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99화>
“그게 무슨 개소리…….”
종혁의 눈이 흔들린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치곤 너무도 간절한 눈빛.
종혁은 얼굴을 구겼다.
“최재수!”
“씨발!”
순식간에 뛰어나가는 최재수.
종혁은 수갑을 빼 들며 정현식에게 다가갔다.
“말로 할 때 수갑 찹시다, 정현식 씨.”
“……일단 불부터 끄게 해 주십시오. 제발!”
왜 가지고 있는지 모를 소화기를 들어 올린 정현식은 열린 문 사이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102호를 가리켰고 종혁은 혀를 찼다.
“닥치고 차세요.”
“부장님!”
“불은 내가 끌 테니까 닥치고 수갑 차라고.”
“……빌어먹을!”
입술을 깨문 현식은 소화기를 내려놓으며 종혁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의 손과 발에 수갑을 채운 종혁은 그제야 소화기를 들고 102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를 반기는 천장까지 타오른 불과 연기라는 괴물.
화르르르르륵!
“지랄 났네, 씨발.”
어디서부터 꺼야 할지 막막한 상황.
종혁은 일단 가까운 곳부터 끄기로 하며 소화기의 주둥이를 돌렸다.
그때였다.
102호 문 앞으로 기어온 현식이 처절하게 외친다.
“다른 곳 말고 콘센트! TV 옆 콘센트! 그 주변부터 끄셔야 합니다!”
촤아아아악!
하얀 분말이 콘센트를 향해 뿜어졌다.
* * *
삐요오오옹!
웅성웅성.
“다가오시면 안 됩니다.”
“어허. 다가오지 마세요.”
새벽이라서 그런지 빠르게 도착한 소방관들이 합류하자 불은 순식간에 진압됐다.
“아이고! 아이고오!”
통곡을 하는 모텔 사장을 뒤로한 소방관이 종혁에게 손을 내민다.
“정말 큰일 하셨습니다.”
종혁이 먼저 초동 진압에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방 하나로 끝나지 않고 건물 전체로 불이 옮겨 붙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대하십시오. 제가 꼭 표창장을 받게 해 드릴 테니!”
“하하. 괜찮습니다. 제가 경찰이라서요.”
“예? 아, 그래도…….”
종혁은 웃는 것으로 거부의 의사를 재차 표현했고, 나이가 지긋한 소방관은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아까 그 두 사람은…….”
“용의자입니다.”
“……저희가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잠시 후 감식반이 도착하면 협조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이구, 그런 건 당연히 해 드려야죠. 경찰이 저희에게 해 준 게 얼만데요. 저희가 현장을 보고 화재가 어디서 어떻게 났는지까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십쇼!”
“감사합니다. 그럼.”
고개를 숙인 종혁은 돌아서며 피식 웃었다.
‘잘됐네.’
기부를 한 보람이 있었다. 정말 잘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웃는 것도 잠시. 곧 눈빛이 싸늘해진 종혁은 승합차의 문을 열었다.
드르륵!
심경이 복잡한지 흔들리는 눈으로 쳐다보는 현식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종호라는 사내.
“해 보세요.”
변명이든 뭐든 이쪽이 이해할 수 있도록.
현식은 눈을 질끈 감았다.
“……놈을 처음 본 건 작년 가을이었습니다.”
* * *
“후우.”
소방모를 벗은 현식이 작은 공터를 응시한다.
공터에는 마른 풀들이 새까맣게 타들어 널브러져 있었다.
“와, 식겁했네.”
“그러게요. 이거 자칫 잘못했으면…….”
동료 소방관들이 나누는 대화에 현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불티들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던 현장.
피부에 닿아도 간지러운 수준의 작은 불티가, 그 작은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화재 또한 누군가 부주의하게 불똥이 살아 있는 담배를 던져 일으킨 것으로 추정됐다.
심지어 이번에는 자칫하면 공터 주변의 민가로까지 불이 번질 수도 있었으니 정말 위급했던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불은 작든 크든 절대 무시하면 안 되지. 절대 이 개새끼들을 무시하면…….’
“응?”
이를 갈며 소방차로 향하던 현식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춘다.
화재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 기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청년.
십대인지 이십대인지 분간이 잘 안 갈 만큼 앳된 외모의 청년은 현식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더니 몸을 돌려 사라졌다.
“……뭐지?”
의아해하던 현식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소방차에 올랐다.
그렇게 현식은 청년의 존재를 잊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8년 겨울.
