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13화>
달각!
홍보부의 회의실, 종혁이 찻잔을 놓으며 고개를 숙인다.
“대표님께서 협회장님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만나서 반가워요. 홍정필입니다.”
“경찰 본청 홍보부를 이끌고 있는 최종혁 총경입니다.”
“말씀은 익히 들었습니다.”
최종혁. 현 경찰 조직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이자, 후에 경찰청장 취임이 확실시되는 엘리트.
‘그리고 현몽준 당대표를 그 위치까지 올린 인물!’
그가 어렵게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현몽준 당대표와 박노형이 대선 후보직을 놓고 싸울 때, 현몽준의 치명적인 약점을 조기에 발견하여 제거한 게 바로 종혁이라고 했다.
‘현몽준을 돋보이게 한 굵직한 일들에 이 젊은 친구가 얽혀 있었지.’
어디 그뿐인가.
박노형 전 대통령도, 박명후 현 대통령도 종혁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게다가 군사정권 이후 경찰 역사상 미디어 및 언론 관리가 이렇게까지 잘되는 건 모두 종혁 덕분이라고 들었다.
“한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참 잘생기셨습니다.”
“하하. 부디 좋은 의미였으면 좋겠습니다.”
“허허허.”
홍정필은 그 특유의 트레이드마크인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회피했고, 종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경찰을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경찰태권도 대회, 솔직히 대한태권도협회의 입장에선 무시해도 될 일이다. 별 메리트도 없고, 국민들의 주목도 받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태권도협회는 SBC라는 지상파에서 방영을 하는 것에 대해 승인을 해준 거다.
“아닙니다. 2008년 여러 금메달을 따면서 인기를 끌긴 했지만, 그것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은 일이죠.”
이제 슬슬 국민들의 관심이 줄어들 때였기에 경찰의 제안은 꽤나 시기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이해가 맞아떨어진 거다.
“그런데 방금 전 우리 협회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던데…….”
“끙. 들으셨군요.”
한숨을 내쉰 종혁은 자신의 추측에 대해 설명했고, 홍정필뿐만 아니라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하던 관계자들도 낯빛을 굳힌다.
“허어. 그런…….”
“그럼 대회 개최 날짜를 늦춰야 하는 겁니까?”
“그러는 게 좋겠지만…….”
문제는 손연아다.
‘아니지. 연아뿐만이 아니지.’
올해 열리는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선 동계스포츠 선수들이 큰 이변을 일으킨다. 아마 당분간은 동계스포츠 붐이 일어날 거다.
“동계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기세가 범상치 않습니다. 또 올 6월에는 남아공월드컵이 열리고, 8월엔 제1회 청소년하계올림픽이 열립니다.”
경찰들이 유도 쪽에만 힘을 실어주는 것에 대한 불만을 품은 연맹 관계자들이나 선수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정도라면 그냥 설 전날에 대회를 열어도 충분하다.
“하지만 아니잖습니까?”
이들이 왜 협조를 해 왔겠는가.
“태권도 대표 스타들을, 지금 쉬고 있는 그 친구들을 다시금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려 이 판을 기획하신 거잖습니까.”
이들은 2008년 올림픽의 주역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경찰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다.
제아무리 경찰들이 험하다 한들, 현역 선수들보다 더 날랜 기량을 보일 수 있을까.
움찔!
홍정필은 여전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지만, 협회 관계자들의 몸이 크게 흔들린다.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이런 제안을 쳐다보지 않았을 그들.
관계자들을 보며 혀를 찬 홍정필은 종혁을 향해 웃어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최 부장님도 목적이 있어 우리에게 이런 제안을 하셨을 텐데 말입니다.”
‘쯧. 이래서 노회한 정치인은…….’
이쪽의 의도를 너무 쉽게 읽어 버린다.
‘후. 어쩐다…….’
이미 대회를 열 거라는 공문이 내려간 상태다.
