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97화>
“후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종혁이 생각에 잠긴다.
파파라치가 찍은 현식의 사진은 한두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이었다. 각기 다른 날짜에 폐건물 앞을 서성이던 현식.
한 번, 두 번은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부자연스러웠다. 이것이 종혁이 현식을 의심하고 뒷조사를 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공범의 존재가 드러났다.
‘공범이라…….’
어떤 범행에든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 이유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언정 거기엔 모종의 이유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런데 만약 둘 이상의 공범이 저지른 범행이라면?
그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이해득실이 확실한 목적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획 범죄일수록 더더욱.
상대방의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단독 범행과는 명확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온수동 폐건물에 불을 지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종혁의 경험상 떠오르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이를 악문 종혁은 다급히 국과수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원장님! 옥수동 폐건물 화재 사건, 그 증거물들 지금 성분 분석 끝났습니까?”
-어…… 잠깐만? 음…… 아직 과수대에 있다는데?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옆의 순철이나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 특별범죄수사대의 형사들도 의아해하며 종혁을 본다.
하지만 종혁은 그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거 빨리 넘겨받아서 감식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거든요.”
-최 부장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고? 알았어. 내 바로 넘기라고 할게!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순철에게 입을 열었다.
“이번 온수동 폐건물 방화 사건, 이게 만약 충동적으로 저지른 방화가 아니라면…… 그 목적은 하나밖에 없어.”
홧김에 불을 지른 것이 아니라면, 무언가 일치하는 목적을 지닌 둘 이상의 이들이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면 떠오르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
시체나 흉기, 또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증거품 등을 인멸하기 위해서다.
“……!”
종혁은 벌떡 일어나는 순철과 형사들을 일견하며 이를 갈았다.
‘그래, 이래야 말이 되지!’
폴리스 라인이 쳐진 폐건물에서 무언가를 찾은 현식.
자신의 추측이 맞다면 현식과 그의 공범이 감추고자 하는 것과 연관된 물건이 분명했다.
쾅!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 덮쳤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증거물을 확보할 수 있었을 터.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모르지만, 정현식은 현재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방화를 저지른 것이었다.
‘진짜 어쩌다 이렇게 되셨습니까, 현식 씨!’
마음이 아프다.
그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 경찰의 그릇된 수사 탓인 것 같아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까드득!
“철아, CCTV 확보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확보해 줘.”
“예, 옙!”
정현식과 그의 공범이 무언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장소는 불을 지른 폐건물일 확률이 높다.
‘그게 아니라면 건물 전체를 태우진 않았을 테니까!’
분명 범행의 흔적 자체를 태워 없애려 한 것일 터.
“그리고 문자를 보낸 놈이 어떤 새끼라고?”
종혁의 눈이 살벌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 *
촤악! 촤악!
해가 저물어 가는 오후의 대치동. 춥지도 않은지 반바지를 입은 삼십대 초반의 남성이 슬리퍼를 끌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다.
볼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에 메마른 입술.
“어서 오세요! 어? 오빠!”
긴 생머리의 아리따운 이십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생이 밝게 웃으며 반기자 손을 흔든 남성은 음료수 냉장고로 걸어가 능숙하게 소주병을 꺼내 든다.
이후 오뎅탕과 매운 새우과자, 육포를 집어 든 남성은 카운터로 걸어가 들고 온 것들을 툭 내려놓는다.
“레종 한 갑.”
“와, 오늘 돈 들어왔나 봐요?”
평소엔 비싸서 먹지도 않던 오뎅탕과 육포에, 비싸서 피우지 않는 레종을 구매하는 걸 보니 그렇다. 소주도 한 병이 아니라 무려 세 병이나 사 간다.
“흐흐……. 허험. 시끄러워. 얼른 계산이나 해.”
“네, 네.”
얼른 바코드를 찍은 알바는 물건들을 봉지에 담아 내밀었고, 남성은 카운터 위에 돈을 턱 내려놓았다.
“남은 건 팁.”
“크으!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간다.”
“안녕히 가세요!”
손을 흔들며 편의점을 나선 남성이 돌연 몸을 떤다.
“크. 오늘도 멋졌어.”
남은 건 팁. 자신이 봐도 간지 폭풍이었다.
“하, 저걸 언제 자빠트려야 하는데.”
하지만 노리는 놈들이 너무 많다. 이 대치동에는 자신보다 더 잘난 놈들이 너무 많았다.
‘알바를 늘려야 하려나…….’
