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03화 (60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03화>

    어두운 골목길 안.

    마스크와 모자를 쓴 남성과 한 여성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놔! 놔, 이씨! 죽고 싶어?!”

    “너지! 네가 스토커지! 이 나쁜 놈아-!”

    남성이 뺏어 가려는 핸드백을 붙잡고 늘어지는 이십대 여성. 땀에 젖은 단발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으며 그녀의 청초한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뭐래는 거야, 이 미친년이 진짜!”

    퍼억!

    “악!”

    얼굴을 얻어맞은 여성은 바닥을 뒹굴었고, 그제야 겨우 핸드백을 뺏어 든 남성은 그 안에서 지갑을 꺼내 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 개 같은 년이 사람 애먹게 하고 있어.”

    퍽!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날아간 핸드백.

    그 충격에 다시 정신을 차린 여성이 남성에게 기어가 바짓가랑이를 붙든다.

    “너, 너잖아……. 너 맞잖아…….”

    “이년이 진짜!”

    남성은 그녀의 얼굴을 걷어차기 위해 발을 휘둘렀다.

    그 순간이었다.

    “야!”

    골목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

    “씨발!”

    골목 안으로 달려 들어오는 종혁을 발견한 남성은 지갑을 집어 던지며 그대로 내뺐고, 종혁은 망막이 비춰지는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느려진 시간 속, 입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여성. 분명 골목에 들어오기 전 스토커라는 단어를 들었다.

    “넌 뒤졌다.”

    눈이 뒤집힌 종혁이 전력을 다해 땅을 박찬다.

    순간 방금보다 더 빠르게 튀어 나가며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마치 코뿔소가 달려오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남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미, 미친!’

    “꺼져-!”

    부웅!

    종혁이 가까이 다가서 손을 뻗자 휘둘러지는 놈의 주먹.

    얼굴을 노리는 그 주먹에 종혁이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히며 몸을 낮춘다.

    그리고…….

    “내가!”

    종혁의 주먹이 폭발했다.

    쩌어억!

    종혁은 눈을 뒤집으며 쓰러지는 놈의 멱살을 잡아 얼굴 앞으로 끌고 왔다.

    “뒤진다고 했지, 이 새끼야.”

    여성을 다시 돌아본 종혁의 두 눈에 살의가 들어차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타다닥!

    “부, 부장님!”

    “……쯧.”

    종혁은 놈의 멱살을 놓으며 돌아섰다.

    “이 새끼 수갑 채우고, 112에 신고해.”

    “예! 아이고, 또 애를 곤죽으로……. 이러다 진짜 큰일 난다니까요!”

    투덜거리는 최재수를 뒤로한 종혁은 바닥을 나뒹구는 핸드백을 집어 들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경찰입니다.”

    흠칫!

    맞은 충격이 컸는지 멍하니 쳐다보는 여성.

    ‘어이구. 어쩌다가…….’

    혀를 찬 종혁이 입가에 피를 흘리는 그녀를 위해 손수건을 꺼내는 순간이었다.

    후두둑!

    “스, 스토커는 잡았나요?”

    종혁은 눈물을 쏟아 내는 그녀의 눈에 서리는 독기에 살짝 놀랐다.

    * * *

    “저 미친년이 뭐래는 거야, 진짜! 저 스토커 아니라니까요!”

    늦은 저녁, 떠들썩한 경찰서. 종혁은 형사 앞에 앉아 펄쩍펄쩍 날뛰는 놈에게 다가가 뒤통수를 후려쳤다.

    쿵!

    “악! 왜, 왜 때리는데요!”

    종혁은 억울해하는 놈의 입을 붙잡았다.

    “아가리. 씨발아, 아가리. 콱 주둥이를 찢어 버릴까 보다.”

    “……죄, 죄송합니다.”

    종혁은 이쪽을 멍하니 쳐다보는 형사들을 보며 아차 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하던 일 하세요.”

    “크흠. 주민등록번호.”

    “그게…….”

    놈을 차갑게 쳐다보던 종혁은 수사팀 한쪽, 문이 살짝 열려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언제부터 저놈이 쫓아다녔다고요?”

    “올해 봄, 8개월 전부터요.”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여대인 성화여대의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여성.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누군가 뒤를 따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갑자기 새벽에 벨이 눌러지고, 누군가 우편물을 뒤진 듯한 흔적이 발생한 게 말이다.

    그러다 결국…….

    “집 안에도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있더라고요.”

    종혁은 차분히 설명을 하는 김예은을 응시하다 회의실을 빠져나왔고, 그런 그에게 믹스커피를 든 최재수가 다가선다.

    “이게 대체 뭔 일이래요?”

    “그러게나 말이다.”

