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21화>
사람들이 빼곡 들어찬 세부 시티 스포츠센터의 실내체육관.
체육관의 규모는 제법 크지만, 40개국 경찰들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었기에 순번이 뒤로 밀린 경찰들이 관객석에 앉기 시작한다.
“갑자기 대련이라니…….”
갑작스런 통보에 당황한 경찰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 대회가 각국 경찰 간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지만, 결국은 모두가 경쟁자다. 본 경기 전에 경쟁자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경찰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쪽에 앉은 시범단은 눈빛이 좀 달랐다.
“경찰들 실력은 모두 확인했지?”
정장을 입은 오십대 장년인의 물음에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거칠더라고요. 특히 발차기 각도가…….”
투박하다.
태권도만 배운 자신들과 달리 여러 무술을 배우다 못해 피가 튀는 실전으로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완성시킨 경찰들.
하지만 그 한 방, 한 방이 모두 치명적인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실전 무도. 여기 있는 시범단이 추구하는 방향과 다른 무도였다.
“이거, 저분들과 저희가 교류를 할 게 있을까요?”
이미 스타일이 완성됐다.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한들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어쩌겠어. 해야지.”
세계태권도연맹의 총재가 가서 협회의 위엄을 떨치고 오라고 했다.
“한번 믿어 보자고.”
‘저 젊은 친구를.’
장년인은 한쪽에 서서 무언가 지시를 하고 있는 종혁을 바라보며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 * *
“이러시면 곤란하죠.”
터벅터벅 다가와 삐딱하게 서는 종혁의 모습에 장년인, 시범단의 인솔자이자 세계태권도연맹의 임원인 이명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그래서 미리 합의를 하자니까!’
이들도 생각할 머리가 있다.
더욱이 눈치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경찰들. 관심의 지분을 가져오려는 연맹의 수작쯤은 이렇게 들통날 수밖에 없었다.
“후. 죄송합니다. 저희도 흔치 않은 기회라 마음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아니……. 하아.”
한참 연상인 이명재가 허리를 깊이 숙이자 종혁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호오. 이런 양반이 있었네?’
판은 이쪽에서 깔았다고 하더라도 세계태권도연맹이 한 팔을 거들며 대회의 퀼리티가 높아졌다는 걸 인식하고 있을 텐데도 먼저 고개를 숙인다.
연맹을 대표하는 임원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뭐, 면박을 주는 건 여기까지 할까?’
이번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대회를 치러야 하는데, 마냥 배척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어쩔 수 있겠습니까. 그럼 사범단은 못 오는 걸로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저희가 양보할 수 있는 건 양보하겠습니다. 이를테면 격파 시범이라든지…….”
시범단 공연의 꽃 중 하나, 격파 시범.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흠. 격파라…….”
경찰 내부에도 격파 같은 걸 전문적으로 하는 집단이 있긴 하다.
정확히는 동아리 같은 형식의 모임인데, 주로 경찰의 날 행사 때 잠깐 모이는 이들로, 모두 나이가 지긋해서 데려오지 않았다. 이명재도 그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시니 좀 끌리긴 하네요.”
말하는 걸 보아하니 이쪽에서 관심만 보이면 격파에 대한 노하우도 알려 주려는 것 같다.
“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대회에 참가하는 경찰들 모두 현역이다. 대회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범죄자를 잡으러 돌아다녀야 할 사람들.
괜히 격파 같은 걸 하다가 다쳐서 업무에 지장을 줄 순 없었다. 경찰 한 명이 다치면 수십, 수백 명의 시민이 괴로워하니 말이다.
“그보단 좀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음. 어떤 이야기를 말씀하는 건지…….”
“당연히 이번 대회에 관한 이야기죠. 앞으로 지켜보시면 알겠지만, 저희 경찰들이 좀 투박하고 위험합니다.”
화려함보다는 실전적인 무도. 시민을 구하고 범인을 제압하려는 데 초점을 두다보니 보는 맛이 별로 없다.
태권도를 제대로 배운 사람만이 박진감을 느낄 수준.
“그러니 발차기 좀 전수해 주시죠.”
“예?”
