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34화 (634/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34화>

필리핀 민주화 운동 인사로 암살을 당한 베니그노 아키노 2세와 민주화 이후 대통령에 올랐던 코라손 아키노의 아들이며, 몇 달 후 대통령이 되는 시메온 아키노.

“쌍둥이입니까?”

순간 종혁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욕이 심하십니다, 의원님.”

“……정말 놀랍도록 똑같이 생겼군요.”

“그 때문에 기름과 물처럼 섞일 수가 없는 관계죠. 그러나 오늘은 세부에서 휴양을 즐기던 차 빅토르 로마노프가 통역을 의뢰해 와서 어쩔 수 없이 오게 됐습니다.”

“러시아어까지 할 줄 알았습니까?”

“언어를 배우는 게 취미라서 말입니다. 그럼 소개를 해도 되겠습니까?”

시메온 아키노는 고개를 끄덕였고, 종혁은 아이반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러시아의 거부이자 빅토르 로마노프의 대리인이며 이번 프로젝트의 중심인 아이반 벨로프입니다, 의원님. Иван(아이반)?”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빅터에게 협상에 대한 권리를 이양받은 아이반 벨로프입니다, 상원의원.”

‘호오.’

풍기는 기세는 마치 야생의 짐승을 연상시킬 만큼 거친데 꽤나 정중하다.

“필리핀의 정치인 시메온 아키노요, 벨로프 씨. 좋은 곳으로 모셨어야 했는데, 현재 내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런 곳에 모시게 됐소. 사과드리오.”

현재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있는 시메온 아키노. 그런 상황에서 대중에게 타국의 거부와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서 좋을 건 없었다.

그에 아이반은 푸근히 웃었다.

“저 역시 신실한 신의 종. 내 신께서 지켜보고 계신 곳이니 협상 장소로 이보다 훌륭한 곳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말해 주시니 감사하오.”

‘조사한 것과 많이 다르군.’

글로벌 패션 기업 드바 로마노프의 제2주주이자 빅토르 로마노프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아이반 벨로프.

술과 클럽, 여자를 좋아하는 망나니이자 폭력을 사랑하는 짐승.

하지만 만나 보니 지극히 정상적이다.

“솔직히…… 뜬금없는 제안이었소.”

그래서 그 진의가 의심스럽다.

그 속뜻에 아이반은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매력적인 제안이었죠.”

“……부정할 수 없군요.”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원님. 그저 동남아에 내가 제대로 놀 수 있는 장소를 만들려는 것일 뿐입니다.”

“허. 겨우 그런 이유로 그런 짓을 한단 말이오?”

털썩!

시메온 아키노의 옆에 앉아 다리를 꼰 아이반의 얼굴에 무료함이 서린다.

“의원님, 써도 써도 돈이 마르지 않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지루한지 아십니까?”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이군요.”

“그렇습니다. 의원님에겐 커다랗게 보일지 모르는 거라도 제겐 그저 길거리에서 사는 빵 한 조각의 가치와 차이가 없으니까요.”

“허허허.”

남자로서, 그래도 부족함 없이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솔직히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이 필리핀에 얼마를 투자하려고 하시오?”

그저 러시아의 거부가 필리핀에 많은 액수를 투자하겠다는 말만 들었다. 필리핀의 발전에 1억 달러만 유치시켜도 이번 선거를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기에 만든 자리.

아이반은 네가 얼마를 베팅하건 놀라지 않을 거라는 시메온 아키노의 모습에 입술을 비틀었다.

“20억 달러.”

쿵!

“20억 달러입니다, 의원님.”

“무, 무슨……!”

잔잔하던 그의 마음이 태풍이 몰아친 바다처럼 격렬해진다.

아이반은 그런 그를 보며 검지와 중지를 치켜세웠다.

“마닐라, 그리고 세부에 각기 10억씩.”

전 세계 누구나 찾아오고 싶은 거대한 리조트를 짓고, 누구나 쇼핑하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고, 누구나 놀고 싶은 클럽과 카지노를 세우는 거다.

“모두 내 취향에 맞게.”

‘미친!’

미친놈이다. 아이반 벨로프는 그가 만나 본 수많은 부류의 사람들 중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미친놈이었다.

고작 유흥과 향락을 위해 필리핀 한 해 국가 예산의 약 20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쏟아붓는 거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의원님.”

