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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31화 (63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31화>

“어? 쟤는?”

최재수까지 놀라자 사장이 의아해한다.

“지수, 아니 샬롯과 아는 사이십니까?”

‘지수?’

어딜 봐도 한국 이름이다.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샬롯, 아니 지수는 코피노가 분명했다.

“며칠 전에 마주친 적이 있어서요.”

“아아. 응? 그러면 세부에 오신 지 꽤 되셨네요?”

“한 일주일 정도 됐습니다.”

‘쯧.’

설정이 꼬이게 되자 혀를 차던 종혁은 이내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돌아보니…… 이야, 이 동네 참 마음에 들더라고요. 사람들도 순박하고, 동네도 조용하고, 치안도 제법 좋고.”

“하하, 그렇죠. 돈만 있으면 세부도 나쁘지 않죠.”

“저기 바다가 훤히 보이는 풍경 좋은 곳에 카페 하나 차리면 아주……. 사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어이쿠. 카페를 차리시게요?”

사장은 흐뭇이 웃었다.

자신도 종혁처럼 세부의 풍경과 사람들에 반하여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게스트하우스를 세우지 않았던가.

낮에는 한적하게 세부의 풍경을 즐기고, 밤에는 세부를 찾은 한인 관광객들과 술 한잔하며 유유자적 즐기는 삶.

그 동료가 늘어난다는데, 업종도 겹치지 않은 동료가 늘어난다는데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사장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음…….”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사장님!”

“예, 갑니다! 그 이야기는 이따가 다시 하죠.”

사장은 얼른 다른 테이블로 향했고, 그 모습을 본 종혁은 혀를 찼다.

그런 종혁의 앞에 놓이는 500ml짜리 물통 하나.

“다른 사람에겐 말하지 말아 주세요.”

지수는 초조한 눈빛을 흘겼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한국인 도움은 안 받는다며?”

“나도 엄마가 아니었으면 여기서 일 안 해요.”

“……샤론이 엄마구나.”

“맛있게 처먹으세요.”

코웃음을 친 지수는 다시 주방 안으로 들어갔고, 종혁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뭐예요? 쟤 왜 저렇게 날이 서 있어요? 정말 무슨 일 있었어요?”

“재수야, 애만 싸질러 놓고 다른 나라로 튄 새끼를 어떻게 생각하냐?”

“개새끼죠! 그런 새끼들은!”

“그래서 그래.”

80년대 후반에 여권법이 개정되며 자유로워진 해외여행.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던 학생들에게 미국, 캐나다, 호주 등과 비교했을 때 학비가 훨씬 저렴한 필리핀은 유학 및 어학연수의 장소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뿐만 아니라 필리핀은 항공료와 물가가 다른 국가들보다 저렴하니 비교적 부담 없이 해외여행을 가기 좋은 나라였다.

문제는 그렇게 필리핀을 찾은 일부 남성들이 무책임하고, 쓰레기 같은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별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고는 다시 돌아오겠다, 한국으로 부르겠다 그딴 개소리를 하고 잠수를 타는 거지. 여자는 그 말을 덜컥 믿은 채 기다리는 거고.”

“이런 미친.”

실질적으로 문제를 떠안고 있는 필리핀에서는 일찌감치 이러한 문제가 대두되지만, 정작 그 문제를 던져 놓은 한국에선 이를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인지하게 된다.

“애초부터 성관계를 목적으로 오는 새끼들도 있고.”

“그런 씹새끼들까지 있다고요? 아니, 그런 새끼들 다 못 처넣어요!?”

“어떻게 찾을 건데?”

이름은 가명, 전화번호는 유심칩만 빼 버리면 연락할 방법이 없는 선불폰.

신원을 파악할 방법조차 없는 것이다.

“씨발!”

쾅!

테이블을 내려친 최재수는 소주병을 들어 병나발을 불었고,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개 같은 새끼들.’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사람이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타는 속에 술을 연신 들이켜던 최재수는 결국 1시간도 안 되어 뻗어 버렸고, 종혁은 방에 올려 둔 후 다시 내려왔다.

“어이쿠. 혼자 드시게요?”

“어이쿠. 사장님께서 상대해 주시면 되죠?”

종혁은 빈 잔을 내밀었고, 사장은 눈을 빛내며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아까 일행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거 같던데…….”

“아아, 망한 커피숍 이야기 좀 했거든요.”

“……혹시 어쩌다 닫게 됐는지 물어도 될까요?”