종혁은 사범단 대신 시범단이 와서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어 모을 수 있는 호쾌하고 화려한 발차기 하면 시범단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룰도 좀 변경하고요.”
이명재는 이어지는 종혁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 * *
웅성웅성.
각 나라 경찰들과의 교류를 위한 가벼운 대련과 시범단과의 교류란 말에 모인 경찰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눈이 심상치 않다.
경쟁과 화합이 모토인 이번 대회.
하지만 결국 승자와 패자가 정해지는 경기다. 그것도 각 나라 경찰들의 자존심이 걸린 경기.
“교류?”
“하! 가벼운 대련?”
“아니야. 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임해!”
“우리의 어깨엔 조국 경찰들의 명예가 걸려 있다! 대련도 무조건 이기는 거야! 알았나!”
“예!”
그렇게 전의를 다지던 경찰들은 갑자기 실내체육관을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부왁!
키가 족히 2미터는 될 법한 백인 거한이 허공을 날아올라 발뒤꿈치를 내지른다.
이른바 뛰어 뒤차기. 그와 동시에 도복이 터져나갈 듯 흔들린다.
“와따, 살벌한 거.”
“저거에 맞으면 죽겠는데요?”
역시 피지컬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발차기 한 방, 한 방에 심장이 떨린다.
하지만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아뇨! 조금 더 회전축 무릎 낮추고, 앞으로 튀어 나갈 듯 점프하면서 때려야 한다니까요. 밀지 말고, 팡!”
“이, 이렇게?”
뻥!
‘어? 저?’
달라졌다. 소리뿐만 아니라 그저 위협적이기만 했던 발차기에 경쾌함과 호쾌함이 실린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경찰들 역시 기본적으로 태권도 단증을 소유한 유단자들. 발차기를 알아보는 눈이 나쁠 리가 없다.
“호오, 저거?”
“이야, 발차기 죽이네.”
“저거 우리도 배울 수 있으려나?”
각국의 경찰들은 러시아 경찰들의 옆에 붙어 통역관과 함께 열심히 떠드는 시범단의 단원들을 보며 눈을 빛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종혁도 눈을 빛냈다.
‘분위기가 만들어졌군.’
시범단을 받아들일 분위기가 말이다.
종혁은 너무도 빠르게 발차기를 교정하는 러시아 경찰들의 모습에 놀라 이쪽을 보는 이명재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이명재 씨. 우리가 몸 쓰는 데는 도사입니다, 도사.’
배우지 못해서 못하는 것도 있지만, 범인을 붙잡는 데 불필요하기에 배우지 않았던 것뿐이다. 일단 배우기만 한다면 저 정도쯤은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종혁은 뒤에 있는 시범단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고, 그들은 슬그머니 실내체육관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서로 윈윈할 수 있겠네.’
세계태권도연맹은 관심 지분을 나눠 가질 수 있고, 이쪽은 화려하고 호쾌한 경기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자라지.’
대회 이름에 경찰이란 단어까지 붙였는데,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할까.
“부장님.”
“알았어.”
최재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체육관 한쪽에 설치된 단상으로 향했다.
“아아.”
체육관을 울리는 목소리에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종혁을 쳐다본다.
그에 종혁이 그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세계경찰태권도 대회의 기획 총괄을 맡은 대한민국의 최종혁 총경입니다.”
짝짝짝짝짝!
“겨루기 시작 전 간단히 전달드릴 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마이크를 잡게 됐으니 모두 하던 일을 잠시 멈추시고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대회는…….”
이내 이번 대회의 의의를 모두 설명한 종혁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좌중을 쓸어 보며 히죽 웃었다.
“하지만 너무 평범하게 하면 재미가 없겠죠?”
올림픽의 기준에 맞춰 위험한 기술들은 금지하고, 여러 규칙으로 제한을 걸며 경기가 상당히 단조로워진 국제 태권도.
예를 들어 주먹 기술이라고는 주먹지르기, 스트레이트밖에 허용하지 않고 점수조차 낮다. 심지어 타격 허용 범위도 몸통만으로 한정되어 있어 쓰기도 어렵다.