벌써부터 대회 개최일에 맞춰 스케줄을 맞춰 놓은 경찰들도 있고, 아예 응원을 준비하는 경찰서도 있었다.
여기서 판을 엎었다가는 안 하느니만 못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뻔히 당하는 걸 지켜볼 수는 없고. 이걸 어쩐다. 아……!’
눈을 빛낸 종혁은 홍정필을 봤다.
“서로 양보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홍정필이 눈을 빛내며 계속하라는 시선을 보낸다.
“판을 키우는 겁니다.”
“허. 설마 국내가 아니라 세계경찰태권도 대회로 가자는 겁니까? 그건 좀…….”
세계 경찰들을 움직이기 위해선 세계태권도연맹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이쪽은 얻을 게 없게 되는데도 말이다.
‘굳이?’
차라리 태권도를 주제로 한 예능을 찍는 게 더 싸게 먹힌다고 봐야 했다.
‘차라리 이 친구에게 빚을 지워 두는 의미라면 충분히 해 봄 직한 일이지만…….’
오늘 처음 만났고, 종혁은 이쪽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었다.
“그 부분은 제가 해결하죠. 대신 협회는 저희 경찰들과 태권도 스타들, 사범단의 교류를 적극 추진하시는 겁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아, 이런.”
그제야 종혁이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에서 잡혀갔을 때 청와대로 각국의 연락이 쏟아진 걸 떠올린 홍정필은 낯빛을 굳혔고, 종혁은 씩 웃었다.
“잠시만요.”
양해를 구한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헨리. 접니다. 잘 계셨죠? 다름이 아니라 올해 음력 설에 저희 한국에서 세계경찰태권도 대회라는 대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흠. 대통령께 연락을 드리는 게 빠를 텐데요.
“겨우 이런 걸로 연락을 드릴 수 있나요.”
‘겨우 이걸로 그 카드들을 쓸 순 없지.’
버락 루터 던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큰 공을 올린 것에 대한 대가. 그는 종혁에게 이런 백지수표를 몇 장 주었다.
-최가 개최하는 겁니까?
“촬영 및 지휘를 한국 경찰이 맡을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껜 제가 보고를 드리죠. 아마 내일 안으로 연락이 갈 겁니다. 그보다 미국엔 정말 언제 올 겁니까? 전에 말하진 않았지만, 지금 대통령님과 스태파니 여사가 벼르고 있습니다.
현 국무부 장관인 스태파니 퀸스 클린턴.
모두 미국에서 쌓은 인맥들이다.
“아하하…….”
‘절대 가지 말아야겠네.’
납치 후 삥을 뜯기지 않으면 다행일 테니 말이다.
-아무튼 대통령님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셨습니다, 최. 덕분에 미국국민들이 빠르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요. 물론, 그만큼 뜯어 간 건 싫다고 하셨지만 말이죠.
“하하. 그럼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종혁은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싱긋 웃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인연을 맺은 상원의원이십니다. 아마 내일까지 협회로 미국 경찰들이 참가하겠다는 연락을 해 올 겁니다.”
벌떡!
“무, 무슨……!”
협회 관계자들이 경악하고, 홍정필도 헛웃음을 터트린다.
“예. 그리고…… 잠시만요?”
나탈리아와 영국의 오랜 인연인 해리 가드너 교수와 런던에 갔을 때 인연을 맺은 런던경찰청장, 태국의 오랜 지인인 라차논에게도 연락한 종혁은 마지막으로 일본의 오랜 지인 무로이 코헤이에게 연락을 했다.
“가능하겠어?”
-흠. 태권도를 배운 경찰이 별로 없을 텐데…….
공수도와 유도, 검도, 유술을 중점적으로 배우는 일본 경찰.
종혁은 흐뭇이 웃었다.
“쫄?”
-……뿌득! 기다려. 고개를 못 들게 해 주지!
“응. 일본은 한국 밑.”
