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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93화 (59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93화>

    스르릉!

    문이 열리며 주황빛의 어두운 조명.

    콧속을 파고드는 향초의 향기가 따스한 온기와 함께 현식의 아내를 반긴다.

    “왔어?”

    현식의 아내를 심드렁한 얼굴로 반기는 카운터의 사장.

    현식의 아내도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얼른 옷 갈아입어.”

    “네.”

    현식의 아내는 카운터 옆에 있는 ‘직원 외 출입 금지’라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로 된 캐비닛들과 나무로 된 기다란 의자가 전부인 좁은 공간.

    먼저 출근한 몇 명의 동남아 여성과 중국 여성이 그녀를 발견하곤 반갑게 손을 흔든다. 그리고 다시 각자 들고 있는 노트북에 시선을 둔다.

    따다다닥! 띠링!

    인터넷전화로 문자를 보내는 소리와 문자 소리로 가득해지는 탈의실.

    11월, 견딜 수 없는 한파에 남편 현식이 사 준 롱코트를 벗은 그녀가 짧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걷기만 해도 팬티가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와 가슴을 반절 이상 드러내며 몸에 달라붙는 상의.

    마사지 오일과 휴지 따위가 들어 있는 목욕 바구니를 꺼낸 그녀가 캐비닛의 문을 잠그며 의자의 빈자리에 앉는다.

    춥게 입었어도 탈의실을 가득 채운 온기에 미소를 지은 그녀도 싸구려 노트북을 꺼내 든다.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보다 이렇게 인터넷전화로 문자를 보내는 게 더 싸기 때문이다.

    -오이, 뭐해?

    띠링!

    -TV 봐! 언니는?

    고향에 있는 여동생, 오이의 천진난만한 대답에 미소가 더 짙어지는 그녀.

    문이 열리며 방금 전 카운터에 앉아 있던 사장이 고개를 들이민다.

    “애나. 지목. 3번 방, 타이 마사지.”

    “네.”

    애나라는 가명으로 불린 그녀는 노트북과 핸드폰을 목욕 바구니에 집어넣고 사장이 말한 3번 방으로 향한다.

    똑똑!

    “사장님, 들어가.”

    문을 밀며 들어가자 그녀를 어스름한 불빛이 그녀를 반긴다.

    “안녕, 사장님. 나 불렀…….”

    쿠당탕!

    현식의 아내는 옷을 다 입은 채 이불 위에 앉아 있는 종혁을 발견하곤 바구니를 떨어트렸다.

    종혁은 하얗게 질리는 그녀의 얼굴에 눈을 질끈 감았다.

    * * *

    쾅!

    종혁이 사장의 얼굴을 잡아 그대로 카운터에 처박는다.

    “컥?!”

    “저기 있는 방들에서, 아니 이 마사지숍 내에서 정액이나 여성의 애액이 검출되잖아? 그땐 넌 정말 뒤지는 거야.”

    그러니 순순히 불어라.

    “……죄, 죄송합니다.”

    “씨발 새끼.”

    쩌억!

    사장의 얼굴을 후려친 종혁은 계단 아래에서 사람들이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문을 열어 줬다.

    “꼼짝…….”

    “본청 홍보부 최종혁 총경입니다. 제가 지원 요청했습니다.”

    “헉! 추, 충성!”

    종혁이 들어 올린 경찰공무원증을 보고 다급히 경례를 하는 그들.

    “저기 방에 여성들이 있으니까 싹 다 체포하시고 감식반 불러서 증거 수집하세요.”

    “옙!”

    우렁차게 대답하는 경찰들의 모습에 믿는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현식의 아내에게 다가서서 어깨를 감싸 안으며 발을 뗐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휴가 중이라.”

    “아. 저 그런데 옆에 그분은…….”

    “아는 사람입니다.”

    “……아아. 예, 알겠습니다. 충성.”

    “감사합니다. 그럼.”

    그녀를 데리고 나온 종혁은 근처의 커피숍으로 향했다.

    찰칵! 치이익!

    “후우.”

    고개를 숙인 채 따뜻한 라떼를 만지는 그녀를 응시하던 종혁이 관자놀이를 누른다.

    ‘골치 아프네.’

    누구보다 먼저 불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

    그런 소방관의 몸을 파는 아내.

    그 사연이 어떤지 모르기에 막막해진다.

    종혁은 그녀를 향해 필리핀어로 말해 주었다.

    “고개 드세요.”

    움찔!

    “이렇게 당신 나라의 언어로 말하면 대화하기 편하겠죠? 제가 언어를 배우는 게 취미…….”

    말을 하던 종혁은 입을 다물었다.

    귀를 쫑긋 세우면서도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그녀.

    “……당신 필리핀 사람이 아니군요?”

    흠칫!

    종혁의 영어에 깜짝 놀란 그녀의 낯빛이 다시금 하얗게 질리고, 종혁은 설마 하며 태국어로 말했다.

