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14화 (614/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14화>

“어흠.”

에이미 스피너의 옆에 서 있던 큰 키와 다부진 체격을 지닌 오십대 백인 장년인의 헛기침에 악수를 푼 종혁.

“반갑습니다, 매니저님. 한국 경찰의 최종혁입니다. 이렇게 섭외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경찰들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큼. 그만한 돈을 지불했기에 응했던 겁니다.”

무려 2천만 달러.

1월 말경인 지금부터 2월 14일까지 거의 보름이 살짝 넘는 기간 동안 종혁이 지불한 금액이 무려 2천만 달러다.

더욱이 지금은 월드 투어를 마치고 쉬는 기간.

공익적인 측면도 강하기에 이 섭외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난 매니저가 아니라 에이미의 아빠요.”

“아아, 그러셨군요. 이거 죄송합니다. 그럼 매니저님은은……?”

“……내가 매니저도 겸하고 있습니다.”

종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여기 뭐가 묻었군요.”

종혁은 에이미 스피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입술을 달싹였고, 흠칫 몸을 굳혔던 에이미 스피너는 배시시 웃었다.

“잰틀맨이셨네요.”

“경찰은 모두 잰틀맨입니다, 에이미 씨.”

“글쎄요…….”

“물론 미국 경찰들이 좀 험하기는 합니다.”

“풉! 아하핫!”

“그럼 가실까요, 레이디?”

종혁은 웃음을 터트리는 그녀를 보며 정중히 공항 밖을 가리켰고,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도도한 걸음으로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녀를 준비한 밴에 태워 출발시킨 종혁.

그런 그에게 윤아들이 달려든다.

“사, 삼촌! 이, 이게…… 맞지? 내가 본 게 맞는 거지?”

‘이제라도 학원에 보내야 하나…….’

공부를 너무 안 시켰나 하는 후회가 종혁의 가슴을 찾아든다.

“형! 저, 정말 에이미 스피너야? 저 사람 정말 그 에이미 스피너 맞아?!”

“어. 미국 대표 응원단으로 초대했지.”

“미친! 어떻게?! 미국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주둥이. 새끼야, 주둥이. 형한테 미친? 짓? 이게 뒤질라고 진짜.”

“지금 그게 문제야?!”

“어. 문제야.”

종혁은 재우의 입을 때렸고, 악 비명을 지른 재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종혁을 노려봤다.

“에이미 스피너는 대체 어떻게 섭외한 건데에!”

“어렸을 때 태권도를 했다던데? 초록띠랬던가?”

“……응?”

“그래서인지 섭외에 흔쾌히 응해 주더라고. 혹시나 해서 찔러 봤는데 계 탄 거지.”

“출연료는 형 지갑에서 나온 거고?”

“당연하지. 경찰 예산으론 너희도 빠듯해.”

솔직히 청춘은 불패팀 전원을 불러오는 것만으로도 예산 오버였다.

“진짜 형은…… 짱이야.”

“삼촌 진짜 짱…….”

“아, 각국 응원단들끼리 노는 모습이랑 응원을 준비하는 모습도 찍을 거니까 쪽팔린 짓은 하지 마라. 저쪽이 미국 대표면, 너흰 한국 대표다.”

“진짜? 우리 에이미 스피너랑 이야기할 수 있는 거야?!”

“바, 밥도 같이 먹을 수 있는 거야, 삼촌?!”

“에라이.”

고개를 저은 종혁은 신대리 어르신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그들은 곧 종혁이 잡아 놓은 숙소로 향했다.

* * *

“와아아악!”

“오메. 이게 뭐시다냐.”

저 멀리 바다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과 높이 솟은 야자수. 그 사이에 펼쳐진 푸른 물이 일렁이는 풀.

새하얀 불빛 아래 포근한 침구들마저 환상적인 풀빌라에 도착한 윤아들과 신대리 주민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종혁은 그들에게 키를 나눠 주었다.

“여기 풀빌라를 비롯한 근처 모든 숙소는 우리가 예약한 거니까 기자들이나 소음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무슨 일 있으면 저기 리조트로 연락하고. 경찰들 숙소니까.”

“응!”

“뭐야. 벌써 가려고? 좀만 더 있다 가!”

“바빠서 안 돼.”

최재수에게 맡겨 두긴 했지만,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가서 무슨 일은 없었는지 확인해 봐야 했다.

