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28화>
성공리에 끝난 세계경찰태권도 대회!
한국 경찰, 메달 총 6개! 개최국으로서 명예를 지켰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발차기! 이들이 있어 밤길이 든든하다!
인사동을 찾은 톱스타들!
한복 입고, 경복궁 나들이! 톱스타들 한국의 멋에 취하다!
에이미 스피너, 한국에 감사하다. 한국에서 다시 공연하고파!
세계적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한국 걸그룹들!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류! 빌보드 정조준?
기이이잉!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인천공항의 주차장.
종혁이 에이미 스피너와 악수를 나눈다.
“그동안 수고했어요. 브라이언에 관한 건 더 이상…….”
와락!
“고마웠어요, 최.”
종혁은 갑자기 자신을 끌어안은 에이미 스피너의 행동에 놀랐다가, 이내 푸근히 웃으며 그 작은 등을 토닥여 주었다.
“다음에 또 봅시다.”
“또 볼 수 있는 건가요?”
“우리에겐 저 비행기라는 게 있죠.”
세계 어디든 금세 갈 수 있는 비행기.
마침 하늘 위로 뜨는 비행기를 가리키는 종혁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던 에이미 스피너의 눈이 붉어진다.
그녀는 종혁을 빤히 응시했다.
‘은인.’
자신을 그 지옥에서 끌어내 주다 못해 계속 살아갈 의미까지 부여해 준 은인.
“왜…….”
쪽!
“……?!”
“히히. 갈게요. 또 봐요!”
해맑게 웃으며 손을 붕붕 흔든 그녀는 몸을 돌리며 낯빛을 가라앉혔고, 그런 그녀를 향해 플래시 세례가 쏟아진다.
“에이미 스피너 씨! 여기 좀 봐 주세요!”
“한국은 어떠셨습니까, 스피너 씨!”
에이미 스피너는 선글라스를 끼며 더욱 도도하게 걷기 시작했고, 종혁은 입술을 매만지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미국은 표현력이 너무 좋다니까.”
저렇게 매력적인 여성이 뽀뽀를 해 주는데 싫어할 남자가 있을까.
피식 웃은 종혁도 인천공항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글쎄, 전용기를 탈 거라니까요? 아, 부장님! 여기예요, 여기!”
손을 흔드는 최재수의 주위에 몰려 있는 수십 명. 밖에선 한파가 몰아치는데,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있다.
‘벌써부터 신났네.’
걷는 속도를 높인 종혁은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제가 늦었습니다!”
휴가 시작이었다.
* * *
“우와아아!”
“수영장이다! 엄마! 수영장이야, 수영장!”
“그래, 수영장이네?”
야자수들이 즐비한 이국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풀빌라.
오랜 비행에 지치지도 않은 건지 아이들은 수영장을 보며 눈을 빛냈고, 부모들도 슬그머니 눈을 빛낸다.
“아이고. 이번에도 감사합니다, 부장님. 부장님 덕분에 이 박복한 년이 이런 호사를 누립니다.”
최재수의 할머니의 말에 아차 한 사람들이 종혁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부장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부장님!”
“제 남편 얼마든지 굴려 주세요!”
“모두 여러분의 가장들께서 열심히 노력해 주신 것에 대해 상부가 주는 선물이니 우리 모두 옆에 계시는 아버지와 남편, 자식들을 위해 박수 쳐 줍시다! 자, 박수!”
“와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짝!
“아빠, 짱!”
“여보, 수고했어.”
가족들의 칭찬에 머쓱해하며 종혁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내는 홍보부 직원들.
흐뭇이 웃은 종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 스케줄은 저녁부터 시작이니까 그 전까지 모두 이 풀빌라를 마음껏 즐겨 주세요! 아셨죠?”
“네-!”
“아, 맞아. 돌아갈 때 피부톤이 두 톤 이상 달라지지 않은 사람은 다음 휴가 때부터 데려가지 않을 테니 모두 열심히 노는 겁니다!”
“푸하하하! 네!”
“옛썰!”
“자, 그럼 숙소를 향해 돌격 앞으로!”