“형님한테 다른 일자리 없나 연락해 볼까?”
입맛을 다신 남성은 다시 슬리퍼를 끌며 고시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잠깐 걸어 고시원 안으로 들어간 그는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를 힐끔거렸다.
‘오우, 씨발.’
크다. 덩치가 미친 듯 크다.
그 옆에 있는 사람도 키가 엄청 큰 것이 보통 체격은 아니었다.
‘새로 온 사람들인가 보네. 허우대는 멀쩡해 보이는데…… 쯧쯧.’
고개를 저은 그가 방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콱!
“큽?!”
갑자기 뒤통수를 움켜쥐며 방 안으로 밀고 들어가는 손.
놀라 발버둥 치던 남성은 배에 틀어박히는 주먹에 입과 눈을 떡 벌렸다.
퍼억!
“커헉?! 컥!”
“쉬이. 뒤지기 싫으면 닥쳐야지?”
남성의 눈이 크게 흔들린다.
‘가, 강도?’
어느 미친놈이 고시원을 턴단 말인가.
하지만 그보다 그를 더 절망시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씨발. 오늘 돈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그 돈이 모두 털릴 것 같았다.
“최재수, 문 막아.”
“옙!”
종혁은 최재수가 문 앞을 가로막자 놈을 그대로 침대에 집어 던졌다.
퍼억!
“커헉!”
쿵쿵!
“거 조용히 좀 합시다!”
남성은 옆방에서 들려온 외침에 소리를 지르려다가 손을 까닥이는 괴한, 종혁을 보곤 입을 꾹 다물며 지갑으로 손을 가져갔다.
옆 사람은 멀고, 눈앞의 종혁은 너무 가까웠다.
그는 죽기 싫었다.
“하아. 지랄 말고 핸드폰 내놓으라고.”
“……네?”
“핸드폰.”
‘해, 핸드폰은 안 되는데…….’
하지만 말할 수가 없다. 껄렁한 얼굴과 위협적인 덩치를 보자 절로 주머니 속 핸드폰으로 손이 움직인다.
“여, 여기 있습니다. 여기 지갑도 있습니다. 헤헤.”
종혁은 지갑을 보며 놈이 지금 어떤 오해를 하는지 알아차렸지만 딱히 정정해 주진 않았다.
때론 경찰이란 걸 밝히지 않을 때 더 효과적인 취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핸드폰은 이것뿐이야?”
“네…… 그렇죠?”
“흐음.”
눈을 가늘게 뜬 종혁은 핸드폰을 열어 문자함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놈이 정현식에게 보낸 문자와 방화 현장을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확보해야 됐다.
그런데…….
‘이 새끼 봐라?’
없다. 문자를 보낸 내역뿐만 아니라 정현식의 전화번호, 영상, 사진 그 모든 게 아예 저장조차 되어 있지 않다.
‘보이는 것과 달리 치밀한 타입이라는 거냐?’
하긴 온몸을 꽁꽁 싸매고 다니는 놈이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지랄을 하네, 진짜.”
몸을 일으킨 종혁은 방 안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노트북을 발견해 켜 봤지만, 죄다 야한 사진이나 야한 동영상뿐, 종혁이 원하는 영상이나 사진 따윈 들어 있지도 않았다.
빠드드득!
“야.”
종혁은 그대로 남성의 멱살을 잡아 그대로 코앞으로 끌고 왔다.
“켁?! 사, 살려…….”
“형이 기분이 나쁘니까 딱 한 번만 물어볼 거야. 너 정현식과 무슨 관계야.”
“네, 네? 누, 누구요?”
“햐, 이 새끼 연기 좀 하네? 딴 사람이었으면 깜빡 속았겠다.”
“저, 정말이에요! 그게 누군데요!”
종혁은 남성의 눈빛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이내 잡았던 멱살을 놓았다.
“……기다려.”
종혁은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현식에게 문자를 보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뚜루루!
신호 대기음과 함께 쫑긋 세워지는 종혁의 귀.
이 방 안에 있는 모든 소음을 잡아내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이던 순간이었다.
달칵!
-예, 여보세요?
“……아, 죄송합니다. 전화를 잘못 걸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다급히 전화를 끊은 종혁이 자신의 핸드폰을 보며 얼굴을 구긴다.
‘대포폰이라고?’
마지막 발신 장소가 이 대치동이었기에 찾아왔던 대치동.
