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88화 (588/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88화>

    까악! 깍!

    까마귀가 울어 대는 한낮의 대검찰청.

    뒤편에 조성이 된 서리풀공원에 대검찰청 사건 창고의 관리관인 노인, 조성배가 도시락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울어 대는 까마귀를 응시한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나.”

    어느 나라에선 흉조이기도 하고, 어느 나라에선 길조이기도 한 까마귀.

    다른 사람들이 듣기엔 불길한 울음소리처럼 들릴 테지만, 까마귀가 울 때마다 좋은 일이 생겼던 조성배로서는 작은 기대감이 생겼다.

    “퇴근할 때 복권이나 사야겠어.”

    푸근히 웃은 그는 다시 작은 도시락 속 완자를 입안에 집어넣으며 눈을 감았다.

    지이잉! 지이잉!

    “어이쿠.”

    갑작스럽게 울리는 전화에 또 누가 식사 시간을 방해하나 핸드폰을 쳐다봤던 그는 함박미소를 지으며 얼른 전화를 받았다.

    -하부지!

    “그려, 그려. 우리 강아지,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하부지, 밥 먹었…… 아앙! 어머 얘가! 죄, 죄송해요 아버님!

    “아니다. 괜찮다. 그보다 수영이 좀 다시 바꿔 주련?”

    그의 전신에서 따뜻한 아우라가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그럼 이번 주말에 뵐게요, 아버님.

    “오기 힘들면 수영이만 보내도 된다.”

    -호호호호호! 오늘도 파이팅이에요, 아버님!

    그렇게 하루의 활력을 깨우는 행복한 전화와 함께 점심 식사도 마친 조성배는 연한 노란색의 차로 오늘도 기뻐한 입안을 다스린다.

    “앞으로 메추리는 여기서 떼어 와야겠어.”

    요샌 먹는 사람조차 찾기 힘든 메추라기.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메추라기가 얼마나 고소하고, 쫀득하며 맛있는지를 말이다. 한 번 맛이 들리면 요새 사람들이 잘 먹는 치킨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

    조성배는 그중 살을 발라내고 다져 완자로 만들어 노릇하게 구워 낸 것을 가장 선호했다.

    오늘도 흡족한 식사를 한 그는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긴 후 다시 대검찰청으로 향한다.

    그런 그를 반긴 건 사람 한 명 없이 조용한 사건 창고였다.

    중수부 서재와 극비 창고에 잠들어 있는 사건들을 제외한, 이 대검찰청이 생긴 이래 쌓여 온 모든 사건들이 디지털로 변환되면서 사람이 잘 찾지 않게 된 사건 창고.

    그런 장소를 복잡한 눈으로 둘러본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쿨룩! 어이구. 그새 먼지가 쌓였나?”

    살짝 젖은 걸레를 집어 든 그가 언제나처럼 창고를 닦기 시작한 그때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박 검사님.”

    삼십대 초반의 앳된 검사가 들어오자 조성배의 눈가에 푸근함이 깃든다.

    “오늘도 사건을 찾으러 오신 겁니까?”

    “예, 예. 사건 번호가…….”

    “어휴, 제겐 그렇게 존대를 안 하셔도 된다니까요.”

    “……아하하.”

    이 대검찰청에서 너보다 못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선배검사의 엄명이 있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조성배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어린 검사를 안쓰럽다는 듯 쳐다봤다.

    올해 하반기 인사이동 때 학연이라는 라인을 타고 대검찰청에 온 어린 검사.

    그런데 하필 그가 배정된 부서의 선배 검사가 하필 그가 나온 대학과 경쟁심을 불태우는 대학 출신이었다. 그 때문에 이 어린 검사는 갑질 아닌 갑질에 매일같이 죽어 나가는 중이었다.

    일종의 괴롭힘이자 신입 길들이기.

    골치 아픈, 그리고 평상시 잘 찾지도 않는 사건들을 찾아 공부라는 명목으로 고생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 사건 번호면…… 이쪽입니다.”

    따라오라고 말을 한 조성배는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는 철제 수납장들 사이사이를 누비더니, 이내 구석의 한 수납장 가장 안쪽에서 박스를 꺼내어 넘겨주었다.

    “이겁니다.”

    “와, 이것도 외우고 계셨네요?”

    지금껏 찾아올 때마다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사건 서류를 찾아 주었던 조성배. 그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하루 종일 사건 창고를 뒤져야 했을 터였다.

    조성배는 그에게 은인이나 다름이 없는 인물이었다.

