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96화>
부스럭!
메마른 흙이 현식의 발밑에서 뭉개진다.
“스읍! 후.”
그의 콧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탄내.
고개를 든 현식이 옥상까지 불에 타 버린 폐건물을 쳐다본다.
그러다 이내 현식은 새까맣게 그을린 시멘트 바닥과 그 아래 널브러진 철근들을 지나쳐 성큼성큼 폐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가 멈춘 건 한 지점에 이르러서였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타 버린 매트리스와 소파, 의자 등이 놓여져 있는 장소.
그곳은 누가 봐도 이곳에서 화재가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다른 곳보다 훨씬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너저분한 현장으로 발을 내디딘 현식이 뒷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고, 쓰레기 더미 이리저리 헤집는다.
대체 무엇을 찾는 걸까.
한참 동안 손을 놀리던 현식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춘다.
“……찾았다.”
그의 손에 쥐어진 건 다 타 버린 라이터와 조각난 양초.
바지 앞주머니에서 봉지를 꺼내어 그것을 담은 현식은 이번엔 발화점을 벗어나 그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핸드폰의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몇 시간이나 훑었을까.
지이잉! 지이잉!
“응, 플러이. 곧 갈 거야. 이제 나왔어. 응. 그래.”
통화를 종료한 그는 “없나.” 하고 중얼거리며 미련을 접는다.
그 순간, 그렇게 돌아서던 그의 눈에 무언가가 포착 된다.
다급히 그곳으로 걸어가 쪼그려 앉은 현식은 그것을 집어 들며 이리저리 살핀다.
“후우.”
꾸욱! 무언가를 쥔 주먹을 이마에 가져가며 한숨을 길게 내쉬는 그. 현식은 이내 볼일을 모두 끝마쳤다는 듯 거침없이 폐건물을 벗어나 차로 향한다.
그리고 잠시 후 현식이 무언가를 찾았던 자리.
저벅저벅!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다가온 종혁이 현식이 무언가를 찾은 자리와 발화점을 훑으며 핸드폰을 든다.
그런 그의 눈이 흔들린다.
“어, 철아. 지금 내 위치 확인되지? 그 근처 공용 CCTV 좀 싹 다 훑어 줘. 지난 한 달 치 모두. 그래, 부탁할게.”
탁!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이를 악물며 폐건물을 벗어났다.
공용 CCTV는 순철에게 맡겼더라도 주변 민간 CCTV와 블랙박스는 자신이 수거해야 했다.
그리고…….
“예, 팀장님. 지금 홍보부입니까? 아, 잘됐네요. 잠깐 사건 하나만 조회하고 싶은데요.”
오늘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
그 화재의 용의자로 지목된 일진 무리들을 만나야 했다.
폐건물을 나서는 종혁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저희 진짜 아니라니까요!”
구로경찰서의 수사계 형사과에 억울함이 가득한 외침이 울려 퍼진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니들이 거길 아지트로 삼고 있는 거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데!”
“그, 그건 맞는데 진짜 아니라고요!”
“맞아요! 진짜 아니에요!”
수갑을 찬 채 형사 앞에 앉아 억울함을 토로하는 다섯 명의 십대 소년소녀. 노랗게 빨갛게 물들인 머리가 인상적이다.
“얘들이야?”
“하이고, 딱 그렇게 생겼네.”
퍽! 퍽!
지나는 형사들이 뒤통수를 후려치자 이번 온수동 폐건물 화재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잡혀 온 십대 소년소녀들이 발끈한다.
“아, 씨발 진짜!”
“뭐, 이 새끼야. 뭐.”
노려보자마자 더 뒤통수를 때리는 형사들.
연장 든 조폭들도 무서워하지 않는 형사들의 애정 어린 다독임에 소년소녀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툭툭 치는 게 분명한데 충격이 뇌까지 전달됐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서 1차 조사 마치고 소년계로 넘어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 너부터 이름.”
“……박유천이요.”
“나이…….”
“어이구, 수고하십니다.”
소년소녀들을 취조하던 형사가 다가온 종혁에 의아해 한다.
“방금 전에 연락드렸죠? 본청 홍보부의 최종혁 총경입니다.”
“아! 아까 그분?! 이야, 젊으시네요?”
“하하. 운이 좋아서요.”
“그 운 나도 좀 있으면 좋겠네.”
“아하하.”
“아무튼 이놈들에게 물어볼 게 있다고요?”
종혁은 그가 아직 조서도 쓰지 않았는데 왜 남의 회사 사람이 와서 지랄이냐, 본청이면 이래도 되냐는 듯 못마땅해지자 들고 온 홍삼 선물세트를 내려놨다.
“요새 날이 많이 추워졌죠? 빈손으로 오기 좀 뭐해서 기력 좀 보충하시라고 이렇게 뇌물 좀 가져와 봤습니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환하게 웃으며 선물세트를 받아 든 형사는 물어보라며 손짓을 했고, 종혁은 방금 전 가장 크게 반발을 했던 소년의 앞에 섰다.
