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24화 (624/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24화>

세부 시티 스포츠센터의 실내체육관.

에이미 스피너의 걱정 가득한 눈빛을 뒤로한 종혁이 매트로 향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을 보내오는 40개국의 경찰들. 중간중간 심상치 않은 눈빛을 보내오는 사람들도 있다.

종혁은 야마자키 요이치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짐작하고 고소해하는 일본 경찰 몇 명을 둘러봤다.

‘그래, 복수를 하시겠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이런 도발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겨우 몇 년 전 일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이렇게까지 판을 키운다? 각국이 주목하는 상황에 그 정도 사리 분별을 못할 정도로 일본 경찰이 바보는 아닐 터였다.

‘뭐, 뻔하긴 하지.’

이 판을 보고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긴 했다.

‘그렇다면 확실히 알려 줘야겠네.’

태권도 종주국은 한국임을.

종혁의 눈에 불똥이 튀었고, 야마자키 요이치는 안절부절못하는 미야자키 나미에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매트로 향했다.

‘당신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 드리죠, 나미에 씨!’

종혁과 무로이 코헤이에게 타격을 입히며, 동시에 미야자키 나미에에게 초창기부터 사랑해 온 팬의 멋진 모습을 보이는 거다.

일석삼조의 수.

가슴이 뛰기 시작한 야마자키 요이치는 매트 위에 올라서며 맞은편에 서는 종혁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확실히 몸이 좋아.’

유도를 해서 그런지 덩치가 엄청나다.

하지만 덩치 하면 자신도 빠지지 않았다.

키 190센티미터에 98킬로그램. 일본공수도 대회 무제한 체급에서 우승한 전적이 있는 그로서는 종혁의 덩치가 그리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는 어깨가 딱 맞지 않는 종혁의 도복을 보곤 피식 웃었다.

“빌린 건가?”

“아, 이거? 잠깐 빌렸어.”

“지금이라도 무례를 사과하고 물러나는 게 어때? 무단자를 괴롭히는 건 내키지 않군.”

“재밌는 소리를 하네. 이거 병 주고 약 주는 솜씨가 제법이네?”

종혁은 중지를 치켜세웠다.

“차렷!”

세계태권도연맹에서 파견된 심판의 외침에 말을 멈춘 둘은 서로를 봤다.

그에 양팔을 들어 올려 손끝이 마주 보게끔 내리는심판.

“경례!”

서로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이는 둘.

제아무리 상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신성한 매트 위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예를 다하는 것이 무도였다.

“최 부장님, 정말 괜찮겠습니까?”

“괜찮으니까 하세요.”

“끄응. 준비! 시작!”

내려왔던 심판의 팔이 위로 올라가자마자 종혁을 향해 달려드는 야마자키 요이치.

‘어차피 유도는 상대를 잡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이 오만한 자에게 일본 공수도의 발차기를, 일본 무도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 주기로 했다.

그 순간이었다.

탁!

‘어?’

갑자기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종혁의 등.

오싹!

야마자키 요이치가 다급히 멈춰 선 순간 그의 머리 위로 새하얀 기둥이, 종혁의 다리가 스쳐 지나간다.

뻐엉!

고막을 때리는 강렬한 굉음.

얼어붙었던 야마자키 요이치는 종혁의 몸이 허공에 뜬 상태에서 회전을 하자 기겁하며 물러섰고,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로 종혁의 발이 내려찍힌다.

부왁!

야마자키 요이치의 심장을 서늘하게 만드는 내려찍기.

땅에 착지한 종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 이거 오랜만에 하려니까 영점이 잘 안 맞네.”

영점만 맞았다면 두 방에 보냈을 텐데 말이다.

펑! 펑펑!

종혁은 허공에 발차기를 했고, 이내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됐다.”

“네놈…….”

야마자키 요이치는 겨루기 자세를 취하며 사뿐사뿐 뛰는 종혁을 보며 낯빛을 굳혔다.

가볍다. 저 엄청난 덩치가 무색할 정도로 매트에 닿는 발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무단자가 아니군.”

“응. 나 태권도 3단이야.”

경찰대 4년 동안 열심히 해서 3단.

회귀 전까지 합하면 태권도 경력은 총 14년에 달한다.

“됐지? 들어와. 안 들어와? 그럼 내가 간다?”

종혁은 번개처럼 달려들며 오른발을 휘둘렀고, 야마자키는 황급히 가드를 올렸다.

