하겠는가.
게다가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모든 정황이 김정식의 범죄를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멈춘다면 대한민국 경찰이라고 할 수 없었다.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먹고 죽어야지! 지금 세부에 파견 나가 있는 4팀에게 현재 센트럴 비사야 담당하는 놈 감시하라고 전달해!”
“예!”
“과장님!”
“왜!”
“지금 김정식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오케이! 김정식도 마크 들어가! 이놈이 대사관 직원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3팀?”
“예?”
“정만근과 김근성. 티 나게 감시해.”
“……아! 알겠습니다!”
“푸흐. 옛썰!”
티 나게 감시해서 쫄리게 만들라는 뜻.
종혁은 역시 베테랑답게 수를 잘 쓰는 백이도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전 이만 세부로 가 보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소회의실을 빠져나가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이 팀장님. 콘텐츠 제작 및 관리팀 소집하세요. 지금 당장 세부로 갑니다.”
-예, 알겠습니다!
* * *
“식자재 다 점검했어?! 술은! 방은 다 청소했어?!”
아침부터 게스트하우스가 떠들썩하다.
오늘따라 신경이 날카로운 사장의 지시에 샤론은 걱정 말라는 듯 오케이 신호를 보낸다.
“걱정 마, 사장님! 다 준비했어!”
그리고 부족한 거야 그때그때 사면되는 거다.
“하…… 그렇지, 그러면 되는 거지. 미안해, 샤론.”
“아니야! 나 사장님 이해해!”
얼마 전 역대 매출을 올린 손님이 다시 예약을 했다.
이번엔 6명 단체 손님. 당연히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응대 신경 쓰지 마. 오늘 샬롯도 왔어.”
오늘도 뚱한 표정의 샬롯을 본 사장은 샤론의 손을 꼭 잡았다.
“부탁한다, 진짜. 내가 보너스 줄게.”
“걱정 마! 나 샤론이야!”
“푸흐. 그래, 너 샤론이지.”
사장이 게스트하우스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4살 된 샬롯을 데리고 나타나 일을 시켜 달라고 했던 이십대의 샤론.
남편이 없다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무작정 일을 시켜 달라 떼를 쓰던 샤론의 사정의 딱해 일을 시켰는데, 마치 이쪽 일을 해 봤던 것처럼 야무지게 일하더니 어느새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없어선 안 될 살림꾼이 되었다.
“정말 네가 아니었으면…….”
사장의 눈빛이 아련해지자 지수를 힐끔 본 샤론의 낯빛이 살짝 흐려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히히. 아, 그보다 사장님. 어쩔 거야?”
“뭐가?”
“관광 거리. 갈 거야?”
“아, 그거…….”
한국에서 온 종배수 사장.
갑자기 한인교민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더니 이번에 세부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관광 거리에 입주할 한인 상인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카페, 식당, 굿즈숍, 오락실, 모텔, 호텔, 게스트하우스, 편의점 등 수많은 업종들을 입주시킨다니 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정식 그 양반이…….’
“거기 가야 해. 사장님 돈 벌려면 가야 해. 사장님 돈 마니 벌어야 나도 돈 마니마니 벌어.”
“그건 아는데…… 하아.”
그게 쉽지가 않다.
“아, 근데 샤론. 네가 왜 돈을 많이 벌어?”
“장사 잘되면 사람 쓴다. 그럼 내가 대가리! 월급 안 올려 줘?”
“푸하핫! 맞네. 그 말이 맞네.”
“히히히!”
부르릉!
“왔다!”
다급히 게스트하우스를 뛰어나가 밴을 반기는 둘.
멈춰 선 차에서 사람들이 내리자 환하게 웃던 샤론은 종혁의 어두운 눈빛을, 종혁이 입고 있는 경찰 제복을 발견한 순간 어째서인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종혁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그녀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기다리던 소식을 전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애타게 찾았을까.
“대한민국 경찰청 최종혁 총경입니다. 이렇게 오수현 씨의 부고 소식을 알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 아아아…….”
샤론의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 * *
달그락!
대명 한인 게스트하우스의 식당.
눈을 감은 채 떨던 그녀의 입술이 달싹인다.
“오빠랑 난 막탄에서 만났어요.”
막탄 해변가의 로컬 바.
해풍에 썩어 가던 작은 바. 어스름한 황혼 아래 바닷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채 맥주를 마시던 오수현과 눈이 마주쳤고, 서로 한눈에 반했다.
“난 오빠를 수라고 불렀죠.”
오수현은 안 그래도 여자 이름 같은데, 더 여자 이름 같다고 질겁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계속 수라고 불렀다.