    갑자기 비명이 나서 쫓아갔는데, 난데없는 스토커 범죄라니.

    “진짜 굿이나 하십쇼.”

    “시끄러워, 인마.”

    큭큭 웃음을 흘린 최재수가 커피를 홀짝이며 혀를 내두른다.

    “그래도 강단이 있으시네요. 저렇게 조리 있게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들은 정신적으로 상당히 내몰리게 된다.

    당한 사람만이 아는 피가 말리는 고통.

    그것도 무려 8개월이나 스토킹을 당했다면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을 터.

    보통 스토킹 피해자가 침착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종혁은 코웃음을 쳤다.

    “강단이라……. 그러네. 강단이 있지.”

    “네?”

    무려 8개월이나 스토킹에 시달렸다고 한 김예은.

    그 긴 기간을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고 한 번을 하지 않고 버텨 왔으니 꽤나 강단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저 새끼 아무래도 그냥 강도 같은데…….’

    처음 목격했을 때 지갑을 들고 있던 놈.

    보통 스토커들은 쫓아다니는 사람의 애장품, 립스틱이나 속옷 등 스토킹을 하는 대상의 체취가 묻은 것을 원하지 지갑 따위를 원하진 않기 때문이다.

    다시 회의실을 보는 종혁의 눈을 가늘게 떴다.

    * * *

    “가, 감사합니다.”

    경찰서를 나선 김예은이 허리를 숙이자 종혁은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타시죠. 댁까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아, 아니요! 그런 민폐를 끼칠 수는…….”

    “자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괜히 허세 부리는 거 아닙니다.”

    “앗! 아앗!”

    김예은을 차에 태운 종혁은 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서울로 상경해 원룸에서 사는 그녀.

    “오늘은 아마 많이 힘드실 겁니다.”

    “네?”

    그동안 애써 참아 오고 견뎠던 고통이 한꺼번에 해소되고 밀려오면서 꽤 공허해질 거다.

    “그러니 친구나 지인들을 불러서 술 한잔 진하게 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아하하! 네! 형사님 조언 따르도록 해 볼게요!”

    “다시 한번 늦어서 죄송하고, 견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 주시고요. 그럼.”

    고개를 숙인 종혁은 최재수와 함께 차를 몰았고, 김예은은 멀어지는 차를 가만히 응시하다 돌아서며 집 안으로 올라갔다.

    “네, 저예요.”

    한편 골목을 빠져나가는 차 안.

    부우웅!

    “올. 드디어 부장님 마음에도 봄바람이 부는 건가요?”

    빠악!

    “악!”

    “주둥이 확씨. 봄바람은 개뿔.”

    “쳇. 연애 좀 하십쇼. 맨날 일 아니면 헬스장, 그리고 집. 이게 혈기 넘치는 이십대 남자의 생활 패턴입니까?”

    “어이구, 너나 잘하세요.”

    종혁이 알기로 최재수 역시 거의 모태솔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고 있었다.

    최재수는 머리를 문지르며 김예은을 떠올렸다.

    “하아.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이십대 초반 꽃다운 나이에 이쁜 연애를 해도 모자른 판국에 이런 일을 겪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이유가 어디 있겠냐.”

    주말엔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하고, 평일 저녁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본인의 꿈과 학업을 이어 나간다는 김예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뿐임에도 하필이면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스토킹 범죄에는 기준이 없다.

    그 누구든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스토킹 범죄였다.

    “그래서 세라랑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데?”

    “여, 여기서 임 경감님 이야기가 왜 나오는데요!”

    “응? 호오?”

    “스탑. 거기까지입니다. 더 이상 파고드는 건 사생활 침해예요.”

    “크큭. 뭐 그래라.”

    지이잉!

    “응?”

    모르는 번호다.

    이 늦은 시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는 건 대부분 한 종류.

    종혁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예, 최종혁 총…….”

    -혀, 형사님!

    절박한 김예은의 외침.

    “지금 가겠습니다! 차 돌려!”

    “예!”

    끼기기기긱!

    둘을 태운 차가 김예은의 집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 * *

    -내가 경찰에 연락하지 말랬지.

    “지, 집에 돌아오니까 치, 침대 위에 이, 이게…….”

    파리하게 질린 김예은이 내미는 쪽지.

    ‘이 개새끼가!’

    프린터로 인쇄된 쪽지를 가만히 노려본 종혁은 품에 안겨 바들바들 떠는 김예은을 봤다.

    씻었던 듯 머리가 촉촉하게 젖어 있는 그녀. 얼굴에 눈물과 공포가 가득한 그녀의 모습에 종혁의 낯빛이 굳는다.

    “부장님, 이거…….”

