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00화 (600/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00화>

“푸후우.”

종혁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아직 참고인 조사일 뿐입니다.”

“그럼 저희 의뢰인께서 계속 계실 이유는 없겠군요.”

“박 변! 저 새끼가 내 핸드폰도 뺏어 갔어!”

변호사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내놓으시죠. 포렌식을 하셨다면 그 자료도 모두 폐기해 주시고요.”

“당신의 의뢰인은 현재 방화 혐의가 있습니다. 그것도 여러 차례요.”

“정식으로 영장을 발부받은 다음 이야기하시죠.”

“후우…….”

더 이야기를 나눠 봤자 소용없다는 걸 느낀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어, 나야. 포렌식 중지하고 핸드폰 가져와.”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됐냐는 듯 변호사를 바라봤고, 그는 놈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그만 가시죠.”

“응!”

밝게 웃으며 몸을 일으키는 놈은 갑자기 잠시 멈칫하며 종혁을 봤다.

“내가 아까 말했지? 기대해. 내가 아주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움찔!

종혁이 멍하니 놈을 본다.

“……푸하핫! 이야, 고맙다.”

종혁이 몸을 일으키자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놈은 주춤 물러섰고, 변호사가 다급히 그 사이를 가로막는다.

“뭐하시는 겁니까?”

“방금 보셨잖습니까? 어이쿠, 당신의 의뢰인께서 감히 경찰을 협박하셨네요? 그럼 지금부터 정당한 공무집행에 들어가겠습니다?”

“미성년자의 투덜거림이 얼마나 위협적이라고요?”

“그거야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이죠. 제가 몸이 이래 보여도 겁이 많은 스타일이라.”

“……저희 의뢰인께서 이런 곳이 처음이라 잠시 실수를 하신 겁니다. 뭐하십니까? 사과하세요.”

변호사는 일단 사과하라고 재촉했고, 얼굴을 와락 구긴 놈은 이내 고개를 까딱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누가 봐도 마지못해 하는 사과.

피식 웃은 종혁은 놈의 뒷덜미를 잡아 그대로 내리눌렀다.

꽈아악!

“컥?! 악! 아아악!”

고통에 발버둥을 치지만 결코 종혁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 놈. 종혁은 그런 그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래, 사과는 이렇게 하는 거야. 그런데 꼬마야. 그건 아니? 대기업 회장도 여기에 와선 그딴 말 안 해. 왜인 줄 알아?”

형사가 작정하고 덤벼들면 대기업 회장이라도 물어뜯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 변호사님께서도 그걸 아니까 네게 사과를 하라고 한 거고. 세상이 다 네 것 같아 보이지? 네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너무 싫다. 알량한 권력을 믿고 설치는 이런 놈들이 너무 싫다.

“아니야. 내가 그렇지 않다는 걸 지금부터 보여 줄게.”

종혁의 눈에서 감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대해. 아주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섬뜩!

“너, 너 이 새끼…….”

“도련님! 이보세요, 형사님!”

손을 놓고 물러선 종혁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고, 변호사는 울컥하는 놈을 진정시키며 끌고 나갔다.

종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벌컥!

“부장님!”

“……정현식 씨 데려와.”

지금부턴 정현식을 취조할 차례였다.

* * *

“지, 지훈아!”

“아, 씨. 삼촌이 왜 와!”

변호사와 함께 본청 건물 나선 남자, 유지훈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중년인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어? 거긴 또 왜 간 거야!”

“……아빠는?”

“화 많이 나셨지.”

“아, 씨발.”

얼굴을 구긴 유지훈은 차에 올랐고, 변호사에게 고개를 숙인 중년인은 차 주위에 있는 정장 입은 사람들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하. 들어가기 싫은데…….”

조경수들이 멋들어지게 세워진 넓은 정원을 지나 커다란 저택의 현관문 앞에 선 유지훈이 꿍얼거리자 중년인이 그의 등을 토닥인다.

“일단 들어가자. 너 여기서 피하면 정말 큰일 나.”

“씨발.”

유지훈은 중년인이 열어 주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목을 움츠렸다.

“다, 다녀왔습니다.”

“튀어 와.”

거실 소파에 앉아 등을 보이고 있는 기골이 장대한 백발의 노인을 발견한 유지훈은 재빨리 달려가 고개를 숙였다.

그에 누가 봐도 사내답게 생긴 노인이 피고 있던 담배를 내려놓는다.

“너 뭐하는 놈이야!”

“그, 그게…… 시, 실수예요! 실수!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하고, 또 호텔도 이젠 질려서 서민들이 묵는다는 모텔에 갔는데…….”

핸드폰을 충전하려고 코드를 꽂으니 불똥이 튀었다. 설상가상 그 불똥이 커튼에 달라붙더니 화재로 번지게 됐다.

“그래서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그 형사 새끼가……!”

“유지훈!”

“지, 진짜예요! 진짜라고요!”

정말 억울해하는 유지훈의 모습을 무서운 눈빛으로 응시하던 노인은 한숨을 내뱉었다.

“……다친 곳은?”

“아빠!”

“밥 안 먹었지? 식사 차려 달라고 했으니까 가서 처먹고 네 방으로 올라가.”

