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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05화 (60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05화>

기이잉!

비행기가 뜨고 지는 인천공항.

담배를 문 종혁이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괜찮을까요, 부장님?”

“뭐가?”

“아니, 부장님은 저놈들의 관심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잖아요.”

이왕이면 유지훈의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기 직전까지, 어쩔 수 없다면 검찰로 송치된 이후까지 버티기로 했었다.

그래야 누구의 감시도 없이 유지훈에게 건물을 판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쩔 수 있겠냐.”

유지훈에 대해 아는 것이 아주 많은 조대웅을 검거했다.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유태훈 회장의 감시가 거두어질 리가 없었다.

“에고. 좀만 참으시지.”

“마약을 먹으라고?”

“부장님이면 좀 더 재치 있게 대응하실 수 있었잖아요.”

“그건 쏘리.”

순간 놈들인가 해서 눈이 돌았었다.

“뭐 이미 지나간 일인데 어쩌겠냐. 됐고.”

꾸깃!

담배를 눌러 끈 종혁은 인천공항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자.”

“예.”

* * *

본청의 유치장 면회실 앞.

유태훈 회장이 버선발로 마중 나온 장희락 경찰청장에게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둘이서 긴히 이야기하고 싶은데…….”

감히 경찰에 그딴 짓을 저지른 조대웅을 혼내려 한다. 그렇다 보면 못 보일 꼴을 보일 수 있을 터.

“하하. 예예, 그럼요. 걱정 마십시오.”

“배려에 감사합니다, 청장님. 언제 한번 필드 도셔야지요?”

“으하핫! 언제든 연락만 주십시오, 회장님!”

‘개 같은 늙은이. 감히 경찰을…….’

고개를 숙인 장희락은 몸을 돌리며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혔고, 그런 그의 등을 빤히 쳐다보던 유태훈은 면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회, 회장님!”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조대웅이 몸을 일으키자 유태훈은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모두 제 불찰입니다. 어, 어떻게 된 거냐면…….”

유태훈 회장은 변명을 시작하는 조대웅을 빤히 응시했다.

“됐다. 모두 지훈이가 시킨 일이라면서? 그보다 유치장이란 곳이 참 몹쓸 곳인가 보구나. 스타일이 많이 망가졌어. 밥은? 먹었어?”

걱정이 가득한 따뜻한 말투에 조대웅의 눈이 흔들린다.

“회, 회장님은 드셨습니까?”

“나도 아직 안 먹었다. 같이 먹자.”

유태훈 회장은 비서실장을 봤고, 그는 유태훈 회장과 조대웅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들고 온 봉지를 내려놓았다.

달칵!

선홍빛 색깔이 영롱한 참치회와 초밥들.

“대웅이 네가 참치를 좋아했지?”

“회장님!”

“먹자.”

조대웅은 떨리는 손으로 참치를 집어 입에 가져갔다.

차갑게 입안으로 들어와 사각사각 부서지다 물컹해지는 향기롭고 느끼한 참치. 무순과 김, 와사비를 얹은 참기름장이 그 맛을 더 다채롭게 한다.

앞으로 몇 년간은 먹지 못할 거라 여긴 참치의 맛에 그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런데 그보다 더 그를 벅차오르게 하는 건 자신의 취향을 알고 그걸 준비해 준 유태훈의 배려였다.

조대웅은 울음을 참으며 꾸역꾸역 참치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많이 배고팠나 보구나. 이것도 먹어라.”

“아, 아닙니다!”

“됐어. 먹어.”

“가, 감사합니다. 흑!”

유태훈은 이젠 아예 도시락에 코를 박는 조대웅을 빤히 응시했다.

‘아니군.’

조대웅이 그 건물주들의 위치를 말한 건 아닌 것 같다. 역시 조대웅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렇게 뻔뻔하게 굴 깜냥이 안 되는 놈이었다.

‘그럼 출입국 기록 같은 걸 살핀 거겠구나.’

그렇다면 다행이다. 건물주들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테니 말이다.

“대웅아.”

“예! 회장님!”

“네가 올해 몇 살이지?”

“올해 서른일곱입니다, 회장님.”

“벌써 그렇게 됐나? 하긴 네가 고등학교 때 지훈이를 처음 봤으니 그 정도 됐겠구나.”

“예…… 그때 지훈이를 처음 봤었죠.”

수건 같은 포대기에 감싸여 있던 아기.

조대웅은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꽉 쥐던 그 작은 손의 온기와 힘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때부터였다.

유지훈을 사랑해 버린 게.

툭 두드리면 깨질까, 잡으면 부러질까 조심스럽게 대하게 된 게.

“세상엔 이렇게 예쁜 아기도 있구나 했습니다.”

“그렇지. 지훈이 그놈이 제 엄마를 닮아서 참 예뻤지. 날 닮았으면 그러지 못했을 거야.”

“솔직히 그렇습니다.”

