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16화 (616/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16화>

    두근두근!

    에이미 스피너가 가쁘게 뛰는 심장을 누른다.

    ‘아빠가 아무 말도 못했어!’

    평소의 아빠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자신이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을 거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최가 경찰이기 때문인가? 경찰들이 주변에 있어서 그런 건가?’

    아직 미국 경찰의 인솔자인 캘리 그레이스가 FBI 뉴욕지국 부국장임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인데도 그랬다는 건, 분명 아빠도 경찰 눈치를 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

    ‘경찰…….’

    아빠 브라이언이 성년후견인 제도란 목줄로 자신을 옭아맨 후 처음으로 성공한 반항이다.

    그녀의 마음에 용기란 작은 씨앗이 심어진다.

    에이미 스피너는 명분이 되어 준 한국의 싱어 그룹을 바라봤다. 자신과 있는 게 벅찬지 딱딱하게 걸으며 계속 이쪽의 눈치를 보는 어린아이들.

    “Hello?”

    “애들아!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그룹명을 외치는 아이들.

    마치 매스게임을 보듯 일사불란한 그들의 박력에 에이미 스피너가 깜짝 놀란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순결한 천사 데이지입니다!”

    “꽃사슴 윤아입니다!”

    저마다 활동명을 말하는 아이들.

    “와우…….”

    빌보드에는 없는 모습들이라 순간 혼이 쏙 빠졌던 에이미 스피너가 겨우 정신을 차린다.

    “아, 반가워. 난 에이미 스피너야. 혹시 나에 대해 알고 있니?”

    조심스레 묻는 그녀.

    그에 아이들의 눈에 다급한 물음표가 서린다.

    “어……어……데이지!”

    다급히 미국 교포 멤버인 데이지를 소환하는 아이들.

    맨날 한국어를 못한다고 놀리던 친구들의 도움 요청에 데이지가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당연하죠! 저희가 에이미 님 노래로 춤 연습을 했는걸요!”

    “정말?! 왜?”

    “당신은 스타니까요! 빛! 소금! 목소리는 타고난 건가요? 춤선은요?”

    “와우. 진정해.”

    “진정을 할 수가 없어요! 사랑해요, 언니!”

    “제발…….”

    마음이 많이 다친 그녀로선 따라갈 수 없는 텐션.

    그녀가 간절해하자 윤아의 입술이 삐죽 내밀어진다.

    “알았어요. 조금 참아 볼게요. 응?”

    이상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린 윤아는 경악한 채 바라보는 멤버들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너…… 너…… 왜 영어 잘해?!”

    맨날 공부하기 싫어서 도망을 치던 윤아가 아니던가.

    시험 일주일 전에만 벼락치기를 하기에 구제불능 똥멍청이라고 불렸던 윤아.

    그에 몇 년 전 하마터면 사채업자에 의해 팔려 갈 뻔했다가 종혁에게 구해진 리나가 피식 웃는다.

    “몰랐어? 윤아 영어 잘해!”

    “왜?!”

    “안 그러면 종혁 아저씨가 용돈이랑 옷을 안 사 주거든!”

    다른 건 다 못해도, 언어는 무조건 잘해야 된다고 강요 했던 종혁. 숙소에 윤아의 옷걸이와 신발장을 채운 명품들은 모두 종혁의 테스트를 통과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었다.

    리나도 그런 종혁, 은인의 당부에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다.

    “아, 부자 형사 삼촌…….”

    “쳇. 치사한 삼촌.”

    툴툴거리는 윤아의 모습에 에이미 스피너가 눈을 빛낸다.

    “종혁? 그거 최를 말하는 거야?”

    “아, 네. 맞을 거예요. 여기 윤아가 최의 사촌이거든요.”

    리나의 말에 그녀가 뭔가를 깨닫는다.

    “아, 그래서…….”

    “네?”

    “아, 아니야.”

    고개를 저은 에이미 스피너는 신기하다는 듯 윤아를 봤다.

    “그러고 보니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엑! 무슨 그런 심한 말을! 아냐, 삼촌! 사랑해!”

    “푸하하하핫!”

    그렇게 웃으며 레스토랑에 도착해 예약한 방으로 안내된 에이미 스피너는 메뉴판을 보며 살짝 당황했다.

    ‘뭐, 뭘 먹어야 하지?’

    자신도 모르게 브라이언을 찾는 그녀.

    식단이 엄중하게 관리 되고 있기에 아무거나 먹을 수 없는 그녀로선 브라이언의 허락이 없으면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야! 야! 최윤아!”

