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94화>
쏴아아아!
“휴우.”
새하얗고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긴 머리를 돌돌 말아 올린 순희가 화장실을 나선다.
거의 엉덩이까지 올라온 돌핀 팬츠에 달라붙은 셔츠를 입은 그녀. 이젠 어엿한 숙녀가 된 순희가 아차 하며 방을 나선다.
“맞아! 오빠 깨워야 하는데!”
어젯밤 또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는지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온 종혁. 고정숙이 해장국 끓여 놨으니 꼭 먹이라 했다.
그렇게 방을 나서자 거실 소파에 앉아 배를 긁던 순철이 경악을 한다.
“이 미친 에미나이! 똑바로 입고 다니지 못하겠네?!”
아침 댓바람부터 욕을 하는 친오빠를 응시하는 순희의 눈이 경멸로 물든다. 옛날엔 참 멋졌지만, 지금은 이렇게 배나 긁는 아저씨가 되어 버린 오빠 순철.
여자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는 못난 오빠는 상대해 줄 가치도 없었다.
“너가 지금 몇 살이가! 그딴 옷은 성인 되면 입으라 하지 않았네!”
“흥!”
“저, 저……! 너 이리 오라! 퍼뜩 안 오네?!”
“종혁 오빠 깨워야 해. 이따가 말해.”
“……이따가 보자.”
‘한국에 산 지 몇 년인데 아직까지 공화국 사투리야?’
참 여러모로 모자란 오빠다.
다시 콧방귀를 뀐 순희는 종혁의 방으로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대답 대신 들려오는 건 코 고는 소리뿐.
“드르렁!”
순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빠, 자?”
순희는 바지만 입고 잠들어 있는 종혁의 모습에 배시시 웃었다.
여러모로 모자란 오빠 순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멋진 오빠, 종혁. 성격, 근육, 몸에서 나는 향기 등 모든 게 우월한 큰오빠.
그의 전신에 난 흉터를 발견한 순희의 눈이 슬픔으로 일그러진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늦게까지 잠을 자는 걸까.
“히잉…….”
‘아차!’
곧 등교 시간이다. 그 전에 종혁을 깨워 밥을 먹어야 했다.
순희는 얼른 종혁에게 다가가 몸을 흔들었다.
“오빠, 일어나야 돼요. 식사하셔야 해요, 오빠.”
“으음. 엄마, 5분만…….”
“꺅!”
마치 파리를 쫓듯 크게 휘저은 종혁의 팔에 휩쓸려 안겨 버린 순희. 그녀는 종혁의 팔을 밀어내려 애썼지만 애석하게도 힘이 부족했다.
“오빠, 일어나야 한다니까요? 아이 참. 오빠아.”
“으으음.”
“……헤유.”
결국 포기해 버린 순희는 5분만 더 기다려 주기로 하고는 종혁의 머리맡으로 손을 뻗어 태블릿 PC를 가져와 전원을 켜 인터넷에 접속했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종혁과 공화국에 있는 큰언니 순영이 말했다. 머리가 깨어 있는 사람이 되려면 신문을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실내사격장 화재! 겨우 진압!]
[2009년 수능 시험 후의 학교 풍경.]
[윤아 삼촌, 최종혁 총경. 열애 중?]
인터넷 뉴스를 하나하나씩 읽어 내리던 순희는 맨 마지막 기사의 제목, 그 기사에 담겨 있는 한 동남아 여성과 카페에 앉아 있는 종혁의 사진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어? 최종혁…… 열애 중? ……오빠-!”
분노한 순희가 손을 높이 들었다.
짜아아악!
“어우, 기집애.”
쪼끄만 것의 손이 왜 이렇게 매운지 모르겠다.
배에 난 작은 손바닥 자국을 문지른 종혁은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오빠! 그런 취향이었어요? 그래서 절…….
“아니라니까 그러네.”
-……정말 아니죠?
현석의 동생 현희의 말에 종혁은 한숨을 쉬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고등학교 친구인 소영, 이리나부터 현희에 권아영, 연아 등 순희는 종혁을 혼내키는 동안 종혁이 알고 있는 모든 여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리려 하면 눈을 부라리니 그럴 수도 없었던 상황.