“이놈이? 내가 어디가 어때서?”

“아하하.”

“고맙다.”

“예?”

“지훈이를 여태까지 별 탈 없이 잘 돌봐 줘서 고마워.”

조대웅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망나니가 됐을 아들, 유지훈.

그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순 없다.

입을 닦은 유태훈 회장은 조대웅의 손을 꼭 잡았다.

“회, 회장님!”

“그러니 이만하면 됐다. 그만큼 고생했으면 된 거야.”

철렁!

“회장님?”

“18년 고생했으니 이제 계열사 사장 해야지?”

유태훈은 경악하는 조대웅을 보며 은은히 웃었다.

* * *

푸르른 나무들이 가득한 태국 치앙마이의 어느 높은 산.

뿌우우!

코끼리가 긴 코를 젖히며 울부짖자 그 위에 앉아 있던 장년의 남녀가 비명을 지른다.

“꺅!”

“어이쿠! 허허허.”

초식 동물답지 않게 전혀 예상치 못한 역동적인 생명력.

혹여 무릎 앞에서 펄럭이는 저 큰 귀에 다리가 끼면 부러지지 않을까,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허벅지에 닿는 뾰족한 털도 꽤 인상적이다.

그때 코끼리의 목에 앉아 있던 사육사가 뒤를 돌아보며 길쭉한 나무 막대 같은 걸 내민다.

“코끼리 이거 좋아해. 줄래? 20바트.”

20바트. 한화로 약 700원.

“됐…….”

“오! 할게, 할게!”

“여보!”

“어허. 이런 곳까지 와서 짠순이처럼 굴 거야? 그리고 우리가 돈이 없어? 뭐가 없어?”

“아.”

그제야 자신들의 지랄 맞은 삶에도 대박이 터졌다는 걸 상기해 낸 아내의 모습에 히죽 웃은 장년인은 그 자리에서 20바트를 지불하고 코끼리의 눈 옆으로 나무막대, 사탕수수를 내민다.

그러자 코끼리가 냉큼 코를 움직여 사탕수수를 뺏어 입에 가져간다.

“허헛. 이놈 힘 쓰는 거 봐라?”

그 짧은 사이에 느껴졌던 묵직한 힘. 초식 동물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었다.

장년인은 빠질 뻔한 손목을 어루만지며 짧지만 길었던 코끼리 투어를 마쳤다.

“아빠!”

“코끼리는 잘 탔어?”

“코끼리 대박! 겁나 대박!”

장년인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팔짝팔짝 뛰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이 웃었다.

‘그 애물단지가 이런 보물이 되다니!’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물려준 작은 집.

입지 조건도 나쁘고, 너무 오래되기도 하여 팔리지 않아 애물단지였던 게, 가격을 한참 낮춰도 팔리지 않았던 게 어느 날 불이 나서 골조만 남게 됐다.

애물단지가 쓰레기가 됐던 거다.

재산세만 나가는 쓰레기.

그랬던 그게 갑자기 거금이 되어 돌아왔다.

어디 그뿐인가. 그걸 매매한 사람들이 이렇게 한 달간 태국 여행까지 보내 줬다. 숙식을 해결할 호텔에 여행비까지 쥐여 주면서.

퇴직한 그로서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아니 엎드려서라도 빌어야 할 행운. 또 언제 해외여행을 갈지 모르기에 대학교에 다니는 자식들까지 이렇게 모두 끌고 왔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장년인은 이제야 하나뿐인 자식을 도와주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이동하셔서 식사하실게요!”

“오, 밥!”

그렇지 않아도 출출했던 그들은 냉큼 가이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김정배 씨?”

장년인을 가로막는 덩치 큰 사람, 아니 종혁.

“누, 누구?”

“경찰입니다.”

장년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 * *

한국의 원두막처럼 지어진 건물.

종혁이 권한 담배를 움켜쥔 장년인이 콧방귀를 뀐다.

“거 깜빡했다니까 그러네.”

너무 오래된 건물이고 돈도 몇 푼 안 됐는지라 깜빡하고 명의 이전을 하지 않았다.

“그쪽에서도 어? 별말을 하지 않으니 나도 명의 이전을 안 한지 몰랐지.”

찰칵! 치이익!

담배에 불을 붙인 종혁은 그의 눈앞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흔들었다.

신권인 것처럼 빳빳한 새 지폐.

“외환은행에서 달러로 바꾸셨더군요.”

각 건물주들을 해외로 여행을 보냈다는 사실을 파악한 종혁은 곧장 그들의 금융 거래부터 확인하였다. 그리고 눈앞의 사내가 어느 날 갑자기 거액의 돈을 환전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게 유태훈이 건넨 돈이라는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그랬다.

지금 눈앞의 있는 돈은 그냥 아무 지폐나 내민 것이었다.

