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84화 (584/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84화>

    “예, 계좌번호가…….”

    “삼촌, 난데…….”

    오늘도 시끄러운 사무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해장을 했음에도 풀리지 않는 어젯밤의 숙취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김승정이 가만히 조선족들을 응시하다 장호영을 본다.

    그런 그의 시선에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는 그.

    그도 숙취가 심한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장호영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김승정은 몸을 일으켜 옆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는 두 명의 인출책을 툭 쳤다.

    “……아, 예.”

    이제 겨우 십대 티를 벗은 어린 청년들이 김승정을 따라 옥상으로 향한다.

    날이 갈수록 차가워지는 가을바람이 불어와 숙취를 달래자, 잠시 눈을 감았던 김승정은 이내 둘에게 담배를 권했다.

    “가, 감사합니다.”

    찰칵! 치이익!

    “후우.”

    인출책들은 무게를 잡는 김승정의 모습에 안절부절못했다.

    ‘형, 뭔 실수한 거 있어?’

    ‘아니? 넌?’

    ‘나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일이라 술김에라도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저 적당한 직업을 꾸며 허세를 부렸을 뿐.

    김승정은 그런 그들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정현수 그놈이 진짜 믿을 만한데.’

    허튼 욕심을 부리지 않고 시키는 일을 잘했던 정현수.

    자신들이 그의 할머니에게 사기를 쳤다는 걸 알지 못하니, 돈으로 꼬신다면 얼마든지 다시 일을 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연락이 될 때야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뭐, 어쩔 수 없나.’

    일단은 이놈들을 데리고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놈들도 어느 정도 믿을 만 하니 말이다.

    “애들아.”

    “예, 실장님.”

    “너희가 지금 얼마씩 가져가지?”

    “……250만 원입니다.”

    상준식이 돈을 가지고 날라 버린 후 월급제로 바꾼 그들. 하지만 이마저도 고작 20살, 21살인 인출책들에게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서, 설마 월급을 줄이시려고?’

    그동안 받는 돈에 비해 하는 일이 적다고 생각했던 그들. 그들은 드디어 올 게 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발. 내일 애들이랑 술 약속 잡았는데.’

    ‘아, 카드값.’

    “월급 올려 줄까?”

    “예?!”

    김승정은 놀라 고개를 쳐드는 그들을 보며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우리가 곧 사무실을 시골로 옮길 생각이야.”

    그래서 서울에서 돈을 뽑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

    “한 350만 원씩 맞춰 줄게. 어떡할래?”

    “350만 원이요?!”

    “헉!”

    경악한 그들은 더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맡겨만 주세요!”

    “할 수 있습니다!”

    “그래, 너희를 믿어서 특별히 말해 주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에겐 말하지 말고.”

    “예!”

    “부탁할게. 아, 맞아. 앞으로 정식이가 너희를 관리하게 될 거니까 허튼 생각은 하지 말고.”

    조선족들을 어딜 가든 따라다니며 감시하는 감시역 이정식.

    말수도 별로 없고 문신도 있어 무서운 이정식이 자신들을 관리한다고 생각하자 그들의 낯빛이 흐려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껄끄러움이 350만 원을 이겨 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담배 피우고 들어와.”

    김승정은 다시 사무실로 내려가 장호영을 봤고, 장호영도 이정식과 이야기를 잘 끝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그들은 다시 사무실을 빠져나와 자신들 숙소로 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표는 구했어?”

    “아까 예약했다.”

    “사무실은 어떻게 하게? 정말 하얼빈으로 가게?”

    이제 곧 있으면 겨울이다. 안 그래도 추운 하얼빈에서 겨울을 날 걸 생각하니 김승정의 낯빛은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형, 차라리 광저우는 어때?”

    딱히 어떤 이유가 있어서 하얼빈으로 가려는 게 아니다. 많이 들어 본 도시 이름이고, 비행시간도 짧길래 낙점을 지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따뜻한 곳으로 가는 게 어떨까 싶었다.