‘얘가 엄마랑 붙어 다니더니 못된 것만 배워 가지고!’
눈빛이 얼마나 매서운지 말릴 수가 없었다.
“아니라니까. 그냥 수사 때문에 잠시 만났던 거라고.”
‘아니, 잠깐? 내가 왜 얘한테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지?’
하지만 종혁은 그 생각을 입으로 옮겨 담지 않았다. 종혁 자신을 향한 현희의 마음이 어떤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다니까. 알았어. 끊는다. 에라이.”
핸드폰을 침대에 팽개친 종혁이 태블릿 PC 속 기사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대체 언제 찍힌 걸까. 사진의 각도를 보면 분명 그 카페 안이었다.
“아닌데. 그놈은 없었는데.”
윤아의 그룹 멤버들이 출연하는 청춘은 불패가 방영된 이후 어느 순간부터 파파라치가 따라붙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별거 아닌 삼류 인터넷 신문사의 기자였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을 따라붙는 멍청한 놈이 있다고 비웃었다.
“그래서 가만 놔뒀더니…….”
이런 똥을 안겨 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예, 변호사님. 고소 좀 하고 싶은데요. 초상권 침해 와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요. 아, 변호사님도 보셨어요? 방금요? 뉴스가 확산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요? 아니, 왜…….”
-하하. 그러니 적당히 잘생기셨어야죠. 최 부장님은 최고의 신랑감 아닙니까.
29살에 총경임과 동시에 엄청난 부자다.
외모도 준수하고, 몸도 야성미가 넘치다 못해 폭발하니 처녀들의 방심이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합의를 하는 쪽으로 진행합니까?
“하아아. 아뇨, 합의는 없을 겁니다. 어느 서에 고소장을 넣을지만 말해 주세요. 경찰 쪽 처리는 제가 할 테니까요. 예.”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그러자마자 다시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에 이를 갈았다.
“넌 내가 무조건 깜빵에 처넣는다. 응. 연아야.”
-아저씨!
빠드득!
* * *
한편 전날 저녁.
이근수의 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뛰어간 정현식이 화재가 난 실내사격장 건물을, 그리고 그 화재를 끄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료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춤을 추는 불을 보며 이를 악문다.
‘개새끼!’
저 새끼는 오늘도 저 지랄이다.
죽여 버려야 할 새끼.
세상에서 씨를 말려야 할 새끼.
인류에게 불을 전한 프로메테우스가 가장 큰 씨발 새끼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피로함에 절어 있던 온몸에서 분노의 활력이 솟구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꽈아앙!
마치 그가 왔다는 걸 반기기라도 하듯 폭음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이 터져 나오는 건물.
마치 거대한 괴물의 혀처럼 소방관들의 근처를 한 번 훑은 불꽃을, 화재에 둘러싸인 건물을 본 정현식이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오, 오빠! 뜨거워! 으아아아앙!
불을 보면 언제나 이성을 잡아 흔드는 그날의 동생의 비명.
정현식의 눈에 광기와 살의가 들어차기 시작한다.
“그래. 나 왔다, 이 개새끼야…….”
빠드드득!
거칠게 통제선을 넘은 정현식이 같은 소방서의 소방관에게 다가간다.
“함부로 들어오…… 헛?! 형님!”
떨떠름해하면서도 반기는 소방관의 얼굴.
정현식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닥치고 옷 내놔.”
“예, 예!”
정현식은 얼른 오라고 재촉하는 불을 응시하며 전투복을 입었다.
저놈을 죽이면서 자신을 보호할 전투복을 말이다.
그렇게 산소마스크까지 쓴 정현식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철컥! 철컥!
언제나 그의 전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장비들.
그 무게를 느낄수록 그의 눈빛이 광포하게 흔들린다.
“그쪽 아니라고! 저쪽!”
“시민들 더 뒤로 대피시켜! 방금 인화 물질 터진 거 못 봤어?!”
꽈아아앙!
“물러나! 뒤로 더 물러나라고, 새끼들아-!”
‘씨발! 현식이 이놈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하고 현장에서 잘 통제도 되지 않아 다른 소방서 직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지만, 불을 보는 능력이 자신들 중 최고이기에 이런 화재 땐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인물인 현식.
