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18화 (618/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18화>

    해가 저물자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저녁.

    꺄르르 웃음을 흘러나오는 방을 힐끔 본 브라이언이 숙소를 나선다.

    “어디 가십니까, 브라이언?”

    “술 좀 마시고 오지.”

    “차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됐어. 불렀어.”

    이곳 풀빌라의 관리인을 통해 불렀다.

    빠다다다당!

    “왔나 보군.”

    척은 이어셋을 통해 들리는 정문 경비의 말에 통과시키라는 답을 했고, 곧 필리핀의 대표적인 교통수단 트라이시클이 안으로 들어왔다.

    “에이미가 야식 먹지 않도록 잘 관리해.”

    브라이언은 허름한 오토바이 옆에 붙어 있는 작은 탈것에 올라탔고, 트라이시클은 다시 저렴한 소리를 내며 숙소를 빠져나갔다.

    방금 전 브라이언 방에서 들렸던 욕설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에이미가 작은 반항을 하자 성질을 못 이겨서 화를 풀러 나가는 것 같다.

    어찌 됐든 다행이다.

    “호호호호호!”

    척이 웃음이 흘러나오는 방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게 얼마 만이지?”

    에이미가 저렇게 맑게 웃는 게 말이다.

    척이 잠시 추억에 젖어 든다.

    그가 처음 에이미 스피너를 만난 건 2008년의 어느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계속해서 괴로워하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왔던 그이기에 누구보다 죄책감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씁쓸히 웃은 척은 웃음을 되찾은 그녀가 있는 방을 빤히 바라보다 손목을 입가에 가져갔다.

    “경비를 더욱 강화한다. 아무도 벨을 누르게 하지 마.”

    -라져.

    ‘브라이언이 없으니 마음껏 웃기를.’

    담배를 문 척이 달을 바라보며 불을 붙였다.

    빠다다다당!

    트라이시클을 탄 브라이언이 도착한 곳은 세부의 한 호텔 근처의 술집 거리였다.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작은 로컬 바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리. 관광객들을 위한 거리인지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 중 대다수가 백인이다.

    “여기가 여자를 구하기 가장 좋은 거리입니다, 선생님. 저기 있는 놈들 모두 어떻게 하면 여자를 공짜로 먹을 수 있을까 눈을 붉히는 바보들이죠. 전 저기 모나코를 추천드립니다.”

    고개를 끄덕인 브라이언은 돈을 지불하며 트라이시클에서 내렸고, 운전기사는 그가 내민 달러에 활짝 웃었다.

    페소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는 돈, 달러.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선생님!”

    욕심이 그득한 외침을 뒤로한 브라이언은 운전기사가 말해 준 모나코로 향했다.

    ‘왜 추천을 했는지 알 것 같군.’

    외모 상태가 주변 바들보다 좋다.

    ‘하지만 그것뿐이지. 외모 말곤 볼 게 없는 미개한 놈들.’

    브라이언은 한 명, 두 명 짝지어 앉아 눈빛을 보내오는 여성들을 지나쳐 바에 앉아 바텐더를 불렀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바텐더.

    브라이언은 3백 달러를 내밀며 입술을 달싹였고, 그에 놀라 주변을 둘러본 바텐더는 이내 음흉하게 웃으며 돈을 수습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딱! 딱!

    곧바로 칵테일 한 잔을 만들어 내밀더니 한 테이블에 앉은 미녀를 향해 손가락을 튕기는 바텐더.

    눈이 마주치자 기뻐한 여성이 브라이언에게 다가와 팔짱을 낀다.

    “혼자 왔어요, 나이스 가이?”

    “싱글이긴 하지.”

    브라이언은 여성의 뒷목을 잡으며 입술을 가져갔다.

    그렇게 그의 밤이 시작됐다.

    * * *

    짹짹짹짹!

    야자수 가지에 앉은 새가 울어 대는 아침.

    풀로 이어지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볕에 깨어난 에이미 스피너가 눈을 껌뻑인다.

    ‘가벼워.’

    마치 일어난 지 오래된 것처럼 머릿속이 깔끔하다.

    얼마 만인지 모를 숙면.

    악마들에게 시달린 이후 언제나 깨어나기 싫었던 그녀.

    오직 잠을 자는 순간에만 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을 잔다고 해도 고작 3시간 남짓을 잘 뿐이었다. 알코올과 마약 중독을 벗어난 이후에도 이 불면증은 계속됐다.