가위바위보조차 지면 안 되는 한일전.
한일전이라는 것만으로도 주목도는 상당히 높아질 거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일본과 러시아, 영국, 태국 경찰에서도 연락을 해 올 겁니다.”
“……어허허허허!”
어이가 없다.
지금 그들의 심정이 딱 그랬다.
‘이렇게 많은 나라의 경찰들을 고작 전화 한 통으로 움직이다니!’
생각보다 더 능력이 대단하다.
‘이거…… 내가 수를 잘못 뒀군.’
마냥 거부할 게 아니었다.
‘이걸 어찌 되돌린다…….’
그런 홍정필을 일견한 종혁은 생각에 잠겼다.
‘흠. 이거 이러면 대회만 하기 아쉬울 것 같은데…… 아!’
“협회장님.”
“말씀하시죠, 부장님.”
“아예 합숙 훈련을 하며 교류하는 모습까지 방영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설마…….”
“예, 어차피 합을 맞춰 보기도 해야 하고, 교류하는 모습도 보여야 하니까 참가하겠다는 나라의 선수들 전부 합숙 훈련을 하는 겁니다.”
한국의 태권도 스타들이 전 세계 경찰들을 가르치는 거다. 이 정도면 대한태권도협회에서도 충분히 메리트를 가져갈 수 있었다.
“장소는 저희 경찰에서 제공해 드리죠. 지금 한국은 추우니까…… 동남아가 좋을까요?”
홍정필과 관계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건 아직 종혁의 능력에 대해 완벽하게 모르는 홍보부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으허허허헛!”
경찰 본청을 나서는 홍정필 원내대표가 웃음을 터트린다.
‘이렇게 당해 본 게 얼마 만이더라?’
까마득히 어린 사람에게 이렇게 당한 건 거의 처음이지 않나 싶다.
“최종혁 부장에 대해 다시 알아봐.”
그 말에 그의 보좌관이 미소를 짓는다.
“마음에 드셨나보군요.”
“방금 전에 못 봤어? 아주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달라고 온몸으로 외치는걸?”
자신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그런 자신을 어떻게 해 보려면 그만한 것을 가져오라던 외침.
괘씸했다.
하지만 재밌었다.
“이거 앞으로 정치판이 재밌게 돌아가겠구만.”
홍정필은 웃음을 흘리며 차에 올랐다.
* * *
기이이잉!
한파가 몰아치는 한국과 달리 포근한 바람이 부는 필리핀 세부의 한 리조트.
커다란 풀이 펼쳐졌음에도 손님 한 명 없이 조용하기 그지없는 리조트 안으로 들어서던 한국 경찰 대표들의 낯빛이 굳는다.
“와 씨, 우리 진짜 지면 안 되겠는데요?”
“겨루기 좀 하고, 체포술만 좀 보이면 될 줄 알았는데…….”
무려 전세기를 타고 편안하게 왔다.
숙소는 야자수 나무와 푸르른 풀이 펼쳐진 대형 리조트.
거기다 카메라까지 이쪽을 찍고 있다.
“이쪽 보지 마세요!”
“편안하게, 평소처럼 행동하십쇼!”
‘상부에서 이 일을 얼마나 깊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졌다가는 어떤 말을 들을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들의 긴장은 절로 끌어올려졌고, 종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최재수를 봤다.
“최재수.”
“예, 부장님.”
“나는 공항에 가서 손님 맞을 테니까 지금부터 현장관리는 네가 해.”
“제, 제가요?”
“간부 안 할 거야?”
이렇게 사람을 다루는 일도 해 봐야 진급에 가산점이 붙는다.
현재 경사인 최재수가 진급하면 경위. 경위부터는 간부에 해당된다. 경찰서에선 팀장이 될 수 있고, 파출소는 계장이 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최재수의 어깨를 두드린 종혁은 리조트를 나서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김 팀장님. SBC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미디어 관리팀의 김덕출 팀장.
