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26화>
“저…… 저…….”
첫 경기부터 한일전이 벌어지는 매트 위를 바라보는 최재수가 입을 뻐끔거리며 종혁을 본다.
“그동안 선수 프로필도 확인 안 하고 뭐했냐?”
“아니…….”
그건 자신의 잘못이 맞지만, 그래도 억울한 최재수의 모습에 코웃음을 친 종혁은 일본 경찰을 몰아치는 박경후 경장과 대기석에 앉아 뒤의 가족들과 웃음꽃을 피우는 한국 경찰 대표들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어렸을 적 태권도장 한 번 안 다녀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재 풀이 넓고 깊은 이 대한민국에서 국가대표가 된 이들이다.
그 경쟁의 치열함은 유도와 양궁에 버금갈 수준. 아니, 어떤 부분에선 유도와 양궁보다 훨씬 빡세다고 봐야 했고, 종혁은 그들 중 최고의 인재들만 골라 한국 경찰의 대표로 선발했다.
선수 출신이 있다고 해도 우물 안의 경쟁과 다름이 없는 다른 나라 경찰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재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최대 약 1억 5천만 원 상당의 상금이 걸렸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라 인사 고과도 걸려 있지.”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고 해서 불이익은 없겠지만 반대로 좋은 성적을 낸다면, 메달을 딴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세계에 한국 경찰의 뛰어남을 널리 알렸는데 고과에 반영을 해 주지 않는다?
그걸 두고 볼 종혁이 아니었다.
이는 이미 상부와 조율을 끝마친 사안이었다.
“아, 맞아. 금메달 따면 20일 휴가도 있어.”
이런 종혁의 말에 최재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왜 그렇게 종혁이 여유만만이었는지 이해가 됐다.
“확실히 그 정도라면 죽기 살기로 하겠네요.”
“그렇지. 각오가 다르잖아.”
이 정도 포상이 걸려 있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경찰이라고 욕심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인간인 이상 억대 상금이 걸려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했다.
‘물론 각오만으로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들의 피지컬에 각오까지 갖추어졌다면 금메달 3개는 우습고, 5개도 무리가 아니었다.
개최국의 명예는 무조건 지켜진다고 봐야 했다.
“그럼 이제…….”
“응. 팝콘 가져와.”
“카라멜맛으로 가져올까요?”
“치즈맛으로.”
“옙!”
이제는 그저 즐기며 지켜볼 시간이었다.
* * *
퍼엉!
“우와아아아악!”
“꺄아아악!”
“와, 와우.”
미국 경찰 대표들 사이에 앉은 에이미 스피너가 깔끔하게 작렬하는 뒤돌려차기에 벌렁벌렁 뛰는 심장을 누른다.
어제도 보았던 것임에도 도통 진정하지 못하는 심장.
그런 에이미의 모습에 새로이 그녀의 매니저가 된 여성이 안경을 치켜세운다.
“에이미는 이런 경기를 좋아하나 보군요.”
“저도 몰랐어요.”
“음? 이런 스포츠를 본 적이 없는 겁니까?”
“농구나 야구 경기라면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구단에서 표를 보내 줬기에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몇 번 관람한 적이 있다.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던 함성과 사람들이 내뿜던 뜨거운 열기. 호쾌한 덩크와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엔 그녀도 관중들의 열기에 휩쓸려 방방 뛰었다.
이후엔 여러 사정 때문에 관람을 할 수 없게 됐지만, 그때의 그 흥분과 두근거림은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런데 이 태권도 경기도 그에 버금가는, 아니 다른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귓가에 선명하게 꽂히는 호구 때리는 소리.
밑에서 솟구치고, 아래로 찍히는 폭풍 같은 발차기와 순간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주먹질.
미국 경찰 대표가 스위스 경찰 대표에게 호구가 잡혀 중심이 무너질 땐, 그 반칙 같은 모습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격렬한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미국 경찰들의 웃음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그녀의 소중한 순간이 되어 주었다.
화려했던 시범단의 공연도 참 멋졌었다.
“앗! 그건 반칙이지! 심판! 심판!”
매니저는 그렇게 말하다 경기장을 보며 항의하는 에이미를 안쓰러워했다.
‘고작 이런 걸로 이렇게 즐거워하다니…….’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매니저는 씁쓸한 감정을 감춘 채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다음엔 복싱 경기를 관람해 보도록 하죠.”
“네? 아, 네. 그렇지! 돌려차기! 내려찍기! 점수다! 꺄아악!”
“이제 가실 시간입니다.”
쿵!
마치 갑자기 사형 선고를 들은 사람처럼 에이미 스피너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한다.
“왜요! 이제 곧 결승인데!”
그것도 미국 경찰과 한국 경찰의 결승전이다.
화려하고도 빠르면서 강력한 발차기의 한국 경찰과 느리지만 한 방, 한 방이 묵직해 같은 헤비급 선수들의 몸을 뻥뻥 날려 버리던 미국 경찰이 맞붙는 대망의 결승전.