    그런데 오늘은 항상 자고 일어나도 무거웠던 몸과 머리가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

    “고롱. 고로롱.”

    옆을 본 에이미 스피너는 맑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바로 옆, 배를 드러낸 채 대자로 누워 자고 있는 윤아와 그 가느다랗고 긴 팔에 목이 짓눌려 낑낑거리는 리나.

    그녀들뿐만이 아니다. 침대 주변, 방바닥에서 자고 있는 소녀들.

    더럽다고 말렸지만, 한국인은 원래 방바닥에서 잔다며 이불을 가져와 새벽까지 수다를 떨다 까무룩 잠이 든 아이들.

    ‘이 아이들 덕분이구나.’

    이 아이들이 마치 에이미 스피너 자신을 수호하듯 지켜 줬기에 이렇게 푹 잔 것 같다.

    “나 원래 다른 사람이랑 못 자는데…….”

    옆에 누군가 있으면 신경이 예민해져서 잠을 못 잔다.

    자신이 잠든 틈을 타 무언가를 훔칠까. 혹시라도 자는 모습을 찍을까, 그리고 자신이 혹시라도 잠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수많은 게 신경 쓰여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콘서트를 준비할 때는 더 심하다.

    완벽한 공연을 위해 신경이 날카롭기에, 하루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수면 시간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길 원했다.

    ‘그 나쁜 놈 이후로 처음이야.’

    전 남편. 첫 번째 악마. 내 편이라고 생각했기에 옆구리를 내주었고, 오직 그의 품에서만 푹 잘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악마였음을 알아차린 뒤에도 곧바로 이혼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바아압-!”

    움찔!

    갑자기 몸을 일으켜 밥이란 사람을 찾는 윤아의 모습에 에이미 스피너가 깜짝 놀라는 순간이었다.

    “뭐, 뭐야!”

    “더 자요. 윤아 언니 배꼽시계 울린 거예요.”

    “아.”

    “아오, 저 먹보.”

    마치 일상이라는 듯 무시한 채 다시 잠드는 아이들.

    어리둥절해하던 에이미 스피너는 자신을 보며 울상을 짓는 윤아의 모습에 당황했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배고파요. 밥 주세요.”

    “……아하하하하핫!”

    ‘너흰 천사구나.’

    하늘이 자신을 가엾이 여겨 내려 준 천사들.

    포근함을 머금은 그녀의 눈이 아이들을 모두 담기 시작했다.

    * * *

    윤아의 우렁찬 외침으로 시작된 아침.

    브라이언은 아침 식사마저 함께하는 아이들을 보며 남몰래 이를 갈았고, 에이미 스피너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식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얇은 몸에 그게 다 들어가다니…….”

    샌드위치 4개에 샐러드 한 바구니.

    미국인이 보면 부모의 학대를 의심하거나 하이패션 모델을 꿈꾸나 생각할 만큼 얇은 몸의 윤아가 비몽사몽 중에 해치운 양이다. 다른 아이들도 샌드위치 3개에 우유 세 컵씩은 가뿐하게 해치웠다.

    “성장기 소녀에게 이 정돈 기본이죠! 하지만! 고기가 부족해요……. 소시지가 부족해…….”

    “오, 맙소사.”

    “야! 네가 어떻게 소녀야? 너도 이제 21살이거든?!”

    “만으로 십대! 하지만 언니들은 만으로도 이십대!”

    “이걸 진짜 죽여 버려?!”

    “야아-!”

    “뎀벼! 드루와!”

    ‘휘유.’

    정말 재밌는 아이들이다.

    깔깔 웃던 에이미 스피너는 거실로 들어오는 종혁을 발견하곤 몸을 일으켰다.

    “삼초온!”

    거의 날듯이 달려가 종혁의 배에 태클을 날리는 윤아.

    팔을 휘저어 가볍게 넘겨 버린 종혁은 엉덩방아를 찧고 아파하는 윤아를 무시하며 에이미 스피너에게 다가갔다.

    “오늘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최고예요.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최.”

    ‘호오.’

    차마 입에 담지 못한 말을 눈으로 말하는 그녀.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얼굴이 많이 밝아졌고, 걸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멍하니 쳐다보는 아이들을 보며 푸근히 웃었다.

