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81화 (58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81화>

대회의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시작이라니.”

“뭐, 물론 증가세가 무섭긴 하지만……. 에이, 여기서 얼마나 더 사기를 당하겠어.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누구 일본 이야기 들은 거 없어?”

종혁을 잘 모르는 지방서 서장들과 수사과 과장들은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종혁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다 그중 한 명, 종혁과 인연이 아주 깊은 경찰대의 임성원 교수가 손을 든다.

“예, 교수님.”

“이제 기억난다. 보이스피싱, 예전에 최 총경이 논문으로 썼던 거지?”

“예, 그렇습니다.”

어디 그뿐인가? 당시 최기룡의 배경을 이용해 각 지방청의 수사과도 모두 읽어 볼 수 있게 배포했다.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던 상황.

하지만 지금 반응들을 보니 냄비받침대로도 쓰이지 못한 것 같다.

종혁은 논문이라는 말에 입을 다물기 시작하는 간부들을 쭉 훑어봤고, 임성원 교수는 범죄를 예방하려 애를 썼음에도 공염불이 되어 버린 종혁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분명 논문에 일본의 보이스피싱 피해액도 적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얼마였지?”

“경시청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한 해 최대 피해액이 한화로 약 3천억 원입니다.”

쿵!

생각지도 못한 거액에 간부들의 눈이 커진다.

하지만 종혁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도 일본 국민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경시청에서 축소해 발표한 것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제 피해액은 한화로 약 4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겨우 한 해에 발생한 피해액이 말이다.

심지어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사기를 당한 것인지도 모르는 이들의 피해액까지 합산한다면 실제 피해액이 얼마일지 가늠조차 쉽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이스피싱 사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인구수를 단순 계산하였을 때 추정되는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연간 1조 원. 미리 대비를 하고 있지 않다면 앞으로 매년 1조 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그런 꼴을 막으려면 한시라도 빨리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전담 부서를 만들어야 했다.

‘미래에 보이스피싱 사기 검거율이 왜 그 모양 그 꼴이었는데!’

대처를 늦게 시작한 것도 있지만, 모두 자신들 부서의 일이 아니라고 서로 미뤄서 그랬다.

사회적인 문제까지 발전했음에도 발전이 없었던 회귀 전의 경찰.

“그러니 처음부터 보이스피싱 사기를 겨냥한 부서를 만들고, 지청부터 파출소까지 유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됩니다.”

이런 종혁의 말에 사람들이 고민에 빠진다.

너무 넘겨짚는 거 아니냐,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심각해지지 말자는 생각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만큼 종혁이 말한 예상 피해액이 큰 탓이다.

“흠. 이에 대한 홍보 방안도 생각해 뒀나?”

크다. 이건 크다.

다시 한번 치적을 만들 수 있는 일이었기에 장희락 경찰청장은 잔뜩 기대를 했지만,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언론에 발표할 수 없을 듯합니다.”

보이스피싱 사기가 날이 갈수록 성행했던 이유가 뭐던가. 바로 언론이 집중을 하면서 대중화가 됐기 때문이다.

모방 범죄. 보이스피싱 사기는 언론을 탄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물론 언제까지고 막을 순 없을 테지만, 최대한 함구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이라도 시스템을 구축할 때까진 무조건 함구시켜야 했다.

“……쯧.”

혀를 찬 장희락은 몸을 일으켜 간부들을 주욱 둘러봤다.

“모두 내년 예산이 박살 날 뻔했던 건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예산을 원래대로 되돌린 게 자신이다.

“물론 홍보부와 여기 최 부장의 공도 큽니다.”

종혁을 의식해 얼른 말을 덧붙인 그는 하고자 하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아직 정부는 저희 경찰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마찰을 빚은 법무부도 그렇다.

한 번만 걸려라. 아마 그렇게 벼르고 있을 거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저들에게 빌미를 주겠습니까, 아니면 예방을 하겠습니까?”

“으음…….”

간부들이 고민에 빠진다. 결코 하루 이틀 만에 결정할 일이 아니라서 그렇다.

