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09화 (609/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09화>

“하이고야. 최 부장, 니 여까지 무슨 일이고?”

“무슨 일은요.”

중앙지검 인근의 카페, 종혁이 안으로 들어오는 강철선에게 조대웅에게 받은 자료를 내민다.

그동안 유태훈 회장이 저지른 비리와 범죄 증거들.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던 자료를 한 장 열어 본 강철선은 눈을 부릅뜨며 종혁을 봤다.

“니…… 이거 감당 가능하겄나?”

소름이 온몸을 내달리는 강철선의 눈이 흔들린다.

“제가 언제 그런 거 생각하고 들이받았어요?”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이다!”

외세의 침략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대기업의 회장을 치는 일이다.

경찰과 검찰이 이 나라를 침략한 외세의 편을 들어 이 나라 산업 역군을 죽이는 거라는 말이 나올 테고, 다른 기업의 회장들도 강력하게 검찰과 경찰을 성토할 거다.

자신들도 이 꼴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아주 똘똘 뭉쳐 종혁을 깔아뭉갤 거다.

물론 강철선 본인까지도 말이다.

“검사님.”

“와?”

종혁의 표정이 굳어지자 강철선도 낯빛을 굳혔다.

“그딴 거 신경 쓰면 범죄자는 언제 잡습니까?”

“……하아. 내가 니 때문에 돌아 삘겠다.”

“하하.”

“웃지 마라, 자슥아!”

종혁은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고, 강철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니 때문에 제 명에 못 죽는다, 못 죽어.”

“감사합니다, 검사님!”

허리를 푹 숙인 종혁은 돌아섰고, 강철선은 그런 종혁을 다시금 떨리는 눈으로 봤다.

“종핵아.”

“네?”

“이번에도…… 우연이가?”

그동안 수없이 종혁의 위기를 구해 줬던 우연들.

움찔!

몸을 굳힌 종혁은 씩 웃어 주곤 몸을 돌려 카페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앞에 세워진 차를 힐끔 보곤 핸드폰을 들었다.

“예, 모건. 고마워요. 예, 그럼 이걸로 따님분 목숨 빚은 다 갚으신 겁니다.”

* * *

겨울의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따사로운 햇빛이 쏟아지는 작은 회의실.

-그럼 이걸로 따님분 목숨빚은 다 갚으신 겁니다. 글쎄요. 돈이라…… 그건 저도 많아서요. 예, 그럼 나머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달칵!

녹음기를 끈, 일전에 최성현과 만나 담합을 이뤘던 장년인 조현상의 행동에 회사의 고위 임원들의 입이 꾹 다물어진다.

“조 전무, 모건 알포인트와 최종혁의 관계에 대해 조사된 거 있나?”

“일단…….”

고위 임원들의 시선이 모이자 조현상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공식적으로 모건 알포인트에게는 딸이 없습니다.”

아들만 셋.

그러나 며칠 전 입수된 이 녹음 내용을, 정말 겨우겨우 이 부분만 도청할 수 있었던 걸 바탕으로 조사를 해 보니 모건 알포인트에게 사생아가 있음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름, 에이미 주랜더. 나이 21세.

모델이자 심각한 마약 중독자다.

“현재 센터에서 마약 치료를 받고 있으며, 특이한 점으로는…… 혹시 보셀리 피에트로를 기억하십니까?”

“……최종혁이 잡아넣은 뉴욕의 마피아를 말하는 거야?”

“그중 창녀 숙소에서 구출됐습니다.”

그것도 밑바닥까지 떨어져 다른 나라로 팔려 가는 여자들을 감금해 놓는 숙소에서.

“미국 지부들이 날아가면서 자료도 함께 날아가는 바람에 정확한 내용은 추측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최종혁이 에이미 주랜더를 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외로 팔려 나갔다면 영영 볼 수 없었던 딸.

사생아라 제대로 뭘 해 줄 수 없는 딸.