뻐어억!

모든 체중과 진심이 담긴, 인간의 피지컬을 벗어난 발차기가 야마자키 요이치의 팔뚝 위에 틀어박혔다.

“크악!”

무로이 코헤이가 멍하니 비명 소리가 울리는 매트 위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건 실내체육관에 모인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압도적인 유린.

190cm, 98kg. 일본공수도 대회 무제한 체급의 우승자가 아무것도 못한 채 유린을 당한다.

앞차기, 돌려차기, 뒤돌려차기, 내려찍기.

폭풍처럼 몰아치는 발차기에 190cm의 거구가 나뭇잎처럼 이리저리 흩날린다.

깃털처럼, 탱탱볼처럼 강제적으로 날아다닌다.

“기획총괄이 대회에 출전하는 건 반칙이라더니…….”

기획총괄이라서가 아니었다. 그저 실력이 반칙이었던 것뿐이다.

다른 경찰들에게 이 대회를 즐길 기회를 준 것뿐이었다.

오싹!

“아름답군.”

발이 뻗어지는 각도가, 그와 동시에 상대의 공격을 막는 팔이, 발이 휘둘러지면서 발생하는 소음이, 이 모든 게 심장이 떨릴 만큼 위협적이면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실용성이 없다고?’

태권도는 실용성이 없는 게 아니다. 그저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살인 무술이 될 수 있는 태권도.

무로이 코헤이는 낯빛이 딱딱하게 굳은 일본 경찰들을 둘러봤다.

방금 전까지 오만하게 빛나던 눈빛들이 죽어 간다. 몇 년 전 일본 경찰을 덮쳤던 악몽이 다시 되살아남에 고개가 숙여진다.

‘바보 같은 놈들.’

자업자득이다. 매트 위에서 고통을 당하는 야마자키 요이치까지 말이다.

찌푸려진 미간을 편 무로이 코헤이는 속으로 혀를 차며 야마자키 요이치를 봤고, 좌절과 고통을 못 이긴 그는 눈을 뒤집으며 종혁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악!”

악몽이다. 이건 결코 꿔선 안 될 악몽이다.

야마자키 요이치는 종혁의 머리를 향해 발을 휘둘렀고, 종혁은 한껏 느려진 세상 속 느릿하게 다가오는 발에 고개를 뒤로 젖히며 발의 밑단을 잡아당겼다.

부욱!

야마자키 요이치의 의지와 관계없이 종혁이 휘두르는 팔을 따라 돌아가는 몸.

이것이다. 이쪽의 모든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건 바로 저 개 같은 방어 때문이다.

어떤 공격을 해도 흘려버리고, 이쪽의 중심을 흩트리는 대나무 같은 방어. 유술의 느낌이 너무도 강하게 난다.

종혁은 함께 몸을 돌리며 한 바퀴 회전하여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야마자키 요이치의 머리에 뒤돌려차기를 작렬시켰다.

‘빌어먹을.’

뻐어엉!

“컥!”

쿠우웅!

결국 쓰러지고 만 야마자키 요이치는 눈을 뒤집은 채 미동을 하지 않았고, 종혁은 불만족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잘난 척하기에 상대할 맛이 날 줄 알았더니 경기 시간을 다 버티지 못하고 뻗어 버렸다.

“물살이네, 이 새끼. 에이.”

혀를 차며 고개를 든 종혁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리는 일본 경찰들을 향해 씩 웃어 주었다.

“다음?”

쿵!

일본 경찰들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악몽.

그들은 더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했고, 종혁과 눈이 마주친 무로이 코헤이는 입술을 비틀었다.

“이시무라!”

“하!”

“일본 경찰의 자존심을 되찾아 와라!”

“……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억지로 걸어 나오는 삼십대 중반 경찰의 모습에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밥 한 끼 제대로 사쇼.’

‘마음껏 사 주지!’

종혁은 맞은편에 서는 경찰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들어와.”

* * *

“푸후. 힘 조절 하느라 지랄 똥 쌌네.”

최재수는 얼굴을 흥건히 적신 땀을 닦으며 들어오는 종혁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명, 한 명 쓰러질 때마다 열광해 가던 한국 경찰들과 전 세계 경찰들도 마찬가지다.

지독한 침묵에 빠진 실내체육관.

사람들은 총 8명을 연달아 때려눕혔음에도 지친 기색이 거의 없는 종혁의 모습에 아득한 전율을 느낀다.

