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36화>
“사장님, 그런데 부장 형님은 우리한테 다 맡겨 두고 뭘 하신다고 합니까?”
“어…… 살인 사건을 조사한다던데?”
세부에서 여러 이유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한인 교민 사건들을.
“예?”
종배수의 부하는 온몸을 스치는 오한에 몸을 움츠렸다.
* * *
경찰 본청의 복도.
휴가를 모두 마치고 홍보부로 복귀한 종혁과 최재수가 걷고 있다.
“부장님, 세부엔 안 가실 거예요?”
“아이반과 김정식이 만났는데, 나까지 거기에 있으면 뭐라고 생각하겠냐?”
아이반과 똑같이 생긴 종혁.
의심을 할 거다.
“뭐, 이미 의심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무튼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세부에 갈 단계가 아니야.”
“알겠습니다.”
“그보다 아청과에서 자료 날아왔어?”
본청 아동청소년과뿐만 아니라 전국 아청과를 대상으로 한 홍보. 징그럽게 달라붙던 걸그룹의 배후를 알기 위해 내뱉은 말이었지만, 지킬 건 지켜야 했다.
“1차 자료 날아왔고, 현재 이 팀장님이 검토 중입니다.”
“5월 가정의 달에 맞춰 프로젝트 진행할 테니까 아청과랑 이 팀장에게 말해서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 달라고 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이 둘 중 한 날에 방송 탈 수 있게.”
이왕이면 어린이날이 좋다.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눈을 스치는 어떤 풍경에 창밖을 보며 혀를 찼다.
“쟤들 아직도 저러고 있네.”
세부에서 만난 걸그룹. 쁘락지의 연락이 끊기자마자 세부를 즐기는 동안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걸그룹.
종혁에게 뇌물을 먹이고 현재 구치소에 수감된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키우는 걸그룹을 태운 승합차가 본청 밖 도로에 불법 주차가 되어 있다.
“정문에 연락해서 저거 치우라고 하고, 경찰 홍보대사 후보 명단 나왔어?”
“여기 있습니다. 이 다섯 팀 중 두 개를 고르면 될 것 같습니다.”
“흠. 일단 연아는 계속 함께 가는 걸로 확정이고…….”
“괜찮을까요? 연아 몸값이 너무 높아졌는데?”
2010년 2월 말,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에서 자신이 세웠던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며 금메달을 딴 손연아.
이로써 그녀는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되었다.
한국에 사상 첫 피겨 스케이팅 메달을, 그것도 금메달을 안겨 준 손연아의 인기는 당연히 엄청났고, 전 세계적으로 퀸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올해까지만 계약하는 걸로 하자. 그리고 다른 팀은…… 여기 이분들로 하자.”
“오, 이분들을요?”
KYT, 일명 키트.
남녀 혼성 그룹으로, 1990년도부터 순정, 비련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낸 이들인데 별 구설수 없이 자리를 지켜 왔다.
“그런데 이분들 흡연하고, 술 많이 마신다고 하시던데…… 욕설도 좀 하신다고 하고요.”
게다가 멤버 중 한 명은 연예계 대표 바보 중 한 명이다.
“바보 아닐걸…….”
“예?”
“아무튼 별 탈 없이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니까 5월 가정의 달 기념으로 해서 선정한다고 해.”
“친숙한 이미지로 가시려는 거군요?”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엔 배우 쪽으로도 한두 명 더 늘릴 생각이니까 그렇게 전달하고. 아, 도착했네.”
본청의 소회의실. 종혁은 따라온 콘텐츠 제작 및 관리팀의 팀원들을 바라봤다.
“캠코더 켜.”
“옙!”
종혁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외사국 외사수사과의 백이도 과장을 비롯한 외사수사과 형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끙. 최 부장, 정말 이거 찍을 거야?”
“현재 해외 교민들과 여행객들에게 대사관의 이미지가 박살 난 거 아시죠?”
“거기야 이미 예전에 박살 났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대한민국 경찰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거잖아.”
“빙고.”
“오케이. 앉아.”
종혁은 자리에 앉았고, 이내 곧 소회의실의 불이 꺼지며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그에 단상에 선 외사수사과 형사가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름 김정식. 나이…….”
주르륵 읊어지는 김정식의 약력들.
