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02화 (602/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02화>

    낭패다.

    “박 변, 너…….”

    일그러지는 유지훈의 얼굴과 비틀리는 종혁의 입술.

    뒷목에서 식은땀이 솟은 박 변호사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아!’

    박 변호사는 다급히 조대웅을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호언장담을 해 놓고도 유지훈을 곤경에 빠트려서 그런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다가온 조대웅. 박 변호사는 그의 귀에 대고 입을 열었다.

    “돈은 얼마나 쓸 수 있습니까?”

    조대웅은 미간을 좁혔다. 종혁이 돈이 많다는 건 자신도 알고, 박 변호사도 알기 때문이다.

    “얼른 답이나 하세요. 지금 저놈 얼굴 안 보입니까?”

    “뭐 일단 무제한이긴 합니다만…….”

    유지훈은 무죄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그깟 돈이 아까울까.

    그런 조대웅의 말에 박 변호사는 주먹을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플랜 C다.’

    상정치도 않았던 플랜 C. 그러나 일단 여기서 벗어나는 게 먼저였다.

    박 변호사는 의기양양해하는 종혁을 보며 씩 웃었다.

    “크흠. 영상을 보신 모양인데…… 그 영상 속 건물들, 전부 제 의뢰인의 소유 건물들입니다.”

    “……뭐요?”

    “의뢰인께서 본인 소유의 건물들을 구경하러 갔다가 찍은 영상들이라고요.”

    박 변호사의 말을 알아들은 종혁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 * *

    취조는 장장 5시간 동안 이뤄졌다.

    명백히 증거가 있음에도 오리발을 내미는 유지훈과 끝없이 추궁하는 종혁.

    쇠귀에 경 읽기, 벽 보고 이야기하기, 창과 방패의 싸움.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일단 조금 정리해 봅시다. 그래서 전부 실수였고, 고의는 아니었다?”

    고의로 불을 지른 것이 아니라 부주의로 인한 과실이라는 게 이들이 5시간째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즉, 방화죄가 아닌 단순실화죄.

    이렇게 되면 화재로 인한 피해 보상액은 둘째 치고, 법적으로는 고작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불과했다.

    까드득!

    “우리 개소리는 그만합시다, 좀! 그런 식으로 따지면 당신 옆에 있는 유지훈씨는 저능아입니까?! 맨날 같은 실수를 하게?!”

    “하하. 제 의뢰인께서 성적이 낮으시긴 합니다.”

    “이보세요!”

    박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였고, 이를 갈던 종혁은 이내 숨을 골랐다.

    “……하! 그럼 건물들이 불타는 건 왜 찍은 겁니까?”

    “제 의뢰인께서 자신 소유의 건물들을 구경하러 갔다가 불이 난 걸 보고 찍은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직접 불을 낸 건, 실수로 불을 지른 건 증거가 발견된 옥수동 폐건물과 모텔뿐.

    핸드폰 속 영상들은 전부 자신이 소유한 건물들을 구경하러 갔다가 때마침 화재가 난 것을 보고 찍은 것뿐, 화재의 원인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자기 건물이 불타는 걸 찍은 것도 죄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캬아! 내가 고건 몰랐네. 아주 화재 찾는 탐지견으로 써도 되겠어요!”

    “말을 가려서 해 주시죠.”

    쾅!

    “그럼 이 핸드폰들은 왜 쓰레기장에 버린 건데!”

    “몇 번이고 말했잖습니까. 지금처럼 오해를 받을 게 싫어서 그렇게 한 거라고. 그런데 개인정보가 가득한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버릴 수는 없고. 안 그렇습니까, 도련님?”

    “응. 들키면 부끄러운 게 많아서.”

    쾅!

    “이봐요, 유지훈 씨!”

    종혁이 책상을 치자 박 변호사는 안경을 추켜세웠다.

    “제 의뢰인을 겁주는 건 그만하시죠?”

    “지금 이게 겁주는 겁니까?”

    “충분히 겁을 주고 계십니다. 안 그렇습니까?”

    “응! 나 무서워!”

    주먹을 불끈 쥔 종혁은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잠시 쉬었다 하죠.”

    “그냥 오늘 조사는 여기서 그만하시죠. 이 정도면 충분히 협조했다고 보는데요.”

    또 한 번 속을 뒤집는 박 변호사를 뚫어져라 노려보던 종혁은 혀를 찼다.

    맞는 말이다. 이들의 진술이 거짓임을 입증할 수 없는 이상, 겉으로 보기엔 조사에 성실히 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종혁은 이를 악물며 손을 저었고, 유지훈은 기지개를 펴며 일어섰다.

    “푸훗. 뭐 별거…… 웁?!”