비번인 그를 불러낸 게 미안하지만, 이 현장에선 그의 능력이 필요했다.
“으아아악?!”
갑자기 터져 나오는 비명에 고개를 돌렸던 이근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소방호스가 통제를 잃고 날뛰고 있었다.
“저 병신이?! 야 이 새끼들아! 니들이 몇 년 차인데 아직까지 호스 똑바로 못 잡…….”
터억!
날뛰는 아나콘다처럼 요동치는 소방호스 위를 기어 올라가더니 단숨에 모가지를 잡아 진정시킨 한 소방관.
어두운 밤, 얼굴을 비출 조명이라곤 넘실거리는 불밖에 없지만 이근수는 단숨에 그가 누군지 알아봤다.
이근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왔냐, 새끼야.”
-오늘 오전 근무 빼 주십쇼.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든든한 음성.
이근수는 무전기를 들고 크게 외쳤다.
“지금부터 현식이가 앞장선다! 그리고 현식이! 너 이번에도 먼저 들어가면 뒤진다, 진짜!”
-죽어라, 이 개새끼야-!
촤아아아아아!
푸화악!
단숨에 화점을 꿰뚫는 물줄기.
1시간 동안 그들을 괴롭히던 괴물이 드디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후룩!
탄내가 가득한 화재 현장.
“아, 살겠다.”
밤새 불과 사투를 벌인 소방관들이, 하얗게 질린 그들이 뜨끈한 사발면 컵라면 국물 한 모금에 나른한 미소를 짓는다.
결국 오늘도 잡아냈다. 불이라는 괴물 새끼가 주변 건물마저 삼키기 전에 죽일 수 있었다.
소방관들은 수고했다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였다.
“아이고, 내 건물! 내 건물-!”
새까맣게 타 버린 건물의 앞에 주저앉은 한 노년의 여성.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그들에게 경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이근수가 다가왔다.
“살아들 있냐!”
“몰라요. 배고파요.”
“밥 좀 주십쇼. 이놈의 컵라면 질립니다, 진짜.”
“살아들 있네. 그럼 뭐해? 복귀해야지. 거기 자는 사람 깨우고…….”
“현식이 형입니다!”
그 외침에 이근수의 얼굴이 살짝 구겨진다.
오늘도 제일 앞장서다 못해 불이 모두 진압되지 않았음에도 건물 안으로 진입해 버린 현식. ‘오늘은 죽지 않았구나’라는 안도와 분노가 같이 솟구친다.
“……그래도 깨우고 뒷정리해.”
또 언제 상황이 터질지 모른다. 얼른 소방서로 복귀해서 대기를 하고 있어야 했다.
“예이.”
“현식이 형. 형님.”
“왜…… 깨우지 마.”
“가셔야 한다니까요, 형님.”
그렇게 현장이 다시 부산해지는 순간이었다.
“어?”
사람들의 시선이 핸드폰을 들고 있는 한 소방관에게로 향한다. 당황한 얼굴로 핸드폰과 현식을 번갈아 보는 소방관.
이근수가 미간을 좁히며 젊은 소방관에게 다가간다.
“뭐야. 무슨 일인데?”
“아, 아뇨! 아닙…… 앗!”
“뭔데. 내놔 봐. 어?”
핸드폰을 뺏은 이근수는 젊은 소방관처럼 현식을 보며 당황했다.
* * *
수군수군!
‘뭔데, 대체?’
소방서의 구내식당, 식판에 가득 담긴 음식을 해치우던 현식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피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다.
‘오늘은 더 심한데?’
현식도 알고 있다. 동료들이 자신을 좋지 않게 본다는 걸.
그럴 수밖에 없다. 정현식 자신이 화재 현장에서 꼭 지켜야 할 매뉴얼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내 동료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효과적으로 불을 진압하기 위해선 무조건 지켜야 하는 매뉴얼.
그런데 자신은 그러지 못한다. 불만 봤다 하면 미쳐 날뛰니 자칫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어쩌라고!’
불만 보면 이성을 주체 할 수가 없다.
정신을 차리면 언제나 정말 코앞에 불이 있고, 어쩔 땐 불 속에 있기도 한다.