외사수사과의 끈질긴 추적 끝에 결국 김정식이 잠실 군마파에게서 자금을 받은 정황을 밝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회사원이었던 김정식이 어떻게 군마파의 자금을 빌릴 수 있었는지에 대한 건 현재 추가 조사 중이며, 그런 김정식이 세부에 자리를 잡은 17년 전부터 현재까지 세부에서 실종 및 사망을 한 한국인의 숫자가 253명.”
쿵!
이 중 몇 명이 김정식과 얽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얽혀 있다면 놈은 죽어 마땅한 개새끼였다.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세부 5성급 호텔의 커피숍.
종배수가 안으로 들어오는 김정식과 그의 일행들,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덩어리들을 보며 눈을 빛낸다.
그건 김정식도 마찬가지다.
‘햐, 이 새끼.’
‘저놈들은 또 뭐야?’
종배수의 뒤에 서 있는 7명의 험한 면상. 김정식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느꼈다.
“반갑소. 나 한인 상인연합회 회장 김정식입니다.”
“나도 반갑소. M-컴퍼니 사장 종배수요. 커피?”
“그럽시다.”
“김 전무, 여기 회장님께 커피 한 잔.”
“예, 사장님.”
“앉읍시다.”
김정식에게 자리를 권하며 앉은 종배수는 다리를 꼬며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그 거만한 모습에 김정식의 눈이 흔들린다.
‘종배수.’
한때 서울을 주름잡던 뻑치기 조직을 이끌었던 놈으로, 현재는 좋은 물주를 만나 M-컴퍼니라는 거대 사업체를 일군 한국의 숙박왕.
한국에 분포된 M-모텔과 M-호텔의 개수가 대략 3백여 개로, 무려 4천억 대의 자산가다.
‘뻑치기나 하던 놈이 감히…….’
“그런데 날 어떻게 찾아온 거요? 내가 세부에 온 건 회사 사람들 말고 모르는데.”
“아이반 벨로프가 말해 줬소.”
“아아, 거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입이 많이 싸네. 쯧.”
커피잔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은 종배수는 김정식을 봤다.
“그래서 용건이 뭐요? 바빠서 시간은 많이 못 드리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아이반 벨로프가 조성하려는 관광 거리의 부동산 30퍼센트를 가져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비법이 뭡니까?”
도대체 종배수와 김정식 본인의 차이가 뭘까.
김정식은 그게 무척이나 궁금했다.
“허허. 이보쇼, 회장님. 내가 그걸 말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숙인다.
방금 전까지 약간은 거만했던 김정식이 고개를 깊이 숙이자 종배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별거 있겠소? 어느 위치에 어떤 업장을 세우고, 또 숙박 시설의 규모는 어떻고, 관광 거리에 뭘 협조할 수 있고.”
그런 청사진을 제시했을 뿐이다.
“아.”
‘이런, 내가 급했구나!’
맞다. 이게 비즈니스다.
김정식은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찾아갔던 자신의 실수를 반성했고, 종배수는 낯빛이 굳은 김정식을 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아, 이런 인간이구만?’
떠받들어진 지 너무 오래되어 머리가 굳다 못해 오만해진 왕.
여태껏 자신이 원하던 것은 모두 이뤄졌을 테니, 아이반에게 그따위 말을 지껄일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래서 골치 아프지.’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종배수의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자,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가 뭐요? 고작 이딴 걸 물어보려 찾아온 건 아닐 텐데…….”
정말 그렇다면 실망일 거라는 눈빛에 김정식은 테이블 아래로 내린 주먹을 쥔다. 실수가 있었다고 한들 이런 눈빛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감히!’
“허흠. 벨로프 씨에게 듣기로 그렇게 매입한 부동산을 한인 교민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해 줄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 같아…….”
“잠깐. 설마 한인 교민들을 위해 부동산을 일부 양보해 달라, 한인 상인연합회가 내 건물에 입주할 한인 상인을 추천해 주겠다, 뭐 그런 말을 하려는 겁니까?”
“허허허. 역시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 생각이 빠르시군요. 예, 그런 의도로 종 사장님을…….”
“이보쇼.”
헛웃음으로 말을 끊은 종배수가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허공으로 흩어지는 뿌연 연기. 종배수의 눈에 경멸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회장님, 내가 대가리에 총 맞았습니까?”
“허허. 그러지 마시고 이제 말을 좀 더 들어 보시죠. 이는 분명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보세요. 회장님. 내가 M-컴퍼니를 왜 만들었는지 아쇼?”