그리고 옆구리를 잡아 비틀었다.
꽈아악!
“……?!”
마치 옆구리가 뜯겨지는 것 같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발버둥만 치는 일진 소년.
그러나 종혁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꼬마야, 형이 딱 하나만 물어볼 거야. 그런데 만약 네가 거짓말을 한다?”
꽈아아악!
“끄아아아악……! 마, 말할게요! 다 말할게요!”
종혁은 너무 아파 오줌까지 살짝 지린 소년을 향해 싱긋 웃어 주었다.
“그제 너희 온수동 폐건물에 모였어, 안 모였어?”
“아, 안 모였어요! 악! 정말이에요! 진짜예요! 그제는 PC방에서 날샜다고요-!”
종혁의 손이 다시 옆구리로 향하자 경기를 일으키며 빠르게 말을 쏟아 내는 일진 소년.
그의 얼굴과 전신을 빤히 응시하던 종혁이 미간을 좁힌다.
“진짜야?”
“네! 진짜예요!”
“만약 내가 확인해 봐서 아니면…….”
콱! 꽈드드득!
“끄아아아악!”
“꺄아아악!”
종혁에게 옆구리를 비틀려 비명을 지르는 아이들.
종혁은 자신과 이야기를 나눈 일진 소년의 겁먹은 눈을 무심히 응시했다.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줄 거야. 형이 너희 나이에 생활 뛰는 놈들을 꽤 알거든?”
모여 술이나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시시덕대는 게 전부인 자신들과 달리,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데도 서슴치 않는 조직 생활을 하는 조폭들.
그들은 자신들처럼 약자 앞에서만 강한 게 아니라, 이 바닥의 진짜 포식자였다.
파랗게 질린 일진 소년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흠. 무슨 일 있습니까?”
“하하. 별일은 아닙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구로경찰서를 나선 종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진을 만나러 온 건 어디까지나 확인이었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이 아니길, 제발 아니길 바라며 찾아왔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대체 왜……. 어쩌자고…….”
가슴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답답해진다.
이게 모두 경찰의 잘못인 것 같아 목이 메인다.
어렸을 적 경찰의 그릇된 수사로 인해 가족들을 잃어야 했던 현식. 그때의 트라우마가 이렇게 변질된 것 같아 차마 하늘을 바라볼 수가 없다.
“진짜 씨발…….”
하지만 해야 됐다. 멍청하고 오만했던 경찰이 낳은 피해자지만 검거를 해야 됐다.
종혁은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응, 철아. 어떻게 됐어?”
시간을 줄이고자 폐건물 주변 민간용 CCTV와 블랙박스를 싹 다 수거해서 순철에 넘겼던 종혁.
검거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증거를 찾아야 됐다. 현식이 그날 폐건물에 있었다는 증거를.
-형님, 정말 그 사람이 그날 거기 있었던 것 맞습네까?
“뭐?”
-아무리 뒤져 봐도 화재가 일어난 날 그 사람은 거기에 없었습네다. 그 전날이라면 몰라도 말입네다. 대신…….
종혁은 이어지는 순철의 말에 얼굴을 구겼다.
“지금 거기로 간다.”
‘이건 또 뭐야?’
종혁은 혼란스러워졌다.
* * *
“킁. 킁.”
8시의 아침. 빨래를 마친 플러이가 옷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다가 활짝 웃는다.
‘빠졌다.’
탄내가 모두 빠졌다.
플러이는 옷에 코를 묻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뽀송뽀송한 햇빛의 향기와 섬유유연제의 향기.
그 사이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현식의 향기.
플러이가 그 향기들에 흐뭇한 미소를 짓던 그때였다.
띠디디! 띠디디!
“아!”
깜짝 놀란 플러이는 다급히 안방으로 달려갔지만, 이내 곧 울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잠에서 깬 현식이 시계 알람을 끄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저녁 근무로 바뀌기에 오늘은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현식. 그렇기에 오늘은 조금 늦게 출근을 해도 되는데, 그런 현식을 깨웠으니 플러이로서는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미안해. 코 하자, 오빠.”
“……역시 사랑해.”
겨우 잠을 깨웠다고 이렇게 미안해하는 여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앗! 나두!”
“하하!”
현식은 웃음을 터트리며 화장실로 향했고, 플러이는 그사이 얼른 아침을 차렸다.
달그락, 달그락.
“오빠, 나 오늘부터 일해.”
종혁에게 일을 소개받고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치킨과 맥주를 사 들고 온 현식이 말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집에서 혼자 지내기 외롭지 않냐고,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를 가지거나 아르바이트도 좋으니 활동적인 생활을 해 보라고.
그동안 절대 아르바이트는 안 된다고 했던 현식.
갑자기 마음이 왜 바뀐지 몰라도, 그에 용기를 낸 플러이는 알바를 하고 싶다고 고백했고 현식은 알았다며 순순히 인정해 주었다.
“대학 연구소에서 번역을 해 준다고 했지?”
“연구도 해. 나 역사학도. 엣헴!”
