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22화>
연신 허리를 숙이며 차를 돌려보낸 식당 주인이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닦으며 안으로 들어온다.
“꽤 어려운 분이신가 봅니다?”
“아하하. 보셨습니까? 여기 건물주이십니다, 건물주.”
“호오. 필리핀은 외국인의 부동산 거래가 불가능한 거 아니었습니까?”
“법인을 세우면 가능하죠. 가장 쉬운 방법은 필리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지만요.”
그리고 토지에 대한 권리 없이 건물만 매매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필리핀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외국인의 토지 소유이기 때문이다.
“아아.”
“그럼.”
고개를 숙인 식당 주인은 툴툴거리며 주방 쪽으로 향했고, 종혁은 다시 식당 밖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러세요?”
“아니야.”
‘분명 어디서 본 면상이었는데 말이야.’
선팅이 된 차 안에서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다 보니 얼굴을 분간하기 힘들었지만, 분명 낯설지가 않았다.
‘알아봐야겠네.’
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종혁의 눈빛이 낮아졌다.
“와우!”
“어메이징!”
종혁은 탄성이 터져 나오는 스타들을 보며 흐뭇이 웃었다.
‘뜯어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한국과 필리핀, 양국뿐만 아니라 이번에 참가한 40개국에서도 얻어 낼 수 있는 게 있을 거다.
‘리스트 뽑으려면 골치 아프겠네.’
하지만 행복한 고민이었다.
* * *
탁탁탁탁탁!
종혁이 새벽의 습한 공기를 뚫고 빠르게 나아간다.
‘이제 가닥은 어느 정도 잡혔고.’
어젯밤 점검을 해 보니 발차기들에 물이 올라 있었다.
여차하면 습관처럼 투박한 발차기들이 나올 테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맛이 있을 거다. 그것에 대응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 줬으니 말이다.
‘대회가 6일 뒤에 열리니까 발차기를 더 가다듬을…….’
-소원을 말해 봐!
“흐응.”
스마트폰에 뜬 발신자를 바라보던 종혁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예, 최종혁입니다.”
-최 부장, 나야. 자?
“아뇨. 러닝 중입니다, 대변인님.”
-캬! 역시 우리 최 부장! 거기서도 부지런하네!
발을 멈춘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뭔데요?”
움찔!
분명 수화기 너머에 있음에도 생생히 느껴지는 나형재 대변인의 동요.
-그, 그게 말이야…….
“해외 스타들 공연을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하자, 일반인들에게 티켓을 팔자, 뭐 그런 소리는 아니시죠?”
-……살려 줘.
“에라이.”
관광공사와 문체부에서 이런 개소리를 지껄인 게 분명했다.
“이럴 거면 에이미 씨가 처음 합류했을 때 이런 제안을 해 오든가요!”
-어떻게…… 안 될까?
“당연히 안 되죠. 잠실실내체육관을 대여할 때만 해도 얼마나 지랄이었습니까?”
경찰 행사가 그 정도로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냐, 차라리 더 작은 체육관을 빌리는 게 어떠냐부터 시작해 참 많은 부분에서 걱정을 가장한 태클을 걸었다.
-알지. 다 알지.
“그런데 이제 와서 뭐요?”
에이미 스피너에 미야자키 나미에, 빅토리아 베넌 등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톱스타들이 대회 끝까지 함께한다고 하니, 대회 마지막에 폐막 공연을 한다니 되지도 않는 욕심을 낸 거다.
“엿이나 까잡수라고 하십쇼.”
-하지만 최 부장…….
“끊습니다.”
-최 부장! 최 부장!
냉정히 전화를 끊은 종혁은 곧 다시 울리는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빼 버렸다.
“어딜 씨발 숟가락을 얹으려고.”
“어? 저한테도 전화 오는데요?”
“배터리 빼.”
최재수는 냉큼 배터리를 뺐다.
“왜 그러시는데요?”
