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87화>
“화요일 저녁! 여러분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 이야기! 강한-! 심장! 안녕하십니까, 장호돈입니데이!”
“아, 진짜 그런 거 하지 말라니까요. 하하. 이준기입니다!”
“와아아아아!”
녹화 시작을 알리자 무대 세트에 앉은 출연자이 각자 배정받은 팻말에 자극적인 제목들을 쓰기 시작한다.
‘불장난으로 인생 끝? 오, 센데?’
넌 끝까지 잡는다, 그놈 목소리, 급박한 11분 등 모두 치열하고 험한 일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제목들이 모두 강렬하다.
그에 장호돈과 이준기, PD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리고, 종혁의 얼굴에는 작은 긴장감이 서린다.
보다 많은 옥석을 지원하게 만들고자 출연을 결심하게 만든 이번 프로젝트. 조금이라도 밀렸다간 저쪽에게 다 뺏길 판이다.
그에 경계하며 소방관과 구급대원들을 본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저쪽도 작정하고 나왔네.”
경찰보다 더 지원율이 낮은 게 바로 저들 소방관과 구급대원이다.
저쪽도 만반의 준비를 한 것 같았다.
종혁은 입술을 달싹였다.
“이거 잘못하단 죽 쒀서 남 주게 생겼습니다. 파릇파릇한 후배들 받아야죠?”
움찔!
나지막한 종혁의 말이 울리자 전의를 불태우는 그들.
아까 종혁에게 한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들도 후배가 필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아니, 여실히 느끼고 있다.
일할 인력이 부족해 죽어 나가는 경찰청과 경찰서. 읍면 단위의 시골 경찰들마저 콜 업을 할 정도였기에 그들로서도 밀릴 수 없었다.
“와, 모두 급박한 현장에 계신 분들이라서 그런지 에피소드들이 후끈후끈한데요?”
“이런 게 바로 우리 일반 시민들이 모르는, 하지만 알아야 되는 저분들의 노고가 아닐까 싶습니더. 그러는 의미에서 함성부터 지르고 가 볼까요?”
“예!”
“저기 산불 감시팀!”
“와아!”
“에이, 왜 이렇게 목소리가 작습니꺼? 그래서 불 끄겠어요? 산불 감시팀!”
“우와아아아아!”
“구급대원팀!”
“우와아아아!”
“경찰팀!”
“으아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아아!”
“하하, 좋습니데이! 그럼 시작해 봅시더!”
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 *
“음…… ‘청장님, 옷 좀 사 주세요!’라고 적어 두셨는데, 설마 옷도 못 사 입고 다니세요?”
“하하. 그건 아닙니다.”
“그럼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전 인터뷰 때문인지 장호돈이 진중한 표정으로 묻자 중년인이 카메라를 보며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십니까. 소방장 이근수입니다. 이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저희의 소속에 대해서부터 짚고 넘어가야 가야 합니다. 저희 소방방청은 현재 행정자치부에서 분리 독립이 되어 소방방재청으로 승격을 하게 됐습니다.”
2004년 이전까지 행정자치부 민방위재난통제본부 소방방재 담당이었던 소방방재청.
하지만 이건 불안전한 독립이었다. 소방방재청에 예산을 주는 곳이 바로 지방자치단체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저희가 입는 방화복, 방열복 등은 모두 소모품입니다. 그래서 불구덩이 속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그 내구도가 확확 깎입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뛰는 소방관들은 언제나 예산이 없어 그 방화복 등을,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구하기 위한 무기들을 제때에 보급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많은 소방관들이 사비로 이 소방복들을 구입하지만…….”
한 벌당 백만 원, 2백만 원씩 하는 걸 어떻게 쉽게 살 수 있을까.
그렇다 보니 불을 막아 주지 못하는 소방복을 입은 채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다 불에 타 죽고, 현장에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숨 막혀 죽는다.
고양이나 어린아이 등 나무처럼 높은 곳에 올라간 구조자들을 구할 때 아래에 매트가 없어서 떨어져 중상을 입거나 죽는 소방관이 한 해에만 몇 명, 몇 십 명씩 발생한다.
이런 그의 처절한 말에 소방관들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험한 악조건 속에서 국민들을 구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사람들은 잠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고, 스튜디오엔 숙연함이 감돌았다.
“그러니 청장님! 제발 저희 옷 좀 사 주십시오! 계속 불 속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와아아아아!”
웃고 있기에 더 슬픈 고백.
종혁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많이 센데?’
하지만 그보단 이들의 애환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가질 않아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경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방관. 화재 현장이나 추락, 자살 등의 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을 하는 게 바로 저들이기 때문이다.
“하.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동안 몰라서 죄송하고,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저희를 지켜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호돈과 이준기가 허리를 숙이자 더 숙연해지는 스튜디오.
“자, 그럼 이번에는 경찰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야…… 이거, 이거 눈에 확 띄는 제목이 보이는데요?!”
장호돈의 시선이 종혁의 옆에 꽂힌 팻말에 고정된다.
한상원, 그 도주의 끝.
