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32화>
“와. 오늘 재밌었지?”
“응응. 호핑투어가 이런 건 줄은 몰랐어! 진작에 해 볼걸!”
해골 깃발이 걸린 바지선이 정박하는 선착장.
웃으며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샤워실로 향할 때,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사람이 들어선다.
투실투실한 비곗덩어리 몸과 선글라스, 체인 금목걸이.
“싸장님! 왔어?”
“하, 이 새끼가 계속 반말이네? 너 인마 그러다 진짜 혼난다?”
“노우. 한쿡말 어려워.”
“됐다. 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 오늘 매출은?”
“매일 줄어. Off season 됐어.”
“비수기? 흠, 벌써 그렇게 됐나?”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 같다.
민족의 대명절이자 대목인 설도 지났고, 앞으로 2주 만 더 있으면 대학교도 개강한다. 이제 슬슬 비수기를 준비해야 할 때였다.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오늘 매출을 확인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줄어들고 있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예. 끼불입니다, 형님. 장부 확인했습니다, 형님. 예. 업장 돌고 들어가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종료한 끼불이는 해적 호핑투어의 매니저를 쳐다봤다.
“야. 3월 1일 땡 하면 홈페이지에 이벤트 공지 때려.”
“몇 퍼센트?”
“20퍼센트.”
“알았어. 아, 우리 간식 다 먹었어.”
“벌써? 아니, 얼마나 처먹는 거야?”
“우리 많이 먹는다. 수영 배고프다. 싸장님이 바다 들어가라. 1시간도 안 돼서 배고프다.”
“하, 그래도 이 새끼가 계속……. 에휴. 그래, 내가 너 일 잘하니까 참는다. 그리고?”
“산소 호스 공기 샌다. 잠수복 찢어졌다. 그리고 또…….”
호핑투어의 매니저는 노후된 장비와 주류 등 보충해야 될 것들을 말했고, 끼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일단 집행하고, 영수증 청구해.”
“안 된다. 또 돈 안 준다. 돈부터 주라.”
“그럼 사지 마, 이 새끼야! 곧 비수기인데 그냥 대충 돌려서 써!”
“와…… 역시 싸장님! 똑똑해!”
“지랄 염병. 다친 애들은? 저번처럼 다쳤는데 병신같이 병원에 안 간 새끼 있어? 감기 걸린 새끼는?”
“없다! 우리 이제 조심한다.”
“그래. 조심해라. 니들은 몸뚱이가 재산이야, 새끼들아.”
“히히히. 싸장님 착하다.”
“네. 엿이나 드시고요. 알았어. 난 간다.”
“잘 가.”
“안녕히 가세요라고, 씨발놈아! 에이!”
문을 걷어차며 나온 끼불이는 차에 올라타 출발했고, 그 뒤를 한 대의 차량이 은밀하게 따랐다.
“어, 철아.”
-방금 보내 주신 사진에 찍힌 새끼 말입네다. 지금은 사라진 인천 사거리파에 있었던 놈입네다.
“엥? 인천 사거리파? 제법 규모가 큰 놈들인데 사라졌다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에 의하면 조직원 숫자가 대략 30명 정도로 꽤 큰 조직이었다.
-형님이 해결한 위조지폐 사건 이후 인천에서 일제 단속이 벌어졌는데, 그때 두목이 검거되면서 업장까지 다 털리고 남은 놈들은 해외로 튀었다고 합네다.
“아, 그랬어? 한인 상인연합회 면상들은?”
-몇 놈이 마찬가지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잠실 군마파에 속해 있던 놈들이었습네다.
“여기도 깡패라……. 이 두 조직의 관계는?”
-그것까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네다. 바로 알아봅네까?
“아냐. 이건 내가 알아볼게. 그래, 땡큐.”
전화를 끊은 종혁은 명동파에 전화를 걸었다.
그가 경찰대 시절 중구의 경찰서에서 현장 실습을 할 때부터 인연을 맺었던 명동파.