“그럼 푹 쉬고 내일 9시에 보자. 그때부터 촬영 시작할 거니까.”

“알았어!”

“아, 그리고 꼬맹이들. 많이 마시지 마라.”

“휘! 휘!”

혀를 차며 몸을 돌린 종혁은 리조트로 향했다.

“으하하하핫!”

“마셔!”

“적셔!”

“cheers!”

“乾杯!”

화끈한 숯불이 피어오르는 바비큐 그릴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와 부딪치는 술잔과 술병들.

서로 다른 인종들끼리 하나 되어 풀장 안과 밖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꼴을 보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난리 났네, 씨부럴.”

대체 어떤 인간이 먼저 시작했을까.

하지만 예상했던 모습이다.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오늘만 사는 인간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는데 술이 빠질 수 있을까.

서로 데면데면해도 금세 친해졌을 거다.

“헉! 부, 부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관리하랬더니 놀았단 걸 이제 깨달은 걸까.

종혁은 하얗게 질리는 최재수를 향해 손을 저었다.

“뭐 저 중 어떤 인간이 숯을 피웠을 거고, 그러다 시끄러워 눈치 주는 다른 나라 친구들 주둥이에 술병을 꽂았겠지.”

“……CCTV 확인하셨어요?”

“뻔하지, 뭐.”

뻔뻔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간들이 바로 형사란 족속들이다. 술 한 잔이면 세상 그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인간들.

안 봐도 비디오였다.

“뭐야, 최 부장 왔어?! 들어와! 들어와!”

“Choi! Come in!”

“……에라이.”

종혁은 상의를 벗었고, 환호성이 터졌다.

“꺄아아악!”

“우와아악!”

이번에 모인 경찰들 가운데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우웨에에엑!”

“help…….”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2시.

술판이 벌어졌던 풀장 주변에 빈대떡들이 부쳐지자 술자리도 파하게 됐다.

날씨가 덥지만 알몸으로 잤다가는 감기에 걸릴 수 있기에 덜 취한 사람들은 동료들을 방으로 옮겼고, 종혁도 뻗어 버린 한국 경찰들을 옮기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이 팀장님과 콘텐츠 제작 및 관리팀도 오늘은 그냥 주무세요.”

“어…… 괜찮겠습니까?”

편집은 그때그때 해야 편하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할 게 아니니까요.”

“예?”

“내일이 되시면 압니다.”

종혁의 의뭉스런 미소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그들은 이내 고개를 숙이며 방으로 들어갔고, 그런 그들을 빤히 보던 종혁은 리조트의 로비로 향했다.

건물을 나서자마자 그를 감싸는 시원한 바람.

찰칵! 치이익!

“후우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종혁은 한국과 달리 훤히 보이는 달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셨다면 말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안 힘드셨습니까?”

움찔!

“내가 올 줄 알았나요?”

“당연히.”

종혁은 굳은 얼굴을 한 채 어둠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는 에이미 스피너를 보고, 그녀의 얼굴에 서린 짙은 경계심을 보고 낯빛을 굳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에이미 스피너 씨.”

이는 종혁 본인의 실책.

허리를 깊이 숙이는 종혁의 모습에 그녀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 * *

휘이잉!

열악한 도로 사정에 덜컹거리는 차 안, 에이미 스피너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차창 너머를 멍하니 응시한다.

듬성듬성 놓인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밝히는 조용한 거리.

물이 썩어가는 고약한 냄새와 빵빵대는 몇 대의 차들, 슬리퍼를 찍찍 끌며 시끄럽게 떠드는 허름한 옷차림의 동남아인들이 이곳에서도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말해 주고 있다.

‘여긴 이런 곳이구나.’

전 세계를 누비는 팝스타임에도 단 한 번 와 보지 못한 필리핀의 세부.

‘아니, 왔어도 구경하진 못했겠지. 그 개자식…….’

“흡! 흐윽!”

“에이미!”

갑자기 숨을 헐떡이며 목을 긁는 에이미의 모습에 경악한 브라이언 스피너는 다급히 봉투를 꺼내어 에이미 스피너의 입에 가져갔다.

“숨 쉬어! 숨!”

에이미는 살기 위해 노란 봉투를 붙잡으며 숨을 쉬기 위해 노력했고, 다행히 곧 진정될 수 있었다.

개자식, 전 매니저를 생각할 때마다 이따금 찾아오는 과호흡 증세.