-여전히 대회 장면만 방영하겠다는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것도 많이 양보해 준 것이긴 하지만…….
종혁의 말처럼 지상파 3사가 이번 설 특집에 이를 갈고 있다는 증거가 나왔다.
3사 합동으로 아이돌 체육 대회를 여는 것이 바로 그 증거. 무려 3시간 특집이라고 했다.
이번 대회를 방영해 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이 양보해 준 것이었다.
“흠. 그래요……. 그거 아쉽게 됐네요. 기회였는데.”
오싹!
수화기 너머 김덕출 팀장은 기함했다.
-또, 또 뭘 하시려고요!
“에이, 누가 들으면 제가 맨날 사고 치는 줄 알겠습니다.”
-아니었습니까?!
“하하. 그럼 계속 주시해 주세요.”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눈썹을 긁적였다.
‘이 양반 또 뭘 꾸미는 거야?’
홍정필이라면 분명 방송국에 입김을 넣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런 짓도 안 하고 있다.
종혁은 그게 더 불안했다.
고개를 저은 그는 세부의 막탄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전 세계가 겨울임에도 여전히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세부 막탄 국제공항.
공항을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입국 게이트를 나서는 일단의 무리에, 험악한 인상에 덩치가 큰 서양인들의 모습에 다급히 물러선다.
날카로운 눈빛에 문신까지 가득한 게 누가 봐도 마피아인 그들. 그런 그들에게 한 사람이 다가서자 그들도 멈춰 선다.
서로를 살벌하게 노려보는 그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선두에 선 한 여성이, 새하얀 코트를 어깨에 걸친 노년의 여성이 씩 크게 웃는다.
“차렷! 뉴욕과 워싱턴을 수호해 준 최를 향하여 경례!”
척!
절도 있게 올라가는 십여 개의 손날.
종혁도 친애와 경애를 담아 거수경례를 한다.
“하하! 오랜만이야, 최! 신수가 훤해졌는걸? 살이 빠졌나?”
“오랜만입니다, 보스. FBI도 이번 대회에 참가할 줄은 몰랐네요.”
아니, 그보다 FBI 뉴욕지국에 있을 때 종혁의 보스였던 캘리 그레이스가 이렇게 인솔자로, 이런 귀찮은 일을 맡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저 머리까지 근육인 놈들을 제어하려면 FBI 정도는 나서 줘야 하니까.”
그 말에 근육에 힘을 주는 거한들.
미 전역의 FBI와 경찰에서 태권도를 배운 이들 가운데 4단 이상만 모아 놓은, 범죄자의 턱 정도는 우습게 부숴 놓는 인간병기들이다.
“그리고…… 쳇. 경찰 간부가 된 걸 축하해.”
이제부터 종혁은 지시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지시를 하는 존재. 손가락으로 수백 명을 움직일 수 있는 막강한 간부, 상부의 인간이 됐다.
아직도 종혁을 FBI로 끌어들이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은 캘리 그레이스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하. 벤과 드롭은요?”
“잘 지내지. 아쉽게도 태권도를 배우지 못해 아웃이지만. 그런데…… 괜찮겠어?”
캘리 그레이스의 입가에 피어나는 짓궂으면서도 오만한 미소.
동시에 목을 뻣뻣이 세우는 미국 경찰들을 본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이게 일반 대회였다면 좀 힘들겠지만…….”
이번 대회는 세계‘경찰’태권도 대회다.
칼과 총을 든 범죄자들을 때려잡는 경찰들의 대회. 험하기로는 이쪽도 만만치 않다.
“푸흐. 차는?”
“따라오세요.”
종혁은 공항 바깥에 세워 둔 리무진 버스로 안내했다.
“숙소에 가면 맞이해 줄 사람이 있을 겁니다. 전 다른 손님들을 맞이해야 해서요.”
“오케이. 저녁에 봐.”
텅텅!