“앞으로-!”
“와아아아아!”
“여보, 부장님 정말 여자친구 없어? 없으시면 내가 다리 좀 놔 줄까?”
“어허. 거 부장님이 어련히 알아서 안 하실까. 조용히 해.”
종혁은 배정받은 숙소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풀빌라 관리인들에게 다가갔다.
많아 봐야 숙소가 10개 정도에 불과한 풀빌라 하나로는 이 많은 인원을 감당할 수 없어서 총 네 개의 풀빌라를 전세 냈다.
한 가정당 건물을 하나씩 독채로 쓸 수 있도록 말이다.
“소주와 맥주, 음식들은 다 준비됐죠?”
24시간 무한대로 구워지는 바비큐와 해산물들.
그리고 다양한 김치들과 필리핀 음식들.
“하하. 걱정 마십시오! 주류와 음식이 떨어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때처럼!”
이번에 종혁들이 이용하는 풀빌라 모두 세계경찰태권도 대회 합숙 때 이용했던 풀빌라들이다.
그때 돈맛을 확실히 봤던, 부대시설 및 식당 이용비가 숙박비보다 최소 3배 이상씩 더 나오는 기적을 체험했던 그들로서는 절로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 달라는 대로 주시고, 돈은 제 앞으로 달아 두세요.”
“예!”
“그럼 저희는 손님들을 모시고 가야 해서…….”
“어서 가 보세요.”
손을 저은 종혁은 자신이 배정받은 풀빌라 안으로 들어가 모든 창문을 활짝 열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으으! 좋다.”
신경 쓸 게 없다는 게 너무 좋았다.
“엄마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일이 있다고 거부했던 어머니 고정숙.
“대체 무슨 일인지…….”
한사코 대답을 거부했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입술을 내밀었던 종혁은 돌연 미간을 찌푸렸다.
“할머님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던데…….”
종갓집의 할머님.
작년 추석까지만 해도 그래도 별채 앞마당 정도는 돌아다니실 수 있었던 할머님이 올해 설에는 이불 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셨다.
“준비해야 되는 건가…….”
가슴이 답답해진 종혁은 담배를 물며 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그의 방문이 두드려진다.
“오빠, 주무세요? 우리 수영장에서 놀고 싶은데…….”
슬그머니 문 안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희와 그녀의 친구들.
“응? 아!”
밖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종혁을 발견한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 * *
설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파가 몰아치는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 앉은 고정숙이 커피를 홀짝이며 맞은편에 앉은 여성을 째려본다.
“너 진짜…….”
“그럼 언제까지 거기에 거미줄 치고 살려고? 종혁이도 이제 서른이야. 언제까지 감싸고 돌 건데?”
“내가 알아서 하거든? 그리고 내가 언제 종혁이를 감싸고 돌았다고? 걔 알아서 컸어.”
“어이구, 그런 사람이 아직까지 혼자세요?”
“흥! 그럼 이런 내가 아무나 만나리?”
고정숙은 팔목에 찬 손목시계를 흔들어 주었고, 그녀의 친구, 임애숙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고정숙이 부동산 부자로 이름을 알리게 된 후 알게 된 친구였다.
“지도 관심이 있어서 나와 놓고는…….”
“관심은 무슨.”
“네 아들이 부서원들과 가족 동반으로 해외에 간 거 다 알거든?!”
“…….”
고정숙은 슬그머니 빨대를 입으로 가져갔고, 임애숙은 혀를 찼다.
딸랑!
“아무튼 걔들이 경찰 홍보대사에서 물러난 게 맞단 말이지?”
“예! 본청에서 일하는 친구가 그랬다니까요? 사장님, 어떡할까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무조건 들이밀어야지! 걔들이 아무리 XM 소속이라지만, 그만큼 큰 게 어디 XM 능력만으로 가능한 일이겠어?”
고작 한국의 걸그룹 따위가 전 세계적인 스타 에이미 스피너와 듀엣 공연을 한 것도 모자라, 차후 그녀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됐다.