하지만…….

“예방을 해야겠죠.”

정용진 경무관.

종혁의 조언대로 112 신고센터 등 전국의 치안 현황을 관리하는 치안상황센터의 장, 치안상황관리관이 된 그였다.

“저희 치안상황센터는 언제든 협력하겠습니다.”

“……우리 외사국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희 특수범죄수사과도 동의합니다.”

“저희 광수대도 협력하겠습니다.”

종혁과 인연이 깊은 간부들이 저마다 협력을 하겠다는 뜻을 표하자, 다른 간부들도 혀를 차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그 행렬에 동참한다.

인력이 부족할 때, 이렇게 정신없이 바쁠 때 전담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되긴 하지만, 그만큼 보이스피싱 사기의 위험성이 크게 다가온 탓이었다.

‘모두들…….’

그동안 쌓아 뒀던 인맥이 빛을 발함에 종혁은 이를 꽉 물었다.

“그럼 모두 동의를 한 것 같으니까…… 경무인사기획관.”

“예! 내년 인사이동 시즌엔 모두 끝낼 수 있도록 조치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장희락은 종혁을 봤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지.”

“옛!”

종혁은 최재수를 봤고, 그는 얼른 다음 자료를 스크린에 띄웠다.

[보이스피싱 사기의 수법의 심리적인 접근과 조직도]

‘백신 갑니다, 씨발!’

여기서 미래의 모든 피싱 사기 수법을 선보인다.

종혁은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고, 간부들 모두 역시 눈이 번뜩이며 자세를 바로 했다.

* * *

벌컥! 웅성웅성.

종혁이 배포한 자료를 든 경찰들이 굳은 낯빛으로 대회의실을 나서며 종혁을 힐끔거린다.

‘최종혁 총경…….’

‘일 잘하는 것 같은데?’

‘본청에 물건이 있었군.’

‘하, 저 친구를 우리 청에 데려와야 하는데…….’

하지만 경쟁자가 너무 많다.

서로를 본 지방경찰청장들은 웃으며 본청 건물을 빠져나갔고, 간부들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니 다 함께 식사라도 한 끼 하며 우애를 다지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빠르게 찍는 본청 상주 기자들.

대회의실엔 얼씬조차 못한, 아니 아예 본청에서 쫓겨 난 그들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대한민국의 모든 경찰 간부들이 모였다.

과연 무슨 일일까 그들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빌어먹을. 대봉투에 뭐라 적혀 있지도 않네. 야, 데스크에 연락해서 좀 파 보라고…….”

지이잉! 지이잉!

“예, 부장님! 이거 간부들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뭐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 거예요!”

어쩌면 조희구 사태에 준하는 사건이 터진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 그게 분명했다. 그 정도 사건이 아니라면 저 많은 간부들이 본청에 모두 모일 이유는 없을 테니 말이다.

-아니니까 돌아와.

“예?! 뭔데요? 경찰에서 뭐라고 했는데요?!”

-그건 와서 들어. 최 부장이 엠바고 걸었으니까.

놀란 그의 눈이 고위 간부들과 함께 멀어지는 종혁에게로 향한다.

“아, 진짜! 이러면 저희도 일 못합니다!”

-그럼 관둘래?

서늘한 부장의 말에 기자의 입이 위협을 받은 조개처럼 다물어진다.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아무리 부장인 박영일이 종혁과 친하다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즉,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정도의 뭔가가 있다는 뜻.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주변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복귀해.

“예. 이따가 뵙겠습니다. 야, 가자.”

그들을 태운 차는 신문사로 복귀했고, 창가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오택수가 몸을 돌린다.

“그러면 우리도 시작하자.”

“옛!”

촤락!

커튼이 쳐지며 불이 꺼지고 사무실 한구석에 있는 모니터가 빛을 발하며 사무실에 가득한 긴장감이 깔린다.

종혁이 맡긴 사건임을 떠나 상부, 아니 모든 간부들이 주목을 하는 사건이다. 결코 허투루 할 순 없었다.

그들의 표정은 결연했고, 그와 동시에 화면에 나타나는 한 사내 나타난다.

