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19화 (619/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19화>

    “아, 아빠?”

    어제에 이어 오늘도 경호원의 감시 없이 샤워를 마친 후 소파에 앉아 아이들과 문자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에이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 시간에 왜?’

    “문 좀 열어 줄래, 딸?”

    “……알았어요. 잠시만요.”

    입술을 깨물며 방문을 열어 준 에이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브라이언의 입에서 풍기는 진한 술 냄새와 그의 손에 들린 위스키병.

    “술…… 마셨어요?”

    또 마셨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딸이 있는 곳에서.

    미국 LA의 저택에서도 종종 이런 모습을 보였던 아빠 브라이언.

    그는 에이미 자신이 완전히 구속됐음을 깨닫자마자 본색을,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었다.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에이미에게 극성이었던 엄마의 곁에서 자신의 벌어 온 돈으로 온갖 향락을 즐겼던 모습을 말이다.

    “마셨지. 며칠 사이 웃음이 많아진 네 모습 때문에 생각이 많아져서 말이야. 에이미. 딸아. 미안하구나. 내 그릇된 욕심이 널 참 힘들게 했었나 보구나.”

    움찔!

    “또, 또 뭘 하려는 건데요!”

    “진심이란다.”

    그래서 이렇게 술을 들고 찾아온 거다. 그동안 쌓인 오해와 원한을 풀기 위해.

    “오해라고요?”

    “이 아빠에게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니?”

    또렷이 응시해 오는 브라이언의 눈동자에 놀란 에이미가 자신도 모르게 팔목에 손을 가져간다.

    손바닥을 스치는 싸늘한 금속의 감촉.

    이를 악물며 용기를 낸 그녀가 옆으로 비켜선다.

    “들어오세요.”

    결국 그러지 말아야 함에도 브라이언을 안으로 들인 에이미.

    그녀와 브라이언은 창가의 의자에 앉고, 브라이언이 들고 온 위스키를 테이블에 놓인 컵에 따라 내민다.

    하지만 에이미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어디 해명해 보라는 듯 바라봤고, 브라이언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그래, 내가 망가진 널 처음 봤을 때부터 말해야겠구나. 그때를 기억하니?”

    “……기억하죠.”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끔찍해 고용인들마저 내보낸 채 술과 마약에 절어 있던 그녀.

    그날도 돼지우리가 따로 없는 방 안, 불 하나 켜지지 않은 방 안의 침대에 누워 멍하니 현실을 도피하고 있었다.

    그 순간 방문이 열리며 빛이 쏟아졌고, 아빠 브라이언이 거대한 그림자와 함께 나타나 그녀를 둘러메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입원해 중화제를 맞고 정신을 차린 그녀.

    브라이언은 그녀의 뺨을 때리며 크게 혼냈다.

    “너 왜 이렇게 망가졌어. 이렇게 망가질 때까지 왜 연락을 안 한 거야. 힘들면 힘들다고 연락을 해야 할 거 아니냐고 하셨죠.”

    “내가 그랬니?”

    “네, 그러셨어요.”

    그때 그녀는 왜인지 모르지만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브라이언은 그렇게 LA 저택에 눌러살게 됐다.

    담담한 에이미의 말에 브라이언의 눈썹이 떨린다.

    “그럼 그것도 기억하겠구나. 당시 네가 얼마나 위태로웠는지.”

    당시 에이미는 매일 술과 마약을 찾았다.

    애원하고, 화를 내고, 또 울고, 손목을 긋고.

    한눈을 판 순간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어 버렸을 만큼 정신이 위태로웠다.

    브라이언은 그런 에이미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그 노력 덕분인지 그녀는 점차 안정을 찾았고, 파파라치에게 웃으며 인사를 할 만큼 심리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그건 고맙지. 하지만…….’

    그때부터다. 브라이언이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가.

    브라이언은 에이미의 눈에 서리는 작은 반발심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네 엄마 때문이었단다, 얘야.”

    움찔!

    “어, 엄마요? 여기서 엄마가 왜…….”

    “네게 다시 접근하려 들더구나.”

    “무, 무슨……!”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에이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어려서 성공한 그녀의 모든 것을 사사건건 개입하고 통제하려 들었던 엄마.

    그녀는 지옥에서 온 엄마였고, 그런 그녀 때문에 전 남편의 꼬드김에 쉽게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땐 벗어나는 게 먼저였으니 말이다.

    미친년, 은혜도 모르는 년이라며 악담을 쏟아 내던 엄마는 자신이 전 남편에 의해 망가지자마자 연락을 끊어 버렸다.

    “네가 상품성을 되찾으니 다시 널 휘어잡으려 했던 거지.”

    “아니…….”

    그래도 말이 안 된다.

    “얘야, 성년후견인 제도의 후견인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걸 아니?”