    그러나 장호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광저우는 부동산이 비싸다더라.”

    “씨발.”

    “일단 하얼빈에서 시작해 보고 돈 많이 벌면 광저우로 옮기든 하자.”

    “그 말 진짜지? 약속한 거다?”

    “통장이랑 카드나 잘 챙겨.”

    “응!”

    그들은 얼른 옷가지와 여권, 통장, 카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명부 등을 빠르게 챙겨 짐을 쌌다.

    그렇게 싸고 보니 커다란 캐리어가 가득 찰 지경.

    그들은 잠시 숙소를 둘러보며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떠나기로 했지만, 막상 떠나려니 약간 아쉬운 감정.

    “이번엔 좋은 곳으로 잡읍시다. 방도 따로 잡고! 그 정도 돈은 있잖아!”

    “큭큭. 가자.”

    그렇게 그들이 희희낙락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응?”

    갑자기 계단 안으로 들어오는 일단의 무리.

    시선을 마주친 오택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야. 안 그래도 너희에게 볼일 있어 왔는데…….”

    오택수는 그들의 손에 들린 캐리어를 보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어디 가니?”

    “……씨발!”

    좁은 계단을 날아 오택수에게 던져지는 캐리어.

    다급히 옆으로 피한 오택수는 위로 뛰어 올라가는 장호영과 김승정을 보며 혀를 찼다.

    ‘옥상엔 종혁이 있는데…….’

    혹시 모를 퇴로 차단을 위해 옥상에 대기하기로 한 종혁. 옆 건물을 통해 이 건물의 옥상으로 넘어온 거다.

    ‘그래, 그것도 너희 복이겠지.’

    빠아악!

    “아악!”

    “어이쿠.”

    위에서 들려온 비명에 혀를 찬 오택수는 문을 열고 나오다 굳어 버린 허량순을 보며 씩 웃어 주었다.

    “뭐해! 싹 다 잡아들여!”

    “옛!”

    “꺄악!”

    우르르!

    “다들 하던 일 멈춰! 경찰이다!”

    “으악!”

    “으허억!”

    건물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 * *

    꿈틀! 꿈틀!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환자분!”

    구급차에 실리는 장호영과 김승정.

    그들을 일견한 종혁은 관용차에 태워지는 보이스피싱 일당들을 보며 한숨을 뱉어 냈다.

    ‘겨우 다 잡았네.’

    하루만 늦었더라면 놓칠 뻔했던 놈들. 지금도 곤두선 뒷목의 솜털이 가라앉을 생각을 안 한다.

    “수고했다.”

    “수고는 오 대장님이 하셨죠.”

    “오 대장님이냐…….”

    “왜요? 아직도 어색해요?”

    “아니, 너한테 들으니까 어색하네.”

    종혁이 쓰러져 있을 때 임시로 맡았던 특별범죄수사대의 대장 자리를 온전히 이어받게 된 오택수.

    이후 종혁에게 몇 번이고 대장이라 불리고 있지만, 어색함이 사라지질 않았다.

    “큭큭큭.”

    웃음을 흘린 종혁은 오택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수고하십쇼. 내일 뵙겠습니다.”

    이제 휴가도 다 끝났다. 홍보부로 복귀해야 될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될 일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지금까지 한 수고가 공염불이 될 수도 있지.’

    일각에서 사기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사기 범죄율이 높은 대한민국.

    더욱 큰 문제는 그럼에도 사기에 대한 처벌 수위가 몹시 약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보이스피싱은 상당히 조직적으로 범행이 이루어지는 중범죄임에도, 꽤 먼 미래까지 그 형량이 매우 낮았다.

    범죄단체조직죄까지 적용되어 처벌이 강력해지기까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번에는 회귀 전과 달리 보이스피싱 사기꾼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예, 이사장님.”