위수 지역.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죽도록 고생을 함에도, 목숨을 걸었음에도 쥐똥보다 적은 월급을 받는 군인들을 갈취하는 위수 지역 상인들을 두고 볼 수 없어서다.
상인연합이라는 거지 같은 단체를 만들어 단합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시간과 목숨을 버리는 대한민국의 국군 장병들을, 그 젊은 피들을 업신여겨서다.
“내가 말이야. 상인연합 이딴 거지 같은 단체들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뭐? 됐수다. 김 전무, 손님 가신단다.”
‘이 개새끼가……!’
쾅!
테이블을 후려친 김정식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내 종 사장님의 사연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필리핀인들에게 배척받는 한인들을 위해 애써 온 우리 상인연합회를 무시하진 맙시다. 우리가 세부에서 여기까지 자리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초를 겪었는지 압니까?!”
필리핀들에게 있어 한국인은 외국인이다.
그런 외국인이 자신들의 땅에 들어와 장사를 하고, 또 돈을 버는 모습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는 파리만 날리는데, 저긴 언제나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식자재 거래를 끊고! 손님 못 오게 방해하고! 안 좋은 소문을 내고! 그런 고난과 역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똘똘 뭉친 게 바로 우리 연합회입니다!”
생존을 위한 투쟁. 한인 상인연합회는 생존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뭉친 단체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세부에 왔는지 아십니까?! 안다면 그딴 돈 몇 푼 때문에 이합집산하는 모리배들과 비교하지 말란 말입니다!”
김정식의 뜨거운 외침이 커피숍을 울리자 침묵이 내려앉는다.
호록!
“그래서요?”
“예?”
“그래요. 세부 상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건 내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번 일과 무슨 상관입니까? 그렇게 인정에 호소하면 내가 예, 알겠습니다 할 줄 알았소? 이봐요, 회장님. 비즈니스를 하러 왔으면 비즈니스를 해요.”
김정식은 인정에 호소하기에 앞서 서류부터 내밀었어야 한다. 이를테면 이쪽에서 구미가 당길 만한 한인 상인 명단이라든가.
“당신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당신들 같은 단체 따윈 믿지 않으니까. 한인 상인을 모집해도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합니다. 아시겠습니까?”
한인 상인 명단을 내밀었어도 종배수는 따로 검증을 할 생각이었다.
“그쪽에서 어떤 야료를 부렸을지 알고?”
움찔!
정곡이 찔린 김정식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꽉 막혔소. 그 시간을 줄이자는 거잖습니까!”
“나 시간 많습니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한국의 업무 지시는 여기서 내려도 된다.
“정말 이렇게 답답하게 구실 겁니까?! 한인 상가를 세우면 누가 많이 이용하겠습니까! 어떤 인종이 가장 많이 이용하겠냐는 말입니다!”
한국인이다.
“좋습니다. 내가 백번 양보해서 종 사장님이 그렇게 선별해 한인 상인들을 꽂아 넣었다 칩시다! 그래서 그분들이 성공했다 칩시다!”
그럼 다른 한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온전할 수 있을까.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게 사람이다. 분명 종배수의 눈에 띄지 못한 상인들은 관광 거리에 들어가 성공한 상인들을 시기하고 질투할 거다.
“종 사장님, 이 세부에 있는 한인의 숫자가 무려 2만 명입니다. 타지에 와서 고생하는데 같은 한인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그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사람이 돈을 위해 친구와의 관계를 버리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하지만 한인 상인연합회가 나선다면 다르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 이들에게서 한인 상인 및 교민들을 위한 지원금을 받아 내고, 한인 교민들을 도울 수 있다.
불만이 생겨도 대의를 위해 참을 수 있는 거다.
또한 그로 인해 다툼이 발생해도 한인 상인연합회는 충분히 중재할 수 있었다.
종배수는 자신들이 이렇게 쓸모가 있다는 걸 어필하는 김정식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 회장님, 지금 협박합니까?”
“무슨……!”
“협박 맞잖아. 한인 상인연합회에 협력하지 않으면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겠다, 장사를 방해하겠다, 상인들을 따돌림시키겠다, 뭐 그런 말을 하는 거잖습니까.”