    그리고 미국이란 나라는 남자에게, 정확히는 남편에게 참 가혹한 나라다. 이혼을 했을 때 이혼 사유가 아내에게 있음에도 아내에게 양육권을 맡기는 미국 법원.

    아내에게 심각한 결격 사유가 없는 이상 미국의 법은 아내의 편을 들어 준다. 양육비야 남편이 지불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겐 약점이 있지.”

    세상엔 성격 차이로 이혼을 한 걸로 알려졌지만, 진실은 브라이언의 불륜과 향락 때문이다. 에이미가 벌어 오는 돈으로 바람을 피우고, 콜걸을 부르고, 마약까지 손을 댔던 브라이언.

    반면 아내는 딸 에이미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혔을지라도 불륜과 마약은 하지 않았다.

    결격 사유는 브라이언 쪽이 더 많았던 것이다.

    “그래, 인정한다. 네가 정신을 차리니 나도 긴장을 놓게 되더구나.”

    그래서 제 버릇 못 고치고 딸의 저택에 콜걸을 불러 술과 향락을 즐겼다.

    “그걸 네 엄마가 어떻게 알았는지 협박을 해 오더구나.”

    성년후견인 제도의 후견인을 바꾸기 위해선 피후견인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 그래서…….”

    “그래. 널 감시하고 구속했던 건 모두 그 악마 같은 여자가 네게 연락하려는 걸 막기 위해서였단다.”

    그리고 브라이언 자신이 피후견인인 에이미를 온전히 케어하고 있다는 걸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미안하다. 이 아빠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네가 많이 괴로워했구나.”

    말도 안 된다. 헛소리다. 궤변이다.

    그런데 흔들림 없이 쳐다보는 브라이언의 눈이 그녀의 마음을 흔든다.

    만화 속 영웅처럼 빛과 함께 나타났던 아빠의 모습이 겹친다.

    “이 아비의 사과를 받아 주겠니?”

    브라이언은 술잔을 들어 올렸고,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브라이언을 노려보던 에이미가 결국 술잔을 든다.

    “사과를 받아 주는 건 아니에요.”

    “그래, 그래.”

    에이미는 브라이언을 노려보며 술을 홀짝였고, 혀를 적시는 화끈하고도 달큼한 향기에 그녀의 긴장이 풀어진다.

    브라이언은 그녀의 잔에 술을 더 따라 주며 입을 열었다.

    “이번 스케줄 동안 네가 하고 싶은 걸 다 해 보렴.”

    흠칫!

    “저, 정말요?”

    “그래. 대신 술은 딱 이 정도로 세 잔만.”

    맥주로는 딱 세 병까지.

    에이미는 술의 양까지 늘려 주는 브라이언의 모습에 깜짝 놀라야 했다.

    ‘지, 진심이었던 거야?’

    “그 친구들과도 편하게 지내렴. 솔직히 동양인이라는 게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널 어찌할 애들처럼 보이진 않더구나.”

    그 말에 에이미의 입술이 꿈틀거린다.

    “……착한 아이들이에요.”

    세계적인 톱스타 에이미 스피너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도 없는 순수한 아이들. 굳이 있다면 춤과 노래에 대한 노하우 정도랄까.

    그러나 그것도 순수한 호기심에 가까웠다.

    “그렇게 보이더구나.”

    브라이언은 다시 술잔을 흔들었고, 에이미는 자신의 술잔을 들었다.

    챙!

    다시 입속으로 넘어가는 호박빛의 달콤한 술.

    배 속에서 치미는 열기가 그녀의 머리를 멍하게 만든다.

    ‘내가 술이 약해지긴 약해졌나 보네…….’

    겨우 위스키 한 잔에 취해 버리는 걸 보면, 이런 개소리를 믿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예전에 그놈이랑 술을 마실 때도 이랬는데…….’

    전 남편, 자신의 백댄서에 불과했던 전 남편과 처음 술을 마셨을 때도 이렇게 빨리 취해 버렸다.

    그리고 그날 서로를 사랑하게 됐고, 결국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그게 그 개자식의 수작인 걸 모르…….’

    챙그랑!

    순간 그녀의 손에서 술잔이 미끄러져 내린다.

    “얘, 얘야! 괜찮니?”

    다급히 일어나던 브라이언이 멈춘다.

    하얗게 질린 에이미의 얼굴. 그녀의 입술이 떠듬떠듬 열린다.

    “왜…….”

    “오, 얘야! 일단 일어나 보렴.”

    “왜 마약을 내게…….”

    움찔!

    그녀의 몸에 묻은 위스키를 닦던 브라이언이 딸을 바라본다. 방금 전 걱정과 후회가 가득했던 모습은 신기루였다는 듯 무심한 표정.

    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 브라이언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진다.

    “어떻게 알았지?”

