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27화 (62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27화>

철통보안으로 엄중히 지켜지는 VIP 관람실.

종혁은 박명후 대통령의 옆에 앉은 여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영부인님. 최종혁 총경입니다.”

“반가워요, 이윤정이에요.”

종혁은 허리를 숙여 악수를 받으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이윤정. 말이 많은 양반이었지.’

주로 뇌물이나 사치 쪽으로 말이 많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영부인이기에 경찰이 함부로 수사를 할 수 없었던 존재.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뗀 종혁은 VIP 관람실의 정중앙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있는 장희락 경찰청장과 나형재 대변인을 봤다.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입이 귀까지 찢어져 있는 그들.

“경찰청장.”

“예, 대통령님!”

“바쁜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아하하! 마, 맞습니다. 제가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민생의 치안을 위하느라 오늘도 고군분투하시는 분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없죠.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추, 충성!”

장희락과 나형재가 종혁에게 복잡한 눈빛을 보내며 물러나자 박명후는 영부인을 쳐다봤다.

“밖에 나가서 손 좀 흔들어 줘요.”

“……알았어요.”

종혁을 째려본 영부인은 두꺼운 옷을 걸치며 VIP 관람실의 테라스로 향했고, 종혁은 경호원들까지 모두 내보내는 박명후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푸후. 이제야 숨 좀 쉴 수 있겠군요. 최 부장은 절대 결혼 같은 거 하지 마세요.”

“하하.”

“아, 맞아. 거기가 고장이 났다고 했던가요?”

“누굽니까. 그런 헛소리를 한 양반이?! 설마 국정원장님이십니까?”

“그러게 연애 좀 하지 그랬습니까, 하하핫!”

“끄응.”

입맛을 다신 종혁은 자리에 앉았고, 곧 비서실의 직원이 차를 내온 후 VIP 관람실을 나간다.

달칵!

문이 닫히며 다시 침묵이 찾아든 VIP 관람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후유증은 없습니까?”

“걱정해 주신 덕분에 오늘도 건강합니다.”

“다행이군요.”

고개를 주억이며 차를 마시던 박명후는 돌연 헛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또 해냈군요.”

6개국만 참가할 예정이었던 대회를 무려 40개국이나 참가하는 세계적인 대회로 키운 것으로도 모자라, 금메달을 무려 4개나 획득했다.

은메달, 동메달까지 합하면 메달의 개수가 무려 6개. 개최국으로서의 명예를 지킨 거다.

처음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모두 완벽했다.

“설마 여기까지 의도한 겁니까?”

종혁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질 게임은 하지 않는 게 제 모토라서요.”

“정말 대단하군요.”

‘이 사람이 손을 대서 실패한 것들이 있던가.’

없다. 개입을 했다 하면 모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가져왔다.

운이 아니다. 종혁이 그렇게 설계를 하는 거다.

‘이번 계림그룹 사태만 봐도 그렇지.’

범죄자를 징치하겠다는 정의감과 사명감만으로 훗날 수백억, 아니 수천억을 벌 수 있는 카드를 허무하게 써 버렸다.

‘빅모터스 그룹도 그런 카드를 쓴 거겠지.’

대한민국의 중고차 업계를 평정해 버린 빅모터스 그룹.

어디 그뿐인가.

강간살인을 저지른 불법체류자를 잡겠다며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모든 외국인 노동자가 회원으로 등록된 인터내셔널 잡이란 직업 알선 회사를 세웠다.

현재 숙박업계에서 전설을 써가고 있는 M-컴퍼니도 그 시작은 위수 지역과 군 간부들 사이의 비리를 뿌리 뽑기 위해서였다.

이 외에도 참 많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종혁의 진짜 모습들이.

그중 가장 궁금한 건 아무래도 권&박 홀딩스다.

권회수와 김단향의 관계도 궁금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건 권&박 홀딩스.

‘이 친구의 밑바닥을 모르는 재력. 그것의 원천.’

창립 멤버에 가까운 초기 투자자라고 해도 권&박 홀딩스의 두 대표, 아니 두 괴물이 종혁에게 그만한 대우를 해 주는 데는 사람들이 모를 어떤 이유가 있을 터.

‘대체 어떤 계약을 맺은 걸까.’

미치도록 궁금하다.

하지만 물어볼 수 없다. 종혁과 불편한 관계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현 대표는 이런 내용들을 알고 있을까……. 아마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러니 계림그룹 사태 때 대현중공업이 끼어든 것일 터.

그런 의미에서 삼전그룹의 김희건 회장과 김재용 전무도 종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다.

조만간 자신도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박명후는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후룩!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휴가를 갈 겁니다.”

홍보부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까지 전부해서 단체 해외여행을 떠날 거다.

“호오. 그거 무척 부러운 이야기군요. 하지만 제가 묻는 게 그것이 아님을 아시잖습니까.”

