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86화 (586/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86화>

어느덧 붉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들이 저물어 가며 겨울을 기다리는 늦가을.

청담동의 한 헤어숍이 부산스럽다.

“청소는 다 했어?!”

“저거 치우라고 내가 몇 번 말했어?!”

“저긴 또 왜 먼지가 있는 거야?!”

언제나 깨끗한 숍임에도 원장의 얼굴엔 초조함이 가득하고, 직원들도 긴장한 얼굴로 빠르게 움직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강남에서, 아니 이 서울에서 유명한 부동산 부자가 단체 손님과 함께 곧 들르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세 들어 사는 이 청담동 한복판 건물의 건물주가.

“오, 오셨습니다!”

저벅저벅.

가게 입구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원장이 잰걸음으로 다가가다 멈춘다.

“와, 여기가…….”

“어이구. 머리는 이발소면 충분한데.”

수염이 덥수룩하고, 피부가 거칠며, 옷도 추레한 사람들. 청담동이 아니라 어디 공사장에 어울리는 외모들에 원장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얼굴도 하얗게 질린다.

“오, 오셨어요, 최 부장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환골탈태를. 범죄자인지, 노숙자인지, 경찰인지 분간이 안 가는 이 인간들을 훈남훈녀로 바꿔 줄 환골탈태를.

그 지옥 같은 난이도에 원장은 울고 싶어졌다.

* * *

척척척!

정복을 입은 경찰들이 방송국 로비를 가로지르자 방송국 관계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찔리는 게 없음에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오셨습니까, 부장니임…….”

로비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뛰어나온 김상혁 PD가 종혁의 뒤를 따르는 경찰들을 보곤 눈을 껌뻑인다.

“……경찰은 지원 조건에 외모도 있는 겁니까?”

“하핫!”

“이거, 와…… 이분들이 며칠 전 그분들이 맞는 겁니까?”

어차피 안전지킴이 특집이니 외모야 별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 않은가.

게다가 더 보기 좋은 건 꽃단장을 한 게 어색한지 자꾸 꼼지락거리는 그들의 모습이다.

그러며 언뜻언뜻 드러나는 거친 향기.

‘이거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강한 심장은 출연자들에게서 진솔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확 사로잡을 만한 자극적인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송이다.

그 이야기가 지나치게 과장된 느낌을 주거나 작위적인 느낌을 주어서 결코는 안 됐다.

그에 리얼한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출연자들이 오늘 무슨 이야기를 꺼낼 것인지 그리 심도 깊게 물어보지 않는 모험을 감행한 김상혁 PD는 스스로에게 엄지를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손수 대기실까지 안내를 한 김상혁 PD는 조용히 종혁을 불렀다.

“저 최 부장님, 그때 말하신 에피소드들은…….”

“아, 혹시 너무 과한가요?”

“아뇨, 아뇨. 부디 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을 뒤집은 초대형 사건들 가운데 시청자들이 주목할 만한 몇몇 사건들을 직접 수사했다는 종혁.

오늘 최고의 입담꾼은 종혁이었다.

“아, 그런 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정말 부탁드리겠습니다!”

종혁의 입만 열려도 시청률을 따 놓은 당상이다.

“하하. 예.”

김상혁 PD는 고개를 연신 숙이며 다른 대기실로 들어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다 경찰 대기실로 들어선 종혁은 안에 펼쳐진 광경에 흐뭇하게 웃었다.

“어우. 이거 오랜만에 정복을 입으니…… 살쪘나?”

“에이, 씨. 머리는 또 왜 이렇게 가려운 거야?”

“어우, 배고파. 누구 먹을 거 없어요?”

“여기 먹을 거 있어요!”

정복 상의를 풀어 헤친 채 누울 곳을 찾는 경찰이나 뾰족한 걸 찾아 머리를 긁는 경찰, 화장이 답답한지 자꾸 얼굴 여기저기를 만지며 과자를 씹는 그들.

방금까지 절도 있게 움직였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한량이 따로 없는 모습들에 종혁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자, 다들 주목.”

그제야 종혁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이들은 금세 자세를 바로 했다.

“방송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점검하겠습니다. 살인 사건?”

“현장이 어땠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중점에 둔다!”

그걸 모두 지켜본 경찰의 심정이나 그로 인해 발생한 트라우마는 절대 언급 금지.

“학교폭력?”

“피해자의 심정을 중점적으로 설명하며, 경찰이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언급한다.”

그 어떤 지옥이라도 경찰이 나서면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어필하는 거다.

“사기?”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고, 위로는 북한이다. 튀어 봤자 잡힌다!”

“외부 압력?”

“좆이나 까!”

“푸하하하핫!”

“호호호호호!”

짝! 짝! 짝!

“굿.”

완벽히 준비가 된 그들을 모습에 엄지를 치켜든 종혁은 한 사십대 여경을 바라봤다.

“광주 동부서 고모님이랑 다른 서 왕언니들은 기존의 여경들이 신규 여경들을 어떻게 케어할 수 있는지 최대한 맛깔나게 설명해 주세요.”