    “왜요! 삼촌이 다른 나라 가면 첫날엔 그 나라 음식을 하나씩 다 먹어 봐야 한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래야 뭐가 입맛에 맞는지 알고, 다음부터 그 나라의 모든 걸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자자, 윤아야. 착하지? 그렇게 먹으면 살쪄요, 안 쪄요?”

    “난 안 찌눈뒈?”

    “……저거 죽여.”

    리나는 어리둥절해하는 에이미 스피너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그녀는 적극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먹고 싶은 걸 자유롭게 먹으려 하는 윤아의 모습이 부럽기만 했다.

    “그러면 먹고 싶은 거 하나씩 시켜서 나눠 먹자!”

    “나 삼촌 카드 있눈데…….”

    “씁! 그 돈이 네 돈이야?”

    “아니요…….”

    다시 입술을 내민 윤아는 양이 가장 많아 보이는 걸 고르기 시작했고, 에이미 스피너는 금세 포기해 버리는 윤아나 그런 윤아를 말리는 멤버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돈이 있는 사람이 사면 되는 거 아니야?”

    리나는 진심으로 어리둥절해하는 에이미 스피너의 모습에 낯빛을 굳혔다.

    ‘이 사람…… 이거였구나. 오늘 아침 아저씨가 말한 게.’

    오늘 아침 에이미 스피너와 자연스럽게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 말했던 종혁.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으니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다, 부탁한다는 뜻 모를 말을 했었다.

    ‘세계적인 스타와 이제야 이름을 알리는 우리가?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에이미 스피너에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그거 다 빚이잖아요.”

    “응?”

    리나는 에이미 스피너의 눈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사람은 다 똑같지 않아요. 풍족한 사람이 있다면, 궁핍한 사람도 있죠.”

    부모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것도 모자라 먼 친척에게까지 무조건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란 윤아와 하나뿐인 딸을 사채업자에게 팔아넘기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신처럼 말이다.

    “제 주머니 사정이 어려울 때 누군가 밥을 사 준다면 참 고맙죠.”

    실제로 정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작년까지 윤아는 리나 본인뿐만 아니라 멤버들에게 종혁의 카드로 많은 걸 사 줬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죠. 정말 친한 친구 사이라면 그 이상도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건 빚이다. 내 수중에 돈이 들어왔을 때 갚아야 할 빚.

    그런 것도 생각 안 하고 계속 얻어먹는다?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고 해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주고받는다면, 그 관계가 오래갈 수 있을까요?”

    “……아니라는 거니?”

    “네.”

    어느새 권리로 변해 버린 호의에, 그 변질된 관계에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신들도 그걸 알기에 되돌려주려고 노력한다. 첫 정산을 받았을 때 가족들 선물과 함께 윤아의 선물도 산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의 호의는 결코 내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쁜 것이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강도인 거다.

    “그것이 설사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고 해도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는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게 이쪽에게 이로운 일이었다.

    움찔!

    “그러니?”

    “네. 사람과의 관계는 오직 기브 앤 테이크. 상황에 따라, 성격에 따라 덜 주고 더 줄 수는 있을 테지만 최소한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이 정도를 요구하면 언젠가 그 정도를 되돌려줘야 한다는 것. 그것이 리나가 생각하는 기브 앤 테이크였다.

    “그렇구나…….”

    그녀는 이 순간 알아차렸다. 자신과 대화를 하는 리나에게 비슷한 아픔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종혁이 이들을 붙여 주며 알려 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혹시나 했는데…….’

    그녀의 눈이 이쪽을 응시하는 브라이언에게로 향한다.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이젠 확실히 알 것 같다. 저 눈은 결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눈이 아니란 걸 말이다.

    에이미 스피너는 그래도 부모였기에 그녀 본인도 모르게 품었던 희망을, 지금 이 순간 모두 던져 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어린 친구도 아는 걸 나는…….’

    “그럼 너는 돈 관리를 어떻게 하니?”

    “전 모든 수익을 믿을 수 있는 자산관리사에게 맡기고 있어요.”

    70퍼센트는 종혁이 소개해 준 권&박 홀딩스에, 나머지는 은행의 고금리 적금 상품에 투자한 상태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 대부분은 재투자를 하고 있고, 그중 극히 일부만 예금 통장에 넣은 후 한도가 낮은 카드 쓰고 다니는 편이다.

    “가능한 계획적으로 쓰려고 하고 있어요.”

    “계획적…….”