“오오! 멋지다!”
둘만 있는 식탁에 따뜻한 핑크빛의 기류가 흐른다.
그렇게 플러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친 현식은 커피를 홀짝이며 설거지를 하는 플러이를, 그녀의 옷을 가만히 응시했다.
‘백화점에서 옷을 사 줬는데…….’
외출용 옷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편히 입을 수 있는 옷들을 몇 개 사 주었다. 그런데 오늘도 플러이는 태국에 있을 때부터 입었던 오래된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래. 하자.”
현식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응? 뭐라고 했어?”
“아냐. 그럼 난 이만 출근할게.”
“앗! 뽀뽀! 뽀뽀!”
쪽!
현관문 앞으로 배웅을 나온 플러이와 입맞춤을 한 현식은 집을 나서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변호사님. 그 소송 하겠습니다.”
경찰과 검찰의 그릇된 수사로 인하여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파괴되어야 했던 가정, 그에 대한 피해 보상 소송을 말이다.
‘만약 아버지가 잡혀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어머니는 식당에 나가 일을 하지 않았을 테고, 그날의 화재에서 현지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그로 인해 우울증을 겪고 자살하실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어떤 보상을 받는다고 한들 어머니와 여동생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기에, 싸울 기력이 없었기에 포기했던 소송을 이젠 해야 할 것 같다.
아내를 위해서 말이다.
-제, 제가 곧 찾아뵙겠습니다! 오늘은 언제 시간 되십니까?!
* * *
“그렇게 된 겁니다.”
콱!
현식은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는 이준영 변호사를 봤다가 당황했다.
“변호사님?”
“어흐윽.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대체 얼마나…….”
이준영이 눈물과 콧물을 쏟아 낸다.
현식에게 그런 끔찍한 일을 겪게 만든 이 나라의 사법부가 밉다. 법조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미안하다.
그렇게 통곡하는 이준영의 모습에 울컥한 현식의 턱이 파르르 떨린다.
“하하…….”
“그러면 소방관이 되신 것도 그 때문에…….”
“예.”
화재 현장에서 미친 듯 불에 달려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불을 보면 여동생이 떠올라, 불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여동생이 떠올라 언제나 불을 향해 달려들고 만다.
“여전히 과거에 갇혀 사는 거죠.”
그에게 있어 화재 현장의 불은 그날 그때의 그 불, 여동생을 집어 삼켜버린 괴물이었다.
“현식씨…….”
“하하. 이런 제 사연이 재판에 도움이 될까요?”
“그럼요! 아무렴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도움이 되게 할 거다. 그게 변호사로서 할 일이었다.
“저만 믿으십시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합당한 보상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떤 현식은 이내 마음을 수습하며 몸을 일으켰다. 점심시간에 잠깐 짬을 내서 나온 거라서 얼른 들어가 봐야 했다.
“그럼 수임료는 얼마나…….”
“괜찮습니다. 어느 의로운 분께서 모든 수임료를 감당하시기로 하셨거든요.”
“아.”
“그럼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소송 진행 상황에 대해선 현식 씨도 아셔야 하니까요.”
감사의 뜻을 담아 고개를 깊이 숙인 현식은 카페를 벗어났다.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문자가 온 핸드폰을 확인한 현식의 얼굴이 격렬하게 뒤틀리기 시작한다.
“이곳인가.”
다음 타깃이.
일렁이는 눈으로 사진을 응시하던 현식은 다시 소방서로 향했다.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 무심한 얼굴로 말이다.
한편 그런 현식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근처의 차 안.
담배를 문 종혁이 눈빛을 가라앉힌다.
“철아, 통신사에 연락해서 지금 정현식이 받은 문자 좀 확인해 줘.”
-1분만 기다려 주시라요!
찰칵! 치이익!
-내용까진 확인이 불가능하고, 아무래도 이미지 파일인 것 같습네다.
용량이 딱 그렇다.
‘이미지. 이미지라…….’
가늘게 뜬 종혁의 눈이 요동친다.
도대체 어떤 사진을 보았기에 그토록 살기등등한 표정을 지었던 것일까.
그건 일을 치르기 전의 범인, 딱 그 모습이었다.
‘역시 공범인가?’
종혁은 특별범죄수사대에 들렀을 때 봤던 CCTV 영상을 떠올렸다.
* * *
“이겁네다.”
화재가 발생하기 1시간 전, 모자를 깊게 눌러쓴 한 남성이 폐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후 화재가 발생한다.
까득!
“가관은 여기서부터입네다. 여길 봐 주시라요.”
종혁은 순철이 보여 주는 다른 영상을 보곤 헛웃음을 터트렸다.
화재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놈은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현장 근처에서 불길에 휩싸이는 폐건물을 향해 핸드폰을 들이밀다가 소방차가 출동하고 나서야 현장을 떠났다.
“체형 일치율은 74퍼센트. 정현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입네다.”
종혁은 아득해지는 눈가를 어루만졌다.
“공범…….”
사건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