모건 알포인트는 그 딸을 구해 준 대가로 계림그룹을 친 거다.

누군가는 그게 말이 되냐며 묻겠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 역시 회사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을 한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조작일 가능성은?”

“현재로선 20퍼센트 이하입니다.”

에이미 주랜더의 삶에서 CIA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조현상은 그렇게 말하며 속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증거는 없지만…….’

“그럼 최종혁의 재산은 드러난 것이 전부라는 거군.”

“예. 놈도 사람인 이상 숨겨 둔 재산이 있겠지만, 그 단위가 천억을 넘어서진 않을 것 같습니다.”

조현상의 말에 고위 임원들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아쉬우면서도 후련한 그런 종류의 한숨.

만약 종혁이 그들의 예상처럼 엄청난 괴물이었다면 이미 벌써 천문학적인 액수의 현상금을 거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신들을 쫓고 있었을 터.

결국 SVR과 CIA가 종혁에게 죽고 못 사는 건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계림그룹이 망하는 건 기정사실이라는 건데……기업 부채가 얼마라고?”

“150퍼센트를 넘어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회군.”

종혁 때문에 뺏기고 잃어야 했던 회사의 수익.

이번 기회에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을 듯하다.

“조 전무가 태스크 포스 조직해 봐.”

“예,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다음 안건을 떠올린 고위 임원들의 전신에서 살기가 뿜어지기 시작한다.

“박 상무, 사원들을 제거하고 다니는 놈의 정체는 파악 됐나?”

그들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 * *

“박 회장! 박 회장!”

쾅!

“이 개 같은 것들이!”

해가 저문 저녁 유태훈의 저택, 서재에 앉은 유태훈 회장이 부들부들 떨고, 비서실장은 그런 그를 보며 눈을 질끈 감는다.

스타쉽을 비롯한 두 사모펀드의 무차별 매입 때문에 치솟은 그룹 전체의 주가.

지분율이 밀리지 않도록 자사주 매입을 이어 나가고는 있으나, 치솟은 주가 탓에 그것도 자본이 여의치 않아 백기사들에게 연락을 해 봤지만 하나같이 연락을 받지 않았다.

혹여 연락을 받는다고 해도 출장이라는 핑계를 대며 이야기를 회피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과 은행장들 마찬가지다.

재계가 유태훈을 버렸다는 뜻이다.

“회장님, 비자금을 들여오시는 게…….”

“무슨 개소리야!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선대가 물려준 비자금에 견적서 사기 치고, 넣어야 할 자재 안 넣어 가며 한 푼, 두 푼 힘들게 모은 돈이다.

“하지만 저들이 확보한 계림코퍼레이션의 지분이 벌써 10퍼센트를 넘어섰습니다.”

그룹의 지분도 지분이지만, 문제는 계림그룹의 지주 회사이자 무역 회사인 계림코퍼레이션이다.

이곳이 넘어가는 순간 계림그룹 역시 넘어간다고 봐야 했다.

반면 이쪽의 지분은 우호 지분까지 모두 합해도 25퍼센트 언저리.

현재 모든 역량을 다해 추가로 지분을 확보하고 있지만 따라잡히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행장들의 연락 회피로 인해 추가 대출을 할 수 없게 된 이상, 회장님의 비자금이 아니면 당장 올해가 지나기 전에…….”

추월을 당할 수 있다.

남은 방법은 하나. 계림코퍼레이션의 지분을 담보 삼아 4금융, 사채업자들에게서 돈을 융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죄송합니다, 회장님.”

허리를 깊이 숙이는 비서실장의 모습에 유태훈이 담배를 물며 눈을 감는다.

“후우우. 지훈이는?”

“지금 방에 있습니다. 불러올까요?”

“……됐어.”

자식에겐 언제나 당당한 모습만 보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

“비자금 들여와.”

계림코퍼레이션의 지분은 어떻게든 쥐고 있어야 한다. 차라리 걸릴 위험이 있더라도 비자금을 들여와야 했다.