    오싹!

    “아, 맞아. 지미 그 개자식이 널 마약으로 꼬드겼다고 했지. 이것 참, 나도 늙긴 늙었나 보구나.”

    마시는 음식에, 술에 마약을 몰래 넣어서 원인도 모른 채 흥분감을 느끼게 만드는 거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와 만날 때만 그런 흥분을 느낄 수 있다고, 그가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렇게 멀쩡한 사람이 마약 중독자가 되어 가는 거다.

    “대체 왜-!”

    브라이언은 바닥에 무너져 절규하는 딸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래야 네가 정신적으로 불안하다는 걸 알릴 수 있지 않겠니.”

    아버지가 잠시 자유를 주자마자 마약을 찾은 에이미 스피너. 역시 그녀에겐 후견이 필요하다.

    브라이언은 그렇게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거다.

    “누, 누가 그걸 믿을 것 같아?!”

    “오, 이런. 얘야,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인 네 말을 믿겠니, 아니면 마약에 손을 댔지만 결국 이겨 내고 성실히 중독자 딸을 보호한 내 말을 믿겠니.”

    “당신은 정말 미쳤어-!”

    “어서 마시자, 딸아.”

    다시 중독자가 되자, 딸아.

    위스키를 든 브라이언이 그녀에게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콰앙!

    거칠게 문을 열며 난입하는 척.

    “그만두십시오, 브라이언!”

    브라이언은 자신에게로 향한 리볼버형 가스총에 눈을 크게 떴다.

    ‘이 자식이 언제 복귀한 거지?’

    하지만 상관없다.

    “닥치고 나가, 척.”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그럼 그 돈을 모두 갚든가.”

    움찔!

    브라이언은 크게 몸이 굳은 척이 총구를 내리려 하자 코웃음을 치며 에이미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빠앙!

    굉음과 함께 브라이언의 얼굴에 틀어박히는 최루탄.

    “악! 켁! 케에엑!”

    척은 발버둥 치는 브라이언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그만하라고 했지.”

    살벌하게 중얼거린 척이 아차 하며 에이미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놀란 에이미가 멍하니 바라봤다.

    * * *

    한편 일이 벌어지기 몇 시간 전.

    트라이시클을 타고 내일부터 움직일 동선을 체크한 척과 경호원들이 혀를 찬다.

    “이거 힘들겠는데요?”

    당장 모레 있는 스케줄이 각 나라 스타들과 함께하는 길거리 쇼핑이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다닐 길이 문제다.

    좁고 더럽고, 유동 인구가 많다. 필리핀의 특산품과 관광객을 노린 상품들을 진열한 좌판들이 쫙 깔려 있는, 동남아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그런 관광 거리.

    에이미를 싫어하는 누군가가 저 유동 인구 속에 숨어 있다 생각하면 숨이 막혀 버린다.

    “어쩔 수 있겠어. 우리가 잘 경호해야지.”

    그리고 파견을 나온 세부 경찰들과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일단 위험 포인트들부터 숙지해.”

    “예.”

    각자가 생각하는 위험 요소들을 다시금 체크하며 공유하는 그들. 이후로도 세부에 있는 동안 돌아다닐 곳들을, 한국 경찰 측에서 통보해 준 곳들을 모두 체크한 그들은 배를 쓰다듬으며 한자리에 모였다.

    척은 그런 그들에게 돈뭉치를 내밀었다.

    “어? 대장은요?”

    “난 가정이 있잖아. 딸에게 들키면 큰일 나.”

    “정말 딸바보라니까…….”

    고개를 저은 그들은 돈을 다시 척에게 쥐여 주곤 돌아섰고, 척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며 근처의 로컬 식당으로 향했다.

    술과 음식을 모두 파는 로컬 식당.

    “크!”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을 얼리다 못해 머리마저 얼리려 하자 고개를 털은 척은 안주로 시킨 바비큐 꼬치를 크게 베어 물며 거리를 바라봤다.

    “다섯 명이서 지킬 수 있으려나…….”

    자신을 포함해 브라이언에게 가족의 목숨값을 빚진 밀접 경호원 셋에 원거리 경호원 둘. 방금 전 동선을 함께 체크한 경호원들은 모두 에이미의 처지를 잘 모르는 원거리 경호원들이다.

    “에이미 양 혼자라면 어떻게든 지킬 수 있을 테지만…….”

    문제는 그녀와 함께 움직일, 경호원이 있어 봤자 하나둘이 고작인 스타들이었다. 심지어 한국의 아이돌은 경호원도 없이 매니저만 대동한다고 했다.

    “별일이 없기만을 바라야겠군.”

    “별일 없을 겁니다.”

    움찔!

    “다, 당신은?”

    “여기 산미구엘 하나랑 프라이드 쉬림프 하나 주세요.”