“네에!”

“아,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거기서 한발 더 나가면 저희 상부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아슬아슬한 거 아시죠?”

지나치게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경찰 조직에서 합당한 권익을 보호받기 위해 뭉쳤던 여성 경찰들.

하지만 본래 취지를 벗어난 도를 넘어선 행동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가령 인사과장이나 서장, 청장의 고유 권한인 인사 문제까지 개입하려고 한다든지 말이다.

“마땅한 권익을 주장하는 것까진 뭐라 안 하겠는데, 선을 넘는다면 곧바로 수술 들어갑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미 수천 명의 목을 날렸는데 몇 백 명 더 날리는 게 대수일까.

아니, 각 경찰서나 경찰청에서 그런 일을 주도하는 이들 몇 명만 쳐내도 충분할 것이다.

이런 서늘한 말에 낯빛이 파랗게 질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여경들.

고작 29살에 본청 홍보부 부장이 된 엘리트 간부다. 결코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종혁은 이번엔 남경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건 남경들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들의 불만은 저희가 더 귀 기울이고, 앞으로 더 노력할 테니까 적당히 합시다. 진짜로.”

지독한 침묵이 대기실에 내려앉자 종혁은 코웃음을 쳤다.

“그럼 쉬고들 계세요. 얼굴이랑 머리는 절대 건드리지 마시고요.”

말을 하다 보니 결국 쓴소리를 하게 되어 기분이 좋지 않아진 종혁은 대기실을 박차고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찰칵! 치이익!

“후우.”

“괜찮으세요?”

최재수의 말에 종혁은 담배를 깊게 빨았다.

“괜찮지 않을 건 또 뭐겠냐.”

어차피 한 번쯤은 언급했어야 할 일이다. 그래야 경각심을 가지고 보다 좋은 경찰이,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경찰이 될 수 있을 터.

그런 경찰들을 만들기 위해선 악역 따윈 얼마든지 되어 줄 수 있었다.

“에이, 설마 제가 그런 거 물어보겠어요?”

종혁을 보아 온 게 몇 년인가. 이런 그의 마음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종혁의 방송 출연이다.

“방송 출연하는 거 안 좋아하셨잖아요.”

원활한 수사를 위해선 형사는 얼굴을 가급적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 평소 종혁의 입버릇이었다.

실제로 종혁은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야 방송 출연을 가능한 피했고, 출연할 일이 생겨도 아주 잠깐만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물론 초대형 사건들을 해결하며 이미 몇 차례나 기자들 앞에 섰던 종혁이지만, 형사의 얼굴까지 일일이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이런 방송은, 예능은 달랐다. 순식간에 전파를 타고 전 국민에게 얼굴이 알려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최재수의 말에 종혁은 입맛을 다셨다.

“어쩌겠냐. 여기서 더 위로 올라가려면 필요한 일인데.”

아무리 실적이 좋고 상부가 예뻐한다지만, 종혁에겐 너무나 큰 약점이 있었다.

바로 나이.

지금 총경까지 오른 것도 충분히 파격적인 인선이었다. 이 이상은 아무리 그래도 무리였다.

이 약점을 이겨 내려면 인지도가, 스타성이 필요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현장에서 뛸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정말 길어야 10년 정도일까.

그때부터는 현장에서 실적을 쌓고 싶어도 쉽지 않게 된다.

“웃기시네.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수사에 개입하실 거면서.”

훗날 경찰청장이 돼서도 현장에 기웃거릴 양반이 바로 눈앞의 최종혁이다.

“……넌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아.”

“켁! 탭! 탭탭!”

둘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때였다.

딸랑!

화장실의 문이 열리며 웬 사람들이 들어온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몰랐는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놀라며 소변기 앞에 서는 그들.

종혁은 코끝을 희미하게 스치는 냄새에 미간을 좁혔다.

‘탄내? 아, 이 사람들이?’

자신이 담배를 피우는 걸 보자마자 천장의 화재감지기부터 살피는 모습을 보니 확실한 것 같다.

종혁의 눈이 호기심을 머금었다.

* * *

해가 어스름히 저물어 가는 오후.

서울 잠원동의 한 고급 주택가에 세단 한 대가 멈춰 선다.

“도착했습니다, 이사님.”

“……수고했어.”

몇 년 전, 종혁에게 바이칼 호수의 보물선 인양이 사기임을 은밀히 전달했던 장년인이 차에서 내리자, 운전석에 타고 있던 사내는 얼른 내리며 허리를 숙였다.

“내일은 늦게 나와도 되니까 돌아가서 푹 쉬어.”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다시 운전석에 오른 사내가 차를 몰고 떠나자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장년인은 잠시 눈가를 어루만졌다.

그때처럼 얼굴에 피로가 잔뜩 서려 있는 그. 오늘은 강원도까지 다녀오는 길이라서 더 피곤해 보인다.

잠시 하늘을 본 그가 입술을 달싹인다.