종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장희락 경찰청장님의 임기가 끝나면, 정확히는 청장님의 임기가 끝나기 전 지방으로 갈 생각입니다. 그래야 그림이 좋을 테니 말입니다.”

최기룡부터 시작해 장희락까지.

그동안 쓰임새를 보여 많은 특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점점 경찰 내부에서 불만이 많아지고 있다. 나이와 경력이 부족한 탓이다.

지금이야 상부가 감싸고 돌기에 겉으로 표출되지 않고 있을 뿐, 정말 고위 간부라 할 수 있는 경무관에 올라서려면, 더 높은 곳으로 향하려면 잠시 우회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순환 근무를 말하는 거군요. 신안으로 가실 겁니까?”

“……제게 이렇게까지 관심이 쏟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몰랐습니까? 저 최 부장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제 딸들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맺어 주고 싶을 정도로요.”

“참아 주십시오. 제가 연상은 좀 부담스러워하는 스타일이라서요.”

“하하하핫!”

별로 재밌는 농담이 아닌데도 팔걸이를 치며 박장대소를 한 박명후는 돌연 낯빛을 굳혔다.

“그렇게 지방으로 가면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현재 경찰 내부를 소위 최기룡 일파라 부르는 파벌이 장악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아마 다음 경찰청장도 그쪽 일파에서 나오게 될 거다.

하지만 차기 경찰청장이 장희락처럼 종혁을 중히 쓴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현재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는 현몽준 당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승리를 한다면 무난히 돌아오겠지만, 만약 패배한다면 종혁은 꽤 오랫동안 지방에서 썩게 될 거다.

지지 기반이 전혀 없음에도 국민들의 성원에 의해 당선이 됐던 박노형 전 대통령이란 케이스도 있지 않던가. 세상일은 모르는 거였다.

“그러게 적당히 하지 그랬습니까.”

현재 국민들에게 칭송받는 경찰의 시스템은 종혁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 너무 잘해 줘서 종혁이 빠진다고 한들 무난히 굴러가게끔 되어 있다.

본청의 홍보부가 방송국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도 그렇다. 종혁이 빠진다고 해도 경찰이 쥔 목줄이 끊어질 일은 없었다.

이런 그의 말에 종혁은 웃음을 흘렸다.

충분히 일리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종혁은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누가 차기 경찰청장이 되든 자신을 필요로 하게끔 만들 자신이 있었으니까.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왜 선을 넘지…… 하아.”

“하하.”

박명후는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제가 최 부장에게 뭘 바라겠습니까.”

“하하하.”

“그보다 장 청장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예? 뭐, 나쁘지는 않습니다. 청장님은 훌륭한 상관이시고,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리더십니다.”

“좋군요. 그러면 올 가을에 물러나세요.”

“예?”

“곧 경찰청장의 임기를 늘릴 생각입니다.”

쿵!

“대통령님!”

종혁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종혁이라고 2년의 임기가 아쉽지 않을까. 마음이 맞는 사람과 오랫동안 일하고 싶은 건 누구나 가지는 소망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이것에 대한 작업을 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권력의 고착화.

제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고이게 된 순간 썩는다. 이건 역사가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박명후는 이런 열변을 토해 내는 종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끝까지 들으세요. 임기를 3년으로 늘릴 예정이지만, 경찰청장의 생사여탈권은 계속 쥐고 있을 겁니다.”

“아.”

여차하면 목을 날린다.

그게 박명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그동안 종혁이 자신의 임기 기간 동안 해 준 수많은 일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잘하고 있는 사람 조금 더 잘하라는 의미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 정도라면야…… 감사합니다. 청장님께서 많이 좋아하시겠군요.”

박명후의 말은 이런 거다. 올해 가을에 물러난 후 내년에 복귀하라는 것.

“그리고 저도 덕분에 마음 놓고 다녀올 수 있을 듯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명후는 허리를 숙이는 종혁의 모습에 흡족하게 웃었다.

“그리고…… 회사라고 했던가요?”

움찔!

“보고를 받으셨나 보군요.”

“담배 있습니까?”

종혁은 그에게 담배와 담뱃불을 빌려줬다.

찰칵! 치이익!

“후우.”

연기를 내뿜는 박명후가 이를 악문다.

“그렇게 거대한 범죄 조직이 이 한국에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처음 보고를 들었을 땐 국정원장이 망상증에 걸린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고, CIA와 SVR이 미치도록 찾아 헤매는 그 조직을 처음 발견한 것이 바로 종혁이었다.

“아직도 그 실체는 드러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뭐요?! 임원들을 사살하고 검거했잖습니까!”

“그들조차도 빙산의 일각일 수 있습니다.”

“……허어.”

박명후는 타는 속에 담배를 연신 빨았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면 그들이 더 깊은 곳으로 숨을 거라는 말이군요.”

“죄송합니다.”