    “혹시 태국 이싼 사람입니까?”

    “헉!”

    종혁은 이마를 잡았다.

    같은 태국인들에게조차 경시당하고 업신여겨지는 태국 동북부 이싼.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꽤 복잡한데, 이들의 선조가 꽤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런 취급을 받는다.

    그렇기에 이싼 출신의 태국인들은 자신의 출생지를 숨기며, 때론 아예 다른 나라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해 버린다.

    언어가 비슷한 캄보디아나 라오스, 혹은 베트남과 필리핀 사람이라 소개한다.

    물론 모든 이싼 사람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아니, 여긴 한국입니다. 그냥 태국인이라고 소개를 해도 됐을 텐데…….”

    울컥!

    얼굴이 구기며 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모습에 종혁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설마…… 태국 여자라고 안 좋게 보던가요?”

    마사지와 유흥과 관광의 나라, 태국.

    아닐 테지만 왜인지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끄덕.

    “미치겠네.”

    ‘대체 어떤 씨발 새끼가!’

    종혁은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들이켰지만, 폭발해 버린 분노는 식을 줄 몰랐다.

    “후. 제가 모든 한국인을 대표할 순 없지만, 그래도 대표해 사과드립니다. 무식하고 멍청하고 더러운 새끼들의 폭언에 상처받게 만든 점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흑!”

    남편 현식을 믿고 한국으로 왔지만, 남편에겐 차마 말하지 못했던 고통, 그리고 설움.

    난 영어를 할 줄 아니까 그냥 필리핀 사람이라 소개해 달라고 말해야 했던 아픔.

    종혁은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종혁은 그녀에게 티슈를 넘겨줬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런 일을 시작하신 겁니까?”

    종혁이 알기로 구청에서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걸로 알고 있다. 비록 통번역에 집중되어 있지만 말이다.

    “……자리가 없어요.”

    “인터내셔널 잡은요?”

    종혁이 세운 국내 최고, 최대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알선 기업 인터내셔널 잡. 현재는 국정원이 운영 중이라 구청 등을 통해 알선을 받을 수 있다.

    “인터내셔널 잡?”

    종혁은 아리송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공무원 새끼가 본연의 임무를 잊은 채 소개를 해 주지 않은 것 같다.

    “물론 한국어가 서툰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가내수공업이나 식당 찬모 등 몇 개가 없긴 하지만…… 혹시 최종 학력을 물어봐도 될까요?”

    “대학교를 나왔어요. 전공은 역사학.”

    “그러면 태국 역사에 관심이 깊은 대학 교수들이나 연구 단체와 연결시켜 드릴 수 있을 겁니다.”

    “……?!”

    눈이 동그래졌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나 일하는 거 오빠가 알면 슬퍼해요.”

    “아니…….”

    “괜찮아요. 우리나라에서도 했던 일이니까요.”

    오히려 흔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파는 일쯤은 일상다반사다.

    “당신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태국에서 여성은 재산이에요.”

    그렇기에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일을 하며 그동안 키워 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해야 된다.

    물론 사정이 넉넉하다면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그녀처럼 가난하다면 그렇게 해야 된다.

    또 그렇기에 여성과 결혼을 하기 위해선 처가에 돈을 줘야 한다. 중산층 이상이 아닌 이상, 정말 서로 사랑해 결혼을 하는 경우라도 그래야 된다.

    그게 예의다. 집안의 큰 재산을 떼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태국인들끼리 결혼을 하는 경우엔 딱 한 번 지불하는 걸로 끝이지만 외국인은 달라요.”

    태국인보다 훨씬 돈이 많은 외국인. 매달 처가에 생활비를 줘야 한다.

    그게 계약이다.

    “그런데 공무원 월급은 적죠.”

    둘이 생활하기에도 빠듯한 액수.

    “그래서…….”

    그녀가 몸을 팔아 그 돈을 보내고 있었던 거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옅게 웃는다.

    “그래도 전 행운아예요. 최소한 부모가 업소에 데려다주진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오빠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까요.”

    담담한 그녀의 말에 종혁의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알고 있기에, 몇 번 본 적이 있기에 더 아프게 다가온다.

    ‘무능한 부모들이 딸이 벌어 오는 수익에 기생한다고 했지.’

    생각 이상으로 훨씬 더 성에 개방적인 나라가 태국이라고 해도 몸을 파는 게 좋을 리가 없었다.

    “후. 알겠습니다. 오늘 일은 현식 씨에게 말하지 않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하지만 관두세요.”

    “…….”

    종혁은 입을 다무는 그녀의 모습에 다시 관자놀이를 눌렀다.

    “하아. 그러다 정말 현식 씨와 이혼할 수도 있습니다.”

    불법이라는 게 문제가 아니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폐쇄적인 한국. 만약 현식이 안다면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될 거다.

    “어쩌면 당신을 경멸할 수도 있습니다.”