에이미 스피너뿐만이 아니다. 곧 있으면 열릴 미야자키 나미에의 무도관 공연에도 게스트로 초청을 받았고, 빅토리아 베넌도 자택으로 초대를 했단다. 다른 스타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걸그룹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거다.
이 모두 메인 센터인 윤아, 그녀의 친척인 최종혁이 경찰 본청 홍보부의 수장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데뷔하는 그 순간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온 윤아네 그룹.
“하지만 그때 그 사람은 홍보부장이 아니었…….”
“야, 이 멍청한 놈아! 지금 홍보부, 그러니까 최종혁 총경이 홍보부장이 되기 전에 본청 홍보부를 꽉 잡고 있던 게 누구야?!”
종혁이 과장 대리로 있었던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의 정예들이다.
“아무리 XM이라지만, 상식적으로 이제 막 데뷔한 애들이 경찰 홍보대사가 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화, 확실히 그렇기는 하죠.”
“그렇기는 하죠가 아니라 그런 거야! 아무튼 그 사람 스케줄 알아 와!”
“설마…….”
“그래야 그 아가리에 돈을 쑤셔 넣든, 애들을 소개시키든 할 거 아냐!”
“미치셨어요? DP 엔터 사장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거 벌써 잊으셨어요?”
세계경찰태권도 대회가 끝난 후 종혁에게 은밀히 접근해 뇌물을 먹이려다가 그대로 수갑을 찼다.
“그 사람 강남에만 빌딩을 10채나 가진 부자입니다!”
모두 15층 이상 가는 고층 빌딩들. 10층 이하의 꼬마 빌딩의 수는 그 세 배가 넘는다.
“화, 확실히 돈은 안 먹히겠지?”
“당연하죠! 사장님 우리 이거 잘 생각해야 됩니다. 룸 같은 거 잡고 애들 밀어 넣었다가는 사장님도 쇠고랑 차는 거예요.”
“……아오! 돈도 안 된다, 유흥도 안 된다! 뭐 그런 인간이 나타나서! 아, 미안합니다. 마끼아또 하나요.”
“전 같은 걸로 주세요.”
카페를 시끄럽게 했던 둘은 빈자리에 앉아 다시 떠들기 시작했고, 임애숙은 고정숙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네 아들 인기 좋다? 이러다 연예인 며느리 얻겠는데?”
“어이구, 누구라도 얻으면 좋겠다.”
아까 전 임애숙이 한 말처럼 종혁의 나이가 벌써 서른이다. 아들의 연애관에 간섭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이제 슬슬 엄마로서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얘 진짜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겠지?’
매일 아침 우람하게 치는 텐트를 봤을 땐 아닌 것 같은데, 도통 너무 연애를 안 하니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애들을 한번 부추겨 볼까?’
종혁이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김소영과 이리나 샤크, 현석의 동생인 강현희까지 종혁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다.
‘아니지. 요새 소영이랑 수호가 좀 이상하던데…….’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아무것도 아니야.”
“설마 오늘 소개받을 사람 생각하는 거야? 진짜 잘해 봐. 그 사람 키도 훤칠하고 사업도…… 어머. 왔다, 왔어.”
임애숙은 옆, 카페 창문 밖을 스쳐 지나가는 장년인을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고, 고정숙은 슬그머니 콤팩트를 꺼내어 화장을 점검했다.
딸랑!
“정식 씨! 여기야, 여기!”
“하하. 제가 많이 늦었죠? 반갑습니다, 오정식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고정숙…….”
몸을 일으킨 고정숙은 훤칠한 키에 남자답게 생긴 장년인의 얼굴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오빠……?”
“……정숙이?”
임애숙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 * *
“에라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종혁이 헛웃음을 짓는다.
“이런 거라면 그냥 말하지.”
솔직히 많이 늦었다.
20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결혼해 자신을 낳았던 어머니 고정숙의 연세도 어느덧 쉰이다. 만으로 깎는다 해도 마흔아홉.
아담하고 예뻤던 아가씨가 어느덧 다 늙은 아줌마가 되어 버렸다.