아이반은 시메온 아키노를 보며 짓궂게 웃었다.

“Go? Stop?”

“……필리핀의 친구가 된 걸 환영합니다, 아이반 벨로프 씨.”

시메온 아키노는 손을 내밀었고, 아이반은 그 손을 잡으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럼 거래가 끝난 것 같으니 난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이 동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봐야 해서……. 빅터, 아니 빅토르의 의도는 나보다 저놈에게 묻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그럼.”

고개를 숙인 아이반은 코트를 펄럭이며 산 아구스틴 성당을 빠져나갔고, 그 모습에 시메온 아키노는 넋을 놓으며 종혁을 봤다.

“후. 원래 저런 망나니입니다. 그래서 더 제가 싫어하는 거고요. 제 친구 빅토르를 대신해 사과드립니다.”

“……총괄 기획에게 그런 인맥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드바 로마노프. 이 마닐라에만 20개의 매장이 있는 글로벌 패션 기업이다.

“사연이 좀 깁니다. 하하.”

“그 사연, 근사한 식사와 함께 듣고 싶지만 시간이 없군요. 빅토르 회장의 진짜 의도가 무엇입니까?”

그 빅토르 로마노프가 이득도 되지 않는 일에 움직였을 리는 없었다.

“사업 분야의 확장입니다.”

“……드바 로마노프가 호텔 사업에 진출을 하겠다는 거군요.”

“정확히는 리조트도 겸하는 것이며, 필리핀은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시범적인 진출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허. 겨우 시장 확인을 위해 그 많은 돈을…….”

혀를 내두르던 시메온 아키노는 종혁을 봤다.

그 순간 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러면 당신의 의도는 뭡니까?”

분명 아이반은 빅토르에게 필리핀을 추천한 게 종혁이라고 했다.

아무런 이득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이진 않았을 터.

그러나 이미 세계경찰태권도 대회를 통해 양국 수사기관 간의 긴밀한 협조가 약속된 상황이었기에 한국 경찰에겐 더 이상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라면 태국이나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 한 곳을 선택했을 겁니다.”

그 말에 종혁의 눈이 빛난다. 듣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종혁의 표정이 착 가라앉는다.

“세부에 개새끼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게 무슨…….”

“2만여 한인 교민들 위에 왕처럼 군림하며, 세부의 갱단들과 연합하여 세부를 제 왕국처럼 만든 놈이죠. 그 개새끼의 가장 큰 돈줄이 세부에 세워진 리조트입니다.”

쿠웅!

“……다, 당신은 다른 의미로 미쳤군요.”

“경찰로서 내 나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짓도 해야지 않겠습니까, 의원님.”

“……으허허허헛!”

헛웃음을 터트린 시메온 아키노는 정색했다.

“고통받는 교민들과 내 나라 국민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이 필리핀을 선택해 줘서 고맙소, 총괄 기획.”

몸을 일으켜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그.

고통받는 사람들 중엔 이 나라 필리핀의 국민들도 있기에 필리핀의 정치인이자, 한 사람의 필리핀인으로서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로 인해 마닐라와 세부의 관광객 수가 급증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터였다.

종혁의 의도가 무엇이든 필리핀에게는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어떡하면 되겠소?”

“일단 센트럴 비사야 경찰청장의 목부터 날려 주십시오.”

김정식의 뒷배부터 치운다.

이게 종혁의 계획이었다.

“그 일파 전부의 목을 날려 드리지.”

시메온 아키노는 입술을 비틀며 손을 내밀었고, 종혁은 그 손을 잡으며 허리를 숙였다.

* * *

끼이익!

갓길에 차를 세운 최재수가 운전대에 머리를 박으며 숨을 깊게 내쉰다.

“후아아!”

“말은 내가 다 했는데 네가 왜 지랄이냐?”

“아니, 그래도요!”

현재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는 인물, 즉 차기 대통령과 마주 앉아 거래를 했다. 심장이 쿵쾅거려 미칠 거 같았다.

“정말 부장님은…….”

눈을 흘기던 최재수는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그놈은 왜 막탄이 아닌 세부 시티에 리조트를 지은 걸까요? 물론 한인에 대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세부 시티가 낫긴 한데…….”

“오직 돈만 본 거지.”

필리핀의 제2도시 세부.