어느 은행에서 환전을 했는지까지 알아냈다곤 해도, 하루에도 쉴 새 없이 많은 돈이 움직이는 그곳에서 자기앞수표도 아니고 그가 바꾼 돈을 찾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종혁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지문까지 확인된다면 그때는 자백을 해도 늦습니다.”

당연히 장년인이 바꾼 지폐를 찾지 못했으니, 지문을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종혁의 말에는 무엇 하나 거짓이 없었다. 그저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 뿐.

움찔!

종혁은 하얗게 질리는 그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당신과 계림그룹 비서실 직원의 지문이 나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국내 굴지의 건설 기업, 계림그룹.

대림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지금은 건설 외에도 여러 분야의 계열사를 지닌 재계 순위 31위의 대기업이다.

유태훈은 그 계림그룹의 회장이었다.

“모, 몰라. 난 모른다고! 정말 깜빡하고…….”

“사기와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됩니다.”

“헉!”

“아, 혹시 그거 아십니까? 김정배 씨의 아버지가 물려주신 그 집을 불태운 사람이 계림그룹의 사람인 거?”

“뭐, 뭐라고요?”

경악에 휩싸인 장년인의 눈이 흔들린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만약 아시고 계셨다면 다른 죄도 성립되겠군요.”

자칫 잘못하면 방화에 대한 공범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

“형사님!”

종혁은 파랗게 질리는 장년인의 손을 잡아 토닥였다.

“제가 김정배 씨에게 바라는 건 하나뿐입니다. 그 돈, 계림그룹의 비서실이 가져온 그 현금들.”

분명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계좌이체가 아니라 현금으로 거래를 했을 터.

거기에 장년인이 외환은행에서 환전한 액수는 무려 2천만 원이다. 개인이 해외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돈의 한계까지 환전을 한 거다.

“남은 금액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딱 그 액수대로 교환해 드리겠습니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혹여 계림그룹이 알아도 발뺌할 수 있도록.

종혁은 나른하게 웃었다.

* * *

“캬! 진짜 부장님은!”

산을 내려가는 차 안, 최재수가 엄지를 치켜들며 혀를 내두른다.

이러면 종혁이 쓰는 돈은 한 푼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썼다고 한다면 전용기 기름값과 저들을 찾는 데 들어간 돈, 그리고 체류비 정도랄까?

“정말 대단 하십니다.”

“이제 알았냐?”

“아뇨. 전에 알았죠. 그럼 바로 푸켓으로 이동하실 거죠?”

다음 건물주 양반은 푸켓에서 여행 중이었다.

“그래야지.”

태국까지 온 김에 라차논을 볼까 싶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없을 듯하다.

“알겠습니다!”

최재수가 액셀을 밟는 순간이었다.

-소원을 말해 봐!

“응? 이 양반이 왜…….”

종혁은 냉큼 전화를 받았다.

“예, 최종혁…….”

-최 부장!

다급한 나형재 대변인의 음성에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치앙마이에서 곧바로 날아온 종혁이 본청의 복도를 빠르게 걷는다.

“최 부장!”

“비키세요.”

쾅!

취조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종혁.

그는 안에서 설렁탕을 먹고 있던 조대웅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너희 진짜 뭐냐?”

조대웅은 살벌한 종혁의 시선에 눈살을 구겼다.

“이거, 제가 아무리 범죄자라고 해도 이렇게 멱살을 잡아도 되는 겁니까?”

“네가 방화를 저질렀다고? 그게 말이 돼!”

“대체 뭐가 문제인데요? 내가 인정을 한다잖아. 방화도 내가 저질렀고, 당신 마약 먹이려 했던 것도 나고. 모두 다 인정한다니까?”

“야, 이 새끼야-!”

“헉! 최 부장, 참아! 뭐해! 최 부장 잡아!”

“부장님!”

주먹을 치켜든 종혁을 향해 달려드는 홍보부의 직원들.

하지만 종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또렷이 응시하는 조대웅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니들 진짜 개새끼들이다.”

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는 걸까.

그놈의 돈, 그놈의 권력.

그놈의 것들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태연하게 해 버리는 꼴을 보니 속이 뒤집혀 참을 수가 없다.

“좀 나가 주시겠어요? 설렁탕은 뜨끈할 때 먹어야 제 맛이잖아?”

빠드드득!

“부장님, 일단 나가시죠. CCTV 있어요.”

“……씨발.”

직원들의 손을 뿌리친 종혁은 마지막으로 조대웅을 한 번 노려본 뒤 취조실을 나섰고, 그런 그에게 나형재가 다가서서 등을 두드린다.

“어쩌겠어. 저렇게 된 이상 좆같아도 참아야지.”

“담배 좀 피우고 오겠습니다.”

종혁은 나형재의 대답을 듣지 않은 채 몸을 돌리며 핸드폰을 들었다.

결국 이놈들은 선을 넘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예, 권 이사. 납니다. 계림그룹을 먹어야겠습니다.”

종혁의 두 눈에 서늘한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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