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83화 (583/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83화>

“흐응. 흥.”

양손에 쇼핑백을 든 여성 허량순이 콧노래를 부르며 백화점 복도를 가로지른다.

한 달 만에 들른 대림동에서 고향의 음식을 먹은 후 명품 쇼핑까지 해서 기분이 좋은 그녀.

그러다 한 브랜드 매장을 발견하곤 눈을 빛낸다.

허량순은 거칠 거 없다는 듯 매장 안으로 들어갔고, 안에 있던 종업원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인다.

“어서 오세요!”

그 인사에 슬그머니 콧대가 세워지는 허량순.

그녀는 옷들이 걸려 있는 행거 앞에 서서 차락차락 거침없이 옷들을 살핀다. 마치 이런 곳에 온 게 처음이 아닌 것처럼.

그러다 한 원피스에 그녀의 시선이 꽂힌다.

‘내 거다!’

딱 본 순간 느껴진다.

원피스가 외친다. 네 거니까 사라고.

뭔가에 홀린 듯 원피스를 빼 들던 그녀는 가격표를 발견하곤 헛숨을 삼켰다.

‘이, 이백만 원?’

오늘도 이미 적잖은 돈을 썼기에 갈등으로 눈빛이 흔들린다.

‘……다음에 다시 올까? 아냐! 어차피 또 금방 벌 텐데, 뭐!’

어차피 다음 달이면 또 벌 돈이다.

하지만 이 옷이 그때까지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흐응. 이것 좀 입어 봐도 되죠?”

“탈의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곤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딱 자신의 생각대로다.

“어머! 딱 손님 거네요, 손님!”

“호호. 그렇죠?”

더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취하며 옷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누구에게 어떻게 번 돈으로 사는 것인지 깔끔하게 잊어버린 채 말이다.

* * *

퍼억! 퍽! 퍽!

-무슨 일 있으십니까, 사장님?

“아냐. 말해.”

-허량순 다른 매장에 들어갔고, 계속 감시하겠습니다.

“어, 그래. 계속 수고해.”

-예.

전화를 끊은 사장 장호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사내를 가만히 응시했다.

“커흑! 큭! 사, 살려 주시라요…….”

“씨발!”

퍼억!

장호영의 손에 들린 야구방망이가 피투성이의 사내를 다시 후려친다.

“내가 말투 고치라고 했지! 어?! 도대체 몇 번을 말하냐고, 몇 번을!”

‘상준식 그 개새끼는 어떻게 된 건지 왜 계속 연락이 없는 거야!’

1년 만에 겨우 행적을 발견한 상준식.

감히 자신의 돈을 훔쳐 간 씹새끼.

지금쯤이면 놈을 잡았다는 연락이 왔어야 하거늘 아무런 연락도 없다.

이를 악문 그가 쪼그려 앉으며 사내의 머리채를 잡아 꺾었다.

“컥?!”

“왜 말을 안 들을까? 응? 내가 돈을 안 줘? 아니면 내가 돼지 소굴에서 살게 해? 어?”

해 줄 거 다 해 주는데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걸까.

왜 사람을 이렇게 나쁘게 만드는 걸까.

광기가 가득한 그의 눈에 사무실이 지독한 침묵에 빠져들고, 조선족 사내들이 바들바들 떤다.

“형.”

자신의 오른팔이자 수거책인 김승정을 본 장호영은 혀를 차며 일어나 조선족들을 봤다.

“진짜 잘하자.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

“죄, 죄송합니다!”

“그래. 그렇게 서울말 쓰면 얼마나 예뻐. 응? 내가 부탁할게. ……이 사람 데려가서 치료해 줘.”

우르르!

조선족 남자들이 몰려들어 사내를 위층으로 데려가자 장호영은 담배를 물었다.

“하, 씨발.”

어제부터 짜증이 나다 보니 결국 폭발해 버렸다. 이게 조직을 관리하는 데 마이너스 요소인걸 알면서도 말이다.

“준식이 때문에 그래?”

“닥쳐, 병신아.”

애초부터 눈앞의 이놈이 상준식을 놓치지만 않았어도 이런 짜증은 나지 않았을 거다.

그런 그의 모습에 김승정이 이를 드러낸다.

“나 그 돈 다 갚았다. 형한테 빚 없어.”

‘내가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 쪽팔려서 자다가도 벌떡 깬다.

“……씨발.”

김승정과 틀어진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기에 결국 화를 가라앉힌 그.

탱그랑!

야구방망이를 집어 던진 그는 담배를 깊게 빨았고, 김승정 역시 담배를 꺼내 들어 불을 붙였다.

“그렇다고 해도 오늘 좀 심했어. 저러다 도망치면 어떡하려고 해?”