경기도의 한 물류창고에서 커다란 불이 났다.
지원을 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국 모든 소방관들의 이목을 모았던 화재.
올해 들어 두 번이나 일어난 대형 물류창고 화재 사고에 소방관들은 언제든 지원을 갈 수 있도록 소방복을 입은 채 TV 앞에 모였고, 그건 현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어?’
-지금 불이 거의 진화된 상태인데요!
새까만 연기만 올라오는 화재 창고를 비추다 갑자기 구경꾼들을 비추는 카메라.
현식은 그곳에서 낯익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쟤는? ……누구더라?”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머릿속이 간질간질한 기분.
즐거운 듯하면서도 슬픈 듯한, 짜증이 나는 듯하면서도 기대하는 듯한 정말 오묘한 미소는 어디선가 분명 봤던 미소였다.
“에이, 몰라.”
현식은 그렇게 다시 청년에 대해 잊게 됐다.
그러던 현식이 청년에 대해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바로 2009년 2월,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응, 플러이. 이제 퇴근하지. 응, 응. 그래. 금방 갈게.”
“어이구. 아주 꿀이 떨어진다, 떨어져.”
“하하.”
“불도 그렇게 사랑해 보지 그러냐. 죽일 듯 달려들지만 말고?”
“야, 야.”
“아…… 미안.”
“……아닙니다. 그럼.”
고개를 숙이고 소방서를 빠져나와 차에 오른 현식은 집을 향해 차를 몰다 잠시 멈칫했다.
“꽃이라도 사 갈까?”
오늘도 하루 종일 자신을 기다리고만 있었을 플러이.
지루해했을 아내를 생각하자 갑자기 그런 충동이 든 현식은 퇴근길에 봐 뒀던 꽃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꽃을 사고, 근처 빵집에서 케이크도 산 현식이 가게를 나서는 순간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딸랑!
“좋아하겠…… 응?”
기뻐해 웃을 플러이를 떠올리자 절로 미소를 짓던 현식이 코끝을 희미하게 스치는 냄새에 그대로 굳는다.
‘이 냄새…….’
분명 무언가가 타는 냄새다.
“빌어먹을!”
누군가 쓰레기를 태우는 것일 수 있고, 풀 따위를 태우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직업이 직업이다. 언제나 최악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직업병을 가진 현식은 다급히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고, 곧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주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쾅쾅쾅!
“계십니까! 계세요!”
문이 부서져라 두들겼지만 그 어떤 대답도 없는 집.
갈등에 휩싸였던 현식은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타닥! 휙!
결국 담벼락을 넘은 그는 이 집이 방치된 지 오래됐다는 걸 단숨에 깨달을 수 있었다. 마당에 너저분하게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가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식은 다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예! 119죠! 여기가!”
신고를 마친 현식은 대문을 열어 근처 큰 건물로 달려갔다. 그의 등 뒤로 케이크 상자와 꽃다발이 널브러졌지만 그걸 신경 쓸 틈은 없었다.
그렇게 큰 건물에서 소화기를 가져온 그는 다급히 화재를 진압하기 시작했고, 이내 곧 출동한 소방관들이 달려와 그를 도왔다.
“후우.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큰 화재로 번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근수 형님 아래 계신 분이시라고요?”
“아, 네. 그럼 저는 이만……. 아내가 기다려서요.”
소방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그걸 가지고 가타부타 말을 섞기 귀찮았던 현식은 대문 앞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차로 향했다.
그때였다.
“킥!”
순간 그의 귀를 때리는 웃음소리.
고개를 돌린 현식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너무도 낯익은 한 청년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저 사람은?’
그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작년 가을에 발생했던 공터 화재 때 봤던 그 청년.
‘그래, 분명 경기도 물류창고 화재 사고 때도……. 그런데 저 미소는 도대체…….’
그 자신도 모르게 청년을 향해 움직이는 현식의 발.
그런 현식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친 청년은 살짝 놀라더니 이내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쯧.”
오싹!
“자, 잠시만요! 잠시만요!”
현식은 다급히 청년을 불러 세웠지만, 사람을 헤치며 나아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청년은 사라져 버렸다.
“아니…….”
현식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 버렸다.
* * *
“다행히 그놈이 찍힌 사진이 있더군요.”
소방관은 모든 화재 현장 출동 시 주변 사진을 찍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방화인지 사고인지 모르기에 구경꾼들의 사진을 찍어 놓는 거다.