    그녀가 생각하는 일부 태국인들은 한 번 화를 내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일지는 몰라도 한국인은 아니었다. 충분히 이혼 사유였다.

    “헉?! 하, 하지만…….”

    현식 몰래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었다.

    “약속하세요. 그럼 현식 씨 모르게 할 수 있는 일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종혁은 그녀의 눈이 빛나기 시작하자 국정원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차장님. 접니다, 최종혁. 지금 제 위치로 인터내셔널 잡에 있는 직원 한 명만 보내 주세요. 태국의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아, 성적이?”

    “A플러스로 졸업했어요!”

    “들으셨죠? 예, 예.”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그녀를 봤다.

    “10분 내로 직원이 와서…… 성함이 뭐였죠?”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묻지 않았다.

    “플러이라고 불러 주세요. 얌모낙 오파이암카천 카차쿤.”

    “……역시 태국 이름은 어렵네요.”

    대체 얌모낙을 어떻게 해체하고 조합해야 플러이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태국인들은 같은 태국인들끼리도 이렇게 애칭 비슷한 것을 쓴다. 본이름이 너무 길고 어렵기 때문이다.

    태국의 오랜 지인이자 한때 라이벌이었던 라차논도 꽤 이름이 복잡하고 길었다.

    “호호.”

    “그래도 너무 길게는 숨기지 마세요.”

    부부는 서로 비밀이 없어야 하는 존재라고 했다. 그래야 서로 의지하고 서로를 도울 수 있다고 말이다.

    “현식 씨가 처음엔 화를 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곧 이해해 줄 거예요.”

    “흑!”

    플러이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고, 종혁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달래 주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현식밖에 없는 무서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 보려, 가족을 지키려 노력한 여성.

    비록 그 방법이 그릇됐다고 하더라도 달래 줄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럼 들어가 보세요.”

    인터내셔널 잡의 직원과의 만족스런 상담을 마친 후 연신 허리를 숙이는 플러이에게 손을 저은 종혁은 잠시 밤하늘을 응시했다.

    “후. 그럼 나도 가 보실까?”

    오늘도 한 건 해결.

    만족스럽게 웃은 종혁은 다시 대리기사를 불렀다.

    * * *

    띠디디디디, 띠리릭!

    고요하고 어두운 거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플러이가 거실 불을 켜려다가 부엌을 보곤 깜짝 놀란다.

    “오, 오빠?”

    ‘오빠는 아까 출근했는데?’

    어두운 부엌, 불이 켜진 양초들을 줄줄이 세워 놓은 식탁 앞에 앉아 멍한 눈으로 물총을 발사하는 현식.

    그의 입가가 비죽 비죽 웃는다.

    오싹!

    “오빠!”

    “어? 어어? ……뭐야, 어디 갔다 왔어.”

    귀에 꽂은 이어폰을 뺀 현식이 평소처럼 푸근히 웃으며 다가와 끌어안아 주자 깜짝 놀랐던 플러이의 가슴이 진정된다.

    방금 전 불을 끄고 온 건지 그녀의 코끝으로 지독한 탄 냄새가 스친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신경 쓰지 못했다. 아까 전 종혁이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말하면 안 돼!’

    “자, 잠깐 친구 만나고 왔어. 오빠, 일은?”

    “난 출근했다가 다른 사람이 순번 좀 바꿔 달라고 해서 바꿔 주고 왔어. 밥은? 먹었어?”

    “오빠랑 같이 먹었는데? 오빠 알러이 막막 했잖아.”

    엄청 맛있다는 뜻의 태국어인 알러이 막막. 현식은 자신이 음식을 해 줄 때마다 이 말을 계속 해 주었다.

    “아, 그랬지. 참.”

    “바보. 씻고 와. 술 한잔?”

    “술 좋지! 알았어. 금방 씻고 올게.”

    다시 플러이를 꼭 안아 준 현식이 화장실을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예, 여보세요.”

    -현식아!

    “근수 형님?”

    -휴일에 연락해서 미안한데 지금 당장 좀 와 줄 수 있겠냐? 급해서 그래!

    “아니, 지금 시간이…… 이러면 내일 업무에 지장갑니다.”

    -내가 오죽하면 이러겠냐! 너 오늘 쉬어서 체력 널널 하잖아! 거기 말고 저기! 화점 좀 제대로 보라고! 그럼 오는 걸로 알고 끊는다!

    현식은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바라보다 혀를 차며 돌아섰다.

    “미안. 출근하라네.”

    “오빠…….”

    “다녀올게. 예, 정현식입니다! 지금 근수 형님 출동한 현장이 어디예요? 거기로 곧바로 가겠습니다!”

    쾅!

    플러이는 거칠게 닫힌 문을 보며 양손을 꼭 모았다.

    오늘도 오빠가 무사히 돌아오길.

    오늘도 다치지 않길.

    그녀는 그녀가 믿는 신께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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