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08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아니야. 회장님은 이 시련을 이겨 내실 거다.’
유태훈 회장이 누구던가.
계림그룹의 창립자이자 초대 회장인 유재천 회장의 4남으로, 그룹 승계와 전혀 상관없는 4남으로 태어나 결국 회장 자리를 움켜쥔 입지적인 인물이 아니던가.
욕망의 화신인 그가 계림그룹을 뺏긴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뭐야. 저 양반 왜 저렇게 심각해?”
“오늘 들어온 사람한테 들었는데, 계림그룹이 지금 난리 났답니다. 연합한 사모펀드들의 공격을 받고 있대요.”
“그 돈 귀신들이 연합을 했다고? 말이 돼?”
드르륵!
갑자기 구치소의 복도 쪽 창문이 열리자 수감자들의 입이 다물어진다.
“4785.”
조대웅의 시선이 교도관을 향해 돌아간다.
“면회다. 나와.”
‘……회장님이 보내신 건가? 또 왜?’
물론 일이 힘들수록 사람을 잘 다독여야 한다는 것쯤은 알지만, 자신을 그렇게 믿지 못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조대웅은 몸을 일으켜 교도관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그가 향한 곳은 면회실이 아니라 접견실이었다.
“들어가.”
등을 떠밀려 접견실 안으로 들어간 조대웅은 안에 있는 삼십대 후반의 남성을 보곤 의아해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구?”
“반갑습니다. 법무법인 한바다의 최승룡 변호사입니다. 아직 식전이시죠? 한 숟갈 뜨시죠.”
테이블 위의 종이백 안에서 나온 건 뜨끈한 갈비탕이었다.
“이 집의 단골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신 뭐야?”
누구기에 자신의 뒷조사를 한 것일까.
“술도 한잔하시고요.”
“당신 뭐냐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생긴다.
조대웅이 버럭 소리쳤지만, 변호사는 싱글싱글 웃으며 숟가락을 내밀 뿐이었다.
“이야기는 먹고 하시죠.”
조대웅은 변호사를 노려보다 이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지만 숟가락을 들지 않고 조용히 변호사를 노려봤다.
머릿속에서 오만 가지 생각이 휘몰아치는 조대웅. 말도 안 되는 망상마저 떠오르기에 쉽사리 숟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휴. 이거 많이 예민하시군요.”
“닥치고 찾아온 이야기나 합시다. 회장님이 보냈습니까?”
“……어쩔 수가 없군요. 다시 소개드리죠. 앞으로 한 달 후 삼전전자 법무팀 소속이 될 최승룡 변호사입니다.”
“삼전?”
조대웅의 눈이 크게 떠졌다.
* * *
한편 스타쉽의 M&A 리스트가 유출된 그날의 삼전그룹 회장실.
“세 곳의 사모펀드가 모여 한국을 집어삼키려 한다라…….”
사모펀드 스타쉽에서 유출된 리스트가 진짜란 소리다.
검토 단계가 아니라 사냥감을 모두 고른 후 일부러 유출시킨 리스트.
돈 없는 놈들은 끼어들지 말라는 경고.
“그 첫 타깃이 유 회장의 계림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이겨 낼 수 없겠구나.”
기업들과 국민연금이 백기사로 나서도 이겨 낼 수 없을 거다.
어찌어찌 막아 낸다고 해도 재계 순위 100위 아래까지 추락할 터. 다시 올라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그리고 다른 회장들이 그걸 가만히 지켜보지 않겠지.’
건설 기술이 제법인 계림그룹. 그 외 계열사들의 기술력들도 제법이다.
보다 높은 곳으로 도약하고 싶은 기업들이 식칼을 빼 들며 달려들 거다.
‘그런 계림을 날로 먹을 수 있다라…….’
물론 병합할 순 없겠지만, 계림이 건설 도급 경쟁에서 빠져 주기만 해도 삼전에서는 이득이다.
하청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하청보다 후려쳐서 계약을 할 수 있겠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합법적인 일이든, 불법적인 일이든.
“그런데 고작 여론을 움직여 주는 것만으로도 파이를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거냐?”
“이미 확답을 받았습니다.”
“노력했구나.”
“……아닙니다.”
이 나라 최고 경영자의 인정. 언제 들어도 가슴이 떨린다.
“우리만 있는 거냐?”
“……현몽준 당대표도 참가할 겁니다.”
“현 대표가? 허헛, 대현건설을 가져오려는 건가?”
2000년, 이라크 미수금을 대손 처리를 하지 않은 채 숨겨 오다 결국 약 3조 원가량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부도가 나버린 대현건설.
이후 대현건설은 산업은행의 소유였는데, 내년에 매물로 나온다.
‘현 대표라면 대현건설이 시장에 나오는 걸 늦출 수 있겠지.’
현몽준의 시나리오가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다.
대현자동차가 가져갈 게 뻔한 대현건설.