자신들이 일본에 머물렀을 때 잠시 일했던, 야쿠자들이 운영했던 곳이 그랬었다.

거기서 전화기를 붙들며 사기를 치던 사람들 대부분이 빚이 있어 끌려왔던 이들로, 걸핏하면 야쿠자들에게 처맞으며 생활했다.

자신들이야 잠시 알바로 갔던 것이기에 얼마 후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빚에 묶여 있는 다른 이들은 계속되는 폭력 속에서도 그곳을 벗어날 생각조차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뉴스를 통해 그곳의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노예처럼 다뤄지던 이들이 결국 폭발해 단체로 그곳을 빠져나와 신고했다는 소식을.

그 모습을 보고 반면교사로 삼지 않았던가.

그 말에 장호영은 코웃음을 쳤다.

“승정아, 너 동물 중 가장 다루기 쉬운 동물이 뭐라고 생각하냐?”

“사람이라고?”

‘그 꼴을 보고도?’라는 눈빛에 피식 웃은 장호영이 창가로 걸어간다.

“그거야 준 먹이보다 더 심하게 다뤄서 그런 거지.”

적당한 먹이만 주면 그곳이 철창이든 불구덩이든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시킨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사람이다.

그것이 그 어떤 불합리한 일이라도, 그것이 혹여 범죄라도 먹이만 적당하면 된다.

“저 새끼들이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오늘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고 돌아다니는 허량순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처럼.”

자신도, 옆의 김승정도 그랬다.

아니, 처음엔 분명 달랐다.

그러나 하루하루 손에 쥐어지는 돈다발에, 이전과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처럼 변했다.

자신들에게 속은 이들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뉴스를 타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돈 앞에선 짐승보다 못한 게 사람이니까 다루기가 쉬운 거야.’

그는 저물어 가는 황혼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야, 오늘 얼마 벌었냐?”

“천만 원?”

“이제야 겨우 원래 페이스로 올라왔네. 흠, 그런데…….”

적다. 천만 원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거늘, 이젠 이 정도 액수로는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상준식을 잡으러 간 놈들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없는 것이 아무래도 불길했다.

그는 사무실에 남아 이쪽의 눈치를 다른 직원들을 보곤 혀를 찼다.

“야. 오늘은 여기서 시마이 하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

“……알았어.”

눈을 빛낸 김승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3, 4층 건물들이 대다수인 허름한 골목.

어둠이 내려앉자 사무실 건물 앞에 세워진 마세라티에 올라탄 장호영과 김승정이 골목을 빠져나가 도로에 접어든다.

부우웅! 빵빵!

“쯥. 빨리 나올 걸 그랬나.”

“그러게 내가 빨리 준비하라고 했지?”

“나 운전대 잡았다. 건드리지 마라.”

“……개새끼.”

얼굴을 구긴 장호영은 창밖을 바라봤다.

때마침 옆으로 파출소가 스쳐 지나간다.

‘응?’

무언가를 발견하곤 차창을 내리는 장호영.

“아이고! 아이고!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이현숙 씨. 진정하세요, 이현숙 씨.”

운전대를 잡은 김승정도 파출소 앞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을 응시한다.

“와. 이 서울에서 아직도 저런 몸빼 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구나. 그런데 뭔 일을 당했기에 저렇게 울고불고 난리야? 추하게. 응? 왜 그래?”

“이현숙…… 이현숙…… 아!”

“아는 사람이야?”

“아냐.”

이현숙. 분명 허량순이 딸로 위장해 사기를 친 여자의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단순히 동명이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녀를 보고도 딱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고작 백만 원 가지고 저 지랄이라니…… 참 구질구질한 인생이다, 진짜.’

왜 따위로 사는지 모르겠다.

장호영은 그 돈이 자신에겐 고작 백만 원일지 몰라도 이현숙에게 있어선 지난 1년간 힘들게 모은 약값이자 월세를 내야 될 돈임을 몰랐지만, 설령 알고 있었어도 똑같은 생각을 품었을 터였다.

“형?”

“신호다. 출발해.”

“어? 어, 응.”

그렇게 차들로 가득한 도로를 달린 그들이 도착한 곳은 강남의 한 주점이었다.

“어머! 오셨어요, 사장님! 요즘 왜 이렇게 뜸하셨어요.”

가슴이 움푹 파인 드레스를 입은 채 그들을 반기는 미녀.

김승정이 마담의 가슴골에 돈을 찔러 넣는다.

“우리 스타일 알죠?”

“호호호. 당연하죠. 이리 오세요.”

그녀는 그들을 가장 큰 방으로 안내했다.

“술은 곧 세팅될 거예요. 아가씨들은 언제나처럼 30분 뒤에 넣어 드릴까요?”