“예, 박 전무님. 난데요. 혹시 인천의 인천 사거리파라고 알아요? 모른다고요? 모르면 끝납니까? 걔들 지금 필리핀 세부에 있거든요? 걔들이랑 옛날에 일 접은 잠실 군마파 애들이랑 무슨 관계인지 좀 알아봐요. 1시간 줍니다. 하아. 박 전무님, 내가 오랜만에 전화하니까 감 잃었어요? 그래요. 끊습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종혁은 보조석에 앉아 복잡한 눈으로 쳐다보는 지수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왜?”
“당신 카페 사장 아니죠?”
“응. 경찰인데?”
“네?”
“경찰이라고, 한국 경찰.”
지수는 종혁이 내미는 경찰공무원증에 눈을 부릅떴다.
* * *
“으흐흥!”
자신들 파벌에게 할당된 사업체 3곳을 모두 돌고 본거지로 돌아온 필리핀 세부에 새로 똬리를 튼 인천 사거리파의 조직원 끼불이.
커다란 창고 앞에 SUV를 세운 끼불이는 철문을 지키다 허리를 깊이 숙이는 조직원들에게 손을 까딱인 후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지! 그래!”
“와아!”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경마에 카지노, 화투판이 벌어지는 욕망의 구덩이를 가로지른 끼불이는 거만하게 뒷짐을 진 채 도박판을 바라보고 있는 장년인, 인천 사거리파의 새로운 보스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장부를 내밀었다.
“다녀왔습니다, 형님.”
“그래. 별일 없었냐?”
“비수기라 매출이 줄어드는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형님.”
“하. 씨발. 알았어. 비수기 대비 이벤트 준비하라고 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형님.”
손을 저은 보스는 안쪽의 사무실로 들어갔고, 끼불이는 담배를 물며 불을 붙였다.
그 순간이었다.
꽈앙! 꽝!
마치 누가 망치로 창고문을 때리는 듯한 소리.
“뭐, 뭐야!”
안에 있던 조직원들이 깜짝 놀랄 때, 창고 문이 열리며 종혁과 최재수가 들어선다.
“이야, 한국에서 도박 못 하니 여기서들 하시는구나?”
퀭하게 충혈됐음에도 욕망이 그득한 눈들.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어이! 너희 뭐야! 여긴 어떻게 왔어?”
“나? 렌트카 타고.”
“……이런 미친 새끼가.”
퍽!
“죽고 싶어?!”
밀쳐진 어깨를 힐끔 본 종혁은 자신의 어깨를 밀친 덩어리를 향해 씩 웃어 줬다. 그리고 그 대가리를 잡아 그대로 옆 카지노 테이블에 찍어 버렸다.
꽈앙!
테이블이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조용해지는 창고 안.
“예, 예. 많이들 하세요.”
아쉽게도 여기서 검거한다고 해도 인력이 부족해 송환을 할 수도 없는 도박꾼들. 다들 잡범이라 가성비도 맞지 않았다.
손을 저은 종혁은 안쪽의 사무실로 향했다.
“씨발! 이 개새끼가……!”
“그만!”
안으로 들어갔던 보스가 조직원 여러 명과 함께 나오며 종혁을 노려본다.
“어이! 너희 뭐냐? ……짭새냐?”
“오! 이런 먼 나라에서까지 알아봐 주니 겁나 고맙다야. 형이 뭐 좀 물어보려고 하거든? 그것만 대답해 주면 그냥 갈게.”
“남의 업장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그냥 간다고?”
“왜? 테이블값 물어 줘? 백만 원이면 돼?”
“……뭣들 해! 짭새 손님께서 나가신다잖아!”
“예, 큰형님!”
“우와아아아!”
조폭들이 달려드는 순간 종혁의 등 뒤에서 최재수가 뛰쳐나와 가장 먼저 달려드는 놈을 걷어찬다.
“이 개새끼들이 어디서……!”
눈을 뒤집으며 다른 놈에게 달려드는 최재수.
‘정말 형사 다 됐다니까.’
피식 웃은 종혁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놈에게 걸어가며 그 턱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꽈앙!