결국 주먹 기술은 쓸 일 자체가 거의 없는 셈.
이런 식으로 제한된 기술과 여러 규칙 탓에 국제 태권도는 실전성을 잃고, 점수를 따는 데 특화되는 형태로 조금씩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단순히 더 빨리, 더 많이 차는 게 중요해져, 치고 빠지는 경기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여기에 마무리를 가한 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전자호구 도입이었다.
전자호구는 센서에 일정한 충격이 들어오면 점수가 들어가는 탓에, 일명 제기차기라고 불리는 터무니없는 기술까지 나오게 만들며 전 세계 사람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후 가끔이나마 터져 나오던 화려하고도 호쾌한 발차기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태권도의 암흑기.
‘물론 그것도 재밌어 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종혁은 구태여 경찰태권도까지 같은 길을 걸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무엇보다 경찰태권도대회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선, 단순히 경찰들이 출전한다는 것 외에 분명한 차별성이 필요했다.
종혁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잡기 허용! 옐보우 허용! 니킥 허용-!”
쿵!
“목 아래, 사타구니 위! 이 범위 안에서는 그 어떤 타격이라도, 잡기라도 허용됩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온몸으로 범죄자 때려잡는 경찰 아닙니까-!”
“……우와아아아악!”
“캬! 이러면 또 이야기가 다르지!”
“그렇지! 이게 바로 경찰이지!”
“이 새끼들! 다 죽었어!”
거의 입식타격 경기와 다를 게 없는 룰.
그렇지 않아도 손은 봉인한 채, 범죄자를 때려잡고 엎어치기를 하던 손을 묶은 채 발만 써야 한다는 것에 작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경찰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시범단들이 화려한 공연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자신들은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으면 되는 거다.
종혁은 입을 떡 벌린 시범단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 * *
“야. 내 발차기 봤냐?”
“뭐요? 넘어지는 거요?”
“이걸 확!”
“씨익! 씨익! 아까 그 자식 꼭 죽여 버릴 거야.”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들어보니까 합숙이 끝날 때까지 한다고 하더라고.”
“이야, 이거 귀중한 걸 배웠네. 시범단 친구들도 대회에 출전하나? 그럼 우리 쪽 노하우를 가르쳐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누굴 잡으려고!”
“다리를 거는 건 안 되나?”
“글쎄? 물어볼까? 그것만 허용돼도 쓸 수 있는 수가 많아지는데…….”
점심시간, 실내체육관을 나서는 경찰들의 표정이 대부분 밝다.
혈기가 넘치는 그들에게 딱 맞는 룰.
특히나 호구와 팔을 잡고 흔들 수 있다는 것에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친다.
“밥 먹고 한번 시험 해 보자고.”
“얼른 가자.”
종혁은 그들의 만족한 모습들에 흡족히 웃었다.
“그런데 결국 너는 출전을 안 하는 거야?”
“글쎄요…….”
무로이 코헤이의 질문에 말끝을 흐린 종혁은 합숙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적개심을 불태우는 일본 경찰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기획 총괄이 선수로 뛰는 건 반칙이죠.”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발차기를 못하는 게 아니라?”
‘허쭈?’
순간 눈이 흔들렸던 종혁은 이내 푸근히 웃었다.
“맘대로 생각하세요.”
“아쉽군.”
종혁. 참 좋은 동생이자 같은 경찰로서 본받을 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 유도의 자존심이 뭉개진 것까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러신데? 쿄 형, 처음엔 별로 신경 안 썼잖아요.”
“크흠. 그건 그때고…….”
아니다. 그때도 신경은 썼다.
하지만 당시 일본 열도를 뒤집었던 탈옥범을 쫓을 단서를 종혁이 제시했기에 꾹 눌러 놓았을 뿐이다.
“얼씨구?”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은 종혁은 저 멀리 걸어가는 윤아들을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그럼 전 먼저 갑니다. 최재수, 가자.”
“아, 예!”
무로이 코헤이에게 꾸벅 인사를 한 최재수는 얼른 종혁의 옆에 따라붙으며 속삭였다.
“부장님, 정말 태권도 못하세요?”
“올. 일본어 연습 많이 했나 보다.”