거기에 이 핸드폰의 명의자가 눈앞의 남성이었기에 더 조사하지 않고 바로 덮쳤는데,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 버리고 말았다.
혀를 찬 종혁은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남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양반은 어쩌냐…….’
머리를 긁적인 종혁은 고개를 숙였다.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경찰인데, 아무래도 약간의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예?”
“이건 얼마 안 되지만, 제가 저지른 무례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뭐라고요?! 아니, 경찰이면 다…… 꿀꺽.”
종혁은 지갑에서 잡히는 대로 돈을 꺼냈고, 격렬히 화를 토해 내던 남성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헤헤. 공무를 집행하시다 보면 그러실 수 있죠. 저도 경찰 행정을 준비하는 사람이기에 아주 잘 알거든요!”
“아, 그러세요. 성함이?”
“헉! 제, 제 이름은요!”
머리에 무슨 꽃밭을 만드는지 남성은 얼른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주민등록번호까지 말해 주었고, 종혁은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제 무례한 행동에 사과드립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협조를 해 주시는 김에 한 가지 더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아이고, 그럼요! 뭘 도와 드리면 될까요?”
“아, 별건 아닙니다. 잠시만요?”
종혁은 핸드폰을 들어 순철에게 문자를 보냈다.
-철아, 마지막 발신 장소를 어디까지 좁힐 수 있겠냐?
지이잉!
-현재로선 반경 50미터가 한계입니다. 합니까?
-……아니다. 됐다.
이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다.
아니, 실시간으로 모든 CCTV를 감시해야 되기에 일이 너무 커지고 복잡해진다.
자신이 여전히 특별범죄수사대를 맡고 있었다면 그렇다고 해도 진행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이 이상의 수고를 끼칠 순 없었다.
‘뚜렷한 증거라도 있다면 괜찮겠지만…….’
아직은 정황만 있을 뿐이다. CCTV 감식을 맡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고를 끼치고 있었다.
-대신 여기로 감식반 좀 보내 줘.
분명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지만, 아직 눈앞의 놈의 혐의가 벗겨진 건 아니다. 일단 감식반을 통해 여길 싹 다 뒤져 봐야 했다.
지이잉!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제 차로 가실까요?”
“네? 아, 옙!”
종혁은 지갑을 챙기는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나.’
아무래도 현식을 밀착 감시해야 될 것 같다.
‘진짜 버라이어티 하다. 버라이어티 해.’
휴가 때도 이렇게 사건이 찾아드는 걸 보면 정말 굿이라도 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예, 사장님. 사람 좀 쓰고 싶은데요.”
종혁은 혀를 차며 차로 향했다.
* * *
부우웅!
어느덧 해가 떠 버린 아침의 퇴근길.
사람들 대부분이 출근을 위해 길을 재촉하지만, 현식은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퇴근을 서두른다.
하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이번에도 집이 아니었다.
웅성웅성.
“으아아아앙!”
“아이고, 그러게 천천히 뛰라니까!”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 넘어진 아이와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한 여성.
시선을 돌리던 현식의 눈에 새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잡힌다.
“허흠. 그, 그럼.”
“크흠. 네, 그럼…….”
“저, 저기!”
“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해장이나 하러 갈래요?”
“……네.”
차 안에 앉은 현식이 방금 막 웬 커플이 빠져나온 허름한 모텔을 응시하며 핸드폰을 든다.
“응, 나야. 지금 현장에 왔는데, 정말 여기가 맞아?”
통화를 하는 그의 눈에 살의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한편 그런 현식의 차가 잘 보이는 곳에 주차된 승합차 안.
종혁이 짙은 선팅 너머, 운전석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현식을 가만히 응시한다.
-그 번호가 맞습네다.
“알았어. 땡큐.”
드르륵!
통화를 종료한 순간 승합차의 뒷문이 열리며 최재수가 탄다.
“바쁠 텐데 끌어들여서 미안하다.”
“와, 방금 좀 섭섭했는데요? 부장님! 제 직책이 뭡니까?!”
홍보부장인 종혁의 비서다. 종혁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붙어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게 그의 업무였다.
“……짜식.”
“흐흐. 그런데 이제 어떡합니까?”
현식을 턱으로 가리키는 최재수의 모습에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어떡하긴. 매번 하던 거 하는 거지.”
미행과 잠복.
증거나 범죄 행위를 발견할 때까지 미행과 잠복을 반복해야 됐다.
그리고 정말 현식이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넌 죽는다, 정현식.’
종혁의 눈빛이 광폭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