“입 닫으세요. 파리 들어갑니다.”

“우와아아아악!”

“뭐야, 최 부장! 태권도는 대체 언제 배운 거야!”

“아니, 최 부장님 태권도 선출이었어요?!”

“경찰대에서 배운 게 전부인데, 무슨.”

“삼촌, 여기! 여기 물! 수건!”

“아, 땡큐. ……왜 인마.”

윤아와 청춘은 불패 걸그룹 멤버들은 고개를 붕붕 저었지만, 그 심장은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거, 겁나 멋있어…….’

‘이 삼촌 진짜 짱이다…….’

다음. 다음. 다음.

다음 콜이 울릴 때마다 그들은 흥분에 미쳐 날뛸 수밖에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는 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은 종혁은 이쪽으로 달려오는 에이미 스피너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최재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온다.”

“옙!”

“아, 맞아. 이 전무님.”

“예, 기획총괄님!”

대체 어디서, 어떻게 태권도를 배웠길래 이렇게 수준 높은, 아니 차원이 다른 태권도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인재를 유도에 뺏기다니!’

이명재는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이라도…….’

“안 합니다.”

“왜요! 저희가 잘…… 아, 크흠. 그보다 무슨 일이십니까?”

“하하. 바로 교류를 시작해 달라고요.”

종혁은 이쪽을 뜨겁게 쳐다보는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쭉 훑었다.

당장이라도 종혁의 화려하고 파괴력 있는 발차기를 배우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이는 사람들.

“……허허. 이거 혹시?”

의도적으로 그렇게 화려한 발차기들을 쓴 거냐는 물음에 종혁은 대답 대신 씩 웃어 주며 경기장을 나섰고, 이명재는 사람들과 시범단을 둘러보며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하긴 그런 발차기, 그런 경기를 봤는데도 가만히 있는다면 무도인이 아니지.’

압도적인 유린이었음에도 피가 들끓었던 호쾌하고 화려한 경기.

이명재는 마이크를 잡았다.

“그럼 지금부터 교류 시간을 가지기로 하겠습니다. 실내에 계신…….”

“으랏챠!”

“그럼 배워 보실까!”

“다 죽었어-!”

“이봐, 팍! 저 발차기는 어떻게 하는 거야!”

한편 체육관 밖.

담배를 반쯤 피운 종혁이 입을 연다.

“이제 그만 나오세요.”

“……어흠.”

무로이 코헤이가 코너에서 걸어 나온다.

입술이 꿈틀거리는 그.

“그냥 웃으세요.”

“푸핫! 아. 크흠. 미안하군.”

“미안하긴, 뭘.”

종혁은 됐다는 듯 손을 저었고, 그런 종혁의 모습에 무로이 코헤이의 낯빛이 굳어진다.

“종혁. 사과를 하고 싶은 게 있어. 이 모두…….”

잠시 입을 다물었던 무로이 코헤이가 다시 입을 연다.

하지만 종혁의 입이 먼저 열렸다.

“뭐요. 일본에서 대회를 가져가려고 했다고요?”

흠칫!

종혁은 경악하는 그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담배를 깊게 빨았다.

“어이구. 이 양반아, 그렇게 생각한 게 어디 일본뿐이겠습니까?”

솔직히 누가 봐도 욕심이 나는 대회다.

전 세계 톱스타들과 함께하는 대회.

전 세계에 나라를 홍보할 기회이며, 톱스타들을 보기 위해 입국할 관광객들을 통한 관광 수익도 기대해 볼 만하다.

전 세계 경찰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 경찰 조직부터 정부까지 모두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개발도상국이나 최빈국들이라면 눈이 벌게져 달려들 거다.

태권도 보급과 세계화에 열을 올리는 세계태권도연맹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음. 그래도 미안하군.”

“됐습니다. 됐어요. 그냥 밥이나 사세요.”

“먹고 싶은 건 뭐든지 사 줄게.”

“영수증 보고 울지나 마세요.”

담배를 끈 종혁은 몸을 돌려 다시 실내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이제 준비도 다 끝났고…….’

감히 이 대회를, 자신의 기획을, 앞으로 증대할 한국 경찰의 영향력을 욕심내는 다른 나라들에게 경고도 줬다.

이제 남은 건 본 대회뿐이다.

‘돌아가자.’

한국으로.

겨울이라 시리도록 추운 한국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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