회귀 전과 달리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효도를 했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빈 옆자리는 채워 주지 못했다.
그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짐처럼 남았던 종혁.
어머니 고정숙처럼 서로의 연애관에 터치를 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한 살, 한 살 나이를 드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입술이 달싹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는 잘 만나 보세요. 저번처럼 파투 내지 말고.”
정혁빌딩을 산 이후 어머니가 연애를 한 게 총 4번. 이번엔 부디 끝까지 가서 재혼을 했으면 싶었다.
“그래야 이 아들도 맘 놓고 장가를 가지.”
“헉! 부장님, 결혼하세요?!”
종혁은 경악하는 최재수를 보며 흐뭇이 웃었다.
“미쳤냐?”
“아뇨. 죄송합니…… 아니지! 연애 좀 하세요, 부장님!”
“그럴까?”
쿵!
“저, 정말이세요?!”
“아니다. 됐다. 이제 곧 지방으로 가야 될 놈이 연애는 무슨 연애냐.”
아니다. 놈들을 모두 때려잡을 때까지는 약점을 늘릴 수 없다.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다면 여자친구뿐만 아니라 그 일가친척까지 모두 보호를 해야 되니 말이다.
“에이. 거기서 서울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아니면 거기서 사귀셔도 되죠. 제가 다리 한번 놔 드려요? 제 동기 중에 부장님 좋아하는 애들 많은데.”
“됐습니다요. 너나 많이 사귀세요.”
콧방귀를 뀐 종혁은 담배를 물며 주황빛 불빛들이 켜진 세부의 허름한 거리를 둘러봤다.
빠앙! 빵빵빵!
도로 위를 오가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빨갛고 화려한 지프니. 콧속을 파고드는 쿰쿰한 냄새가 다시 세부에 왔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음식은? 입에 맞는데?”
“모두 좋아하시던데요? 우리 할머니도 맛있게 드시고 계세요.”
“다행이네.”
웬만하면 한국인 입맛에 맞는 동남아 음식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라 걱정을 했던 종혁으로선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일은 해적 투어 갈 거니까 갈아입을 옷들 챙겨 오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자. 어이쿠.”
몸을 돌리던 종혁은 갑자기 시야에 끼어드는 그림자에 다급히 비켜섰고, 그 소리에 놀란 건지 종혁이 있던 자리로 뛰어들던 아가씨가 넘어진다.
“꺅!”
“괜찮으…….”
순간 종혁의 입이 다물어진다.
이제 20살이나 됐을 법한 긴 생머리의 미녀. 뒤를 이어 깜짝 놀란 8명의 미녀가 현장에 도착한다.
“야!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
“으이그! 내가 너 뛰어다닐 때부터 알아봤다!”
“지민아, 괜찮아?”
“으응. 난 괜찮아. 그런데 나보단……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보지 못해서 그만!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아, 예. 전 괜찮습니다. 그쪽도 괜찮으신가요?”
“어? 한국인이시네요?”
“우와! 그러게요. 우연이네요. 친구끼리 여행 오셨나 봐요?”
“네! 오빠…… 아, 아니지. 그쪽은요?”
“회사 직원들끼리 단체 가족여행 왔습니다.”
“와아. 어딘지 몰라도 짱이다.”
“하하. 그럼 즐거운 여행 되세요.”
“네! 님도요!”
9명의 늘씬한 미녀들은 꺄르르 웃으며 멀어졌고,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최재수는 혀를 내둘렀다.
“와. 모델이야, 뭐야?”
“재밌네.”
“응? 뭐가요?”
“아니야. 들어가자.”
윤아네 그룹들과 경찰 홍보대사 계약이 해지된 걸 어떻게 알았는지 조용히 접근해 뇌물을 먹이려 했던 어느 엔터의 사장.
그 엔터의 걸그룹, 회귀 전 제법 이름을 알렸던 걸그룹과 이 먼 세부에서 만났다. 그것도 로컬들만 아는 맛집 앞에서.
이걸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번 여행, 꽤 재밌겠어.”
종혁의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맺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