“하, 한상원이면 그 사람 맞죠? 대한민국 최악의 탈옥수?”
“오오. 우리 준기씨, 한상원을 알아요? 그땐 우쭈쭈 엄마 맘마 먹고 있을 때일 텐데?”
“네. 확실히 형만큼은 못 먹을 때긴 했죠.”
“……?!”
갑작스런 공격에 놀랐던 장호돈은 이내 능글맞게 웃으며 최종혁을 봤다.
“우리 최종혁 총경님께서 국민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하진 않으실 것 같고…….”
“아, 저분에 대해 아세요?”
“알죠. 저분이 우리나라 갱찰의 엘리트 아입니꺼! 보자, 내가 저분을 알게 된 게…….”
“혹시 청탁? 지금 청탁을 받고 에피소드 채택을?”
“준기야?!”
“하하.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경찰청 홍보부의 최종혁 총경입니다. 장호돈 씨와는 제가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라는 지금은 사라진 부서에 있을 당시에 알게 됐죠.”
“아, 무슨 일을 하는 부서인지 이름만 들어도 알겠네요. 그런데 혹시 지금 나이가…….”
“스물아홉 살입니다.”
“……말이 돼요?”
이준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경악하며 종혁을 본다.
“와 말이 안 되는 기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모습에 이준기는 가슴을 쳤다.
“군대로 따지면 저분의 지금 계급이 소령, 아니 그 이상이라는 거예요! 와, 씨.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뭐, 뭐라꼬? 그기 참말이가? 어이, 최 총경. 이 말 진짜가?”
“제가 경찰 역사상 최연소 총경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경찰대 출신이라 경위로 시작해서 생각하시는 것만큼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경찰대요? 와, 거기 들어가기 엄청 힘든데.”
“그 정도가?”
“한국대 바로 아래 수준이라고 보시면 돼요. 아니, 체력 능력까지 보니까 한국대에서도 몇몇 학과보다 더 들어가기 힘들다고 보는 게 맞겠네요.”
“와, 대단하긴 하네. 아! 이만 본론으로 넘어가서! 그런 똑똑한 엘리트 최종혁 총경께서는 우예 한상원 이야기를 가져오신 겁니까?”
한상원이 체포됐을 당시엔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종혁. 딱히 연결점을 떠올릴 수 없었기에 장호돈은 의아함을 표했다.
“그 한상원에 대한 결정적이 제보를 한 게 저였거든요.”
쿵!
이번엔 같은 경찰들도 놀라서 종혁을 쳐다봤다.
1997년 탈옥을 해 대한민국을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탈옥수 한상원.
종혁은 그를 검거할 수 있었던 그날의 일에 대해 맛깔나게 풀어 나가기 시작했고, 시청률이 오르는 듯한 소리에 김상혁 PD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종혁의 에피소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 * *
“잠시 끊어 가겠습니다!”
“어우.”
“아, 목이야. 여기 물 어디서 받으면 됩니까?”
“제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거긴가요?”
순식간에 부산해지는 스튜디오. 김상혁 PD는 카메라가 낯설 텐데도 어색함 하나 없이 입담을 풀어내는 출연자들에 올라간 입꼬리를 내릴 생각조차 못했다.
그중 단연 최고는 역시나 종혁이었다.
‘이거 쳐내는 것도 문제겠구나!’
종혁의 에피소드를 다 내보냈다가는 그냥 강한 심장 최종혁편밖에 안 되는 수준.
사전 인터뷰는 맛보기였다는 듯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에피소드에 그는 행복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와, 그 사건도 니가 해결했다는 기가?”
“네, 뭐 어쩌다 보니…….”
“종핵아. 니 주위 사람들이 뭐라 안 하드나? 굿 한번 해 보라꼬?”
“풉! 콜록콜록! 아, 형! 그게 무슨 말이세요?”
“하하.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그런 사건이 생길 때마다 듣는 얘기인걸요, 뭘.”
특히 오택수와 김종두 과장이 많이 했다.
“그래도 확실히 그 정도는 해야지 니처럼 되는가 보다. 그제?”
“그렇죠. 아니면 불가능하죠.”
진급을 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그 계급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근무 일수라는 게 있다. 종혁은 초대형 사건들을 통해 그 근무 일수를 씹어 먹은 것이었다.
“하지만 옛날과는 달리 경직된 모습들이 차차 사라지고 있어서, 능력과 실적만 있다면 순경으로 시작해서 치안정감까지 오르는 일도 점차 늘어날 겁니다.”
회귀 전에는 능력과는 별개로 경찰대 출신이 간부 자리를 절반 이상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다를 터였다.
국민을 지키는 데 중요한 건 출신이 아니라, 마음가짐과 능력이었다.
“그리고 수사부서에 전문가들도 많이 늘릴 예정이고요. 실제로 사이버 범죄가 판을 치면서 사이버 수사에 특화 된 전문가들을 채용하고 있어요.”
“아따, 뭐가 많이 바뀌는가 보다. 그제?”
“계속 바뀌어 가려고 노력 중이죠.”