“관광공사랑 문체부가 수작을 부리는 것 같아서.”
종혁은 그 수작에 대해 말해 줬고, 최재수는 눈을 끔뻑였다.
“폐막 공연 주경기장에서 하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파일에 그렇게 적혀 있던데?”
씨익!
“봤냐?”
“……와, 씨.”
최재수는 종혁의 설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고, 종혁은 키득키득 웃었다.
태권도라는 스포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것은 아니기에, 설계한 판이 자신의 의도대로 진행될지 장담할 수 없기에 처음엔 다소 보수적으로 계획을 짰었다.
“찬바람 맞으며 공연을 하는 것보다 실내가 낫기도 하고.”
경찰과 관계자들, 관객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세계적인 가수들의 노래를 코앞에서 듣는다. 아마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각국의 톱스타들이 모이게 됐으니까…….”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미 스피너가 섭외에 응하며, 일본의 미야자키 나미에, 영국의 빅토리나 베넌, 러시아의 얀수 랄리나포브나가 섭외에 응해 주었다.
그녀들뿐만이 아니다. 그녀들을 포함하여,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40개국을 대표하는 톱스타들이 총 40명이나 모이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흔쾌히 섭외에 응해 준 그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기 위해서라도 올림픽주경기장 정도는 무대를 마련해 주어야만 했다.
“어찌 됐든 이 자식들이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으려고 하니 내가 배알이 꼴리겠냐, 안 꼴리겠냐?”
“이것도 의도하신 거 아니에요? 이렇게 판 키워 놓으면 알아서 기어 들어올 거라고.”
“아무리 의도한 대로라고 해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 아니겠냐? 어딜 공짜로.”
이로써 관광공사와 문체부는 다음 대회, 다다음 대회를 개최할 때 먼저 알아서 적극 협조를 해 줄 터였다.
“정말……짱이십니다.”
“큭큭!”
“핸드폰은 언제까지 꺼 놓을까요?”
“일은 해야 되니까 10분 뒤에 켜. 그리고 오늘 하루는 청장님, 대변인님, 모르는 번호 다 받지 말고.”
그럼 이쪽에 파견된 세계태권도연맹 직원을 통해서 연락을 해 올 것이다.
“진짜 사악하다니까. 옙! 알겠습니다!”
“최!”
타다닥!
종혁은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며 다가오는 미야자키 나미에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참 밝은 사람이야.’
“베넌 씨는요?”
“오늘은 필라테스 하는 날이래요!”
“오.”
“그런데 벌써 운동 끝난 거예요?”
“아뇨.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잘됐네요.”
“예?”
종혁은 의뭉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 그녀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아 참, 안 그래도 나미에 씨들에게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잘됐네요.”
“응?”
“최!”
종혁은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이미 스피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미에, 이래서 네가…….”
짓궂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에이미 스피너는 고개를 저었고, 종혁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괜찮아요! 요새 몸이 너무 늘어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니까요?”
“최, 얄밉다는 소리 많이 듣지 않아요?”
“하핫!”
웃음을 터트린 종혁은 순간 엄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공복이시죠? 그렇다면 많이 하지 마세요.”
“어? 그, 그래요?”
“지방을 태우는 데 도움이 되지만, 몸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공복, 즉 탄수화물이 소진된 상태에서 운동을 하게 되면 지방과 단백질을 태우게 되는데,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이 단백질이다.
단백질이 에너지원으로 바뀔 때 독성을 띤 대사물질이 생성될 수 있고, 이는 간과 콩팥에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근손실도 발생할 수 있다.
이외에도 공복 운동 시 단점들은 많았다.
“그런…….”
“짧게 30분에서 1시간 정도 하는 건 괜찮지만요. 아, 이거 드시겠습니까?”
종혁은 수제로 만든 에너지바를 내밀다가 얼굴을 구기며 미야자키 나미에를 봤다.
“또 뭐요. 뭐.”
“킥킥킥. 아니에요. 그보다 할 말이 뭐예요?”