계림그룹의 계림 건설을 이용해 대현건설의 앞길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망가트려 훗날엔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려는 거다.
‘다이닉스에 건설이라.’
다이닉스도 욕심을 내고 있는 현몽준 당대표.
대현그룹의 부활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친다.
‘물론 자동차의 현몽구 회장이 가만있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갈기갈기 찢겼던 대현그룹이 두 개의 큰 덩이로 합쳐지는 거다.
그런 두 개의 덩어리가 서로 물어뜯어 준다면 그 역시도 삼전그룹에 이득.
“……김 전무.”
“예, 회장님.”
“용재야. 아들.”
“……예, 아버지.”
“할 거면 확실히 해라. 상대가 바라는 걸 입에 담았을 때 해 주는 건 이류나 할 짓이다. 일류는 상대가 바라는 걸 미리 알고 해 주는 거야. 그게 마음의 빚이란 거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한번 날뛰어 봐라.”
불끈 주먹을 쥔 김용재 전무는 허리를 깊이 숙인 후 회장실을 나섰고, 이내 곧 한 장년인이 들어와 허리를 숙인다.
“영민아, 담배 좀 줘 봐.”
“회장님, 주치의가…….”
“오늘은 좀 피워야 할 것 같으니까 얼른.”
김희건 회장의 오른팔이자 비서실장인 고영민은 바들바들 떨리는 김희건의 손을 보곤 낯빛을 굳혔다.
“여기 있습니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담배 연기를 길게 뿜은 김희건이 몽롱해진 눈으로 천장을 본다.
“영민아, 넌 29살에 뭐하고 있었냐? 아니, 재산은 얼마나 있었어?”
“글쎄요. 한 5백만 원정도 있었을 겁니다. 당시 제가 살던 집이 그 정도 가격이었으니까요.”
“네 동기들은?”
“대부분 비슷했을 겁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래, 그게 평균이지.”
한국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고영민조차도 29살엔 5백만 원이 전부였다.
‘그럼 그 괴물은 뭐지?’
최종혁.
아들, 김용재가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다는 최종혁 부장.
‘아니, 권&박 홀딩스의 진짜 주인!’
오늘 아들 김용재가 들고 온 일 때문에 깨닫게 됐다. 최종혁이 권&박 홀딩스의 진짜 주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번 일, 세 개의 사모펀드가 이유 없이 연합한 게 아니다.
최종혁이란 괴물이 계림그룹을, 유태훈 회장을 치기 위해 휘하에 있던 사모펀드들을 움직인 거다.
“그랬군. 몇 년 전 그 일은 그 괴물의 짓이었어.”
몇 년 전, 삼전그룹의 주가가 나락으로 떨어진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종혁이 얽힌 어떤 사건 때문이었다.
‘그때야 어느 정신 나간 세력의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최종혁이 선을 넘은 자신의 행동에 분노를 했던 거다.
“허헛! 어허허허헛!”
쾅!
소파 팔걸이를 내려친 김희건이 몸을 떤다.
“이거 없는 자식이라도 만들어야겠군.”
그것은 전율이었다.
“고 실장, 회장들과 식사 약속 잡아.”
김희건이 몸을 일으켰다.
한편 엘리베이터 안.
김용재가 입술을 달싹인다.
“상대가 바라는 걸 미리 알고 해 줘라…….”
번뜩 눈을 빛낸 김용재는 핸드폰을 들었다.
“예, 납니다. 스타쉽의 모건 회장을 만나야겠으니 비행기표 예약해 주시고, 서울 구치소로 사람 한 명 보내세요.”
이후 상세한 지시를 내린 김용재는 핸드폰을 닫으며 입술을 비틀었다.
“당신의 가려운 곳을 긁어 드리죠, 최 부장님.”
종혁이 경찰이기에 쓰지 못한 방법으로 말이다.
띵!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김용재는 빠르게 움직였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 * *
-백억으로 당신의 미래를 사고 싶습니다.
“저, 전무님?”
믿지 못하는 조대웅을 위해 영상통화를 걸어온 김용재 전무.
-조 실장이라면 우리 삼전이 이 판에 끼어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실 테죠.
“전무님! 어떻게 삼전이 같은 한국 기업에게 이러시는 겁니까!”
-나뿐만 아니라 대현중공업도 함께합니다. 다른 회장님들과도 이야기가 끝난 상태고요.
쿠웅!
-아마…… 계열사 사장직을 약속받았을 테죠.
조대웅이 입을 다문다.
그런 그를 보며 김용재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 계열사, 어디인지 말해 주던가요? 기한은?
“그건 김 전무님께서 관여하실 일이…….”
-조대웅 실장, 당신은 유태훈 회장의 측근이죠. 젊은 당신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뭡니까?
유지훈 때문이다.