범죄의 수법이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민원실도 차츰 법 전문가들로 채워질 거니까 신고를 할 때 어느 부서로 가야 할지 모르는 일들도 줄어들게 될 거예요.”
또 이런 전문가들을 채용하면서 상여금 시스템도 조금씩 손을 보고 있는 중이다.
“오오!”
“부장님.”
“어, 응.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얼른 가 봐라.”
고개를 숙이며 스튜디오를 빠져나온 종혁은 최재수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이스 어시스트.”
딱 좋을 때 끊어 줬다.
이제 장호돈과 이준기는 자신이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경찰들의 에피소드에 추임새를 넣어 줄 터.
‘소방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 촬영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건 경찰이 될 거다.
‘그래도 미안하니까…….’
종혁은 화장실을 가려는지 스튜디오를 빠져나오는 이근수 소방장에게 다가갔다.
“방금 전 이야기는 정말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소방관들에게 그런 애환이 있는지 몰랐네요.”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자신들의 의도대로 된 것 같아서 참 기꺼웠다.
이제 남은 건 소방관 지원율을 높이는 것. 사람을 구하는 기쁨에 대해 열심히 말할 일만 남았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기부를 좀 하고 싶은데……. 돈이 좋을까요, 장비가 좋을까요?”
“아이구. 그런 것을 바라는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기왕이면 장비가 좋죠.”
돈이야 어디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지만 장구류는 아니다. 종혁이 뭘 얼마나 기부할지는 몰라도, 분명 혜택을 보게 될 소방관이 생기게 될 거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기뻐할 수 있었다.
“풀세트가 얼마 정도 하죠? 아니다, 잠시만요?”
종혁은 헨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헨리. 네,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이근수 소방장을 봤다.
“5분 안으로 소방방재청에 미국의 사회복지재단 기빙과 KP보험, 한국의 행복의 쉼터 재단, 그리고 경찰청의 이름으로 장구류 일체 30만 세트에 대한 기부 의사가 전달될 겁니다. 방송 방영 날짜부터 1년에 3만 세트씩 10년에 걸쳐 지급될 테니까 앞으로 자비로 방화복 등을 사는 일은 많이 줄어들게 되실 거예요.”
쿠웅!
“……예?”
“그리고 정신 상담 비용이 부담되신다면 여기 행복의 쉼터 재단으로 연락해 보세요. 이곳이라면 충분히 여러분을 도와줄 수 있을 겁니다.”
“예?”
“국민의 안전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종혁은 굳어 버린 그를 놔둔 채 화장실로 향했고, 멍하니 그런 종혁을 바라보던 이근수 소방장은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어, 재석아. 난데.”
소방방재청 본부에서 일하는 동기.
“혹시 미국의 기, 기빙? KP? 그런 곳과 경찰청, 행복의 쉼터 이름으로 기부 의사 들어온 거 있냐?”
-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 안 그래도 지금 그것 때문에 청이 뒤집혔는데? 진짜냐, 가짜냐로 싸우고 있는 중이야. 진짜로 치기엔 너무 많은 양이라서…….
“야! 그거 진짜니까 무조건 받아! 무조건, 씨발!”
-뭐야, 뭔데? 너 뭐 알고 있지? 빨리 말해, 새꺄!
“일단 받고 보라고!”
간절한 소방관의 외침이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한편 방송국 건물 밖.
밖에 나와 담배를 문 종혁이 나형재 대변인과 통화를 하고 있다.
“예, 방송 방영일에 그런 식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으헛!
“이거 정치인도 끼워 넣으면 그림이 좋을 것 같은데, 청장님 생각은 어떠신지 물어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 어. 잠시만…… 억?! 최 부장, 나야! 흐허허허헛! 역시 최 부장! 그런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너무 안되어 보여서 제가 미국에서 알게 된 분들에게 연락을 좀 했더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해 주셨습니다. 아마 지금쯤 소방방재청으로 기부 의사가 전달됐을 테니 연락을 하실 거면 빨리 돌리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 알았어!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뚝!
통화가 종료된 핸드폰을 보던 종혁은 피식 웃으며 현몽준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최 부장이 고기를 좋아했었죠?
“근시일 내로 시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래요. 먼저 끊겠습니다.
이번 기부에 나설 정치인들의 선두엔 현몽준이 설 터. 이걸로 정치인들이 자신이 만든 공을 다 뺏어 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됐다.
경찰, 소방청, 현몽준 모두 윈윈 하는 일.
‘대통령 됩시다, 당대표님.’
이후 권회수와도 통화를 끝낸 종혁은 기지개를 켰다.
“끄아! 이거 기부 하는 것도 힘들구만?”
“부장님이 힘들게 만드신 거죠. 30만 세트가 뭐예요, 30만 세트가.”
“시끄러워. 팩트 폭행도 폭행이다.”
“진짜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는지…….”
‘미래에 나오는 말이다, 짜샤.’
“그럼 들어가자. 사람들 기다리겠다.”
“옙!”
종혁은 담배를 끄며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응? 누가…….”
-대검찰청 사건창고 관리관 조성배. 회사 직원입니다, 최종혁 씨.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