“죄송합…….”

지이잉! 지이잉!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유태훈과 있는데도 연락이 왔다는 건 급한 일이라는 뜻. 비서실장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그래. 무슨 일…….”

-시, 실장님! 지금 버, 법원에서……!

“법원? 갑자기 법원은 왜…….”

섬뜩!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은 비서실장이 다급히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웅성웅성.

갑자기 시끄러워지는 바깥.

콰앙!

현관문 쪽에서 들린 뭔가 박살 나는 소리에 비서실장이 다급히 뛰어나간다.

그리고…….

“비켜, 이 새끼야.”

바닥에 넘어진 경호원의 턱 걷어차며 안으로 들어오는 일단의 무리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덩치 큰 남성.

“최종혁 총경!”

“오, 이거 한 번도 못 뵌 분이 날 알아봐 주니 겁나 고맙네요. 성함이…….”

“이게 무슨 소란이야!”

종혁은 안쪽에서 걸어 나오는 유태훈을 발견하곤 씩 웃었다.

“어이구. 반갑습니다, 유태훈 회장님. 저희 처음 뵙지요?”

빠득!

‘대웅이 이놈이 결국!’

배신을 한 거다. 그게 아니라면 경찰 따위가 이 집에 구둣발로 들어올 수 없었을 터.

“경찰이 왜 내 집에 온 거지?”

“왜 왔겠습니까?”

종혁은 다급히 이 층에서 뛰어 내려오다 멈춘 유지훈을 힐끔 보곤 유태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두 개의 영장을 펄럭여 주었다.

“보이시죠? 체포 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입니다.”

종혁은 그의 손목을 잡아 수갑을 채웠다.

철컥!

“유태훈 씨, 당신을 배임과 횡령, 탈세, 폭행 사주 등등 뭐 나머지는 영장을 살펴보세요. 아무튼 당신을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지금부터 하시는 말은 법정에서 불리한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체포가 부당하다 생각되시면 체포구속적부심을 신청하시면 됩니다.”

빠드득!

“……너 이거 감당할 수 있겠어?”

이 계림그룹은 일제의 침략에 의해 이 나라가 고통을 받았던 1930년도부터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올린 기업이다.

그런 애국 기업이 외세의 침략을 받는데 경찰이 도와주지 못할망정 목숨줄을 끊는다?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결국 대통령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런 유태훈의 경고에 종혁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속은 분노의 불씨가 당겨진다.

‘이놈들은 대체 왜 이렇게 뻔뻔한 거지?’

왜 가진 놈들은 죄다 이렇게 인성이 박살 난 걸까.

“캬아. 역시 한 기업의 회장님이라서 그런지 말발이 예술이시네요. 그런데 어쩌죠? 우린 까라면 까야 하는 사람들이라서요. 그러니…….”

종혁은 그의 멱살을 잡아 코앞으로 끌고 왔다.

“닥치고 따라오기나 해, 씨발놈아.”

“네놈-!”

“어? 반항하시면 저도 제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이 아파요?”

뿌드드득!

“…….”

유태훈은 코앞에서 쥐어지는 커다란 주먹에 침묵을 했고, 종혁의 그의 나머지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아빠!”

‘지훈아…….’

하얗게 질리는 유지훈을 일견한 유태훈은 비서실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이 없어도 비자금을 들여와 기업을 살리라는 그 뜻에 비서실장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어이구. 뭘 또 그렇게 정답게 쳐다보십니까? 어차피 저 양반도 함께 가실 건데.”

그뿐만 아니라 유태훈의 비자금을 관리하던 인물들에게도 경찰이 영장을 들고 가 있는 상황이다.

쿵!

“뭐, 뭐라고?!”

“에이.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세요? 대기업의 회장을 치러 왔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경악하는 유태훈을 뒤로한 종혁은 반사적으로 물러서는 비서실장의 머리채를 잡았다.

콱!

“아악!”