그렇게 그들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불같은 사랑을 했다.
그러나 한여름 밤의 꿈은 그저 덧없이 허무한 것.
당시 여대생이었던 샤론은 다시 마닐라로 돌아가야 했고, 그렇게 오수현과 헤어졌었다.
서로 너무 먼 곳에 살기에 연락처를 교환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1년. 오수현을 잊고 살다 불현듯 다시 갈증이 치솟았다. 그래서 학기가 끝나자 무작정 다시 세부로 내려와, 오수현과 만났던 막탄의 해변가를 찾았다.
그리고 운명처럼 다시 오수현과 만났다.
하지만 우연이 아니었다.
오수현은 자신을 잊지 못해, 자신이 다시 세부를 찾을까 세부에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차린 채 매일 황혼이 질 때마다 막탄의 해변가를 찾았던 거다.
둘은 뜨겁게 키스를 하였고, 서로의 반려가 되기로 하늘에 대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신분은 마닐라의 여대생.
결국 그녀는 다시 마닐라로 돌아가게 됐지만, 이전처럼 아쉬워하지 않았다. 둘은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고, 샤론은 방학이 시작되면 언제나 세부를 찾아 오수현과 사랑을 속삭였다.
“내가 대학교만 졸업하면 같이 살자고 약속도 했죠.”
오수현도 모자라지 않는 남편이 되겠다며 정말 열심히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운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축복이 찾아들었다.
바로 샬롯, 지수였다.
움찔!
샤론이 놀라는 지수의 손을 잡는다.
“오빠는 많이 놀랐어요.”
당황했고 허둥거렸다. 그래도 곧 기뻐했다.
필리핀 이름은 샤론이, 한국 이름은 오수현이 지었다.
“오빠가 내게 말했어요.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오겠다고.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그녀는 그 말을 믿고 다시 마닐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후 오수현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닌가 걱정하며 이틀을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었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코피노란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아닐 거다. 오빠는 다를 거라고 굳게 믿었죠.”
그러던 와중에 부모님께 임신 사실을 들켜 버렸다. 노발대발하는 부모님에 의해 집에 감금이 됐고, 외부와 연락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때 아빠가 말하더라고요. 오빠가 게스트하우스를 팔아 버렸다고.”
그날 그녀의 하늘은 무너졌다.
반미치광이로 살았던 그녀의 정신을 찾아 준 건 지수였다.
품에 안긴 작지만 뜨거웠던 온기.
꼬물거리며 젖을 찾던 지수가 준 감동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 그녀는 결심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지수를 위해 살겠다고.
“하지만, 부모님은 샬롯을 싫어했죠.”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래서 지수가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때가 되자 데리고 나와 무작정 세부로 찾아온 거다.
“이곳으로 찾아온 거예요.”
“……이곳이었군요.”
오수현이 차렸던 게스트하우스가.
“네. 여기였어요.”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미래를 그려 갔던 장소가.
그래서 무작정 찾아와 일을 시켜 달라고 떼를 썼던 것이다.
“그랬는데…… 혹시나 한 번쯤은 찾아오지 않을까 했었는데…… 그래도 잘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죄송합니다.”
“언제 죽은…… 건가요? 결혼은 했나요?”
종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오수현 씨가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던 그날 돌아가신 걸로 추정됩니다.”
쿵!
“공항으로 향하시던 오수현 씨는 노상강도를 당하셨고…… 바다에 버려지셨습니다.”
“아……! 아아아……! 아아악! 오빠! 오빠-!”
“엄마!”
이 원망은 어쩌란 말인가.
평범한 가정의 아이처럼 자라지 못하는 지수를 볼 때마다 했던 이 원망은 어쩌란 말인가.
“너무 늦게 알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담배를 연달아 피우고 돌아오니 샤론은 어느 정도 진정해 있었다. 아니, 지수 때문에 애써 진정하는 듯 보였다.
“어디에…… 묻혔나요?”
“서울 외각의 납골당에 묻히셨습니다.”
종혁은 주소를 적어 내밀었고, 그녀는 그걸 빤히 응시했다.
“범인은 잡았나요?”
“아직도 잡지 못했습니다.”
빠득!
샤론의 이가 악물어진다.
“그것 때문에 여쭙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뭔가요?”
샤론의 눈에 독기가 들어차자 종혁도 표정을 고쳤다.
“오수현 씨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때, 혹시 별다른 문제는 없었습니까?”
“……설마 한인 상인연합회가 오빠의 죽음에 연관되어 있나요?”