-그런데 유지훈에게서 떨어져 나간 당신이 언제까지 측근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그 말에 조대웅의 머릿속으로 며칠 전의 일이 스쳐 지나간다.
접견 시간이 길어지자 따분한 기색을 드러냈던 유지훈.
-그리고 기업의 오너는 기업의 이미지를 신경 써야 하죠. 그런데 후계자의 측근이어야 할 계열사 사장이 범죄자라…….
아마 처음 몇 년간은 사장 대우를 해 줄 거다.
그러다 점점 거슬리게 될 거다.
-조대웅 실장님, 당신은 노비입니다.
“이보세요!”
-혈연도 쳐내는 비정한 비즈니스에서 당신의 신분은 그저 한낱 노비라는 겁니다. 그런 노비가 눈앞에 알짱거리는 걸 주인이 언제까지 지켜볼 것 같습니까?
조대웅이 내색을 하지 않아도 유태훈 회장이 불편해할 거다.
“…….”
-계열사 사장을 맡겼으니 처리하기도 쉽죠.
탈세, 배임, 횡령, 경영 악화 등 감투를 써 버린 순간 걸고 넘어질 게 생겨 버린다.
-왜요? 아닐 것 같습니까?
조대웅은 입을 다물었다.
곁에서 지켜본 유태훈은 그러고도 남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태까진 외면했을 뿐.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그 유지훈을 위해 정말 당신의 소중한 미래를 맡겨도 되는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김용재는 전화를 끊었고, 변호사가 조대웅에게 통장을 내민다.
“백억입니다.”
세탁을 마친 백억.
떨리는 눈으로 한참 동안 통장을 응시하던 조대웅이 접견 시간이 다 되어 간다며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전화 한 통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변호사는 들고 온 서류 가방에서 다른 핸드폰을 꺼내어 내밀었고, 조대웅은 그걸 빤히 바라보다 전화를 걸었다.
“응. 지훈아, 나야. 삼촌.”
-응! 삼촌! 무슨 일인데?
“지금 어디야? 좀 시끄러운 것 같은데.”
-나? 박 변이랑 잠깐 나왔지!
조대웅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목소리가 좋네?”
-아아, 나 유학 엎어졌거든! 그룹이 힘든데 해외에 나가서 사고치지 말라면서!
“그게 좋은 일은 아닐 텐데? 지훈아, 그룹이 힘들수록…….”
-아, 진짜! 또 잔소리야? 안다고, 나도 알아! 사고 치지 말아야 한다는 건! 그래서 그냥 쇼핑하러 나온 거라고!
“지훈아, 지금은 그것도 자제해야 돼. 네가 그럴수록 회장님에게 악영향이…….”
-몰라! 아빠가 알아서 하겠지! 나 지금 바쁘거든? 끊을게!
“지훈아! 지훈아!”
조대웅은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멍하니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마른세수를 하는 조대웅의 눈이 회한으로 젖어들기 시작한다.
‘넌 너 대신 자수한 내 말조차 듣지 않는구나.’
원래도 잘 안 들었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지훈이가 그룹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세 개의 사모펀드에 삼전그룹과 현몽준 당대표가 합심한 판이다. 유태훈 회장이 그룹을 지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자신이 교도소에 나갈 땐 그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까 걱정이 되는 계림그룹.
‘내 미래를…… 이놈에게 맡겨도 되는 걸까?’
조대웅의 눈에서 감정이 사라진다.
자신에게 양팔 벌리고 달려들던 귀여운 유지훈의 모습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후우.”
한숨을 내쉰 조대웅은 변호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변호사가 히죽 웃었다.
* * *
종혁은 자신의 앞에 허리를 세운 채 앉아 있는 조대웅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는다.
뭔가를 내려놓은 듯한 표정.
‘웬 변호사를 만났다고 했지.’
저번에 선물을 먹인 교도관이 말해 줬다. 조대웅이 변호사를 만난 후 연락을 한 것이라고 말이다.
‘누군지 알 것 같군.’
아무래도 김용재 전무가 움직인 것 같다.
‘쯧. 괜한 짓을.’
자신이라고 몰라서 이런 짓을 안 한 게 아니다. 범죄자 새끼한테 돈을 쓰고 싶지 않았기에 그랬던 거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달그락.
숟가락을 내려놓은 조대웅이 입술을 닦는다.
“당신도 이 갈비탕을 사 왔군요.”
나무젓가락 포장지를 보니 알겠다.
“저번에도 사 왔지. 끝내 안 먹은 것 같지만.”
“왜 그랬습니까?”
“다문 입을 열려는데 그 정도는 기본 아니야?”
“그렇죠. 기본이죠…….”
그런데 유지훈은 그런 기본조차 지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마음을 굳힌 조대웅이 종혁을 봤다.
“뭘 원합니까? 탈세? 배임? 횡령? 비자금? 폭행 사주?”
“……씨벌. 월척이네.”
종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래서 내부자가 배신하면 무서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