“네, 네. 그리고 아빠…….”

“올라가.”

움찔!

“……안녕히 주무세요.”

입술을 삐죽 내민 유지훈은 부엌으로 향했고, 노인은 그런 그를 보며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저놈은 아직도 내가 불을 지르고 다니는 걸 모르는 줄 아나 보군.”

어느 순간부터 시작된 늦둥이 아들의 기행.

사람이 없는 곳만 불태우고 다니기에 눈감아 주었는데, 이번엔 아무래도 선을 넘은 것 같다.

노인은 변호사를 봤다.

“어떻게 된 일이야?”

그동안 유지훈이 일을 벌일 때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경찰에게 뇌물을 먹여 입을 막아 왔던 노인.

이번에도 똑같이 지시를 내렸는데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일까.

세상에 돈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노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우. 도련님의…….”

“대체 언제까지 도련님, 도련님 할 거야? 박 변이 우리 집 몸종이야? 선대의 일은 그만 잊자고. 이젠 박 변도 그 정도 급 되잖아.”

“……지훈이의 취미 활동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 활동을 뒤쫓던 사람이 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놈들을 오해한 경찰, 종혁이 그놈들의 뒤를 따라붙으면서 결국 유지훈의 취미 활동이 발각되고 말았다.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다른 경찰 놈이 붙어서 이렇게 됐다?”

그 말에 노인의 낯빛이 가라앉는다.

“뭐하는 놈인데?”

별일 아니면 그냥 치워 버려라, 그런 의미를 담은 노인의 말에 변호사는 입맛을 다셨다.

“아니야?”

“혹시 박종명 전 경찰청장을 기억하십니까?”

“내 나이가 이제 겨우 예순아홉이야, 박 변.”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라 당연히 기억한다.

일명 조희구 게이트.

그로 인해 박종명 경찰청장을 비롯해 경찰 고위 간부들과 부산지검장을 비롯한 검찰의 여러 검사들의 목이 날아갔다.

“설마…….”

“예. 박종명 전 경찰청장을 끌어내린 게 그놈입니다.”

정확히는 조희구에게서 통장과 뇌물 장부를 뺏어 온 인물이 종혁이었다.

“그 공로로 총경 진급을 했고, 현재는 본청 홍보부의 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10년 안에 경무관 진급까지 확실시되는 간부.

10년을 꽉 채워 진급을 한다고 해도 39살에 경무관.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게다가?”

“중앙지검의 검사장, 특수부장과도 인연이 깊은 것 같습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강철선 부장검사를 그 자리에 앉힌 게 바로 최종혁 총경이라는 소문이 검찰 내부에서 떠돌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흠. 박 변이 잘못 안 거 아냐? 일개 경찰이 어떻게 검사를…….”

“마냥 헛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종혁은 대검찰청의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징계를 받았는데, 그때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과 강철선이 대검찰청으로 찾아가 뒤집어엎었다고 한다.

“게다가 소문에 따르면…….”

변호사는 노인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높으신 분과도 인연이 깊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삼전의 김용재 상무와도요.”

빠득!

“……저 새끼 끌고 와.”

“예, 예!”

변호사 옆에 서 있던 중년인은 다급히 부엌으로 달려가 유지훈을 끌고 나왔다.

“아, 왜!”

노인은 지 잘못도 모르고 소리치는 유지훈의 모습에 얼굴을 구겼다.

“엎드려.”

“아빠!”

“엎드려!”

유지훈은 일어나 골프채를 뽑아 드는 아버지의 행동에 얼굴을 와락 구겼고, 그에 중년인은 다급히 몸을 숙였다.

“깍지 낄까요?”

“…….”

“옙!”

중년인은 깍지를 낀 채 엎드려뻗쳤고, 노인은 그 엉덩이 옆에 자리를 잡으며 유지훈을 죽일 듯 노려봤다.

그리고…….

부웅! 퍼억!

“네가! 똑바로! 케어를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퍽! 퍽! 퍽! 퍽! 퍽! 퍽!

“억! 윽! 읍!”

‘아, 씨발 진짜.’

유지훈은 얻어맞는 중년인, 어려서부터 삼촌처럼 따르던 중년인의 매 맞는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탱그랑!

“너 앞으로 외출 금지야. 그리고 유학 준비해.”

“아빠!”

“닥쳐, 이 못난 새끼야! 네가 지금 이렇게 누리고 사는 게 누구 덕분인데!”

그동안 느지막하게 얻은 외동아들이라고 너무 오냐오냐한 것 같다.

“올라가!”

“칫!”

입술을 깨문 유지훈은 거칠게 몸을 돌리며 2층으로 올라갔고, 노인은 몸을 일으키는 중년인을 봤다.

“대웅이 네가 책임지고 사태 수습해. 알았어?”

“아, 알겠습니다!”

“박 변은 저놈 유학 준비 좀 도와주고.”

“예. 걱정 마십시오.”

“쯧.”

혀를 찬 노인은 방으로 들어갔고, 그런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던 변호사는 대웅이라 불린 중년인을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세요?”