“이보시오, 종 사장님! 사람 말을 왜 그렇게 곡해해서 듣는 겁니까! 같은 한국인끼리 서로 상부상조하자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 좆같네? 김 전무, 현재 우리 가용 자금이 얼마나 되지?”
“300억 정도 됩니다, 사장님.”
“법인 하나 설립해. 이름은……그래, 한인교민위원회.”
쿵!
“……이봐. 지금 뭐하는 거지?”
가면을 벗은 김정식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다.
그에 종배수는 다리를 반대쪽으로 꼬았다.
“여태껏 한인 교민들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 오셨잖습니까. 그 무거운 짐 덜어 드리려는 겁니다, 김 회장님.”
무슨 문제 있냐는 듯한 종배수의 모습에 김정식은 몸을 일으켰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군. 이봐, 종 사장. 내가 같은 한국인으로서 충고하는데, 이 필리핀에서 그렇게 상생 무시한 채 독불장군처럼 굴다가는 큰코다쳐.”
“걱정 마쇼. 내 코는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으니까.”
“그래, 어디 우리 한인들을 무시하고도 잘 해낼 수 있나 보자고.”
싸늘히 몸을 돌린 김정식은 따라붙는 부회장에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놈 먹어야겠다.”
한국에 있는 M-컴퍼니까지 전부.
세부에서 엄청난 부를 일궜다 생각하는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부자라 관광 거리의 파이를 나눠 먹으려고 했지만, 그러며 자신의 리조트와 상권을 연결시키려 했지만 이런 모욕을 받은 이상 그럴 수 없었다.
“괜찮겠습니까? 그 짧은 사이에 저만한 재산을 일궜으면 대단한 뒷배가 있을 텐데 말입니다.”
종배수의 뒤에 서 있던 험악한 인상들을 생각하면 아마 전국구 조직 중 한 곳일 게 분명했다.
“그건 그때 가서 협상하면 되는 거야.”
그게 누구든 자신이 종배수보다 낫다는 걸 보여 주기만 하면 되는 거다.
“그게 너희 조폭들의 심리잖아?”
돈이라는 절대적 가치 아래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조폭.
거기다 여긴 필리핀이다. 사람 한 명 죽어 나가도 그러려니 하는 동남아의 나라.
“준비하겠습니다.”
“치밀하게.”
종배수가 죽어 나가도 김정식 자신이 의심하지 않도록 말이다.
“예.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한인들도 단속시켜. 저 새끼 단체에 가입하면 세부에서 장사할, 살아갈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라고. 그리고 저 새끼 소문도 퍼트리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를 악문 김정식은 호텔을 빠져나갔고, 종배수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씨부럴. 심장 터져 죽는 줄 알았네!”
“그러게 왜 그렇게 강하게 나갑니까, 형님?”
“시끄러워, 인마.”
말을 하다 보니 열이 받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한인 교민들을 괴롭히는 놈이 한인 교민들을 앞세워 압박하는데 눈이 돌아 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종혁이 짜 놓은 플랜대로 됐으니 문제없었다.
“정말요?”
“……예, 예. 형님! 조, 종배수입니다!
종혁에게 전화를 거는 종배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 * *
-기, 김정식 놈의 속을 뒤집었으니 분명 곧 액션을 취할 겁니다!
“수고했어요, 종 사장님.”
-그, 그놈들이 절 어떤 식으로 괴롭혀 올까요?
“아마 경찰들을 동원하겠죠.”
불시검문하고, 온갖 트집을 잡아 경찰서에 잡아넣고.
한국의 외교부가 나설 때까지 종배수가 어떤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 거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한인들을 단속하고, 종배수를 칠 계획을 짜겠지.’
즉, 이제 다음 단계인 센트럴 비사야 경찰청장을 비롯해 김정식과 연결된 모든 경찰의 목을 날릴 차례였다.
“그럼 계속 수고해 줘요.”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시메온 아키노에게 전화를 걸었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의원님.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 걱정 마세요. 증거는 모두 모아 놨으니까요.
전화를 끊은 종혁은 톨게이트를 넘어서는 차에 운전대를 잡은 최재수를 봤다.
“얼마나 걸려?”
“20분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 예, 어머님. 경찰 본청 홍보부의 최종혁 총경입니다. 예, 예. 앞으로 20분 정도면 댁에 도착할 것 같은데요.”
상냥하게 말하는 종혁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세부에서 장사를 하다 강도를 당해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을 만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