    “이야. 오랜만에 맨얼굴들을 보니 정겹네.”

    “……꺄악!”

    “엄마야!”

    그제야 얼굴을 가리며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아이들.

    종혁은 한국말을 못 알아들었음에도 슬그머니 얼굴을 가리는 에이미 스피너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스포츠센터에서 뵙겠습니다.”

    “네, 네.”

    그녀는 얼른 방으로 뛰어갔고, 실소를 터트린 종혁은 브라이언에게, 아니 그의 옆에 서 있는 척에게 다가갔다.

    “큼. 무슨 일입니까?”

    찔리는 게 얼마나 많은 건지 척의 앞도 막아서는 그.

    “아, 스피너 씨도 알아야 할 이야기군요. 그 전에 일단 이것부터 받아 주십시오.”

    종혁이 눈짓을 하자 뒤를 따라온 최재수가 오늘 새벽에 날아온 신화호텔의 어메니티와 스마트폰, 그리고 삼전물산과 드바 로마노프의 옷들을 넘긴다.

    “이건?”

    “이번 대회의 스폰서 제품입니다. 앞으로 옷은 이것들만 입어 주시고, 핸드폰도 이것만 사용해 주십시오.”

    “……쯧.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저녁부터 에이미 씨를 비롯한 각국의 스타들이 이곳 세부에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할 겁니다.”

    경찰들 숙소인 리조트를 비롯해 풀빌라 등 한 구역 전체를 전세 냄으로써 에이미 스피너를 비롯한 스타들의 노출을 막은 종혁.

    하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판이 깔렸으니 세계인의 시선을 끌어모을 차례였다.

    “아마 모레부터는 팬들로 북적북적해질 테죠.”

    그렇다고 해도 이 구역으로는 들어오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잠깐, 그럼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단순히 응원이나 홍보 활동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각국의 서포터 겸 응원단들끼리 화합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세부 거리 쇼핑이라든지, 음악적 교류라든지 등 응원 활동 사이사이 진행될 스케줄을 말하는 거다.

    짜증이 섞인 브라이언의 물음에 종혁은 의아해했다.

    “당연히 예정대로 진행해야죠.”

    ‘그래야 에이미 씨가 활력을 얻지.’

    “뭐라고요?! 그러다 에이미가 다치면 어떡할 겁니까!”

    그렇지 않아도 계속 통제를 벗어나려는 기미를 보이는 에이미.

    그뿐만 아니다. 한국의 걸그룹과 어울리며 계속 웃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에이미가 계속 자신에게만 매달리길 바라는 브라이언으로서는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넌 정말 안 되겠구나.’

    그래서 잘됐다. 에이미를 더 이상 밖으로 내돌리기 싫었던 브라이언으로서는 좋은 기회, 아니 명분이었다.

    ‘게다가…….’

    브라이언은 속으로 입술을 비틀었다.

    ‘지랄한다.’

    걱정하는 척하지만, 결국 에이미가 다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니 반발을 하는 것일 터.

    종혁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십시오.”

    “그걸 어떻게 장담합니까!”

    “필리핀 정부에서 많은 수의 경찰 병력을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대회에 참석하는 각국의 경찰들 또한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현재까지 세계경찰태권도 대회에 참석할 의사를 밝힌 나라가 무려 30개국.

    참가하는 나라가 적었다면 가능한 많은 선수들이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조치했겠지만, 아쉽게도 나라별로 참가자의 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된 경찰들이 상당수 발생하게 되었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이번 행사의 경호에 협력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그러면 위약금을 무시겠습니까?”

    화제몰이를 했으니 더 이상 에이미 스피너는 필요 없다는 듯한 뉘앙스에 브라이언은 얼굴을 구겼다.

    ‘이 동양인 놈이 감히……!’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

    약 보름 동안 종혁이 지불하기로 한 출연료가 무려 2천만 달러다.

    현재 스케줄이 없는 에이미가 거의 넉 달은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인데, 위약금은 그 두 배였다.

    “……후우. 경호에 신중을 기해 주십시오. 쯧.”

    브라이언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고, 종혁은 척을 봤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지금부터 경호 난이도가 올라갈 테니 절대 방심하지 말라는 말.

    “미리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전 다른 분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야 해서 이만.”

    ‘아직은 아냐.’