“아, 맞아.”
종혁은 의아해하는 둘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대회 폐막 공연은 올림픽주경기장이라고, 최대 10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장소에서 하게 될 겁니다. 문제는 해당 장소가 야외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기상청에 의하면 다행히도 그날 날씨가 제법 따뜻하긴 했지만, 가수들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한국의 겨울은 어떻죠?”
야외 공연이라면 그 나라, 지역의 날씨를 파악해 두는 게 가장 급선무였다. 기온과 습도 등은 목과 몸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종혁이 아무리 은인이라지만 이런 것까지 양보할 순 없었다.
“캐나다 등 정말 추운 나라들과 비교하자면 한국의 겨울은 상당히 따뜻한 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가벼이 여길 수는 없겠지만, 히터 또한 상당수 동원할 것이기에 추위는 제법 막을 수 있을 터였다.
“히터라…… 그러면 제법 건조할 수 있겠네요.”
안 그래도 건조한 겨울이다. 히터가 공기를 데운다면 가만히 있어도 목이 마를 수 있었다.
“공연 기획 쪽에는 별 노하우가 없다 보니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바로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생각하시는 그 이상의 것들을 준비해 드릴 테니까요.”
“최와 한국 경찰은 당연히 믿지만……. 이러면 공연 내용도 좀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 나미에, 네 생각은 어때?”
“확실히 그래야겠지. 그만큼 큰 무대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니까.”
일부만 데려오려고 했던 백업 댄서팀과 스태프 전체를 데려올 수 있다.
“게다가 40명이 모두 공연을 하려면…….”
“솔로곡의 개수를 줄이고, 듀엣을 해야 할 거야. 그래야 정해진 시간 안에…… 공연 기획자는 누군가요, 최?”
“새로 섭외하겠습니다. 세계 최고로.”
“뉴욕에 알반이라는 기획자가 있어요. 실력과 감각이 괜찮아요.”
“알반 모레이? 그 대머리 알반?”
“나미에도 알아?”
“알지! 내 미국 공연도 그 사람이 해 줬는걸? 확실히 그 사람이라면 모두가 납득할 수 있겠네.”
“더 필요하신 것 있습니까? 원하시는 게 있다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이틀 안에 세팅할 수 있습니다.”
“일단…… 시범단이라고 했나요?”
종혁은 눈을 빛냈다.
“분명 시범단과의 합동 공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을 것 같은데요.”
아니다. 이명재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쪽에 미안함이 크니까 그랬을 확률이 높다.
“그쪽에서 펌시? 펌세? 그런 단체 군무를 하고, 저희가 그 앞에서 노래를 하는 그런 구성이지 않나요? 그러니 여태까지 언급이 없었을 테고요.”
‘멋있네.’
가수인 에이미 스피너란 여자는 정말 멋있었다.
‘좋은 기회야.’
생각지도 않았던 기회.
이 정도면 세계태권도연맹에 빚을 만들고, 반대로 한국태권도협회의 협회장인 홍정필 원내대표에게는 진 빚을 갚을 수 있을 듯하다.
“이럴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기시죠.”
이러다 땀이 식는다.
종혁은 본업으로 돌아가자 빛을 내뿜는 둘의 등을 떠밀며 숙소로 향했고, 그 뒤를 따르는 일본 경찰들은 자신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스타들과 친밀한 모습을 보이는 종혁의 모습에 얼굴을 구겼다.
‘칙쇼…….’
* * *
“차압!”
펑! 파라락!
화려한 발차기들이 터져 나오는 세부 시티 스포츠센터.
“아, 다리 거는 건 안 되죠. 그럼 그게 종합격투기와 무슨 차이입니까?”
“쳇.”
종혁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러나는 경찰들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아, 저 화상들.”
그렇지 않아도 어제 간단히 술을 마실 때 다리를 거는 것에 대해 슬그머니 물어 왔던 한국 경찰들.