    권회수 이사장. 종혁은 그의 힘을, 그의 고문 변호사이자 전 중앙지검 검사장인 이영창 변호사의 힘을 빌릴 생각이었다.

    종혁은 낯빛을 굳히며 차로 향했다.

    * * *

    부우웅! 빵빵!

    어둠이 내려앉으며 불야성이 된 중국의 칭다오.

    여기저기 찢기고 진흙 따위가 딱딱하게 달라붙어 넝마주이가 따로 없는 옷을 입은 한 거지가 어두운 골목에 숨어 한 아파트를 가만히 응시한다.

    거지답지 않게 키와 몸집이 제법 큰 그.

    “불이 켜졌네.”

    기척 하나 없는 골목길을 웅웅 울리는 나지막한 목소리.

    “처분을 했다는 걸까. 아니면 다른 직원의 숙소이려나.”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이미 한 번 들통이 난 숙소를 그대로 쓸 만큼 회사는 멍청한 곳이 아니니 말이다.

    ‘정말 죽었다는 거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아니었다면 벌써 연락을 해 왔을 테니 말이다.

    그는 잠시 무릎을 꿇으며 품에서 음식을 꺼내 아파트를 향해 늘어놓았다.

    꼴꼴꼴.

    그리고 향을 피운 뒤 술마저 따른 그는 아파트를 향해 두 번의 절을 했다.

    자신에게 새 삶을 줬던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가 되어 줬던 그에게 고마움을 담아.

    그렇게 마지막 반절까지 마친 그가 고개를 들자 그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뿌득!

    “퉤!”

    결국 부러져 버린 어금니를 뱉어 낸 그는 몸을 돌렸다.

    “가야겠네.”

    웅크린 채 때를 기다리는 회사가 있는 한국으로.

    최종혁이 있는 한국으로.

    최성현은 옷깃을 추미며 골목에 드리운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 * *

    -이거 너무 이른 아침에 연락을 드린 게 아닌 가 싶군요.

    이른 아침부터 걸려 온 이영창 변호사의 전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벌써 이야기를 하신 겁니까?”

    -허허. 이런 일은 빨리 해치워 버려야지요. 그래야 그쪽에서도 준비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종혁의 눈이 이채를 발한다.

    “그러면?”

    -그 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런 놈들이라면 자신도 힘을 써 보겠다고 하더군요.

    어젯밤 조사한 결과, 그들이 지난 3년여 동안 사기를 친 금액이 무려 60억 원을 넘겼다.

    보이스피싱이 대중에 알려지지도 않은 지금이기에 가능했던 액수.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야 놈들을 잡은 최 부장님께서 다 하셨죠. 아. 그 친구가 아직 빚을 갚으려면 멀었으니 다음부터는 직접 연락을 해 달라고 하더군요.

    “예?”

    -혹시 백순재라는 이름 기억하십니까?

    “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백순재.

    종혁이 파출소에 근무할 당시 음주측정 불응 후 경관을 매달고 도주한 법대생 아들 때문에 찾아왔던 그.

    “그런데 빚이요?”

    종혁은 몰랐다. 자신이 일본에서 들여와 더 발전시킨 DNA 검사 기술로 인하여 백순재의 오랜 한이 풀렸다는 걸 말이다.

    -그건 나중에 그 친구를 만나 직접 물어보시면 될 겁니다. 그 친구 성격상 잘 말해 주진 않을 테지만 말입니다.

    “아…….”

    -아무튼 이젠 걱정 마시고 업무에 매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허허. 최 부장 같은 인재가 우리 검찰에 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종혁이 홍보부의 장이 된 이후 경찰의 이미지가 얼마나 좋아졌던가. 아무리 은퇴해 변호사가 됐다고 한들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왜 그러십니까. 검찰에도 대단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하.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예. 최 부장도 파이팅입니다.