부동산 값어치를 따지면 당연히 세부 시티가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고, 발전이나 즐길 거리도 세부 시티가 수십 배 더 잘되어 있다.

오직 휴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해가 지면 놀거리가 별로 없는 막탄. 휴양지의 밤을 제대로 즐기려면 무조건 세부 시티로 나와야 했다.

“해변이야 픽업을 해 주면 되는 거니까.”

이를 일찌감치 깨달은 놈은 관광에 관련된 사업체들만 막탄에 차려 놓은 거다.

“확실히 사업 수완이 좋네요.”

“그래서 난 더 고맙지만.”

“예?”

종혁은 대답 대신 입술을 비틀었다.

김정식은 알까. 자신의 리조트를 번창시키기 위해 해 온 짓이 결국 자신의 목을 조르게 될 거란 걸 말이다.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네, 국장님. 제가 세부에서 웬 개새끼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관심 있으세요?”

외사국의 함경필 국장.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종 사장님? 지금 당장 세부로 튀어 와요.”

M-컴퍼니의 종배수 사장. 그가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 * *

“끄으으.”

세부의 북쪽에 위치한 커다란 저택.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김정식이 옆에 누워 잠들어 있는 알몸의 여성을 응시한다.

이제 고작해야 18살이나 됐을까.

앳되지만 아름다운 얼굴처럼 쭉쭉빵빵한 몸매.

“꽤 공을 들였지.”

그리고 어젯밤 겨우 함락시킬 수 있었다.

어젯밤의 격렬했던 밤을 떠올리며 소녀의 잘록한 허리 라인을 쓸어내린 김정식은 몸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갔다.

촤락!

커튼이 젖혀지며 드러난 세부 시티의 정경.

흐릿한 하늘이 휴양지의 느낌을 가리지만, 이미 17년 동안 이 세부에서 살아온 김정식으로서는 매일 보는 일상적인 풍경에 불과했다.

찰칵! 치이익!

“후우.”

김정식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에 있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내어지는 커피와 샌드위치.

김정식은 커피부터 입에 가져가며 신문을 펼쳐 들었다.

어젯밤 세부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필리핀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번 대선은 어떻게 흘러갈까.

그런 궁금증을 품으며 신문을 펼쳐 들었던 김정식은 헤드라인 기사에 깜짝 놀랐다.

“시, 십억 달러?!”

현재 필리핀의 자유주의 정당인 자유당의 대선 후보로, 다른 당의 후보들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시메온 아키노 상원의원의 외국 자본 유치.

필리핀 제2도시 세부를 완벽한 관광 도시로 만들기 위해 총 20억 달러의 외국 자본 중 10억 달러를 세부에 투자하겠다는 논조의 기사에 김정식은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유당의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의원님. 저 김정식입니다.”

-신문을 보고 전화했소? 안 그래도 나도 김 회장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소.

“아, 이거 제가 마음이 급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이게 정확히 어떤 방식의 투자입니까?”

-관광 거리를 조성하겠답디다.

“거리를요?!”

순간 김정식의 눈이 빛난다.

“기존에 있던 거리에 자본이 집행되는 겁니까?”

-그렇긴 한데, 거의 재개발이라고 보면 될 거요.

“혹시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어떻게든 내 리조트가 있는 거리를 관광 거리로 지정하게 해야 돼!’

리조트를 찾은 손님이 멀리 가지 않아도 모든 편의를 누릴 수 있게끔 리조트 입구 양옆으로 조성해 놓은 몇 개의 상가들.

편의점, 술집들, 식당들, 그리고 클럽 하나.

이 상가들이 관광 거리에 포함이 된다면 그 가치는 폭등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다면 아예 건물을 몇 개 더, 아니 거리 전체를 매입해 놓을걸!’

하지만 아쉽게도 다른 리조트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수작만 부렸을 뿐, 정작 리조트 근처에 사 놓은 건물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그저 군마파를 통해 보호세만 걷었을 뿐이다.

-…….

“응? 의원님?”

-미안하구려. 그럼 끊습니다.

“예? 의, 의원님?”

뜬금없는 말에 김정식이 의아해하던 순간이었다.

“회, 회장님!”

철렁!

파랗게 질려 달려오는 부하의 모습에 내려앉는 심장.

“리조트가……! 초대형 리조트가 회장님 리조트 근처에……!”

오싹!

“이런 미친……!”

김정식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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