6명의 미국 경찰들 가운데 오직 단 한 명만 진출한 결승전이다 보니 무조건 관람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먼저 가서 준비해야죠.”
남녀 14체급의 결승전과 시상식이 끝남과 동시에 폐막식 공연이 시작된다.
수많은 인파가 올림픽주경기장으로 몰려들어 폐막식 공연을 기대할 테니, 먼저 가서 공연을 준비해야 했다.
관객들이 모두 입장하면 곧바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리허설은 어제 다 끝냈는데!”
“자, 갑시다.”
“이, 이 마녀……!”
“스물여덟 살이 그렇게 말해 봤자 하나도 귀엽지 않습니다. 끌고 가요.”
“당신 정말 나쁜 사람이야! 듣고 있어? 제인, 당신은 진짜 나쁜 사람이라고-!”
경호원들에게 양팔이 붙들려 끌려가는 에이미 스피너의 모습에 살짝 놀랐던 미국 경찰들은 이내 흐뭇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이 배신자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 줬는데!”
수건도 주고, 물도 주고, 힘내라고 노래도 불러 주고. 경기장에선 치어리딩도 했다.
그렇게 응원했는데 누구 한 명 말리는 사람이 없다.
“당신들은 경찰도 아니야-!”
에이미 스피너의 매니저, 제인은 경찰들을 향해 감사의 뜻을 담아 고개를 까딱이곤 에이미 스피너를 따라나섰다.
“씨익! 씩!”
올림픽주경기장의 가수 대기실.
에이미 스피너뿐만 아니라 도중에 끌려온 미야자키 나미에와 빅토리아 베넌 등 다른 나라의 스타들도 씨근덕거린다.
저마다 매니저를 노려보는 그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공연의 시작이다.
그들의 분노와 짜증은 점차 잦아들었고, 그 자리를 차가운 이성과 초조함이 채우기 시작했다.
몇 년에서 수십 년.
밥을 먹듯 무대에 섰지만, 언제나 이 순간이 오면 초조하게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다.
관객은 얼마나 왔을까, 날씨는 괜찮을까, 음향은 괜찮을까.
삑사리가 나면 안 된다. 춤이 틀리면 안 된다.
이런 온갖 생각들이 전신을 짓누르는 중압감이 되고, 그에 옷깃만 스쳐도 화를 낼 정도로 예민해진다.
“……난 이만 가 볼게.”
“나도. 에이미가 오프닝이었지? 힘내.”
몸을 일으킨 스타들이 각자 배정받은 대기실로 향하며 떠들썩했던 대기실이 고요해진다.
“메이크업할게요.”
고개를 끄덕인 에이미가 거울 테이블 앞에 앉자 제인이 새로 고용한 메이크업팀이 달려들어 기존의 화장을 지우고, 무대용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얼굴을 짓누르듯 문질러지는 클렌저의 차가운 감촉.
볼을 톡톡 때리는 브러시의 간지러운 감촉.
평범한 이십대 같았던 에이미 스피너가 어느덧 전 세계를 아우르는 톱스타, 팝의 요정 에이미 스피너로 변모해 간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얼굴에서도 표정이 사라져 간다.
드디어 무대다.
어둠으로 둘러싸인 긴 터널을 지나 다시 서게 되는 무대.
‘최가 만들어 준 무대…….’
꽉 쥐어진 그녀의 주먹이 새하얗게 변해 가고, 그녀를 둘러싼 공기가 날카로워져 간다.
똑똑!
“Come in.”
누군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지만, 집중을 시작한 그녀는 고개조차 들리지 않았다.
톡!
마지막으로 눈가를 어루만지던 브러시가 떨어져 나가며 반짝이는 가루를 쏟아 내자 그녀의 눈빛이 매섭게 굳는다.
‘준비 완료.’
“제인, 나 물 좀.”
“여기 있습니다.”
“고마…… 힉?!”
귓가를 때리는 묵직한 저음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에이미 스피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 최?!”
“아름답네요.”
짙다 못해 새까맣게 물든 눈을 반짝이는 펄이 돋보이게 만들고, 뽀얗고 하얀 피부와 대조되는 새빨간 입술이 불타오르는 듯 정열적으로 빛난다.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아우라가 지독히도 아름답다.
“……놀리는 거 아니에요.”
“하하. 컨디션은 어떤가요?”
“치……. 최고예요.”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친다.
“그런데 최가 여기까진 어쩐 일인가요?”
“에스코트를 하러 왔습니다.”
자유를 찾았지만, 아직은 정서적으로 불안할 수 있는 그녀. 그래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는데, 아무래도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미욱한 제게 전 세계 최고의 팝스타를 에스코트할 영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종혁은 짓궂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피식 웃은 에이미 스피너는 이내 도도하게 웃으며 그 위에 손을 얹었다.
뒤이어 몸을 일으킨 그녀는 갑자기 화들짝 놀랐다.
“자, 잠시만요.”
“왜 그러시죠?”