    “네!”

    “휴. 이거 이렇게 기회가 오는군요.”

    의자를 빼고 앉는 종혁의 행동에 척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마치 제게 볼일이 있는 듯한 말이군요.”

    “있죠, 당연히.”

    종혁은 당황하는 그를 빤히 보며 싱긋 웃었다.

    “브라이언 그 개자식의 명령에 따라 에이미 씨를 괴롭히고 있지 않습니까.”

    “……개소리를 아름답게 지껄일 줄 아는 분이셨군.”

    드륵!

    척은 다급히 몸을 일으켰고, 종혁은 막 나오는 맥주를 받아 들며 입을 열었다.

    “지금 도망가면 당신도 처벌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소중한 딸에게 아빠가 자신을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알려지겠죠.”

    “이봐!”

    “그러니 딸에게 당당해지고 싶으면, 당신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앉으세요.”

    서늘하게 가라앉은 종혁의 눈.

    이를 악물며 갈등하던 척이 이내 어깨를 늘어트린다.

    “후.”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나쁜 짓을 한 대가를 받을 날이 드디어 찾아온 거다.

    많은 걸 내려놓은 척은 씁쓸히 웃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방금 전엔 머리가 얼 정도로 시원했는데, 이젠 텁텁하기만 한 맥주.

    “그때였군요.”

    에이미가 살려 달라고 말했던 그날, 숙소를 빠져나가는 그녀를 묵인했던 그날 저녁, 에이미는 종혁을 만나 모든 걸 말했던 거다.

    “하지만 날 잡아간다고 해도 브라이언을 에이미 양에게서 떼어 놓진 못할 겁니다.”

    자신이 브라이언에게 막대한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80만 달러나 되는 빚을.

    법원은 자신의 증언을 빚을 갚기 싫어 수작을 부리는 것이라 판단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런 척의 말에 종혁은 실소를 터뜨렸다.

    “그렇겠죠. 정말이지, 있는 놈들이 더 나쁜 짓을 저지르기 참 편한 세상이라니까요.”

    돈만 있으면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도 만들 수 있는 세상.

    인정하긴 싫지만, 이 세상은 약자는 강자에게 언제나 당할 수밖에 없는 더러운 세상이었다.

    “덕분에 나도 편하지만.”

    종혁은 품에서 백지수표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쓰세요, 원하는 액수를.”

    그리고 자유를 얻어 브라이언의 마수에서 에밀리를 지키는 거다. 옥죄어진 그녀의 숨통을 트이게 해 주는 거다.

    “FBI가 보증을 하는 수표입니다.”

    척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어? 척, 빨리 왔네요?”

    새벽 1시까지 귀가하기로 한 척과 경호원들.

    숙소에 남은 경호원들이 의아해하자 씁쓸히 웃은 척이 고개를 젓는다.

    “그냥 재미없어서. 에이미 양과 브라이언은?”

    “지금 에이미 양의 방에 같이 있습니다.”

    “뭐?”

    척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걸 가만두고 봤어?!”

    “어쩌겠습니까. 들어오지 말라는데. 여기 총이나 받으세요.”

    ‘빌어먹을!’

    척은 다급히 에이미의 방으로 향했다가 문손잡이를 잡은 채로 멈춰 섰다.

    ‘문을 열어서 뭐하게, 병신아.’

    딸을 위한 일이라며 결국 불의를 묵인해 버리다 못해 동조해 버린 자신.

    “난 자격이…….”

    그때였다.

    “대체 왜-!”

    방 안에서 터져 나오는 처절한 절규.

    이어지는 브라이언의 말에 척의 머리카락이 쭈뼛 솟는다.

    “이런 미친!”

    자신도 모르게 문을 박차고 들어간 그.

    “그만두십시오, 브라이언!”

    척은 또 자신도 모르게 가스총을 들어 브라이언을 겨눈다.

    “닥치고 나가, 척.”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그럼 그 돈을 모두 갚든가.”

    쿵!

    다시 그의 심장을 옥죄는 족쇄.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아.’

    수표, 수표다.

    가슴에 품은 수표가, 구원을 바라는 에밀리의 눈물 젖은 눈이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타앙!

    “그만하랬지, 이 개자식아.”

    * * *

    “네, 네놈이 감히……!”

    눈물, 콧물, 침까지 쏟아 내며 한참 동안 발버둥을 치던 브라이언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얼굴을 구기는 순간이었다.

    텅! 텅!

    갑자기 두들겨지는 커다란 창문.

    고개를 돌린 브라이언은 하얗게 질렸다.

    “한 발자국만 더 움직여 봐. 몸뚱이에 구멍 뚫어 버린다.”

    촤좌좌좍!

    브라이언은 총을 겨누고 있는 종혁과 FBI 요원들의 모습에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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