“뭐, 흔한 이야기죠. 아무리 용을 써도 프랜차이즈는 이길 수 없더라고요.”

“그랬군요…….비슷한 일을 겪고 필리핀으로 넘어오시는 분들이 꽤 많죠. 저도 그랬던 사람 중 한 명이고요.”

“사장님도요?”

사장이 씁쓸히 웃으며 술을 마신다.

“저는 빵집을 했습니다. 유동 인구도 많고, 2차선이지만 횡단보도 근처라 목도 아주 좋았죠.”

“아.”

유동 인구가 많은 횡단보도 앞.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1순위로 선점하는 곳이었다.

“아버지 때부터 해 왔던 빵집인데, 망하는 건 한순간이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신물이 나 버려 홧김에 세부로 여행을 왔다가 이곳의 풍경에 반해 정착하게 된 거다.

“그런데 빵집은 더 이상 하기 싫고 해서 이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게 됐던 겁니다.”

“그래서 여기 식전 빵이 특별했나 보네요.”

아침 메뉴를 내놓기 전 입맛 돋으라고 내주던 작은 빵과 딸기잼.

“그나마 남은 미련이죠, 뭐.”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자자, 우울한 이야기 그만 술이나 마시죠!”

사장도 동의한다는 듯 술잔을 들었다.

챙!

“크으! 그런데 많고 많은 업종 중에 왜 게스트하우스셨습니까?”

“아, 그게…….”

세부에 와서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그 자유로움에 홀딱 반해 버렸다. 단 한 번도 일면식 없는 사람들끼리 이런 작은 식당에 모여 함께 술을 마시고 정보를 공유하고, 아침이 되면 함께 투어를 가고.

“그때는 투어 상품이 제대로 개발도 안 됐을 때라…….”

“어이쿠!”

종혁은 맞장구를 치며 연신 술을 따라 줬고,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새 사장은 취해 버리게 됐다.

저녁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

종혁이 완전히 풀린 사장의 눈을 보며 슬슬 이야기를 꺼낼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

“음……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예. 전망 좋고, 목 좋은 곳에다가 차리면 어떨까 싶어서요. 여긴 뭐 프랜차이즈가 들어올 수도 없고, 관광객들 상대로 장사하면, 캬아! 돈 벌리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것 같네요!”

그러다 손님이 없을 때는 낚싯대를 들고 앞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거다.

“어떻습니까? 죽이지 않습니까?”

“죽이긴 뭐가 죽여!”

종혁의 낯빛이 굳는다.

그러나 사장의 낯빛은 더 굳어 있었다. 그의 눈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종혁을 보며 잠시 망설인다.

성공할 생각에 벌써부터 행복에 젖어 있는 어린 친구.

술도 잘 마시고 유쾌한 어린 친구.

말할까, 말까. 만취한 정신 속에서도 두려움이 왈칵 솟던 사장은 갑자기 기분이 상하는 종혁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한국에 있는 막냇동생이 꼭 저랬다.

그 나이를 먹고도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허탕만 치면서도 자존심만큼은 참 강한 막냇동생.

그런 막냇동생이 생각나자 그의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차오른다.

‘시발! 그 사람이 홍길동이야, 뭐야!’

“하지 마.”

“예?”

“내가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세부에서 하지 마.”

“아니, 왜…….”

“하지 말라면 하지 말라고!”

차려도 세부가 아닌 딴 곳에서 차려야 한다.

“세부에서 가게 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일단 한인 상인연합회에 신고를 해야 되고, 거기서 지정해 주는 건물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장사를 시작하면, 한인 상인연합회에서 찾아와 한인 상인연합회에 가입하고 지정한 건물에 임대를 들어오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미 다른 곳과 임대 계약을 끝마치고 장사를 시작한 상황에서 그러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한인 상인연합회 또한 가입하지 않겠다고 거절하면, 그들은 지분을 내놓으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이마저 거절하는 순간, 한인 상인연합회의 횡포가 시작된다.

일단 식자재 상인과 계약이 끊기고, 덩치 크고 문신 있는 사람들이 가게에서 진을 친다. 물 한 병 시켜 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것만으로 아예 장사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되는 거다.

“그게 무슨……! 경찰에 신고하면 되잖습니까!”

“아무 소용없어!”

세부 경찰도 한통속인데 신고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신고를 받아도 이미 놈들이 다 떠난 뒤에 출동하기 일쑤고, 제때 도착하더라도 같은 한국인끼리 적당히 화해하라고 주의만 주고 가 버린다.