종혁의 눈이 커진다.
당시 오수현은 행복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고, 하늘이 감동한 건지 오수현의 게스트하우스는 매일같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할까.
“한인 상인연합회에서 찾아왔더라고요. 한인 상인연합회에 가입하라고. 아니면 게스트하우스를 팔라고.”
당연히 오수현은 거부했고, 그때부터 문신을 한 한국인들이 찾아와 영업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오수현은 그럴 때마다 경찰을 불러 놈들을 쫓아냈고, 나중엔 아예 경찰들에게 공짜로 음식과 커피를 제공하며 경찰이 자주 찾아오게 함으로써 놈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했다.
“아!”
“갱단도 마찬가지였어요.”
오수현은 주변의 못사는 사람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음식과 의류를 제공했고, 우연히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이 주변 갱단의 가족이었다.
이후 갱단도 게스트하우스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국인 상인들과 교민들이 오빠를 많이 찾아왔죠.”
‘그런 거였군.’
이제야 왜 김정식이 오수현을 죽인 것인지 이해가 된다.
김정식에게 있어 주변의 신망을 가득 얻은 오수현은 어떻게든 제거해야 될 인물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강도를 당한 박 사장도 오빠 같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움찔!
“강도요?”
고개를 끄덕인 샤론은 옆 테이블에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장을 봤고, 뭔가 이상해져 고개를 돌린 사장은 깜짝 놀랐다.
“사장님이 그랬잖아요.”
“아, 아니 내가 언제!”
몸을 돌린 종혁은 사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종배수 사장이 찾아왔었나요?”
“예? 예, 뭐…… 그 부하 직원이 찾아오긴 했습니다.”
누군 종배수 사장이 직접 만나고, 누군 직원이 찾아와 기분이 좀 상했다.
“종배수 사장은 아이반 벨로프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죠.”
그리고 그 아이반 벨로프는 현재 차기 필리핀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시메온 아키노 의원과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즉, 종배수 역시 시메온 아키노 의원과 비즈니스 파트너란 뜻이다.
“그리고 전 그런 종배수 사장의 M-컴퍼니의 설립에 돈을 투자한 초기 투자자 중 한 명입니다.”
“예? 그, 그게 무슨…….”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종 사장님. 나예요. 내가 지금 관광 거리에 입주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한 분과 만나고 있거든요? 통화 좀 해 봐요.”
영상통화로 돌린 종혁은 사장에게 핸드폰을 내밀었고, 사장은 깜짝 놀랐다.
-어이고, 김성득 사장님 아닙니까. 직원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거 제가 몸이 하나라 직접 찾아뵙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아, 아니. 아닙니다.”
-이렇게 최 부장님께서 연락을 주신 걸 보니, 김 사장님께서 제 관광 거리에 입주를 하시려고 마음을 굳히신 것 같은데…… 어디가 좋겠습니까? 메인 거리? 아니면 약간 떨어진 한적한 곳? 어디든 말만 해 주세요. 내 최 부장님 때문이라도 원하는 자리로 드릴 테니까!
사장은 눈을 부릅떴고, 종혁은 통화를 종료했다.
사장은 종혁을 떨리는 눈으로 쳐다봤고,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사장님, 김정식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종 사장을 건드릴 수 있을까요?”
관광 거리에 입주한 상인을 건드리는 건 결국 종배수를 건드리겠다는 뜻. 김정식은 절대 그런 짓을 할 수 없다.
그런 종혁의 말에 사장이 고개를 푹 숙인다.
“……박 사장은 그런 호인이 아닙니다.”
그저 한인 상인연합회와 김정식에게 불만이 많은 사람 중 한 명. 뒤에서나 욕을 하는 사람.
하지만 욕을 너무 찰지게 하기에 함께 술 마시는 사람이 많다. 사장도 그중 한 명이다.
그러다 술에 만취해 김정식의 카지노 앞에서 고래고래 김정식의 욕을 하다 봉변을 당했다.
강도를 당했다고 알려졌지만 누가 믿겠는가. 한인 교민들 중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범인은 잡혔습니까?”
“……아니요.”
늦은 저녁 시간에 주변에 CCTV도 없어서 범인을 특정할 수가 없었다.
“다만 김정식의 말을 듣는 갱단 중 한 놈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죠.”
그날 그 주변에서 갱단의 조직원을 본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 중이었다.
“흠. 그래요.”
‘그럼 이놈부터 찾아봐야…….’
“나 그거 누가 한 건지 알아요.”
흠칫!
종혁은 놀란 눈으로 지수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