    “하하.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서울 떠나지 마시고, 다음에 연락하면 즉각 오기나 하세요. 그리고 당신들이 매입했다는 그 건물이랑 공터 위치도 보내시고!”

    “예, 예. 그럼요. 자, 지훈아 가자.”

    “읍! 으읍!”

    조대영은 입을 막은 유지훈을 끌고 갔고, 박 변호사도 종혁을 가만히 쳐다보다 돌아섰다.

    쾅!

    취조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책상을 걷어찬 종혁.

    “개새끼들.”

    ‘방화를 저지르는 모습만 찍혔어도!’

    그랬다면 이런 걱정을 안 했을 텐데, 공교롭게도 유지훈은 직접 방화를 저지르는 모습을 찍지 않았다.

    찰칵! 치이익!

    종혁이 담배를 물자 최재수가 취조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푸흐흐.”

    무슨 일인지 웃으며 들어오는 그.

    “저 새끼들 자기들 무덤을 자기가 팠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 건물들이 전부 자기들 거라고…….”

    그게 거짓임이 드러나는 순간, 재판부에서는 더 이상 이들의 진술을 신뢰하지 않을 터였다.

    “맞을걸?”

    “예?”

    “지금쯤 이미 명의 이전 끝났을 거다.”

    취조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밖으로 나갔던 조대웅. 지금쯤 그가 피해 건물주들을 만나 협상을 끝냈을 것이다.

    “명의 이전이야 늦었다고 우기면 그만인 거고.”

    세금이나 벌금 문제 등은 이들에게 아무런 문제도 안 될 것이다.

    이걸로 설령 과실이 아닌 방화임을 입증한다고 해도 놈의 형량은 줄어들게 되었다.

    그런 종혁의 말에 최재수는 입을 떡 벌렸고,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이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있겠냐?”

    쾅!

    “씨발!”

    책상을 걷어찬 최재수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어떤 생각에 다급히 종혁을 봤다.

    이미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

    그에 최재수는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그랬다. 저쪽에서도 돈지랄을 한다면, 이쪽에서도 돈지랄을 하면 되는 거다.

    그런 돈지랄이야말로 종혁의 특기.

    “그런데 쉽사리 증언을 해 줄까요?”

    아마 가치 이상의 돈을 받고 건물을 팔았을 이전 건물주들. 동시에 막대한 돈과 함께 분명 협박도 받았을 거다.

    어쩌면 지금쯤 이미 해외로 떴을지도 모른다. 유지훈 측이 친히 비행기표와 호텔까지 예약해 줘서.

    “걱정은 나중에 하고 빨리빨리 움직이자.”

    포렌식 결과, 유지훈이 저지른 총 10건의 방화 중 여섯 채가 건물이고, 나머진 공터였다.

    이번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에 그곳들을 모두 돌려면 한시바삐 움직여야 했다.

    “으아…… 더럽게 빡세겠네요.”

    “어쩔 수 있겠냐.”

    종혁은 툴툴거리는 최재수를 다독이며 취조실을 나섰다.

    “예, 접니다. 비행기 좀 대기…… 응?”

    취조실 문 앞을 막고 있는 한 중년인.

    “김 팀장님?”

    부하 직원인 김덕출 팀장이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홍보부 직원들이 모두 복도에 모여 이쪽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여러분이 여긴 왜…….”

    “돕게 해 주십시오.”

    “예?”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한편 본청 건물 밖.

    “박 변.”

    “예, 도련님.”

    “능력 있다?”

    솔직히 처음엔 짜증이 났는데, 답답해하는 종혁의 반응을 보니 그 짜증이 쑥 내려갔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한 거야?”

    “하하. 별거 아닙니다.”

    “맞아. 별건 아니었지.”

    그런 유지훈의 말에 박 변호사의 눈이 살짝 떨린다.

    “하아암. 그럼 이제 된 거지?”

    박 변호사는 조대웅을 봤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된 것 같습니다. 이젠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도 도련님께서 처벌을 받으실 일은 없을 겁니다.”

    이대로라면 죄목은 방화죄가 아닌 단순실화죄. 이렇게 되면 어떤 판사를 만난다고 해도 벌금으로 끝이었다.

    “그래? 그럼…….”

    유지훈의 눈이 조대웅을 본다.

    “하하. 걱정 마, 지훈아. 평생 네 앞에 나타나지 않게 해 줄 테니까!”

    “믿는다, 삼촌.”

    “걱정 말라니까!”

    “알았어. 가자. 나 피곤해.”

    “그럴까? 아, 먼저 타 있어. 나 음료수 좀 뽑아 올게. 목마르지?”

    “……사과주스.”