검은색 모자에 마스크를 쓴 이십대 중반의 사내. 박옥자가 돈을 보낸 계좌에서 인출을 한 사람이었다.

“이름 상준식. 나이 26세. 현 거주지는…….”

순철의 입에서 주르륵 흘러나오는 한 사람의 기록.

‘보이스피싱 사기에선 인출책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지.’

이들이 돈을 현금화하여 아지트로 가져가거나 재송금을 하기 때문이다. 즉, 사기를 친 돈을 온전히 소유하려면 이 무조건 이 인출책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은행이나 거리 ATM을 돌며 돈을 인출하기에 이놈들조차 찾기가 힘들 거라는 게 종혁의 말이었다.

그에 긴장을 하며 주목하던 특별범죄수사대 대원들의 입가에 잠시 조소가 매달린다.

양아치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전형적인 부류의 양아치.

그런 상준식의 프로필보다 그들을 놀라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그런데 은행 CCTV 기록이 남아 있네?”

제아무리 은행이라고 해도 CCTV 보존 기간은 그렇게 길지가 않다.

은행 지점의 CCTV는 의무 보존 기간은 보통 두 달. 웬만한 상황이 아닌 이상 두 달이 흐르면 모두 폐기해 버리는 게 그들의 방침이다.

“아, 그거이…….”

오택수와 사람들은 이어지는 말에 눈을 끔뻑였다.

* * *

촤라라라락!

해가 환하게 뜬 낮, 검은색 모자에 검은색 마스크를 쓴 사내의 앞에 있는 은행의 ATM 기기가 돈을 세는 소리를 우렁차게 울린다.

그런 ATM 기기에 올려져 있는 종이백.

몇 덩어리의 돈다발이 넣어져 있는 종이백을 힐끔 보는 사내, 상준식이 한숨을 내뱉는다.

‘돈이 돈처럼 안 느껴지네.’

자신의 돈이 아니라서 그럴까. 꼭 돈 모양을 한 종이 쪼가리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ATM 기기가 따끈따끈한 지폐를 토해 내자 상준식의 눈이 흔들린다.

‘아, 씨발. 또 백만 원 눌렀다.’

소액으로 나눠서 찾으라고 교육을 받은 그. 하지만 귀찮아서 1회 한도인 백만 원까지 몇 번 뽑았더니 또 습관처럼 그래 버렸다.

혀를 차며 돈을 빼내던 상준식의 눈이 순간 흔들린다.

‘따뜻하네.’

이 일을 하면서 돈이 돈답다고 느껴지는 순간.

‘씨발. 확 그냥 가지고 날라? ……아니다, 됐다.’

종이백에 있는 돈이라고 해 봤자 고작해야 천만 원뿐이다.

‘천만 원을 누구 코에 붙여?’

천만 원이라고 해 봤자 고작 두세 달 일하면 벌 돈.

‘흐흐. 한 달에 고작 열 번만 수고하면 3백만 원이 넘게 벌리는데 내가 왜 그딴 짓을 해?’

여러 은행을 돌아다니며 돈만 찾아오면 찾은 돈의 5퍼센트가 자신의 것이다. 백만 원을 찾으면 5만 원, 천만 원을 찾으면 50만 원.

가장 많이 찍은 달은 무려 4백만 원이었다.

고작 천만 원에 목숨을 걸 순 없었다.

‘한 1억이라면 모를까…….’

“1억은 개뿔.”

키득키득 웃은 그는 돈을 종이백 안에 집어넣으며 다시 ATM 기기의 버튼을 눌러 갔다.

“아저씨, 멀었어요?”

“쿨룩! 쿨룩! 예, 멀었어요.”

“에이씨.”

‘에이씨? 아나, 저 새끼가.’

제법 등치가 큰 남성의 모습에 고개를 다시 원상복귀한 상준식은 수첩에 적힌 다른 계좌번호를 보며 무통장 출금 버튼을 눌렀다.

‘어?’

계좌 잔액을 확인한 상준식의 눈이 순간 흔들린다.