    “아! 아무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렁차게 외친 검사는 돌아나가다 “응? 이건 먼지가 없네.”라고 중얼거렸고, 조성배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무시하며 다시 책상으로 걸어가 그사이 식어 버린 찻잔을 들어 올렸다.

    호록!

    “……다시 타야겠네.”

    “그럼 제 것도 좀 타 주시죠.”

    “음?”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어제의 녹화가 길어져 오늘에서야 찾아오게 된 종혁이 싱긋 웃었다.

    어느새 옆에 서서 책상을 짚고 있는 종혁을 발견한 조성배는 눈을 껌뻑거리다가 손뼉을 쳤다.

    “어이쿠! 그때 그 명예 사무관님이시구나! 이게 몇 년 만입니까, 사무관님.”

    “하하. 지금은 경찰입니다.”

    “저런. 경찰이 되셨습니까? 검사가 되실 줄 알았는데…….”

    “제겐 경찰이 더 맞더라고요.”

    “그래요. 사람은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혹시 김 의원 사건 기억하십니까?”

    종혁이 한상원을 잡은 공로를 인정받아 중앙지검의 인턴, 명예 사무관으로 들어갔을 당시 해결한 유흥업소 사건.

    그 사건에서 발견된 이중 장부에서 연결점이 드러난 김성령 의원은 서울의 어느 재개발에도 연관되어 있음이 드러나자 돌연 자살을 했다.

    “그리고 1996년 서울시 3선 시의원 박태성 자살 사건도 좀 보고 싶습니다.”

    김성령 의원과 같은 방식으로 회사에 의해 자살로 위장되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

    종혁은 사건 번호들을 말해 주었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조성배가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그 사건들을 찾는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종혁은 은근슬쩍 물어 오는 그를 빤히 바라봤고, 조성배는 갑자기 쳐다보는 종혁을 보며 의아해했다.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새 자살이 증가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언제나 이맘때가 되면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죠.”

    어느덧 11월, 벌써 수능 시즌이다.

    이때가 되면 수능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고등학생의 자살이 상당수 늘어난다. 수능이 끝난 이후에는 시험을 망쳐 자살하는 고등학생들까지 더해지고 말이다.

    “쯧쯧쯧.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들이…….”

    “그러니까요. 그렇다 보니 갑자기 생각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제가 처음으로 맡은 사건과 연관된 인물이 이 김성령 의원이었으니까요.”

    정확히는 사망한 사건.

    “그렇죠. 그렇다면 그러실 수 있죠. 아, 김성령 의원 사건은 이겁니다.”

    조성배가 철제 수납장 맨 아래칸 안쪽에서 박스를 꺼내 든다.

    “감사합니다. 음? 먼지가 별로 없네요?”

    “올해 새로 부임해 오신 검사님들이나 사무관님들께서 찾으시더군요.”

    “아하. 박태성 의원 사건은 어디에…… 아, 저쪽이었죠?”

    종혁은 조성배처럼 수납장 사이를 누벼 한 수납장 앞에 섰다.

    “그게 여기…… 응?”

    주위를 둘러본 종혁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 사건은 저기 있습니다. 잠시만요.”

    사다리를 가져온 조성배는 철제 수납장 맨 윗칸 안쪽에서 박태성 의원 사건의 박스를 꺼냈다.

    “오, 이것도 먼지가 별로 없네요? 관리를 잘하시나 봐요.”

    “허허. 어떡하시겠습니까? 대여를 하시겠습니까?”

    대여를 한다면 그 절차가 꽤 복잡해질 것이다. 종혁은 검찰이 아니라 경찰이니 말이다.

    “아니요. 갑자기 생각이 나서 온 거라 잠깐 살펴만 보고 갈 겁니다. 그럼 일 보세요.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 제가 제자리에 돌려놓겠습니다.”

    사건 창고 한구석에 있는 책상에 사건 박스를 내려놓는 종혁의 말에 조성배가 펄쩍 뛰는 척을 한다.

    “어이쿠, 형사님께서 이 늙은이의 일감을 뺏어 가려는 겁니까?”

    “끄응. 그럼 다 보고 반납할게요.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전 신경 쓰지 마시고요.”

    “허허. 커피라도 드릴까요?”

    “그럼 좋죠! 감사합니다!”

    조성배가 돌아서자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잠시 몸을 일으킨 종혁은 근처 수납장의 맨 아래에 손을 집어넣어 쓱 훑었다.

    ‘역시.’