“아하하. 뭐, 예. 어흠. 그보다 최종혁 총경에 대해 더 아시는 게 있습니까?”

“흠. 글쎄요. 이것도 겨우 알아낸 거라…….”

아니다. 유지훈을 본청에서 이곳까지 데려오는 동안 참 많은 걸 알아냈다.

하지만…….

‘조대웅 실장.’

노인의 유일한 후계자인 유지훈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

‘즉, 이놈을 치워야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거지.’

변호사는 미간을 좁히는 조대웅을 보며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 * *

“시발!”

방 안으로 들어온 유지훈이 옷을 집어 던진다.

그러자 어디선가 달려와 그의 발밑에서 폴짝폴짝 뛰는 하얀 솜뭉치 하나.

“왕! 왕!”

“저리 가, 인마.”

“왕!”

“저리 가라고.”

계속 안아 달라 뛰는 말티즈를 발로 슥 밀어 버린 유지훈은 침대에 몸을 날려 천장을 본다.

“아무래도 알아차린 것 같단 말이지…….”

아무래도 아버지가 자신의 은밀한 취미를 알아차린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가 뭐라고 하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숨기고 있던 비밀이 밝혀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쯧.”

똑똑!

“누구야!”

“들어갈게.”

문이 열리며 조대웅 실장이 들어오자 뽀로로 달려간 강아지가 안아 달라 뛴다.

조대웅은 그런 강아지를 안아 들며 다가왔고, 유지훈은 얼굴을 구겼다.

“괜찮아? 연고는 발랐어?”

“뭐,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후우. 미안해, 삼촌.”

“됐어. 남자 새끼가 그럴 수도 있지. 그보다 어떡할 거야?”

“어떡해야 되는데?”

“일단 경찰에 출석은 해야 돼.”

보통이 아닌 놈이 유지훈을 타깃으로 삼았다. 일단 성실히 조사를 받아야 됐다.

“가서 박 변호사 말 잘 듣고. 박 변호사가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말고.”

“누가 그거 말해?”

유학. 정말 유학을 가야 하는 건지가 궁금했다.

“그럼?”

“삼촌!”

조대웅은 칭얼거리는 유지훈의 등을 쓸어내렸다.

“일단 가. 어학 연수 다녀온다고 생각하고 한 반년만 버텨. 그럼 내가 어떻게든 너 다시 데려오게 할 테니까.”

“하아. 씨발, 진짜.”

유지훈은 세상을 다 잃은 듯 절망하며 고개를 푹 숙였고, 조대웅은 피식 웃었다.

“으이그. 그러게 누가 들키래? 내가 너 불장난하고 오줌 쌀 때부터 알아봤다.”

“아, 씨! 옛날이야기는 왜 꺼내!”

“내가 너 대신 뒤집어썼으니까?”

그때는 정말 엄청 맞아야 했다. 조대웅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이다.

감히 모시는 도련님의 이불에다가 오줌을 쌌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그게 아님을 아버지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맞아야 했다. 유지훈을 혼낼 순 없었으니 말이다.

“씨이. 치사해.”

“큭큭. 쉬어. 갈게.”

“……삼촌도 오늘 수고했어. 아, 대웅이 삼촌!”

“응?”

“그 새끼…….”

순간 유지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그 형사 새끼는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는 가만있을 수 없다. 종혁을 망가트리지 않으면 분해서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

“아, 그 사람은 걱정 마.”

돌아선 조대웅의 입가가 비틀리기 시작한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쉬어라.”

달칵!

조대웅이 문을 닫고 나가자 유지훈은 어느새 다시 자신의 발 앞에서 서성거리는 말티즈를 빤히 바라보다 이내 안아 들었다.

“체리야, 그거 알아?”

유지훈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한다.

“왕?”

“저 삼촌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언제나 자신의 편이었고, 자신이 어떤 잘못을 해도 감싸 주고 그 비밀을 지켜 주었던 삼촌 같은 존재, 조대웅.

그라면 분명 어떻게든 해 줄 거다.

희희낙락 웃던 유지훈은 이내 눈을 감으며 방금 전 한 대화를 떠올렸다.

“오줌…… 맞아, 그때가 처음이었지.”

자신이 조대웅을 완전히 신뢰하게 된 계기임과 동시에 불과 사랑에 빠져 버렸을 때가 말이다.

그의 두 눈이 아련한 과거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한편 유지훈의 방 밖. 문을 닫고 나온 조대웅의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진다.

그는 옆에 서 있는 사내에게 입을 열었다.

“경찰 본청의 최종혁 총경에 대해 알아봐.”

비서실의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실장님, 박 변호사님께서 이미…….”

“박 변을 믿어?”

‘그 기회주의자를?’

움찔!

“……예.”

“가 봐.”

손을 저은 조대웅은 담배를 물며 2층의 테라스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그를 반기는 차가운 바람.

잠시 눈을 감은 조대웅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후우. 박 변 그놈을 어떡할까…….”

아무래도 자신을 밀어내고 유지훈을 케어하려는 듯한 박 변호사. 굴러온 돌 따위가 감히 박힌 돌을 밀어내려 하고 있다.

그의 눈이 살의가 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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