    그렇게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천장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영창 변호사가 장담할 정도라면 아마 놈들은 최대 형량을 받게 될 터.

    한시름 놓은 종혁은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그럼 다녀올게. 아, 용돈 있어?”

    “아직 많이 있어요. 다녀오세요.”

    “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

    배시시 웃는 순희의 배웅을 뒤로하며 집을 나선 종혁은 곧바로 본청으로 향했다.

    그런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예,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대한민국 경찰청 홍보부 최종혁 총경입니다.”

    -형사님!

    “아이고, 할머님!”

    박옥자 할머니다.

    어제 전화를 받지 않아 오늘 다시 하려고 했는데, 이제야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것 같다.

    “할머님,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어제 놈들을 잡았어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당연히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런데 아마 돈을 다시 돌려받으시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실 거예요.”

    다행히 놈들이 축적해 놓은 재산이 제법 있어 전부까진 아니더라도 피해액의 상당수는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아이고, 잡은 것만으로도 어딘데요…….

    “제가 꼭 받으실 수 있도록 힘써 볼 테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아, 놈들이 재판 받는 거 구경하러 오시는 건 어떠세요?”

    -그, 그래도 됩니까? 저 같은 사람이 막 그런 곳에 가도 되는 거예요?

    “어휴, 괜찮아요. 할머니가 어디가 어때서요. 그리고 생판 모르는 사람도 와서 구경을 하는데요, 뭘.”

    -아이고!

    “하하. 그럼 제가 공사하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려서 그때 오실 수 있게 할 테니까 그분들 차 타고 편히 오세요. 네, 네. 들어가세요.”

    공사를 담당하는 사장에게도 연락한 종혁은 홍보부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좋은 아침!”

    “아, 오셨어요?”

    “뭐하냐?”

    “2주 동안 사무실을 비워 뒀잖아요. 청소해야죠. 그런데 역시 처음 리모델링할 때 제대로 하긴 했나 봐요. 먼지가 없어요.”

    그렇게 말한 최재수는 다시 사무실을 쓸고 닦았고, 종혁은 그런 그를 오묘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어제 청소한 건데…….’

    본청과 계약을 맺은 청소업체에 연락을 해서 어제 따로 사무실 청소를 맡겼었다.

    ‘뭐, 그냥 놔둘까?’

    혹여 사무실 사람들이 먼지를 마실까 걱정하는 최재수의 갸륵한 마음을 어찌 말릴 수 있으랴.

    어깨를 으쓱인 종혁은 대충 옷을 벗어 둔 후 본청 내에 위치한 체력단련실로 향했다.

    좋은 상사는 최대한 늦게 출근하는 법이니 말이다.

    “후우.”

    물에 젖은 머리를 털며 사무실의 문을 연 종혁은 밝으면서도 약간 무기력한 얼굴로 앉아 있는 부서원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다들 출근하기 싫었나 봅니다?”

    “오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부장님!”

    “신기하네. 제가 아는 유부남, 유부녀들은 출근을 못해서 안달이던데.”

    “하하하하하!”

    그 말은 맞다는 듯 진심으로 웃는 그들.

    단체 여행 때문인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그들의 표정에 종혁은 손뼉을 크게 쳤다.

    “자, 그럼 오늘도 힘내서 일해 봅시다!”

    “옙!”

    “팀장님, 이 기획서 좀 봐 주십시오. 제가 쉬는 동안 생각해 본 겁니다.”

    “시골 경찰? 그들의 애환을 선전해 보자고?”

    “예. 본청 홍보부입니다. 미담이 중복된 게 있던데요.”

    순식간에 부산해지기 시작한 홍보부.

    고개를 끄덕인 종혁이 모닝커피를 타기 위해 탕비실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오늘은 아침부터 전화가 많이 오네. 응? 이 형님이 왜?”

    장호돈이다.

    “예, 형님.”

    -종핵아! 니 내한테 빚 있제? 한번만 살리도!

    종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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