단 한 방에 눈을 뒤집으며 쓰러지는 덩어리를 뒤로한 종혁은 달려드는 놈들을 치우며 거의 자신과 덩치가 맞먹는 보스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하! 한국에서 끗발 좀 날리셨나 본데!”
부왁!
종혁의 얼굴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커다란 주먹.
‘넌 말을 해야 하니까!’
가볍게 주먹을 피한 종혁은 그대로 그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뻐억!
“꺽?! 이, 이 씨발!”
뻐억!
이번엔 반대쪽 옆구리를 붙잡고 주춤주춤 물러서는 보스에게 다가가는 종혁에게 최재수가 다가선다.
“부장님.”
“오. 에라이. 마무리는 하고 와야지, 인마.”
“하하. 그보다는 부장님 등부터 지켜야죠.”
“어이구, 네 몸이나 신경 쓰세…….”
“이 개새끼들이 진짜!”
자신을 앞에 두고 여유롭게 대화를 하고 있는 둘의 모습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보스가 허리 뒤춤으로 손을 가져간다.
그와 동시에 뽑혀 나와 종혁을 겨누는 권총 한 자루.
종혁이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껌뻑인다.
“니들이 대체 뭘 믿고 여길 왔는지 모르겠지만 여긴 필리핀이야, 새끼야!”
머리에 겨눠지는 총구의 싸늘한 감촉에 종혁이 항복의 의미로 손을 든다.
“너흰 오늘 뒤…….”
번쩍!
순간 눈이 빛남과 동시에 들어 올린 손을 빠르게 움직인 종혁이 권총을 뺏는다.
“어?”
총을 뺏길 줄 몰랐던 보스는 멍해졌고, 그사이 약실을 확인한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진짜 총이네, 이 개새끼가.”
이번엔 종혁이 눈이 뒤집혀 보스의 이마에 총구를 찔러 넣는다.
“이 새끼가 진짜 뒤질라고.”
“히이익! 그 그거 진짜 총……!”
“뭐 이 새끼야, 뭐.”
“히이익!”
다급히 뒷걸음질 치던 보스는 제 발에 걸려 넘어졌고, 종혁은 옆에서 멍하니 쳐다보는 덩어리, 이 본거지까지 안내해 준 덩어리를 보며 의아해했다.
“넌 또 뭔데?”
“끼, 끼불인데요?”
“끼불이? 하, 이 새끼가…….”
까불고 있다.
쩌억!
손바닥으로 턱을 돌려 버린 종혁은 다시 보스에게 다가갔다.
“야.”
“예, 예. 형님.”
“너 김정식이랑 군마파 새끼들에 대해 아는 거 있지? 그거 다 불어 봐.”
박 전무가 말하길 군마파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사거리파.
한쪽은 박힌 돌이고, 한쪽은 굴러온 돌이니 많이 부딪쳤다는 게 박 전무의 설명이었다.
‘그러니 아는 게 많겠지.’
종혁은 어리둥절해하는 보스를 향해 씩 웃어 주었다.
* * *
“우와아아악! 땄다! 땄어!”
“아아악!”
사락!
도박꾼들의 함성과 비명이 울리는 창고 안쪽의 사무실.
소파에 앉은 종혁이 장부를 한 장씩 넘기며 입술을 달싹인다.
“여자들 팔아넘기는 거는?”
“에이, 저희 그런 거 안 합니다.”
“하, 나 이 새끼가.”
좋게 말로 대해 주니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려고 하고 있다.
종혁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보스는 기겁했다.
“지, 진짭니다! 저희가 왜 그런 짓을 합니까!”
“말로 할 때 자진해서 납세해라. 장부 보면 다 나온다.”
“진짜라니까요!”
진심이 가득한 그의 눈빛에 종혁은 다시 장부로 시선을 돌렸다.
사무실을 모두 뒤져 찾아낸 장부와 계약서들.
“매춘은 하는데, 인신매매는 안 합니다! 여기서 그런 거 잘못했다가는 여기 갱 애들한테 바로 대가리에 구멍 뚫려요!”
보스를 빤히 바라보던 종혁은 장부를 덮었다.