“부탁할게요.”

허리를 꾸벅 숙인 마담이 나가자 김승정이 장호영을 본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가 먼저 술을 먹자고 하면 꼭 할 이야기가 있었다.

“야, 승정아. 우리 해외로 뜰까?”

철렁!

“가, 갑자기?”

“조선족 새끼들 말귀 못 알아먹는 것도 짜증 나고, 언제까지 이렇게 야금야금 벌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계속해서 느껴지는 불길한 느낌이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의 경험상 이럴 땐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중국 어때?”

“주, 중국?!”

“그래. 그리고 조선족 새끼들 말고 한국 애들로 모아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세상 어디든 돈이 필요한 사람은 있기 마련.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그간 쌓인 노하우라면 다시 업장을 차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짱개 새끼들한테도 사기 치고?”

“그게 제일 중요하지.”

인구 5천만의 한국, 인구 13억의 중국.

인구수 차이가 무려 26배다. 즉, 사기를 칠 수 있는 사람이 26배 많다는 거다.

“호오…… 좋네. 레퍼토리도 늘릴 수 있겠어.”

중국에 여행을 오거나 유학을 온 놈들의 신상을 빼내서 사기를 쳐도 된다.

그런 김승정의 말에 장호영은 눈을 빛냈다.

‘확실히 이 새끼가 감각이 있다니까.’

가끔 이런 면모도 보여 주니 내칠 수가 없는 거다.

“어떡할래?”

“하자.”

“오케이. 그럼 내일 정리하는 걸로?”

“내일 좋다. 콜.”

쿵쿵쿵!

“술 들어가겠습니다.”

웨이터가 들어와 술을 쫙 깔자 장호영은 그중 가장 비싼 위스키를 뜯어 김승정의 잔에 따라 줬다.

챙!

둘의 잔이 보다 큰 미래의 성공을 품으며 부딪쳤다.

* * *

“하, 이 개새끼들.”

한 4층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허량순과 그녀를 감시하는 것 같던 남성을 보며 오택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참 웃긴 새끼들이다.

얼마나 간이 크면 파출소 근처에 이렇게 아지트를 만들어 놓은 걸까.

“그런데 맞겠지?”

“제가 말했잖아요. 전화하는 애들은 웬만해선 안 바꿉니다.”

그들도 나름 전문직이다. 태생부터 혀가 매끄러운 놈이 아니고서야 서너 달 정도는 혀를 굴려야 사기를 칠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허량순이 오늘 쓴 돈 봤잖아요.”

백화점에서 명품으로 도배를 했던 허량순. 오늘 산 것만 족히 수백만 원을 넘겼다.

게다가 천주호 사장에게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고향으로 송금한 돈까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은 해 봐야겠지만요.”

“그러자.”

그들은 순철에게 연락해 일단 근처 공용 CCTV를 뒤져 보게 했고, 그들 역시 사무실 쪽을 비추는 개인용 CCTV 영상들을 확보하며 탐문 조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흠. 조선족들이요. 예. 한 여섯 명? 일곱 명? 그쯤 되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도시락을 사러 왔었죠.”

그중 한 명은 사람이 바뀌어도 계속 따라왔었다.

“저 건물이요? 글쎄요. 아, 건물 앞에 웬 외제차가 세워져 있는 것 말고는 딱히? 그릴에 삼지창이 박혀 있던데…….”

“네. 조선족들이 드나들긴 하더라고요. 걔들 가끔 저희 가게에서 식사해요. 왜요? 걔들 사고 쳤어요?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저녁만 되면 시끄럽죠. 옥상에서 술을 마시는지 맨날 웅성웅성. 소리라도 고래고래 질렀으면 콱 신고를 해 버렸을 건데.”

그렇게 주변 탐문을 마친 둘은 서로를 보며 담배를 물었다.

“맞는 것 같네요.”

매일같이 편의점에 도시락을 사러 오거나 가끔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는 허량순을 비롯한 남녀들.

게다가 좀 사는 동네쯤은 가야 볼 수 있는 마세라티가 이 허름한 골목에 세워져 있다.

느낌이 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놈들이다. 이놈들이 보이스피싱 조직이다.

눈을 빛낸 오택수는 핸드폰을 드는 순간이었다.

“잠깐!”

종혁의 나지막한 외침에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굳어 버린 오택수.

종혁은 건물 앞을 가리켰다.

부르릉!

마세라티 한 대가 건물 앞에 서며 술에 취한 두 남성이 내린다.

“어우. 시발. 그냥 호텔에서 자자니까.”

“닥쳐, 새끼야.”

둘은 아옹다옹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오택수는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어, 임 경감. 나야. 대원들 소집해.”

놈들을 쓸어버릴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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