그렇게 한 달이면 그 어떤 사람도 백기를 들 수밖에 없다.

그럼 그때부터 한인 상인연합회의 본격적인 간섭이 시작된다.

투어 상품들을 모두 한인 상인연합회에서 지정해 주는 곳과 계약을 해야 되고, 식료품 및 가게 운영에 필요한 필수품도 모두 그들이 연결시켜 준 곳과 거래해야 된다.

“아니, 그러면 차라리 가게를 접고 다른 곳으로 가면 되잖습니까!”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그때가 되면 다른 곳으로 가지도 못한다.

이미 없는 돈까지 끌어모아 가게를 차렸는데, 다른 곳으로 가려면 가게가 팔려야 하는데 가게를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다.

한국이 싫어 한국을 떠나왔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굳게 마음먹고 정말 다 포기한 채 떠나려 해도, 놈들은 놓아주지 않는다.

딴 데 가서 자신들에 대해 떠벌릴지 어떻게 아느냐고, 자신들과 엮인 이상 죽기 전까지 벗어날 수 없다고 말이다.

“뭐요?! 그거 조폭 아닙니까!”

“깡패지! 그 자식들 깡패 맞아!”

실제로 계속 반항하다 감금되어 맞은 사람도 있고, 살해 협박을 받은 사람도 있다.

아니, 실제로 죽은 사람들도 있다. 강도를 당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말이다.

“아니, 한인 상인연합회 회장은 뭘 한답니까!”

“뭘 하긴 뭘 해! 김 회장, 아 그 새끼가 대가린데! 그러니까 하지 마-!”

격렬하게 쏟아 낸 사장은 소주병을 입에 가져가 그대로 마셨고, 그렇게 한 모금 마신 순간 사장의 눈은 뒤집어졌다.

쿠웅!

테이블에 얼굴을 처박고 정신을 잃은 사장.

종혁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거였구나.”

한인 상인들이 김정식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조폭이 뒤에 있는 거다.

조폭의 앞잡이든, 파트너십을 맺었든 조폭을 등에 업고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한인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며 갈취한 거다.

“하, 나 이 개새끼가…….”

빠드득!

귀신보다 더 흉악하게 일그러진 종혁의 눈이 주방으로 향한다.

코 고는 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주방.

큰 소리에 고개를 내밀었던 지수가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굳고, 표정을 수습한 종혁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연다.

“꼬마야, 너 세부와 막탄 지리에 대해서 잘 아냐?”

“그, 그렇다면요?”

“그럼 내일 알바 하나 해라. 10만 페소 줄게.”

“흡?!”

“아침 10시까지 와라.”

몸을 일으킨 종혁은 사장을 둘러메곤 방으로 향했고, 지수는 그런 종혁을 멍하니 쳐다봤다.

* * *

“어이구. 제가 어제 실수하진 않았나요?”

“어휴. 실수는요. 마시다가 그냥 곯아떨어지시던데요?”

그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깨워도 안 일어나시고, 댁이 어딘지 몰라서 데려다 드리지도 못하고.”

그래서 자신의 방에서 재웠다.

“어, 어이쿠.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방값은 받지 않을 테니까…….”

“아, 그건 됐으니까 해장국이나 얼른 주십쇼. 이거 속이 쓰려서 견딜 수가 없네요. 확실히 앞자리 숫자가 바뀌니까 몸이 영……. 하, 이십대 초반 때는 한 달을 내리 술 마셔도 멀쩡했는데…….”

“하하. 아저씨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끄응!”

“하하하.”

사장은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 게스트하우스의 청소부이자 요리사인 샤론을 닦달했고, 그 모습을 보던 종혁은 담배를 물며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담배를 물었다.

“그런 개새끼였단 말이죠…….”

한인 상인연합회도 한통속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를 갈면서 나온 최재수가 종혁을 본다.

“이거 리조트를 세운 돈도 깡패 새끼들이 준 거 아닐까요?”

그래야 말이 된다. 그 출처 모를 자금이.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어떻게요?”

마침 생각나는 놈이 하나 있다.

해적 호핑투어의 사장이었던 덩어리.

‘한인 상인연합회에서 운영하는 게 아니었지.’

정확히는 한인 상인연합회에 가입한 업체가 아니었다. 그래서 김정식과 조폭의 연합을 생각지도 못했던 거다.

역시 코는 배신을 하지 않았다.

“길 안내를 해 줄 사람도 오네.”

종혁은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지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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