    “사과주스, 오케이!”

    “빨리 와.”

    그렇게 유지훈은 차에 올랐고, 조대웅은 박 변호사를 힐끔 보곤 바깥의 편의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크흠. 수고하셨습니다, 조 실장님.”

    유지훈이 방화를 저지를 때마다 이런 경우까지 대비하여 건물주들에 대해 전부 파악해 두었던 조대웅.

    그는 곧장 그들에게 연락을 돌려 갑절의 값을 치러 그 모든 건물과 공터들을 매입해 버렸다.

    ‘역시 조 실장.’

    그 짧은 시간 안에 그 모든 걸 해낸 그의 능력에 경의를 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딱 그 정도다.

    ‘이 인간은 그냥 마름이지.’

    시키는 일만 잘하는 마름.

    결코 일을 꾸리고 계획을 짜는 박 변호사 자신과 견줄 수 없다.

    “뭘요. 지훈이를 위한 일인데요, 하하. 뒷말 나오지 않게 처리했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런데 그보다 괜찮겠습니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산이 어마어마했던 종혁.

    그쪽에서 자신들이 돈으로 매수한 사람들을 돈으로 쳐 버리면 이쪽도 답이 없어진다.

    “아, 그 부분도 걱정 마십시오.”

    ‘어차피 조 실장 당신이 움직인다며?’

    평생 지훈의 앞에 종혁이 나타나지 않게 만든다고 한 조대웅. 무슨 수를 쓰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그걸 이용하면 된다.

    “대체 무슨 계획이 있으시기에…….”

    “지켜보시면 압니다, 지켜보시면. 하하.”

    눈빛을 위험하게 빛낸 박 변호사는 조대웅의 어깨를 토닥였고, 어깨를 힐끔 본 조대웅은 히죽 웃었다.

    “하하하. 그런가요?”

    “그럼요. 하하하하하.”

    ‘조대웅 실장…… 이 기회에 함께 치워 버려야겠어.’

    종혁에게 수작을 부린 걸 종혁의 배경들에게 알린다면?

    유지훈의 아버지 유태훈 회장도 조대웅을 감싸지 못할 터.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박 변호사만이 아니었다.

    ‘무슨 수를 쓰려는지 다 보인다, 이 기회주의자 놈아.’

    이건 기회. 잘하면 박 변호사의 약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흉심을 숨긴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잿빛의 겨울하늘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부우웅! 끽!

    차량을 멈춰 세운 종혁이 차창 밖을 응시하며 혀를 찬다.

    띠이! 띠!

    따다다다다다당!

    중장비와 사람들에 의해 이미 허물어져 버린 건물.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햐. 이 새끼들 돈 많이 쓰네.”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증거를 확실히 없애기 위해 아예 뒤엎어 버린 것일 터.

    “이 개새끼들!”

    쾅!

    “헉! 죄, 죄송합니다.”

    종혁의 차를 걷어찬 최재수가 하얗게 질리자 종혁은 손을 저었다. 자신도 최재수와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들렀던 모든 건물과 공터에서 진행 중이었던 공사.

    또한 등기부등본을 떼어 보니 모두 유지훈의 명의였다.

    조대웅에게 전화를 해 보니 유지훈의 아버지인 유태훈이 유지훈에게 미리 상속도 할 겸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자신의 용돈은 자신이 직접 벌어서 쓰라고 말이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씨발.’

    찰칵! 치이익!

    “후우우. 이건 더 훑어본다고 해도 뭐가 없을 것 같은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 종혁에게 최재수가 슬그머니 다가선다.

    그런 그의 입가에 걸리는 의미심장한 미소.

    “이쯤이면 되지 않았을까요?”

    지근거리에서 종혁을 보호하는 CIA와 SVR에서 연락이 왔다. 따라붙은 놈들이 있다고 말이다.

    “아직. 한 며칠은 더 뺑뺑이 쳐야지.”

    이번 사건이 아예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말이다.

    그래야 놈들의 감시가 소홀해질 터.

    그때가 바로 놈들에게 건물을 판 사람들, 해외로 여행을 간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였다.

    조사를 해보니 하나같이 해외로 뜬 이전 건물주들.

    “넌 일단 주변 CCTV 싹 다 걷어 오고…….”

    “이웃들에게 여기 사진이나 영상 찍은 거 있냐, 있으면 확보하라고요?”

    지난 며칠 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어. 넌 저쪽으로 가.”

    “옙! 그럼 몇 시에 볼…….”

    “꺄아아아악!”

    순간 귀를 꿰뚫는 비명에 멈춘 둘.

    “씨발! 저쪽!”

    “예!”

    서로를 본 종혁과 최재수는 다급히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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