    지금 경찰서에 있는 놈은 정말 그 본인의 주장대로 강도고, 스토커는 따로 있는 거다.

    종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혹시 달리 계실 곳은 있으십니까?”

    집 안으로 스토커가 들어왔다는 게 확실해진 이상, 더 이상 이곳은 김예은의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스토커가 잡히기 전까지는 부모님이나 친구의 집 같은 스토커가 모르면서 안전한 장소에서 당분간 머무를 필요가 있었다.

    “제가 지방에서 올라와서…….”

    부모님과 친구들 모두 지방에 있었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어 그곳까지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꼭 필요한 것만 챙기세요.”

    “네?”

    “당분간 머무를 곳을 알아봐 드릴 테니 얼른요.”

    “네, 네!”

    그녀는 재빨리 서랍장으로 달려갔고,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수고하십니다. 방금 전 봤던 최종혁 총경입니다. 김예은 씨 스토킹 사건, 저희 본청에서 맡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서면으로 정리해서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예. 들어가십시오.”

    “다, 다 쌌어요!”

    얼마나 급하게 쌌는지 속옷 따위가 튀어나와 있는 가방.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그녀의 등을 감싸며 그녀를 밖으로 인도했다.

    * * *

    종혁이 김예은을 데려간 곳은 신화호텔이었다.

    “돈은 걱정 마시고 당분간 여기서…….”

    종혁의 소매를 잡고는 바들바들 떠는 김예은.

    종혁은 그 모습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죄, 죄송해요. 하, 하지만…….”

    “짐 풀고 나오세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죄송해요…….”

    김예은이 문을 살짝 열어 놓은 채 방 안으로 들어가자 종혁은 최재수를 봤다.

    “스위트룸 잡아 놨으니까 CCTV 가지고 와서 영상 분석하고 있어. 난 김예은 씨 상대하다가 올라갈 테니까.”

    “예? 아, 예.”

    눈빛을 가라앉힌 최재수는 종혁에게 차키를 받아 들어 밑으로 내려갔고, 종혁은 혹시 자신이 다른 곳에 갔을까 얼른 달려나오는 그녀와 함께 신화호텔의 라운지 바로 향했다.

    띵!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며 문이 열리자 들어가려던 종혁은 잠시 멈칫했다.

    “어머, 부장님!”

    김부현 상무, 아니 진급을 해서 이젠 신화호텔의 전무가 된 그녀가 안에 서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전무님. 그런데 아직까지 일하시는 건가요?”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은 많아지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부장님께서 예약하셨다는 소리에 찾아뵈려던 차였는데…….”

    “아, 오늘은 일행이 있어서요. 혹시 라운지 바에 조용히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요?”

    “부장님 부탁인데 없어도 마련해 드려야죠.”

    무슨 오해를 하는 것인지 짓궂게 웃은 김부현은 라운지 바에 도착하자 종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네요. 다음에 봬요, 부장님. 그리고 저희 호텔 신화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아, 네.”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침에 커피 한잔하시죠.”

    “휴. 부장님 덕분에 내일은 새벽부터 헤어를 만져야겠네요.”

    “하하.”

    “그럼.”

    스르릉!

    김부현 전무는 타고 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대로 내려갔고, 라운지 바 안으로 들어서는 종혁과 김예은에게 한 종업원이 빠르게 다가온다.

    “전무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이 안내한 곳은 라운지 바의 구석지면서도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창가였다.

    대체 어떤 말을 한 건지 이미 술까지 세팅이 되어 있는 테이블.

    “이 와인은 전무님께서 부장님께 드리는 선물이십니다.”

    “커피 가지고 되려나…….”

    입맛을 다신 종혁은 김예은을 봤다.

    “먼저 앉아 계시겠어요? 전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아, 네!”

    다급히 대답한 그녀는 무슨 일인지 우물쭈물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빠, 빨리 오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종혁은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화장실로 향했고, 김예은은 그런 종혁을 빤히 바라보다 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죠?”

    “아, 아니에요.”

    “일단 한 잔…….”

    종혁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자신과 김예은의 잔에 와인이 따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다리기 힘들어 한 잔 마신 건지 볼이 발그레한 김예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은 종혁이 잔을 들어 올렸다.

    “건배하시죠.”

    “네…….”

    채앵!

    크리스털잔이 부딪쳐 울리는 영롱한 소리와 함께 와인을 입에 가져간 종혁은 혀에 닿는 묵직하고도 쌉쌀한 맛에 흐뭇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퉤!”

    갑자기 와인을 뱉어 버린 종혁의 행동에 깜짝 놀란 김예은.

    종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나른하게 웃었다.

    “그래서 얼마? 1억? 10억?”

    “흡?!”

    경악하는 김예은을 보는 종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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