“흐흐. 저도 간부를 노리니까……. 아니, 그보다 정말 못하세요?”
“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손을 저은 종혁은 걷는 속도를 높였고, 최재수는 혀를 찼다.
‘못하시나 보구나.’
마치 영화 속 초인 같은 종혁도 못하는 게 있다는 것에 최재수는 아쉬워졌지만, 이내 그 마음을 털어 내며 재빨리 뒤를 따랐다.
‘그래도 부장님은 부장님이지!’
날아오는 칼도 잡아채는 영웅.
-야, 내 새끼한테 지금 뭐하는 짓이냐?
당시 가리봉동에서 지폐 위조뿐만 아니라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조선족 두목의 칼에 의해 목이 찔릴 뻔했던 그때, 그 손목을 낚아채며 했던 종혁의 말과 표정을 최재수는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
“같이 가요!”
최재수의 외침을 무시한 종혁은 연예인들에게, 그중 에이미 스피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컨디션은 좀 어떠십니까?”
“최고예요!”
“그렇다니 다행…… 큼. 다행이군요.”
‘아, 이 아줌마들이 진짜.’
종혁은 자신이 에이미 스피너에게 인사말을 건네자마자 표정이 음흉해지는 미야자키 나미에와 빅토리아 베넌에 윤아들을 째려봤다.
그에 재빨리 고개를 돌리는 그들.
‘에라이.’
혀를 찬 종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침에도 들으셨겠지만, 오늘 여러분들의 오후 스케줄은 길거리 쇼핑과 한식 체험입니다.”
대회를 기획한 것도, 또 개최를 하는 것도 한국이다 보니 한식은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 하는 요소다.
“저희가 이렇게 대규모로 숙소를 예약하고, 또 여러 가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필리핀 정부의 협조 덕분이니 여러분도 적극 협조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들의 표정 하나가, 말 한 마디가 필리핀을 찾는 관광객 숫자에 영향을 준다.
“이번 기회에 좋은 인상을 심어 주면 나중에 필리핀에서 공연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 말에 힘차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다는 듯 놀란 사람들도 있다.
“미스터 최, 꽤 꼼꼼하시네요.”
“이러니까 여자가 껌뻑 넘어…….”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럼 이동하시죠.”
재빨리 빅토리아 베넌과 미야자키 나미에의 입을 막은 종혁은 세부 시티 스포츠센터를 나서 세부의 번화가로 향했다.
“와아!”
“우와! 베넌, 이것 좀 봐!”
“Bloody hell. 뭐가 이렇게 예뻐? 헤이, 데이지. 나 어때? 예뻐?”
“당신이 언제는 안 예쁜 적이 있었어요?”
“맙소사……. 넌 어쩜 말을 이렇게 사랑스럽게 하니? 기분이다! 마스터, 여기 있는 거 다 주세요!”
‘잘하고 있네.’
미야자키 나미에와 빅토리아 베컴, 청춘은 불패 팀들과 윤아네 그룹의 조합이 제법 재밌는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에이미 스피너와 윤아, 리나의 조합도 만만치가 않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 꼭 붙어 다니며 재잘대는 다른 나라의 스타들의 모습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더 빛나게 하는 건 이 도로를 꽉 채운 팬들의 함성 소리다.
“꺄악!”
“에이미! 이쪽 좀 봐 주세요!”
“윤아야-!”
주변을 둘러보며 다시 한번 경호 상태를 점검한 종혁은 SBC에서 파견된 드림팀의 PD와 콘텐츠 제작 및 관리팀의 이 팀장을 봤다.
“다들 잘 찍고 계시죠?”
이렇게 촬영된 영상은 한국에서만 방영되는 게 아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40개국 전부에 배포될 텐데, 그땐 그 나라 스타들이 영상의 중심이 될 테니 그 누구 한 명 치우침 없이 골고루 찍는 게 중요했다.
PD와 이 팀장은 걱정 말라는 듯 오케이 신호를 보냈고, 종혁은 최재수를 봤다.