호핑투어 둘에, 매춘을 하는 마사지숍 넷, 그리고 유흥주점 하나와, 이곳 도박까지.
이것들이 사거리파가 세부에 쌓아 올린 재산이었다.
‘많이도 해 처먹었네.’
“그러니까 그 새끼들이 너희를 건드리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당연히 서로 맞다이 까면 손해니까요.”
자신들 사거리파보다 훨씬 오래전에 세부에 자리를 잡은 군마파.
현재 조직원의 수는 무려 120명. 한인 상인연합회 회장으로 있는 김정식과 협력하여 지금도 계속해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 중이었다.
당연히 맞붙는다면 군마파의 압승이지만, 그렇다고 자신들도 그냥 당하기만 할 만큼 약하진 않았다.
“서로 붙어서 가게 불타고, 애들 다치면 그 돈이 얼마겠습니까?”
못해도 수십억이다. 김정식의 리조트에 불 몇 번 질러 버리면 수백억은 기본으로 깨질 수 있다.
한화 백만 원이면 살인도 저지르는 게 바로 필리핀 갱단들.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싶은 일반인들조차도 백만 원이라면 충분히 방화쯤은 저지를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간절하거나 인성이 나빠야 할 테지만 말이다.
“여러모로 그쪽이 손해라는 거죠. 뭐, 우리가 이런 외곽에서 깔짝대는 것도 있지만요.”
“그것뿐만이 아닐 텐데?”
싸움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방법만 있는 건 아니다.
“가령 너희 입장에선 상인연합회에 가입한 사람들 몇 명 구슬려서 이권을 떼어 내는 방법도 있잖아.”
그런 종혁의 말에 보스는 얼굴을 구겼다.
‘씨발. 뭐 이런 빠꼼이가 다 있어?’
분명 어려 보이는데, 이쪽 바닥 생리를 쫙 꿰뚫고 있다.
“……하아. 저라고 그 짓을 안 해 봤겠습니까? 저도 한 번 해 봤다가 보복 들어오는 거 보고 접었습니다.”
“왜?”
“필리핀 뽕쟁이 새끼들이 칼 들고 나타났으니까요.”
“뭐?”
보스는 놀라는 종혁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모르셨습니까? 군마파 그 새끼들, 세부 갱단들과도 연계하고 있습니다.”
“……그건 또 뭔 개소리야?”
종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이 갑자기 커지고 있었다.
* * *
“후우.”
창고 밖, 뿌연 담배 연기를 내뿜는 최재수에게 슬그머니 지수가 다가선다.
“에고, 차에서 기다리라니까.”
“…….”
“응? 왜?”
지수는 의아해하는 최재수를 보며 더 낯빛을 굳힌다.
‘고작 한국인 한 명을 위해 갱단과 맞서다니.’
필리핀 갱들과 비교하면 약간 부족한 한국인 갱단이라지만 그래도 갱이다.
그런데 종혁과 최재수는 게스트하우스 사장의 하소연,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서슴없이 쳐들어갔다.
‘이게…… 한국 경찰?’
부정부패의 상징, 돈만 밝히는 필리핀 경찰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이 사람들이라면…….’
지수의 눈에 애증과 기대가 서리기 시작한다.
“혹시…….”
드르륵! 쾅!
“아, 나오셨네. 응?”
갑자기 문이 열리는 창고에서 걸어 나오는 종혁을 본 지수는 눈을 부릅떴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에 심장이 옥죄어진다.
‘무, 무서워…….’
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섰지만, 최재수는 의아해하며 한 발 다가섰다. 뭔가 심히 거슬릴 때 짓는 표정이기 때문이다.
“표정이 왜 그러세요, 부장님? 무슨 일 있어요?”
“사이즈가 커져서.”
“……아, 씨발. 얼마나요?”
“총이 필요할 정도?”
“아오!”
머리를 벅벅 긁은 최재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어쩌시게요?”
“어쩌긴 뭘 어째.”
피식 웃은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저쪽의 사이즈가 커졌다면 이쪽의 사이즈도 키워야지. 예, 홍 대표님.”
홍정필 원내대표.
이번 사건은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