“이창훈 씨, 당신도 같은 혐의로 구속되는 거니까 반항하지 마세요. 적법한 공무집행을 방해하시면 많이 아프십니다.”

“창훈아! 최종혁 네 이놈-!”

종혁은 얼어붙는 비서실장의 손목에도 수갑을 채웠다.

“끌고 가.”

“예!”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네놈은 내가 기필코…… 읍! 으읍!”

“자자, 혐의를 더 추가하지 마시고요.”

유태훈의 입을 틀어막은 최재수는 그를 끌고 나갔고, 종혁은 얼어붙어 있는 유지훈에게 다가갔다.

찰칵! 치이익!

“너, 너…….”

“후우우. 야, 그거 아냐?”

종혁의 두 눈이 분노에 떠는 유지훈을 담으며 히죽 웃는다.

“일을 이렇게까지 키운 건 바로 너다?”

순순히 방화죄를 받아들였으면 생기지도 않았을 일.

“즉, 네가 그 지랄만 안 했어도 네 아비가 잡혀갈 일은 없었던 거지. 대한민국 최고의 불효자가 된 걸 축하해?”

뚝!

유지훈의 이성의 끈이 끊겨 버린다.

“야, 이 개자식아-!”

“지훈아!”

다급히 지훈을 감싸 안는 박 변호사.

“놔! 놔아! 놓으라고, 씨발!”

“안 돼! 안 된다고!”

“너어! 감히 짭새 따위가! 감히-!”

키득키득 웃은 종혁은 손을 뻗어 그의 멱살을 잡아 유태훈처럼 얼굴 앞으로 끌고 왔다.

“기다려. 내가 곧 너도 죽여 줄 테니까.”

덜컥!

심장을 엄습한 끔찍한 살의에 굳어 버린 유지훈.

그런 그를 밀친 종혁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돌아섰다.

‘아직은 아니지.’

증거를 모두 확보했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동안 무슨 짓을 해도 막아 줬던 방패가 모두 사라진 유지훈. 놈은 조금 더 고통을 받을 필요가, 사회의 냉혹하고도 잔인한 시선에 고통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종혁은 입술을 비틀며 저택을 빠져나갔다.

“그럼 남은 건 하나뿐인가?”

유태훈과 유지훈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마지막 단계.

“예, 접니다.”

종혁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걸음을 옮겼다.

끝이 보이고 있었다.

* * *

뿌득!

겨울이라 더 싸늘한 유치장.

방바닥에선 온기가 올라오지만, 벽에서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이 유태훈 회장의 정신을 깨운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사는 법.

양반다리를 틀고 앉은 유태훈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이제 남은 건 사채업자뿐이군.’

비자금을 들여오지 못하게 된 이상 그에게 남은 건 계림코퍼레이션의 지분을 담보로 잡아 군자금을 수혈하는 것뿐이다.

‘지훈에게 비자금에 대해 말하여 들여오게 하고 싶지만…….’

어찌 아들을 믿을 수 있을까.

너무도 사랑하지만 믿을 수는 없는 아들. 그런 유지훈의 곁에 붙어 있는 박 변호사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거기까지 생각한 유태훈이 탄식을 터트린다.

“허. 내가 내 목을 졸랐구나.”

조대웅을 경찰에 넘기는 게 아니었다. 적당한 다른 놈을 골라 경찰에 넘겼더라면 상황은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일.

유태훈은 다시 냉정하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좋을까…….’

궁지에 몰린 자신에게도 돈을 빌려줄 인물.

그러면서도 그 인맥의 끝이 어딘지 가늠이 안 될 권회수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인물.

곰곰이 생각하던 유태훈 회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그 사람이 있었지!’

있다. 서울에 딱 한 사람. 권회수와 앙숙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었다.

다급히 몸을 일으킨 유태훈은 철창으로 다가가 크게 외쳤다.

“이봐! 전화 한 통만 쓰지!”

이곳은 유치장. 전화 따윈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최악의 결정을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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