“식당은?”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예, 사장님. 어제 연락드린 본청 홍보부의 최재수 경사입니다. 앞으로 1시간 안에 도착할 것 같은데요. 예, 예. 알겠습니다. 현재 식당을 닫아 둔 상태니까 언제든 오라고 하십니다, 부장님.”
“불만은 없으시고?”
“2시간 섭외 비용으로 2천만 원을 지불했는데 불만이 있으면 그게 더 문제 아닐까요?”
“오케이.”
종혁은 다시 PD와 이 팀장을 봤다.
“B팀 먼저 출발.”
“너희도 촬영 장비 들고 가서 자리 잡고 있어.”
“옙!”
“충성.”
그렇게 사람들이 떠나자 종혁은 잠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담배를 물었다.
“후우우. 아직까진 별일이 없긴 한데…….”
아무리 의도했다지만, 일이 이렇게 커지다 보니 종혁으로서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범인을 잡는 게 낫지.”
고개를 저은 종혁은 담배를 끄며 저 멀리 떨어진 촬영팀을 따라붙었다.
* * *
“와우…….”
상다리가 부러질 듯 차려진 한식을 본 에이미 스피너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그건 다른 나라의 스타들도 마찬가지다.
코끝을 자극하는 구수하고 짭짤한 향기들과 알록달록한 색상들.
“이거 뭐부터 먹어야 하는 거야?”
“어떻게 먹는 거지?”
아름답지만 생소한 음식들에 스타들이 당황할 때, 종혁의 시선을 받은 윤아가 몸을 일으킨다.
“에헴. 자, 제가 음식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드릴 테니까 여길 봐 주세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윤아가 앞에 놓인 비빔밥 그릇을 든다.
“이건 비빔밥. 이 음식이 만들어진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제가 가장 신빙성 있게 생각하는 건 한 해의 마지막 날 음식을 남긴 채 새해를 맞지 않기 위해 남은 밥에 반찬을 모두 넣고 비벼서 밤참으로 먹었던 풍습으로부터 비빔밥이 유래했다는 설이에요.”
그런 윤아의 설명에 스타들의 눈이 아련함을 머금는다. 아주 옛날 벽난로 앞에 앉아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류의 유통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던 시절, 겨울이 되면 햄이나 절임 등 보존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말씀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두운 밤,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코코아와 함께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었고, 아침이 되면 하얗게 변해 버린 세상에 참 기뻐했었다.
“맞아. 우리 할머니도 새해를 맞이하면 그런 것들을 한데 모아 스튜를 끓여 드셨다고 했어.”
“너희도?”
“와, 이건 만국 공통인가 보네요.”
하지만 아직 윤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 유래를 가진 이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다이어트!”
움찔!
“뭐?”
“보면 아시겠지만, 여기 쌀 위에 올려진 게 다 야채거든요? 고기는 요만큼! 즉,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살이 찔 걱정이 없다는 말씀!”
“정말?”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야!”
“와우…….”
모두 다이어트에 민감한 스타들이다 보니 눈빛이 변하고, 얼른 어떻게 먹는 건지 말하라 재촉을 한다.
그에 윤아는 직접 비비는 시범을 보여 줬고, 식당엔 침묵이 내려앉으며 숟가락이 그릇을 때리는 소리들이 울리기 시작했다.
“와. 쟤가 저렇게 말을 잘했던가요?”
윤아의 머리가 나쁘다는 건 최재수도 알고 있는 일. 그도 홍보부의 직원이다 보니 경찰 홍보대사의 프로필을 꿰뚫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종혁은 피식 웃었다.
“재수야.”
“예, 부장님.”
“돈은 위대하더라.”
“아…….”
씁쓸히 웃은 종혁은 촬영장의 분위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식 홍보 영상으로 써도 되겠네.’
그쪽 관련 주무부에도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종혁은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의아해했다.
“헉!”
옆에 서 있다가 깜짝 놀라 식당을 빠져나가는 식당 주인.
그는 가게 앞 도로에 멈춰 서는 차를 향해 다가가 고개를 조아렸고, 종혁은 마치 빚쟁이에게 쩔쩔매는 채무자 같은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저건 또 뭐야?’
종혁은 갑자기 구린내를 맡기 시작한 코를 긁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