‘4천만 원?’

한 계좌에 이렇게까지 큰돈이 있는 건 처음 있는 일.

“씨발. 호구 새끼 제대로 물었나 보네.”

‘그런데 4천만 원이면…….’

눈이 가늘게 떠진 그의 마음속에서 욕심의 대가리가 고개를 쳐든다.

‘아냐, 아냐. 3백도 충분이 큰돈이야.’

아껴 쓴다면 또래의 친구들은 절대 갈 수 없는 단란주점에 8번이나 갈 수 있는 돈.

물론 이 일을 몇 달 하다 보니 돈이 돈처럼 느껴지지 않은 그는 고작 네다섯 번 만에 모두 탕진을 해 버리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짓에 더 매달리는 것이었다. 지금 관둬 버리면 다시는 단란주점에 갈 수 없을 테니까.

‘거기다 거기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처럼 돈에 붙잡혀 오늘도 사기를 치고 있는 사람들이 눈앞을 스쳤지만, 그의 욕심은 고개를 숙일지 몰랐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래, 오늘 얼마나 뽑아야 하는지 확인만 하는 거야.”

그는 수첩에 적힌 다른 계좌번호를 눌렀고, 이내 곧 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와 동시에 벌렁거리기 시작한 심장.

슬그머니 뒤를 돌아본 상준식의 입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튈까? 튀어?’

“씨발. 그래.”

오늘 뽑아야 할 돈을 보니 무려 1억이 넘는다.

몇 년을 충분히 놀고먹을 수 있는 돈.

‘여기서 최대한 많이 뽑는다!’

오늘 돌아야 할 은행이 여덟 곳이고, 그 모든 은행을 돌면 사장의 오른팔인 수거책이 다가와 돈을 수거해 간다.

즉, 그 전에, 수거책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튀어야 하는 거다.

거친 콧김을 뿜어낸 그는 다시 돈을 뽑는데 열중했고, 곧 두툼하게 차오른 종이백을 들고 다음 은행으로 향했다.

그렇게 네 차례.

‘다 뽑았어!’

꿈틀거리는 몸을 애써 다독이며 은행을 나서는 상준식의 곁으로 한 남성이 다가선다.

‘어?

수거책. 갑작스런 그의 접근에 상준식의 심장이 벌렁거린다.

“준식아, 그거 이리 줘. 키랑.”

“응? 왜 그러십니까?”

“내놓으라고, 새끼야.”

‘씨발!’

자신처럼 일을 벌이려는 이들이 있기에 액수가 클 때는 중간에 한 번 수거를 해 놓으려는 것인 듯했다.

종이백을 향해 손을 뻗는 수거책을 향해 상준식은 그대로 머리를 들이박았다.

쩌억!

“컥?!”

“좆까, 새꺄!”

다급히 오토바이에 오른 그는 그대로 스트로크를 잡아당겼고…….

뿌다다다다다당!

“도, 도둑이야!”

“씨발! 씨발, 씨발-!”

환희에 가득 찬 외침이 오후의 거리를 울렸다.

도둑이라는 그 한 마디 때문에 은행 CCTV에 찍힌 자신의 모습이 아주 오랫동안 보관된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으하하하하핫!”

그는 웃으며 더 강하게 스트로크를 잡아당겼다.

* * *

그리고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벽지가 누렇게 변한 허름한 모텔.

꽃무늬 패턴의 이불을 덮고 있던 알몸의 상준식이 뒤척이다 눈을 번쩍 떠 천장을 바라본다.

낯선 천장. 자신이 여기 왜 있는 것일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이내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소위 방석집이라고 말하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2차를 나와 관계를 맺고 그대로 잠이 든 것 같다.

곧바로 지갑과 핸드폰을 살핀 히죽 웃었다.

-오빠, 너무 취한 것 같아서 깨우지 않고 가요. 나 2시쯤 깨니까 그때 연락할게요. 오빠의 정아가.

“오우, 씨발년.”

어제 열심히 뻐꾸기를 날리며 맞춰 준 게 헛짓이 아니었던 것 같다.

