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89화>
활활활!
종혁은 불길에 휩싸인 주택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차장님. 요원들 좀 급파해 주셔야겠습니다.”
반경 1킬로미터를 싹 다 훑어야 한다. 그것도 최대한 빠르게.
“최, 차라리 우리가…….”
“아뇨. CIA는 물러납니다.”
여기는 한국이다. 외국인들이 CCTV와 블랙박스를 얻어 내는 데 애로사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낭비할 시간과 혹여 언론에 새어 나갈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차라리 국정원을 기다리는 게 나았다.
오택수에게도 전화해서 순철을 빌려 달라 말한 종혁은 귓가를 자극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실소를 터트렸다.
위이이이이잉!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
“이렇게 빨리 온다고?”
신고가 접수된 후 소방차가 아무리 빨리 출동해도 보통 5분은 걸린다.
그런데 고작 1분 만에 소방차가 오고 있다? 바로 건너편에 소방서가 있는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먼저 연락을 한 거네.”
그게 누구든 말이다.
“하하!”
빠드득!
종혁은 이를 악물며 손을 높이 흔들었다.
“여깁니다! 여기예요!”
* * *
꽈아아앙!
멀리서 들리는 굉음에 잠시 몸을 움츠렸던 최성현이 잠시 방금 전의 일을 떠올린다.
“컵! 커어업!”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진 조성배.
입에 옷이 쑤셔 넣어진 채 발버둥을 치는 조성배의 갈비뼈를 잡아 흔들던 최성현이 나지막이 입을 연다.
“어르신이 누굽니까?”
대체 누구기에 아버지부터 이 늙은이까지 그렇게 충성을 바치지 못해 안달일까.
조성배는 그런 의문을 드러내는 최성현을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넌 모를 거라는 듯.
넌 절대 알 수 없을 거라는 듯.
“흠. 뭐, 그럽시다.”
어차피 어르신이란 존재가 누군지 알고자 해서 조성배를 찾은 게 아니다.
“당신이 죽는 것만으로도, 회사의 눈과 귀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내 목적은 이룬 거니까.”
최성현은 그의 입안에 손을 집어넣어 턱뼈를 잡았다.
그리고…….
빠각!
“으아아아아아아아!”
강제로 턱관절이 뽑히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입안을 가득 채운 재갈을 뚫고 나오는 조성배의 비명.
그러나 최성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뒤이어 그의 몸을 뒤집어 허리뼈를 망치로 후려친다.
퍽! 퍽! 뿌득!
“꺽! 꺼어억!”
눈이 돌아가는 그의 입에서 재갈로 물려 놓은 옷가지를 빼낸 최성현은 전자레인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망치로 가스관을 후려쳤다.
꽝! 쉬이이이이이이!
순식간에 가스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부엌.
최성현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발버둥 치는 그를 지나쳐 현관문 쪽으로 향한다.
“어디 절망 속에서 죽어 봐.”
“아으리…… 우이…….”
움찔!
고개를 돌린 최성현은 의자를 짚고 일어서려 발악하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런 순간에도 가족이 아니라 나으리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들의 충성이.
추하다. 사람의 목숨을, 명예를, 진실을 그렇게나 앗아 놓고도 정작 자신의 목숨은 소중한 저 모습이.
코웃음을 친 최성현은 오일 라이터를 꺼내며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다네.’
달다. 복수의 시작, 그 첫 번째 발걸음을 제대로 떼서 그런지 너무 달콤하다.
불이 켜진 오일 라이터를 땅바닥에 내려놓은 최성현은 현관문 옆, 지하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현재.
굉음이 터진 방향을 본 최성현은 입술을 비틀었다.
“당황스럽겠지.”
회사의 꼬리를 잡았다 생각했는데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 경악, 상실감이 어느 정도일까.
일그러지는 종혁의 얼굴이 너무도 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훗. 이제 시작이다, 최종혁.”
후드를 뒤집어쓴 최성현은 골목에 내려앉은 어둠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 * *
“더 이상 다가오시면 안 됩니다. 물러나세요!”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래?”
“그러게요.”
“승아네는 괜찮아?”
“저, 저희도 유리가 깨지고 화분도 박살 나고 난리가 났어요.”
몰려든 구경꾼들을 주욱 훑은 종혁이 화재가 진압된 현장으로 들어간다.
“아니, 들어오시면 안 된…….”
“경찰입니다.”
“……경찰이라도 아직은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현장에 어떤 위험이 남아 있을지 몰라요.”
“거기 무슨 일…… 어?”
종혁을 가로막은 소방관의 상사로 보이는 인물이 종혁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종혁도 이쪽을 보며 놀라는 소방관을 보곤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루 만이네요, 이근수 소방장님.”
“최 총경님?!”
어제 종혁과 함께 강한 심장에 출연한 이근수 소방장.
“아니, 최 총경님이 여긴 왜……. 아,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죠!”
“선배님!”
“괜찮으니까 통과시켜! 저분이 누군지 알고!”