“……술이나 한잔할까?”

어차피 혼자 사는 집, 일찍 들어가서 뭐할까.

한숨을 내쉰 그는 터벅터벅 동네 입구로 걸어가 실내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또 오셨네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맨날 먹던 걸로 주세요.”

“네에!”

장년인이 자리에 앉으니 금세 어묵 국물과 소주가 내어진다.

그와 동시에 텅텅텅 썰려 매콤하게 볶아지는 꼼장어.

코끝을 스치는 냄새를 안주 삼아 장년인은 술을 기울인다.

“크.”

잔뜩 피로한 몸과 정신을 달래는 한 잔의 술과 뜨끈한 어묵 국물.

경직된 어깨가 말랑하게 풀리자 잠시 가게 안을 둘러본다.

둥근 철제 테이블에 허름한 의자. 올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 땅값 비싼 동네엔 참 어울리지 않는 술집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움찔!

그의 뒷자리에 앉아 있던,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몸을 돌려 장년인의 맞은편에 앉는다.

“이런 곳에 살던 분들께서도 한때는 이런 안주를 씹으셨던 때가 있기 때문이겠죠.”

“맞는 말이야. 이곳에 진득하게 앉아 있다 보면 가끔 TV에 나오는 양반들도 보게 되지.”

그들도 다 똑같다. 힘들면 소주부터 생각나는 건.

“어설픈 것들이 와인이네, 위스키네 말하는 거지.”

어차피 다 똑같은 술이다. 와인도 어차피 거기서 거기고, 위스키도 거기서 거기다. 눈을 감고 마시면 분간을 잘 하지 못한다.

장년인은 사내의 앞에 잔을 내려놓으며 소주를 따랐다.

쪼르르.

“요 며칠 날 지켜본 사람이 자네였구만. 그래, 여긴 안전해 보이는 것 같던가?”

장년인이 젓가락을 한쪽을 들며 사내의 눈을 가리킨다.

“저희 아버지와도 이곳에서 술을 마시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

사내는 마스크와 모자를 벗었다.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을 찾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사장님, 잠깐 나가 계시겠습니까?”

“예, 사장님.”

의문도 없다. 바로 불을 끈 여사장은 가게 문을 닫고는 뒷문으로 빠져나갔고, 장년인은 놀라는 사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성현이구나. 눈에 서린 기질이 닮았어. 네 아비가 젊었을 적엔 꼭 그런 눈빛을 하고 다녔지.”

친자식이 아님에도 닮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자 최성현의 입꼬리가 꿈틀거린다.

“그럼 네가 라오스와 캄보디아 지부를 폐쇄시켰겠구나. 회사에 복수를 하고 싶은 거냐?”

“막으실 겁니까?”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했고,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했다. 수십 년 회사에 충성했음에도 돌아온 건 결국 자살 명령.

최성현은 회사를 결코 가만 놔둘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의지가 가득 차오른 눈을 빤히 응시하던 장년인은 술을 들이켰다.

“한국엔 어떻게 들어왔니.”

“상하이에서 밀항을 했습니다.”

“그들부터 지워야겠군.”

최성현의 전신에 격동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문도 생겨난다.

“관성이다.”

여태껏 일해 왔기에 앞으로도 일할 수밖에 없는 그런 관성.

“어떻게 할 생각이니.”

“최종혁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아버지를 죽게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최종혁.

그 역시 자신의 원수였다.

“본사에선 최종혁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럼 더 삼엄하겠군요.”

“접촉을 하는 순간 CIA와 SVR, 국정원의 조사 대상이 될 거다.”

그리고 종혁 본인의 육감 역시 결코 무시 못한다.

“뭐부터 할 생각이니.”

“일단 회사의 눈과 귀부터 없앨 생각입니다.”

사회 각계각층에 퍼져 회사의 눈과 귀가 되어 주는 인물들을.

“그래, 그것부터 하는 게 맞지.”

장년인은 들고 온 서류 가방에서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 어떤 글자를 적었다.

대검찰청 사건창고 관리관 조성배.

“쳐낼 거면 이 사람부터 쳐내라.”

사건 창고에 숨어 사건의 증거들을 조작하고 은폐하며, 대검찰청의 검사들이 사건창고에서 떠드는 정보들을 회사에 알리는 직책을 맡은 존재.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난 계속 일을 할 거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리고 회사가 무너지나.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다 죽겠지.”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씩 찾아오렴. 술친구가 필요하니까.”

고개를 숙인 최성현은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고, 장년인은 다시 사장이 들어와 못 다 볶은 꼼장어를 다시 볶기 시작하자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이만큼 해 먹었으니 이젠 끝낼 때도 된 거지.”

몇 년 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새진리 아브라함의 지주 사건

그때 죽을 뻔했던, 종혁에 의해서 구해졌던 아들 조우선.

회사가 강제로 자신과 아들을 떼어놓지 않았다면 아들 조우선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다.

이젠 정말 그만둘 때가 된 거다.

“누가 먼저 끝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장년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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