    손에 묻은 먼지를 보며 종혁은 코웃음을 흘렸다.

    맨 아래칸에 있던 김성령 의원 사건 박스.

    그리고 맨 윗칸에 놓여 있던 박태성 의원 사건 박스.

    맨 아래와 윗칸에 놓여 있던 애들까지 먼지 없이 관리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이 서류들만 특별히 관리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종혁은 내색하지 않은 채 책상에 앉아 김성령 의원의 사건 박스부터 열어젖혔다.

    그렇게 얼마나 훑어봤을까.

    ‘응?’

    잠시 손을 멈춘 종혁의 입술이 꿈틀거린다.

    ‘요것 봐라?’

    회사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기에 김 의원과 관련된 사건 파일에 난 온점 하나까지 싹 다 외웠던 종혁이다.

    그런데 그의 기억과 다른 단어들이 보였다.

    본래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확신을 내리지 않았는데, 몇 개의 단어가 교묘하게 바뀌며 자연스럽게 자살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중수부 검사가 다시 사건 파일을 본다고 해도 ‘내가 이때 이렇게 생각했나?’라고 오해할 수준이었다.

    그 단어들을 손가락으로 훑은 종혁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고쳐 쓴 흔적이 전혀 없어.’

    그렇다면 아예 이 페이지 전체를 새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아주 정교한 필적 위조였다.

    ‘이 새끼가 이곳에서 하는 일이 이거구나?’

    회사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사건을 조작하는 것.

    후에 다른 누군가가 사건 파일을 확인하더라도 회사가 의심받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리고…….’

    저벅저벅.

    “여기 커피입니다.”

    종혁은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음. 커피 향이 좋네요.”

    “이 늙은이의 몇 없는 취미죠. 그런데 파일은 잘 읽히나요?”

    검사가 사건 기록을 정리하는 데는 몇 가지 타입으로 나뉘는데, 그중 대표적인 건 두 가지다.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알 수 있게끔 기승전결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부류.

    그리고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규칙 없이 정리하는 부류.

    “성격이 깔끔하신 검사님이 작성하신 것 같네요. 잘 읽힙니다.”

    종혁은 이쪽을 빤히 살피는 그에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고, 조성배 또한 마주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주세요.”

    “예. 수고하세요.”

    종혁은 멀어지는 그를 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향긋하고 고소한 원두 커피향이 콧속을 맴돌자 종혁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회사와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는 건 아닌 것 같고.’

    종혁과 마주했을 때 조성배에게선 어떠한 흔들림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어떠한 상황에서든 냉철함을 유지할 수 있게끔 훈련을 받았겠지만, 종혁이라면 이를 갈고 있을 회사의 인물이라면 일말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부자연스러웠다.

    이는 즉, 최근 종혁이 회사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 모를 수도 있다는 뜻.

    ‘이 골방에 틀어박혀 묵묵히 일만 한다는 건가?’

    “재밌네.”

    왠지 길이 보이는 것 같다. 조성배를 통해 놈들의 본사로 향할 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종혁은 돌연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대체 누굴까.’

    자신에게 이 정보를 알려 온 사람은.

    ‘어떤 의도일까.’

    혹여 놈들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회의를 느끼고 내부 정보를 건네는 것일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음에 종혁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김 의원의 사건 파일을 마저 읽어 내려갔다.

    ‘여기도 단어가 바뀌었네.’

    “진짜, 씨발.”

    * * *

    “이거 귀중한 시간을 뺏어서 죄송합니다.”

    “허허. 아닙니다.”

    조용히 사건 파일만 읽었는데 무슨 시간을 뺏었을까.

    종혁은 손을 젓는 그를 향해 고맙다 고개를 숙인 후 사건 창고를 빠져나갔고, 조성배는 사건 박스들을 열어 사건 기록들이 온전히 있나 확인해 보았다.

    이것은 그의 고유의 업무.

    그렇게 꼼꼼히 살피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두 박스를 원래의 자리에 되돌려 놓았다.

    그런 후 그는 종혁이 앉아 있던 책상으로 다가가 근처의 철제 수납장 속 박스들을 하나씩 꺼내어 살펴보았다.

    움찔!

    ‘이건?’

    하나의 박스, 그 뚜껑을 누군가 손으로 훑은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성배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혹시 무슨 냄새를 맡은…….’

    그는 종혁이 앉은 책상에 놓인 메모지 뭉치를 연필로 긁어 보았다.

    “흐음…… 음?”