    그녀의 눈빛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에이미 님, 에이미 님은 뭐 드실래요?”

    윤아의 물음에 에이미 스피너는 얼른 메뉴판을 바라봤다.

    “그럼 나는…… 이거.”

    가장 기름져 보이는 것을 고른 그녀는 이내 나온 음식에 눈을 감았다.

    ‘맛있다.’

    입안에서 뭉개지는 달큰한 소스와 기름진 지방의 맛.

    그것은 아주 가수가 되기 전 가족들과 함께했던 추억의 맛이자, 자유를 쟁취할 준비를 하는 혁명의 맛이었다.

    한편 제작진의 뒤편.

    지방이 가득한 고기를 씹는 에이미 스피너의 모습에 브라이언이 입술을 깨문다.

    ‘저딴 정체 모를 소스가 범벅이 된 음식을 먹다니!’

    식재료도 싱싱한 것인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이곳은 못사는 나라인 동남아이지 않은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일까.

    저 작고 못생긴 동양인 꼬마들의 꾐에 넘어간 것일까.

    ‘이놈이 저것들을 붙였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브라이언은 오늘 저녁 크게 혼을 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런 그의 옆에 선 종혁이 귀에 꽂은 이어폰을 누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리나가 잘해 주고 있네.’

    확실히 통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건 그녀가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거야.’

    계속해서 다른 이에게 선택과 판단을 의존한다면, 그녀는 언제까지고 아버지에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저것이다.

    인식의 변화와 학습.

    ‘모르면 배우면 되는 겁니다, 에이미 씨. 그건 결코 어려운 게 아니에요.’

    저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데뷔를 위해 많은 걸 포기하며 살아왔음에도 심성이 착한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거다.

    그리고 이제 곧 도착할, 저마다의 아픔이 있는 스타들과 함께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평범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종혁은 캘리 그레이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 마음 편한 식사를, 그것도 저녁 식사까지 행복하게 마치고 숙소로 복귀한 그녀를 맞이한 건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브라이언이었다.

    즐거운 기분이 와장창 깨져 버린 그녀에게 시럽 형태의 어떤 물약이 든 약병을 내미는 그.

    “먹으렴.”

    “이, 이게 뭔데요?”

    “구토제란다. 오늘 먹지 말아야 할 걸 많이 먹었잖니, 얘야.”

    점심엔 지방이 많은 고기를 먹더니, 저녁엔 검증되지 않은 곳에서 잡은 해산물에 뭐가 들어갔는지 모를 소스를 먹은 에이미.

    “아직 소화가 다 되지 않았을 테니 충분히 토해 낼 수 있을 거란다.”

    오싹!

    웃는 모습이 소름 끼친다.

    “시, 싫어요.”

    “너 또 그때로 돌아가고 싶니? 뚱뚱하고 못생겼던 그때로?”

    그 누구조차 돌아봐 주기는커녕 손가락질만 했던 그때로.

    술과 마약에 중독됐던 그때로.

    “얘야, 넌 그걸…… 견딜 수 있겠니?”

    사람들의 관심이 없으면 시들어 버릴 딸, 에이미.

    딸이 사람들의 관심에 목말라 하기에 목줄을 걸 수 있었고, 사람들의 관심이 있기에 목줄을 걸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 가치만큼은 결코 변해선 안 됐다.

    “아, 아빠…….”

    “먹어-!”

    “꺅!”

    움찔!

    그녀의 코앞에 약병을 들이밀던 브라이언이 척을 본다.

    방금 전 크게 몸이 흔들린 척.

    브라이언의 입가에 삐뚜름한 미소가 그려진다.

    “헉! 머, 먹을게요! 먹으면 되잖아요!”

    끝내 눈물이 글썽거리는 에이미 스피너.

    브라이언은 속으로 혀를 찼다. 딸이 제어를 벗어나는 것 같아 마음이 급해져 너무 몰아붙이고 말았다.

    “이 아빠가 너 잘못되라고 이러겠니?”

    에이미의 볼을 쓰다듬으며 달랜 브라이언은 시럽을 숟가락에 따라 내밀었고, 그에 에이미 스피너는 눈물이 맺힌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벌렸다.

    그때였다.

    띵동! 띵동!

    순간 방 안의 시간이 멈춘다.

    “……누구야?”

    손목을 입에 가져간 척이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말에 오묘한 표정을 짓는다.

    “뭐야? 누군데?”

    “한국 경찰입니다, 브라이언.”

    “뭐?”

    ‘최, 최?’

    에이미 스피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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