커다랗고 거친 브라이언의 손이 눈물에 젖은 그녀의 눈을 어루만진다.

“오, 얘야. 또 그놈들을 생각한 거니?”

움찔!

“됐어요. 저리 가요.”

브라이언의 손을 밀어내며 뒤로 물러나는 그녀의 몸.

“……흠. 그래.”

순간 눈빛이 가라앉았던 브라이언이 입맛을 다시며 물러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시선이 보조석에 앉은 경호원에게로 향한다.

“이봐, 척.”

“예, 브라이언.”

“아까 왜 그 경찰이 다가올 때 막지 않았던 거지?”

움찔!

“그가 먼저 사진을 보내와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오! 놀랍군! 척은 동양인 얼굴을 모두 구분할 수 있나 봐! 대단한데?”

누가 들어도 비꼼이 가득한 어조.

“그, 그게…….”

“그만해, 아빠.”

“……하하. 딸이 그러자면 그래야지.”

브라이언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스케줄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에이미는 그런 아빠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다 일견하며 다시 창밖을 본다.

‘그놈들…….’

아무것도 모르던 그녀를 꼬드겨 나락으로 빠트린 전 남편.

지독히도 한량이었던 전 남편.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 힘들게 낳은 아이들을 뺏어 간 첫 번째 악마.

그리고 그런 전 남편과 이혼을 하자마자 접근해 그녀를 지옥으로 인도한 전 매니저.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던, 그러면서도 들키지 않도록 둘만 있을 때만 그런 짓을 했던 두 번째 악마.

이 두 사람이 그녀를 마약과 알콜 중독에 빠지게 했던 악마들이다.

아직도 그 둘이 했던 말들이, 행동들이 눈만 감으면 선명히 떠오른다.

-넌 내 거야, 허니. 네 돈도 내 돈이고, 내 돈도 내 돈이라고!’

-정말 내 아이들이 맞는 거야? 그 개새끼랑 붙어먹어서 낳은 게 아니고?

-넌 내 말만 들으면 돼, 이 돼지 년아! 내가 아니면 누가 너 같은 중독자를 매니징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네가 아직도 팝의 요정인 것 같아?!

“흐읍!”

다시 숨통이 틀어막힘에 그녀는 가슴을 치며 겨우 진정한다. 눈에 고이는 눈물을 닦으며 이를 악문다.

‘그놈들뿐만이 아니잖아.’

악마는 또 있었다.

겨우 두 악마의 마수에서 벗어난 그녀를 찾아온 세 번째 악마.

앞선 두 악마보다 더 지독한 악마 브라이언을 힐끔 본 에이미 스피너는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는 그녀의 손이 떨렸다.

* * *

“흠. 제법 신경 썼네.”

장미 꽃잎이 올려진 침대와 동남아풍으로 꾸며진 넓은 방을 주욱 둘러본 브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곤 그녀의 손에 독한 위스키를 쥐여 준다.

“비행기 타고 오느라 피곤했지? 자, 마시렴. 다만 안주는 안 돼.”

손에 쥐어지는 술병에 그녀의 이가 다시 악물어진다.

전 남편의 악독한 말들로 인해 지독한 알콜 중독자가 되어야 했던 그녀.

이젠 쳐다보기도 싫지만, 절로 넘어가 버리는 군침과 떨리는 심장이 원망스럽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줄 알면서도 술병을 쥐여 주는 아빠도.

‘또 한 모금 이상 마시면 혼낼 거잖아.’

며칠 동안 지독히도 괴롭힐 거다.

술 한 병을 쥐여 줘 놓고도 마실 수 있는 건 겨우 한 모금. 차라리 고문이 나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알았어. 씻을 거야. 나가 줘.”

“오, 얘야. 여긴 동남아란다. 못 배우고 험한 범죄자들이 가득한 나라! 어디서 어떤 놈들이 쳐들어올지 모르잖니.”

“아빠, 제발! 그렇게 따지면 경호원들도 남자…… 아.”

아차 한 그녀가 하얗게 질리며 브라이언을 보지만, 그의 눈빛은 가라앉아 있었다.

“흠…… 남자라…….”

“아, 아빠. 아니야.”

“재밌네.”

“아빠!”

피식 웃은 브라이언이 경호대장에게 다가가 그의 가슴을 쿡 누른다.

“당신이 남자인가, 척?”

“전 경호원일 뿐입니다, 브라이언.”

“경호원?”