우물쭈물하던 소방관은 결국 종혁을 통과시켰고, 종혁은 이근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이쿠, 아닙니다. 경찰에 협조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아니다. 화재 현장에선 그 어떤 타협도 없다.
하지만 이근수는 종혁의 부탁이라면 그 어떤 부탁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종혁은 이근수를 향해 싱긋 웃어 주었다.
“그러는 김에 부탁 하나 좀 해도 되겠습니까?”
“따라오세요. 이거 착용하시고!”
이근수는 자신의 소방모를 벗어 종혁의 머리에 씌워 준 후 집 안으로 안내했고,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종혁은 부엌에서 무언가를 들것에 실어 나오는 구급대원들을 막아섰다.
“누구…….”
“어제 내가 말한 기부 이야기 기억하지? 그거 성사시켜 주신 경찰분이야. 보여 드려.”
“헉!”
“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말 복 받으실 겁니다, 형사님!”
“뭐라고? 그분께서 오셨다고?! 아이고, 부장님!”
“우와아아아아!”
“아하하.”
“뭐해! 얼른 안 보여 드리고?!”
“옙! 이쪽으로 와 주십시오!”
종혁은 소방관들이 비켜서자 하얀 천을 걷었다.
그와 동시에 고약한 냄새가, 감히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사람이 탄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며 속을 뒤집었지만 종혁의 시선은 오직 시체에 고정되어 있었다.
새까맣게 타들어 얼굴을 분간하기 힘든 시체.
폭발과 열기에 피부가 벗겨진 듯 군데군데 새빨간 핏물들이 보인다.
‘체구와 옷차림을 보면 맞는 것 같은데…… 특별한 상흔은 안 보이고…….’
종혁은 그의 손목에 채워진 손목시계의 그을림을 닦았다.
“……맞네. 씨발.”
조성배의 시계였다.
확실한 건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해 봐야 나오겠지만, 종혁이 기억하는 조성배가 차고 있던 시계가 분명했다.
‘1963년 12월 17일…….’
무려 15년을 넘게 장기 집권한 독재정권의 수장이 대한민국의 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날짜.
어째서 그 날짜가 새겨진 시계를 차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종혁은 시계에 대해선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는 조성배의 시신을 지나쳐 부엌으로 향했고, 그 뒤를 이근수가 얼른 따라붙었다.
“불탄 시신도 많이 보셨나 보군요.”
사람이 타 죽으면 그 특유의 냄새가 있다. 돼지나 소 따위의 고기가 타들어 가는 냄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역한 냄새가.
그런데 종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이 어린 형사가 거쳐 온 수라장이 범상치 않다는 증거다.
“발화점은 어딘 것 같습니까?”
“가스폭발이니 가스레인지겠죠.”
이근수는 가스레인지가 있었을 거라 추정되는 장소, 부엌의 한구석 뻥 뚫려 버린 벽을 가리켰다.
부엌 전체에 새겨진 패턴 역시 폭발의 근원지가 가스레인지 뒤편 가스관임을 말해 주고 있다.
“아마 피해자는 가스가 새는 것도 모른 채 부엌에 왔다가 레인지를 켰고…….”
불티가 점화되는 순간 뻐엉! 하고 터졌을 거다.
이게 일반적인 가스폭발 사고의 순서다.
그러나 주변을 살피던 이근수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한쪽 벽으로 다가섰다.
“흐음. 흠…… 음?”
“왜 그러십니까?”
“아뇨. 여기 패턴이 좀 이상해서…….”
보통 폭발 사고는 폭발 지점에서부터 바깥으로 탄화의 흔적이 번져 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여긴 뭔가 좀 달랐다.
소방관으로서의 그의 경력이 외치는 직감.
그렇게 빤히 살펴보던 그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이거?”
“대체 뭔데 그러십니까?!”
종혁의 다그침에 벽을 가리킨 이근수의 손가락이 흔들린다.
“이거 발화점이…….”
이근수는 벽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여깁니다, 여기!”
현관문이 아니라 그 옆에 난 지하로 향하는 문.
“불티가 여기서 붙은 것 같습니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한구석을 굴러다니는 오일 라이터.
‘역시! 왜 시신이 그런 건가 싶었는데!’
폭발을 정면으로 받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던 시신의 상태.
발화가 지하부터 시작해 번져 나간 것이라면 납득이 됐다.
‘살해를 당한 거라고?’
종혁의 머릿속에 폭발 당시의 상황이 그려진다.
시신이 탄 정도를 보면 아마 가스레인지 근처 의자에 앉아 있었을 조성배.
아직 커피를 제대로 즐기는 이들이 많지 않은 한국에서 원두커피를 즐길 만큼 향기에 민감한 놈이다.
그런 그가 집 안에 가스가 가득 찰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것도 가스가 누출되고 있는 부엌에 있었으면서?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에 의해 의식을 잃고 있었거나 살해를 당한 직후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문은 남았다.