    조성배는 책상 아래에 떨어진 만년필을 들어 올렸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그걸 들고 얼른 사건 창고를 뛰쳐나갔다.

    “……그새 가 버렸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빠른 것 같다.

    혀를 찬 그는 돌아서며 만년필의 머리를 잡아 돌렸다.

    “아니군.”

    깔끔하게 돌려진 만년필에선 그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조성배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전화기를 들었다.

    “예, 강철선 검사님. 여기 대검 사건 창고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혹시 최종혁 형사라고 아십니까? 예전에 검사님 밑에서 명예 사무관으로 일했던 사람인데, 오늘 만년필을 놓고 가셔서 말입니다.”

    그는 만년필을 책상 서랍에 넣으며 강철선 검사와 통화를 이어 갔다.

    자신의 책상 근처에 손톱보다 작은 도청기가 숨겨졌다는 것을, 자신이 만년필을 들고 사건 창고를 뛰쳐나간 사이 다시 돌아온 종혁이 도청장치를 숨겨 뒀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어구구.”

    어느덧 시간이 오후 6시가 되자 허리를 두드리며 몸을 일으킨 조성배.

    마지막으로 대여 장부를 확인한 그는 사건 창고의 불을 끄며 대검찰청 건물을 벗어났다.

    “끄으으! 오늘도 끝났구만.”

    푸근히 웃은 그는 대검찰청 한구석에 세워진 허름한 엘란트라를 몰고 보금자리로 향했다.

    그런 그의 차가 완전히 멈춘 건 북창동의 어느 2층 주택 앞이었다. 검사도 아닌 관리인에 불과한 그에게는 너무도 과분한, 아니 어떻게 매매했는지부터가 의문인 커다란 주택.

    “그래요. 최종혁이 무언가를 찾는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네. 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 거실의 불을 켠 그는 잠시 인기척 하나 없는 거실을 둘러보다 곧바로 부엌으로 향한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는지 도마를 꺼내고 칼을 꺼내 드는 그.

    찬장을 열어 무언가를 찾던 그의 낯빛이 순간 딱딱하게 굳는다.

    ‘없다!’

    없다. 있어야 할 게 없었다.

    그때였다.

    “이걸 찾으십니까, 영감님?”

    흠칫!

    몸을 돌린 조성배는 웬 낯선 사내, 최성현의 손에 들린 권총을 보곤 이를 악물었다.

    “……네놈은 뭐냐.”

    “글세…… 저승사자?”

    최성현의 입술이 살의를 베어 물었다.

    * * *

    “여기 있습니다.”

    한편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조성배의 주택이 잘 내려다보이는 어느 빌라 안.

    CIA 요원이 넘겨준 조성배의 자료를 훑은 종혁은, 오늘 일이 많아 늦게 온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1981년이라…….”

    조성배가 대검찰청 사건 창고의 창고지기로 입사를 한 게 1981년 7월. 이후 그는 묵묵히 사건 창고를 지켰다.

    “하하.”

    콰앙!

    대체 이 삼십여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이 조작된 것일까.

    대체 뭘 얼마나 조작했기에 창고 관리인이 저런 주택에서 살 수 있는 것일까.

    철저히 성과제인 놈들의 회사.

    그걸 생각하니 열이 솟구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얼마나 이 짓을 했으면 동요조차 없는 거야!’

    도청을 통해 조성배를 파악했지만, 그는 그 어떤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 연락을 하지 않았고, 오늘도 묵묵히 창고지기 일을 하다 퇴근을 했다.

    빠드득! 빠드득!

    “어떡할까요, 최.”

    조성배를 고문하거나 그를 궁지에 몰아 정보를 캐낼 거냐는 물음.

    CIA 요원의 눈에 잔인함이 맴돌자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방식으로는 놈들에게서 정보를 얻지 못해.’

    “일단은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죠.”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조성배가 그 어떤 의심도 없이 회사와 연락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간절히, 아주 간절히 구해 달라고. 찾아와 달라고 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그의 머릿속에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예. 언제든 말해 주십시오. 그때까지 저희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렇게 해 주시고, 계속 감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가 누구와 연락을 하는지, 밥을 먹을 때 누구와 마주치는지,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 어떤 인물들이 그 화장실에 들어가는지까지 모두!”

    “예. 걱정 마십시오, 최.”

    든든한 요원의 모습에 종혁은 고개를 숙였다.

    “그럼 부탁드리겠…….”

    꽈아앙!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던 종혁은 창문 밖, 화마가 솟구치는 조성배의 집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빌라를 뛰쳐나갔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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