    멀어지는 브라이언을 힐끔 본 종혁은 척에게 웃어 준 후 에이미 스피너의 숙소를 빠져나가 다른 나라의 스타에게로 향했고, 척은 그런 종혁을 빤히 응시했다.

    * * *

    “여기!”

    “네!”

    손을 드는 FBI 요원에게 뛰어가 물을 넘긴 에이미 스피너는 감사 인사를 하더니 스스럼없이 물을 들이켜는 요원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다.

    ‘날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

    솔직히 그녀는 팬을 제외한 미국 사람 모두가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온통 자신을 잡아먹으려던 기사들, 댓글들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여기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그걸 넘어 에이미 스피너란 한 명의 사람으로 바라봐 준다. 세계적인 톱스타가 아닌 에이미 스피너로.

    이것도 종혁이 알려 주려던 것일까.

    세상엔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 주려던 것일까.

    그녀의 눈이 종혁을 찾는다.

    “뭐? 시범단?”

    근처에서 뾰족하게 터져 나오는 외침.

    종혁과 캘리 그레이스, 그리고 각 나라의 인솔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왜?’

    “최, 원래 사범단과 교류하려던 거 아니었어?”

    “그랬죠.”

    격파나 제압술. 그런 것은 이쪽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기에, 그에 특화된 조직도 있기에 애초부터 시범단이 아니라 사범단을 요구했었다.

    태권도 보급 및 세계화를 위해 각국에 파견이 되는 태권도 사범들, 정예들을 말이다.

    그런데 세계태권도연맹 측에서 시범단을 보내기로 했다. 시원하고 화려한 공연에 특화된 이들을 말이다.

    “하! 이놈들 봐라?”

    화려한 공연으로 관심의 지분을 뺏어 가겠다는 얄팍한 의도.

    하지만 확실히 먹히는 의도다.

    강렬한 음악에 맞춰 공중을 날아다니는 화려한 발차기와 절도 있고 박력 있는 품세에 비교하면, 아무래도 호구를 모두 갖춰 입고 하는 겨루기는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찰칵! 치이익!

    “어떡할 거야. 지분 뺏길 거야?”

    “지분이 뺏긴다라……. 글쎄요?”

    “음?”

    캘리 그레이스와 무로이 코헤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종혁의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꼭 저런 미소를 지을 때마다 사고를 쳤던 종혁.

    “너 또 뭘 꾸미는…….”

    “아, 왔네요.”

    종혁은 세부 시티 스포츠센터 안으로 들어오는 길쭉길쭉한 사람들을, 세계태권도연맹의 시범단을 가리켰고, 그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린 에이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지만 적이다.

    그녀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 * *

    ‘어떻게 해야 하지?’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에이미가 입술을 깨문다.

    나쁜 사람들, 시범단.

    ‘적인데……. 분명히 적인데…….’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비명을 지르더니 달려와 팬이라고 외치던 그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자신을 톡 건드리면 깨지는 유리처럼 조심스럽게 대해 줬다.

    그렇다 보니 마냥 미워할 수가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차에서 내리던 에이미는 동료 경호원에게 무전기 세트와 가스총을 넘기는 척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응? 어디 가요?”

    “아, 모레부턴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에 미리 동선을 확인하려는 겁니다.”

    그러는 김에 한잔. 모레부터 대회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을 것이기에 가볍게 한잔 마시려고 하는 거다.

    이 모두 예상보다 하루 일찍 도착해 경호를 서기 시작한 세부 경찰들 덕분이었다.

    “미안해요.”

    “아닙니다. 그럼.”

    척은 옆에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브라이언을 힐끔 보더니 이내 몸을 돌렸고, 브라이언은 척을 멍하니 바라보다 돌아서는 에이미를 보며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오늘인 것 같다. 감히 반항을 시작한 딸을 원래의 말 잘 듣는 딸로 돌려놓을 때가.

    입술을 비틀며 방으로 들어간 브라이언.

    곧바로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 그는 창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밤에 물든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리고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띠디! 띠디!

    11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리자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굳는다.

    “모두 네가 잘못한 거란다, 에이미.”

    앞으로 일어날 일은 모두, 딸 에이미의 잘못으로 인한 것.

    위스키를 챙겨 든 그는 아래층으로 향했다.

    “딸, 자니?”

    브라이언은 부드럽게 웃으며 에이미 스피너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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