종혁은 갑자기 하얗게 질리는 그녀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그에 그녀는 귀를 쫑긋 세우며 입술을 깨문다.
“과, 관객은 많이 왔나요?”
조용하다. 분명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인데도 너무 조용했다.
보통 본 무대가 시작되기 전, 흥분을 참지 못한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게 보통인데도 말이다.
“관객이라…….”
“그 표정은 뭔데요! 아, 진짜 그러지 마세요!”
버럭 화를 냈던 그녀는 계속 묘한 미소만 짓고 있는 종혁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고, 키득키득 웃은 종혁은 그녀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일단 이것부터 써 주시죠.”
“안대?”
“당신을 위한 선물이랄까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미간을 좁혔던 그녀는 이내 순순히 안대를 뒤집어썼고, 종혁은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 대기실을 나서 무대로 향하는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또각또각!
적막한 울림과 함께 둘의 몸을 감싸는 차가운 냉기.
에이미 스피너에겐 너무도 익숙한 냉기다.
‘내 팬은 많이 왔을까? 왔겠지?’
폐막식 콘서트 표가 모두 매진됐다는 건 그녀도 기사로 접해서 안다.
하지만 그 표를 구매한 이들이 자신의 팬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콘서트에 서는 스타가 자신을 포함해 무려 40명이나 되니 말이다.
‘그동안 너무 많은 실망을 안겨 드렸으니까…….’
이제는 술과 마약에서 벗어났다곤 해도, 과거의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니야. 안 왔으면 어때.’
자유를 얻은 후 처음으로 가지는 무대. 이왕이면 많은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그렇지 않아도 행복하다.
아무 걱정 없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이 순간이.
또 자신에겐 미국 경찰들과 그 가족들이 있지 않은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에이미 스피너는 마음을 고쳐먹으며 종혁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고, 종혁은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조심. 계단입니다.”
“……맞아. 스미스 씨는 어떻게 됐나요? 금메달을 땄나요?”
“아쉽게도 은메달이었습니다.”
“하, 내가 응원을 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성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기대를 하는 그녀.
종혁의 에스코트를 받아 무대 위로 올라온 에이미 스피너에게 차갑고도 고요한 바람이 몰려와 부딪친다.
그에 덜컹 그녀의 심장이 다시 내려앉는다.
‘저, 정말 내 팬은 아무도 없는 건가?’
분명 다잡았음에도 마음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 그녀의 귓가로 종혁의 달콤한 저음이 쏟아진다.
“어떤가요? 팬은 많이 온 것 같나요?”
“……아뇨.”
흠칫!
그녀는 경기장 전체를 웅웅 울리는 목소리에 눈을 흘겼다.
안대를 써서 보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하아. 많이 안 온 것 같아요.”
“몇 명이나 온 것 같나요?”
“한…… 50명?”
미국 경찰들과 FBI 요원들,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모두 합한 숫자가 그 정도다.
“소박하네요.”
“놀리는 거죠?”
“하하. 더 놀렸다간 정말 화내겠네요. 에이미 씨? 그럼 이제 안대를 벗어 주세요.”
‘그래. 50명도 내겐 많은…….’
안대를 벗으며 쏟아지는 조명에 눈살을 찌푸렸던 에이미 스피너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그런 그들이 흔드는 불빛들. 마치 저 하늘의 은하수가 객석에 펼쳐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대한 함성이 그녀의 귀를 때린다.
“꺄아아아아아악!”
“에이미 스피너-!”
“사랑해요, 에이미!”
“꺄아아아아악!”
“아…… 어…….”
이게 맞는 걸까.
지금 자신이 보는 광경이 정말로 현실이 맞는 걸까.
에이미 스피너는 자신도 모르게 종혁을 봤고, 곧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이구나. 이 모든 게 환상이 아니구나.
‘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었구나.’
주르륵!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아아아아!”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말라고 하는군요.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에이미 씨.”
“……최고예요.”
최고.
그 말 외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그럼 즐기세요.”
모든 굴레를 벗어 던진 그녀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무대.
이 수많은 팬들의 함성과 함께 즐기길 바란다.
종혁은 그녀의 손에 마이크를 쥐여 주며 물러났고, 마이크를 빤히 바라보던 에이미 스피너는 목이 터져라 열광하는 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게 솟구치기 시작했고, 그녀는 참지 않고 그대로 토해 냈다.
“HELLO KOREA-!”
“……꺄아아아악!”
다시금 쏟아지는 함성.
에이미 스피너는 알반 모레이를 향해 손가락을 튕겨 줬다.
뮤직 큐.
“예이 예예예예예!”
그녀의 목에서 요정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 * *
꺄아아아악!
안으로 침투하는 함성에 귀를 후빈 종혁이 차가운 복도를 걸어 새까만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문 앞에 선다.
경호원 중 한 명이 종혁에게 고개를 까딱인 후 문을 두드린다.
똑똑!
“들어와.”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열리기 시작하는 문.
종혁은 VIP 관람실 안으로 들어서며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대통령님.”
박명후 대통령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