현식은 그 사진을, 어두운 밤이라 흐릿한 사진을 토대로 놈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옆의 아는 동생 종호를 통해 찾아 낼 수 있었다.
종혁의 고개가 종호에게로 돌아간다.
“흐, 흥신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조직 생활도 좀 했었었고요……. 무, 물론 지금은 관둔 상태입니다!”
종혁은 계속해 보라는 듯 현식을 응시했다.
“후.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작은 의심이었을 뿐입니다.”
어금니에 낀 찌꺼기처럼 거슬리는 수준의 의심.
이틀의 미행 결과, 놈에게서 딱히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현식은 그냥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하며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러다 7월쯤에 종호에게 다시 연락이 오더군요.”
“여, 여름에 수영장을 다녀오는데 놈이 제 앞을 지나쳐가더라고요.”
호기심이었다. 마침 흥신소도 일감이 없어 망했던 상태라 시간도 많아 그냥 한번 따라가 봤다.
그런데…….
“글쎄, 이놈이 웬 버려진 유치원 앞을 어슬렁거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며칠 후 종호는 뉴스를 통해 그 유치원에서 화재가 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현식에게 연락을 했던 거다.
“이건 뭐가 있다, 이상하지 않냐고 했었죠.”
현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때부터 시간이 나면 종호와 함께 놈의 뒤를 밟았다.
다시 취직한 종호도, 그리고 자신도 일이 있어서 매일 같이 뒤를 밟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미행을 했다.
“그리고 오늘…….”
종혁은 말을 줄이는 현식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왜 신고를 하지 않은 겁니까?”
울컥!
“만약 제가 착각한 거라면요?”
경찰처럼 착각한 거라면?
“예?”
순간 현식의 과거가 종혁의 머리를 스친다.
“아니이…….”
“제 의심이 그릇된 편견에 의해 생긴 게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냔 말입니까!”
그래서 놈이 억울하게 교도소에 간다면 자신은 그 죄책감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놈이 교도소에 가면서 남겨질 놈의 가족들은?
“삶이 망가져 버릴 그들의 아픔을! 제가 어떻게 견딜 수 있단 말입니까! 전 못합니다! 못해요!”
그래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게 정말 맞는지, 자신의 생각이 정말 맞는 건지, 이 모두 우연은 아닌지.
“하아…….”
아득해지는 눈앞에 종혁이 이마를 잡는다.
“일단…… 있으세요.”
드르륵, 탁!
승합차의 문을 닫은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어, 재수야. 어떻게 됐어? 설마 놓친 건 아니지?”
현식의 말이 사실인지는 그자를 붙잡으면 모두 알 수 있을 터.
그런데…….
“최재수?”
분명 전화를 받았는데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 소리.
종혁의 마음에 혹시 하는 불길함의 씨앗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부장님-!”
“놓으라고요! 아, 좀 놓으라고!”
“가만있어!”
종혁은 팔을 붕붕 흔들며 놈을 끌고 오는 최재수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놔! 놓으라고!”
“아, 지랄.”
종혁은 생각지도 못한 대사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 * *
“이름.”
본청의 취조실.
종혁이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는 놈을 보며 관자놀이를 누른다.
간 크게도 모텔 근처에서 핸드폰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던 놈.
“풉!”
“후우……. 이름.”
“경찰 아저씨, 말로 할 때 나 그냥 풀어 줘요. 이러면 후회한다니까? 우리 아빠가 가만히 있지 않을걸?”
‘죽일까?’
종혁은 애써 끓는 분노를 다스리며 담배를 물었다. 담배가 아니면 이 끓는 속을 다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똑똑! 벌컥!
갑자기 취조실의 열리더니 정장을 입은 한 중년인이 들어선다.
중년인의 옷깃에 달린 노란 뱃지. 변호사다.
“박 변!”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아니! 나 여기 얼른 나가고 싶어! 진짜 꼴사납게 이게 뭐야!”
‘민간인이다. 아직은 민간인이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변호사는 종혁을 보며 안경을 추켜세웠다.
“들으셨죠? 풀어 주시죠.”
“……씨발. 쌍으로 돌았네.”
놈이고 변호사고 쌍으로 돌았다.
“이봐요, 변호사 양반. 지금 사태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증거도 없이 이렇게 미성년자를 구속해도 되는 겁니까?”
쿵!
순간 뒤통수를 후려치는 충격에 의기양양해하는 놈을 본 종혁은 얼얼한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지랄 났네, 진짜.”
아주 개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