한국 경찰이나 다른 나라 경찰이나 어쩜 이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최재수, 하체 공격 금지라고 방송해 둬.”
“다리를 잡는 건요?”
“……잡는 것까지는 허용.”
“괜찮을까요?”
“디딤발을 걷어차는 등 후속 공격으로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아.”
태권도 선수의 발은 함부로 잡는 게 아니다. 함부로 잡았다가는 갑자기 정신을 잃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오. 연구 좀 하셨나 본데요?”
“방송이나 해, 인마.”
손을 젓던 종혁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이명재를 발견하곤 의아해했다.
“방금 전 태권도복과 태권도화 공식 스폰서 업체가 정해졌습니다. 저희 연맹에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다 같이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요, 뭘.”
이쪽에서 굵직한 것들을 가져갔으니 태권도복과 태권도화쯤은 세계태권도연맹 측에 넘겨줘도 됐다.
“톱스타들이 응원할 때 입힐 테니까 홍보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대신 리폼이 좀 들어갈 텐데, 그 부분은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게 아니라 태권도 셔츠를 리폼하는 게 좋겠네요.”
신성한 도복은 감히 건드리는 게 아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미안해서 차마 꺼내지 못했던,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했던 시범단과 스타들의 합동 공연도 종혁이 먼저 해결해 줬다.
다만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해결할 일이 있기에 정부에 알리진 말아 달라고 했지만 말이다.
“앞으로 저희 연맹이 경찰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적극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곧 연맹 총재와 장희락 경찰청장이 회담을 가지기로 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교류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이고,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청장님이 좋아하시겠네요.”
“하하.”
“그보다 저희 경찰들은 좀 어떻습니까?”
“……확실히 대단하시더군요.”
확실히 몸을 쓰는 형사들이 많다 보니 가르쳐 주는 족족 흡수해서 본인만의 스타일로 재창조시키고 있다.
“짬밥들이 많기는 하죠. 하하.”
지이잉! 지이잉!
발신자를 확인한 종혁은 싱긋 웃으며 꺼 버렸다.
“바, 방금 장희락 청장님이라고…….”
“괜찮습니다. 오늘은 안 받아도 됩니다.”
“아하하…….”
지이잉! 지이잉!
“응?”
이번엔 다른 번호다.
“예, 최종혁입니다.”
-응, 최 부장. 나야. 최 부장의 영원한 우군 함경필 국장.
“예. 오늘도 사랑합니다.”
-흐흐. 나도 사랑해. 아, 최 부장이 백 과장한테 신원 조회 부탁했다며? 그거 나왔거든?
어제 잠깐 봤던 그 건물주란 인간.
종혁의 눈이 빛난다.
“뭐 좀 나오던가요?”
-아니? 소소하게 사고 친 거 말고는 깨끗하던데? 거기서 리조트 사업을 크게 벌이는 것 말고는 별거 없더라고.
“흠. 그래요…….”
아니다. 분명 직감이 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왜? 꺼림칙해? 우리 외사국 애들 좀 풀까?
“하하,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아, 저 곧 한국으로 들어갈 건데 선물 좀 사 갈까요?”
-사인! 사진! 부탁한다, 진짜…….
아무래도 이것 때문에 백이도 과장 대신 연락을 해 온 것 같다.
“사모님과 자식분들 것까지 다 받아 갈게요. 아니면 표 드릴 테니까 대회장으로 가족 나들이 오시든가요.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나중에 간이나 콩팥 필요하면 말해! 내 거 쌩쌩하다!
“그럼 들어가십쇼.”
전화를 끊은 종혁은 고개를 젓다가 이명재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부모 마음이 다 그렇죠, 뭐. 그런데 저도 어떻게…….”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갑자기 경기장을 꿰뚫는 뾰족한 외침.
고개를 돌린 종혁은 답답해 가슴을 치는 시범단원과 혀를 차는 일본 경찰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뭐야, 저건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