버스를 출발시킨 종혁은 다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입국 게이트가 다시금 소란스러워지자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아까 만났던 미국 경찰들과 비교하면 약간 손색은 있지만, 그래도 험악하기 짝이 없는 인상들. 방금 전 미국 경찰들이 마피아였다면, 이들은 야쿠자다.
종혁은 그들의 선두에 선 무로이 코헤이에게 다가가다가 멈칫했다.
“아니…… 이건 반칙이지, 이 형님아.”
경찰들의 주먹에 가득한 단련흔과 우람한 팔뚝, 그리고 걷는 모습과 서 있는 자세까지. 태권도뿐만 아니라 여러 무도를, 특히나 공수도를 집중적으로 배운 듯하다.
거기다 아는 얼굴들도 몇 명 보인다.
야쿠자도 벌벌 떠는 경시청 공안부의 형사들이다.
일본 경찰 유도의 자존심이 짓뭉개졌다는 걸 들은 건지 적개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그들.
“그래서…… 쫄려?”
“허쭈?”
‘이 형님 봐라?’
종혁은 답지 않게 오만하고도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 무로이 코헤이의 모습에 눈살을 꿈틀거렸다.
“지고 울지나 맙시다.”
“누가 할 소리인지 모르겠군.”
서로를 향해 살기등등한 시선을 보낸 둘.
종혁은 그들도 리무진 버스로 안내했다.
“같이 안 가? 이 시간이면 오늘 올 사람은 다 온 거지 않아?”
벌써 저녁 9시.
“아, 기다려야 사람이 있어서.”
“기다려야 할 사람?”
“응원단이랄까?”
모든 대회와 경기의 꽃, 응원단.
종혁은 그 응원단도 이번 합숙에 초대했다.
의아해하는 무로이 코헤이를 버스 안에 밀어 넣은 종혁은 다시 공항 안으로 향하여 응원단을 기다렸다.
기이잉!
“삼촌!”
손을 붕붕 흔들며 달려오는 윤아와 그녀의 멤버들.
현재 국내 최정상의 걸그룹이다.
그리고…….
“형!”
“아이고, 여긴 정말 덥네?”
“서, 선생님!”
청춘은 불패 출연진들과 제작진, 강원도 남면 신대리 주민들.
종혁을 발견한 박옥자는 다급히 그에게 달려와 손을 꼭 붙들며 그동안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밥은 잘 먹고 다녔는지 꼬치꼬치 캐물었고, 그건 종혁의 별장 건설로 큰 이득을 본 다른 신대리 마을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20분 가까이 시달리고 나서야 겨우 풀려난 종혁.
“히히. 그러니까 우리가 한국 대표 응원단이라는 거지?”
“그렇지?”
“캬! 언니 우리도 이제 이 정도 급이 된다니까?”
가슴을 펴는 윤아와 그런 윤아네 그룹을 부러워하는 청춘은 불패 출연진들.
“그럼 다른 나라 응원단들은? 왔어? 누구야? 도착했어?”
“아, 그건…….”
“우왁!”
“꺅!”
종혁은 난리가 나는 입국 게이트에 피식 웃었다.
“도착했네.”
“응? 다른 나라 응원단? 누구…….”
고개를 돌린 윤아들은 입을 떡 벌렸다.
도도한 걸음으로 입국 게이트를 넘는 금발의 여성.
마스크와 모자로 가렸지만 누구나 알아볼 수밖에 없는 외모와 아우라. 짙은 스모키 화장이 인상적인 빌보드 스타의 얼굴이 그녀의 마스크 위로 덧씌워진다.
종혁은 그녀를 향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세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한국 경찰의 최종혁입니다.”
“……절 부른 사람이 이렇게 나이스한 남자일 줄 몰랐네요. 반가워요, 최. 에이미 스피너예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톱스타이자 팝의 요정, 에이미 스피너.
종혁은 그녀의 눈에 서린 경계심을 향해 미소를 지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