그나마 한 줄기 이성은 남아 있어서 동료들까지 함께 불 속으로 끌고 들어가진 않지만, 현식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동료들에게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오늘은 특히 더 심했다.
“빌어먹을.”
드르륵!
맞은편 의자가 끌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 현식은 얼굴을 구겼다. 식판을 내려놓으며 앉는 이근수가 시선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동료들을 위험에 빠트려도 언제나 편이 되어 주던 그가 말이다.
“뭡니까, 대체?”
“……일단 밥부터 먹자.”
“형님.”
“먹자고. 배고파.”
“……이따가 말해 주셔야 합니다.”
이를 간 현식이 다시 숟가락을 드는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잉!
덜컹! 우당탕!
식당을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먹던 것을 멈추고 다급히 일어서는 소방관들.
하얗게 질린 이근수가 다급히 외친다.
“아냐, 아냐! 내 전화야!”
“……아, 진짜! 핸드폰 벨소리 좀 바꾸라고요!”
“하하.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예, 여보세요? 아.”
순간 차갑게 가라앉는 이근수의 표정.
현식이 어리둥절해할 때, 이근수가 재밌다는 듯 웃는다.
“호오. 그래요. 알겠습니다. 지금 현식이랑 나가죠. 예.”
‘나랑?’
“들었지? 그만 먹고 일어나. 손님 왔다.”
“손님이요?”
“그래, 손님.”
그렇게 대답하는 이근수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손님, 아니 은인이라고 해야 되는데 그럴 수가 없는 복잡한 심경.
“일단 일어나.”
“예, 뭐…….”
식판을 정리하고 이근수를 따라나선 현식은 소방서 앞에 서 있는 종혁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경악스러운 건 바로 이근수의 말과 행동이었다.
“한 대 때려도 됩니까?”
종혁은 말과 함께 주먹을 드는 이근수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었다.
* * *
“……그렇게 된 겁니다.”
“아니…….”
소방서 근처의 카페.
종혁이 들려주는 말에 현식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플러이가…….”
“죄송합니다. 플러이 씨가 직접 말씀드릴 때까지 모른 척해 드리기로 해서…….”
파파라치에게 찍힌 플러이와 단둘이 카페에 있는 사진.
자신 때문에 한 가정에 불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해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종혁의 말에 현식의 표정이 더 복잡해진다.
‘왜 내가 아니라 이 사람에게…….’
몇 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 대신 며칠 전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런 상담을 한 것일까.
배신감과 아내가 이렇게까지 일을 하고 싶어 했는지 몰랐던 자신의 눈치 없음에 화가 솟는다.
“후우. 알겠습니다. 플러이가 말할 때까지 저도 모른 척하죠.”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혀, 현식아! 그,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커피값을 내려놓은 정현식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카페를 빠져나갔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머리를 긁었다.
“아, 진짜 죽여 버리고 싶네.”
종혁은 파파라치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어느 한 명의 외침을 시작으로 밤 근무자들과 교대를 마친 소방관들이 퇴근을 하기 시작한다.
“어흐, 추워.”
부쩍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소방서를 나서자마자 옷깃을 추미는 사람들.
그 사이엔 현식도 있었다.
“아하하. 수고하셨습니다.”
아침의 일 때문에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도 인사를 하는 소방관들. 무거운 한숨을 쉬는 현식에게 이근수가 다가선다.
“현식아, 어떡할래. 오늘 한잔할래?”
“아니요. 집에 들어가 봐야죠.”
“……그래.”
이근수가 어색하게 웃자 현식은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내일 봐!”
손을 흔드는 이근수를 뒤로한 현식은 차를 세워 둔 골목으로 향하며 핸드폰을 든다.
“응, 플러이. 오늘 치킨에 맥주 한잔할까?”
-좋아요!
“알았어. 그런데 좀 늦을 거야. 응, 응. 그래. 사랑해.”
통화를 종료하고 차에 오른 그.
하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그들 부부의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것인지 가로등 불빛을 제외하면 인기척조차 없는 골목.
한 폐건물 앞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현식이 선다.
“후우우.”
폐건물을 응시하는 현식의 두 눈이 격렬한 살의로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