“후우. 내 국정원장에게 적극 협력하라고 말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담배를 끈 박명후 일어서 손을 내밀며 이번 밀담의 끝을 알렸다.

“다음에 또 봅시다.”

“퇴임하시면 술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으하핫! 그래요. 그것도 나쁘지 않겠죠.”

정치인과 경찰은 서로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 그런 의도로 말한 종혁은 몸을 돌렸다.

“그럼.”

종혁이 VIP 관람실을 떠난 후 남겨진 박명후는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이군.”

그간 경찰 개혁이란 기치 아래 종혁이 걸어온 행보를 보면 한 가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경찰의 성역화. 민심을 등에 업고 서로가 똘똘 뭉친 초월적인 집단.

대통령의 제어도 벗어난 그런 집단을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임기제를 손보는 걸 반대하는 모습을 보니 다행히 그건 아닌 것 같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경찰청장의 임기가 늘어나고, 훗날 자신이 경찰청장이 되었을 때도 임기가 길수록 좋은 것인데 그걸 반대한다?

종혁이 사리사욕을 품고 있었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오늘 이것을 떠보기 위해 종혁을 불렀던 박명후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야.”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데, 이 나라가 보다 안전한 나라가 되는 데 혁혁한 공을 올린 종혁을 자신의 손으로 내치지 않아도 되어서 말이다.

순간 눈빛이 칼날보다 더 날카롭게 빛났던 박명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나저나 어르신이라…….”

‘대체 누굴까?’

이 나라를 좀먹는 거대 범죄 집단의 숨겨진 우두머리.

대통령으로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런 대담한 짓을 벌일 사람이 대체…….”

“대통령님.”

박명후는 VIP 관람실의 테라스에서 들어오는 비서실장을 봤다.

“비서실장의 말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 같더군. 아주 대차게 혼났어.”

경찰의 성역화를 의심하게 된 건 비서실장의 말 때문이었다.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해서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대체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기에 자네가 그렇게…….”

드르륵!

“여보!”

‘하아.’

“이런. 많이 추웠지?”

박명후는 애써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 * *

복도를 걷는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박명후가 날 경계하기 시작했다?’

경찰청장 임기 연장을 언급하면서 매섭게 빛나던 박명후의 눈빛.

그것은 자신이 무언가 다른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려는 눈빛이었다.

박명후 대통령이 종혁 자신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게 된 거다.

‘갑자기 왜?’

보신을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박명후 대통령이다.

그런 박명후에게 자신은 꽤 쓸모 있는 카드다. 이번 세계경찰태권도 대회처럼 알아서 치적을 만들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차기 대통령 때문인가?’

본인과 뜻이 맞는 사람을 차기 대통령으로 세우고자 이러는 것일 수도 있다. 종혁 자신은 현몽준 당대표를 밀고 있으니 말이다.

‘아냐. 만약 그랬다면 그쪽으로도 떠봤을 거야.’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알아봐야겠군.’

누가 박명후를 충동질했는지 말이다.

“최 부장!”

고개를 든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희락과 나형재가 똥 마려운 강아지 같은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에라이.’

“대통령님께서 뭐라고 하셨지?”

“별말은 안 하셨습니다. 제가 일전에 크게 다친 것 때문에 괜찮냐고 물어보시더군요.”

“고작 그것 때문에 사람들을 물리셨다고?”

“……권회수 이사장님과 압구정 김 여사, 김단향 여사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아아.”

한때 밤의 황제라 불리며 국회의원조차 무릎걸음으로 돈을 빌려야 했던 권회수와 현재 수많은 권력가의 약점을 틀어쥐고 있는 김단향 여사.

그 둘의 친분에 정재계가 모두 발칵 뒤집혔었다.

‘대통령님도 둘에게 돈을 빌렸나 보군. 어쩌면 약점이 잡혔을 수도…….’

그런 거라면 사람을 물린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거 오래도 참으셨어.’

“최 부장이 동병상련이라고 했었지?”

“저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두 분 다 당장 내일 눈을 뜨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연배잖습니까.”

원래 미운 정이 더 무서운 법이다.

“게다가 권 이사장님은 더 이상 돈놀이를 안 하시고요.”

“맞아. 라이벌이 아니면 더 그럴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이던 장희락은 이내 자신의 추태를 깨닫곤 헛기침을 했다.

“대회 치르느라 수고했어. 홍보부 모두 기대해도 좋을 거야.”

“감사합니다. 충성. 아, 그리고 폐막식 공연이 끝나면…….”

“홍보부 단체 휴가? 이번 대회에 대한 홍보 자료만 준비해 놔.”

“충성.”

-What up Korea-?

꺄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

‘하아. 드디어 끝났네.’

축제가 모두 끝났으니 이제 휴가를 갈 시간이었다.

‘세부나 다시 갈까?’

거의 보름 동안 돌아다녔어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세부.

“그놈도 계속 마음에 걸리고.”

외사국에 물어보기까지 했던 놈.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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