“……전 당신의 인형입니다, 브라이언.”

“그래, 인형이지. 내게 아주 큰 빚을 진 인형!”

그리고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목을 꺾어 버릴 수 있는 인형.

“명심해, 척. 네가 내게 80만 달러의 빚이 있는 이상, 네 딸의 심장값을 갚지 못하는 이상 넌 영원히 인형일 뿐이야.”

심장이식 말고는 답이 없는 심장병에 걸린 딸.

2008년 미국에 들이닥친 경제대공황으로 인해 대출을 받지 못해 오장육부가 타들어 갈 때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 악마, 브라이언.

자신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3명의 경호원 모두 소중한 이의 목숨값을 브라이언에게 저당 잡혀 있다.

척은 주먹을 부술 듯 쥐며 고개를 숙였다.

“……예써, 브라이언.”

“잘 감시해. 우리 애가 술을 얼마나 마시는지, 혹여 마약은 하지 않는지!”

“안 한다고! 안 해!”

“오, 얘야. 그런 변명은 중독자들도…….”

“제발!”

“허흠. 잘 자렴, 스위티.”

에이미의 이마에 입맞춤을 한 브라이언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고, 에이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척의 손을 잡는다.

“미안해요, 척.”

또 이런 말을 듣게 해서 미안하다.

“내, 내가 돈만 쓸 수 있었어도…….”

세 번째 악마 브라이언이 그녀를 옭아맨 덫, 그녀의 숨통을 죄는 목줄. 성년후견제도.

성년이라고 하여도 사무처리 능력이 결여된다고 판단되면 후견인은 피후견인을 보호할 수 있다.

너무 어려서부터 이 바닥에 뛰어들어 노래와 춤을 인생의 전부로 삼았던 에이미 스피너.

그런 그녀를 찾은 악마들로 인해 그녀는 지독한 알콜 중독과 마약 중독에 빠지게 됐고, 정서적으로 무척이나 불안정하게 됐었다.

머리를 삭발하고, 술과 마약에 취해 길거리에서 잠들고.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모습을 보였고, 그 틈을 타 아버지 브라이언이 다가와 성년후견인 제도라는 목줄을 채우며 그녀의 모든 것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돈과 스케줄은 물론이고, 식단부터 씻는 것까지 모두.

전 남편과 전 매니저라는 악마들로 인해 기댈 곳이 필요했던 그녀는 감언이설로 꼬드기는 아빠의 행동에 지친 몸과 마음을 기대었고, 그것은 어느덧 벗어날 수 없는 덫이 되어 버렸다.

그저 이렇게 소리치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

“……아닙니다. 지켜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까득!

이를 악무는 척을 처연하게 바라보던 에이미 스피너는 몸을 돌렸다.

“씻을게요.”

화장실로 들어간 그녀는 문을 열어 놓은 채 옷을 벗었고, 척을 비롯한 경호원들은 몸을 돌리며 바깥을 주시했다.

쏴아아아아!

미지근한 물줄기가 그녀의 마음을 두드렸다.

“흐윽!”

결국 무너져 주저앉은 그녀.

“누, 누가 제발 날 좀……. 제발…… 아!”

그녀의 머릿속으로 종혁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당신을 구해 드리겠습니다, 에이미 씨.

공항에서 했던 귓속말이 아니다.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의 개인 핸드폰으로 연락해 왔던 그.

그녀로 하여금 이 섭외를 받아들이게, 이런 급이 낮은 섭외가 왔는데 할 거냐는 아빠의 물음에 간절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만들었던 통화.

‘최, 당신을 믿어도 될까요?’

배신으로 얼룩졌던 그녀의 삶.

불같이 사랑해 결혼한 남편도 악마였고, 힘들 때 그녀를 찾아와 명예를 다시 되돌려 주겠다 말한 전 매니저도 악마였고, 친아빠마저도 악마였다.

친구들도, 연예계 생활을 하며 만난 지인들도, 스타일리스트도, 심지어 그녀가 자주 갔던 네일숍의 직원마저도 기자에게, 악마들에게 자신의 약점을 알리는 배신자들이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지옥 같은 그녀의 삶에 드리워진 얇은 동아줄. 종혁이 했던 말들은 그런 동아줄이었다.

‘정말 믿어도 될까요?’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젠 지쳤다.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입술을 깨문 그녀는 수건으로 몸을 가리며 척을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에이미.”

“살려 줘요.”

척은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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