놈들 회사가 사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 내는 놈들이라고는 하지만, 조성배는 그렇게 간단히 잘라 내기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던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왜…….’
설마 자신에게 정체가 드러난 것을 회사가 알아차려 그의 입을 막기 위해 죽인 것일까.
아니면 회사에 무언가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일까.
‘내가 다가가는 것 자체만으로 이렇게 발작하는 거라고는 볼 수 없어.’
조성배는 회사가 대검찰청에 박아 놓은 끄나풀이다. 그것도 아주 긴 시간 동안.
놈들은 조성배가 아까워서라도 일단 종혁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조성배에 대해 알게 된 것인지 파악하려 했을 거다. 그게 맞았다.
‘그렇다면…….’
놈이 죽인 거다.
자신에게 문자를 보낸 존재가.
‘대체 왜?’
왜 문자를 보낸 후에 이렇게 죽인 걸까.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하마터면 근처의 집들이 모두 날아갈 뻔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를 살해 행각 때문에 애꿎은 피해자들이 생길 뻔했다.
빠드드드드득!
종혁은 지하로 내려가려다 멈칫했다. 얼마나 폭발이 심했는지 지하로 향하는 나무 계단이 모두 박살 나 있다.
자칫 잘못 밟았다간 혹여 남아 있을지 모를 단서가 모두 날아갈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원장님. 저 최종혁입니다.”
종혁은 국과수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은 현장 감식과 시신 부검이 먼저였다.
그래야 뭐가 나와도 나올 것 같았다.
* * *
부우우웅!
칠십대 노인, 사장을 태운 차가 한 고급 주택가의 한 저택 앞에 멈춰 선다.
“도착했습니다, 사장님.”
“대기하고 있어.”
차에서 내린 사장은 5미터 높다란 담벼락을 응시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러곤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지키는 대문을 향해 발을 내딛는 그.
“오셨습니까.”
“사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떠엉!
무전이 들어감과 동시에 열리는 대문.
단아하고 꼿꼿한 조경수와 잔디가 반기는 정원에 들어서던 사장은 커다란 저택의 2층에 서 있는 한 노인, 아니 어르신을 발견하곤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선다.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사장. 이후 그는 빠르게 정원을 가로질러 커다란 저택의 2층으로 향한다.
자신이 왔음에도 등을 보이고 있는 노인의 뒤에 선 사장은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2층 베란다를 웅웅 울리는 그의 진심.
하지만 어르신은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어두운 하늘만을 응시한다.
내일은 비가 오려는지 구름이 잔뜩 낀 도심의 밤하늘.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등 뒤에서 내리쬐는 불빛에 가려진 그의 얼굴이 고요히 일렁거린다.
그러다 밤하늘 유일하게 떠 있는 별, 달이 구름에 숨어 버리자 그의 입술이 달싹인다.
“성배 그 아이가 맞다고 하시던가?”
“유전자 감식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르신께서 물려주신 그 시계를 차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계…… 그래, 그 시계를 말하는 거군.”
십여 년을 장기 집권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으나, 결국 측근의 손에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 각하.
그의 죽음을 통해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것을 알려 주던 시계였다.
그 교훈을 조성배에게도 알려 주고자 물려줬었는데…….
‘그걸 아직까지 차고 있었다는 거냐, 성배야.’
-나으리! 나으리! 여기입니다요, 나으리!
거리에서 구두를 닦던 조성배.
그 솜씨와 정성이 기꺼워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일을 맡겼었다.
“곧 관에 들어갈 이 늙은이가 뭐라고…….”
노인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찰칵! 치이익!
“어르신, 의사가 담배는…….”
“오늘은 눈감아 주시게.”
“……예.”
이런 모습이다. 일개 조직원의 죽음에도 슬퍼해 주는 이런 모습에 반해 버렸던 것이다.
오랜만에 가슴이 술렁인 사장은 재떨이를 찾아 가져왔고, 고맙다 고개를 끄덕인 어르신은 구름이 멀어지며 다시 드러난 달을 응시했다.
“……후우우. 쿨룩!”
“어르신!”
어르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사장이 내미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이걸로 애도는 끝. 조성배도 이제 만족하고 좋은 곳으로 갔을 거다.
어르신의 눈이 무심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최종혁 그 아이가 그곳에 있었다지?”
“예. 조성배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근처의 빌라를 구매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그 아이가 성배를 죽인 건가?”
“그건 아닌 걸로 판단됩니다.”
“그런가……. 그래도 잠시 쉬게 해 줘. 그럼 알아서 성배를 죽인 놈을 쫓겠지.”
자신의 회사를 반토막을 낸 건 괘씸하지만, 그 능력만큼은 높이 살 만하지 않던가.
“예.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어르신은 몸을 돌렸다.
“술 한잔하시겠나?”
“영광입니다.”
“그래. 가지.”
의사의 충고 때문에 얼마 마시지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이 짜증을 달랠 정도는 마실 수 있을 거다.
둘은 몸을 돌려 다시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