“4시라…… 큭큭.”

당분간 여자는 굶지 않을 듯싶다.

“끄응차!”

몸을 일으킨 그는 화장실로 향했다.

“어우, 씹.”

내리쬐는 가을의 강렬한 햇빛에 상준식은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배를 쓰다듬었다.

꼬르륵!

허기와 함께 올라오는 강렬한 숙취.

담배를 빼 든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부터 사야겠네.”

아니, 그 전에 돈부터 뽑아야 한다. 아까 확인해 봤을 때 겨우 만 원짜리 한 장만 있었던 지갑.

근처의 ATM 기기로 걸어가 계좌를 확인한 그는 화들짝 놀랐다.

“씨발, 뭐야. 왜 이것밖에 없어?”

고작 백만 원이 전부인 잔고. 불과 1년 전만 해도 1억이 넘게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다.

그렇게 경악하던 그의 머릿속으로 지난 1년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혹여 놈들이 자신을 찾을까 조마조마해하면서도 매일같이 옆구리에 여자를 끼고 술을 마셨던 나날들.

“우아. 정말 다 쓴 거야? 진짜?”

어젯밤 술값만 해도 30만 원이 넘게 나왔으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이젠 정말 월세를 걱정해야 될 수준. 아니, 이번 달 월세를 내고 나면 라면도 사 먹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걱정 없었다.

“집이야 어제 꼬드긴 년 숙소에 들어가면 될 테고…….”

이렇게 된 이상 돈을 벌 때까지 빌붙어 있어야 할 듯싶다.

문제는 앞으로 쓸 돈이다.

“하, 그때 그 새끼들처럼 사기 치는 새끼들은 또 없…… 아니지. 그냥 내가 해 버려? 어차피 별거 없었잖아?”

서울말 잘하는 조선족들 모아다 은행이나 검찰 따위를 사칭하는 게 전부였던 일.

심심할 때 조선족들과 이야기를 하며 그들이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는지도 알고 있고, 레퍼토리도 대충 알고 있다.

‘남은 건 대리점에서 핸드폰 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빼 오는 건데…….’

이 부분이 가장 돈이 많이 들고, 또 가장 귀찮은 작업이다.

“아! 그 새끼가 있었지?!”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동창 중에 폰팔이를 하는 놈이 있었다.

“이러면 쉽지. 그래, 하자!”

결심을 굳힌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어! 나야! 나한테 죽이는 사업 아이템이 하나 있거든? 그런데 이게 초기 투자금이 좀 들어. 혹시 생각 있냐? 아니,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한 3백만 원?”

그는 킬킬 웃으며 자신이 잘 가는 토토방으로 향했다.

“아오, 씨발. 어떻게 하나도 들어맞지가 않냐.”

괜히 생돈 20만 원만 날렸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집으로 향한 그는 때 빼고 광을 내기 시작했다. 1시간 뒤에 어제 방석집에서 만난 여자와 식사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 2주 정도는 공을 들여야겠지?”

그러고 나면 돈이 모두 떨어질 것 같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어쩔 수가 없었다.

“씨발. 이 개새끼들이 하자고만 했어도 이런 짓까지는 안 하는데…….”

연락을 한 놈들 모두 생각해 보겠다며 전화를 끊더니 아직까지 연락을 안 해 오고 있다.

“어쩔 수 없네. 이 정아라는 년 명의로 사채라도 땡겨야지…….”

지이잉!

“오?! 여보세요? 어, 그래. 생각해 봤어? 그래! 3백이면 다 된다니까. 응, 응. 그래. 언제 볼까? 내일?”

그렇게 약속을 잡으며 통화를 종료한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캬! 한 놈 물었고요!”

호구가 넝쿨째 들어왔다.

기분이 째진 그는 희희낙락 웃으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울리는 벨.

삐리리, 삐요오오오!

“…….”

“……누구?”

범상치 않은 덩치와 면상을 지닌 3명의 사내.

그의 엉덩이가 슬그머니 뒤로 빠진다.

“상준식 맞제잉?”

상준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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