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80화>
“아이고, 이놈아!”
박옥자가 상처투성이인 정현수를 내려친다.
그렇게 돈이 부족했냐. 차라리 말을 하지 그랬냐. 밥은 제대로 챙겨 먹은 거 맞냐. 왜 얼굴이 반쪽이 됐냐.
설움과 걱정이 담긴 작고 주름진 손이 정현수의 심장을 때린다.
“하, 할머니…….”
“아이고! 아이고! 아, 아닙니다, 경찰 선생님! 제가 그냥 빌려준 거예요!”
종혁은 정현수의 앞을 가로막은 박옥자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저딴 놈에게는 정말 과분한 분이 아닐 수 없다.
“후우. 할머님, 정현수 씨가 사기를 친 게 아닙니다.”
“……예?”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었죠?”
박옥자는 도통 이해를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군가 여기 정현수 씨 흉내를 내서 할머니에게 사기를 친 거예요.”
“예에?! 부, 분명 현수 목소리였는데요?”
“정말 정현수 씨 목소리가 맞았어요?”
움찔!
박옥자의 눈에 혼란이 깃든다. 이렇게 말하니 아닌 것 같기도 하는 그날의 기억.
박옥자가 정현수를 바라본다.
“나 아니야, 할머니……. 내가 왜 할머니에게 사기를 쳐.”
멍해져 버린 박옥자의 볼을 타고 한 줄기의 눈물이 주륵 흘러내린다.
그건 다행이라는 감정이었다.
“잘됐다. 잘됐어. 그래, 니가 아니면 된 거야.”
찢겨져 있던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 간다.
박옥자의 눈에서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정현수를 붙잡은 채 펑펑 울었고, 정현수는 안절부절못했다.
“밥은 잘 먹고 다닌 거야?”
“응. 그런데 그보다 어떻게 된 거야?”
정현수의 마음이 급해진다.
사고를 친 후 대피소로 삼았던 할머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찾아보지도 않았던 할머니지만, 그래도 할머니다.
한두 푼도 아닌 4천만 원이나 사기를 당했단 말에 그의 마음이 급해진다. 하지만 종혁은 가서 들으라며 궁금증을 풀어 주지도 않았던 상황.
‘누, 누가 날 흉내 냈다고? 이거 설마…….’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네가 한 거 아니면 됐어. 몰라도 돼. 그런데 그건 왜 차고 있는 거야?”
“아! 그 그게…….”
사기보다 더 악질인 살인.
종혁이 한 발 앞으로 나선다.
“정현수 씨가 죄를 좀 지었어요, 할머님. 그래서 교도소를 좀 가야 해요.”
“……아, 아닙니다. 그것도 제가 한 겁니다, 선생님!”
“경찰에게 거짓말하시면 안 돼요, 할머님. 정현수 씨가 술에 취해서 사람을 때린 증거가 다 나왔어요.”
종혁은 할머니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실까 우려되어, 차마 사실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거짓을 이야기했다.
“네에?! 아이고, 이 화상아!”
짝! 짜악!
“아파! 아파, 할머니!”
“왜 술을 먹고 사람을 때려! 얼마나 때렸기에 교도소를 가! 거기다 왜 할미 연락은 안 받은 거고!”
“그, 그건…….”
술 먹다 핸드폰을 고장 냈다고 어떻게 말할까.
어차피 연락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신규가입을 하는 게 더 쌌기에 그는 예전에 쓰던 번호 대신 새 번호를 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몇 달 전 자신이 버렸던 대포차를 발견했다는 뉴스가 떴다. 혹시 그때 동승했던 나이트에서 꼬드긴 여자가 연락을 해 올까, 더 다른 사람과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그게 무슨 말이야? 누가 날 흉내 냈다니?”
“신경 쓰지 말라니까!”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정현수는 어떻게든 숨기려 하는 박옥자의 모습에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설마 진짜 그 새끼들이…….”
움찔!
박옥자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혼잣말이었으나, 그것을 못 들을 종혁이 아니었다.
종혁은 화들짝 놀라 정현수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눈빛을 가라앉히고는 다시 박옥자에게 시선을 향했다.
“아, 이장님한테 제 이야기는 들으셨죠?”
“……혹시 저기에 별장을 지으신다던?”
“예, 맞습니다. 그 때문에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 혹시 일 하나 해 보실 생각 없으신가요?”
“예?”
“오는 길에 정현수 씨가 그렇게 할머님 칭찬을 하더라고요. 세상에서 할머니 음식 솜씨가 최고라고요.”
박옥자는 ‘할미 밥이 그렇게 맛있었냐, 왜 쓸데없는 말을 하냐’는 눈빛을 지으며 정현수를 봤고, 정현수는 흔들리는 눈으로 종혁을 봤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짓는 펜션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 참고로 월급은 이 정도로 드릴 거예요.”
“하겠습니다.”
종혁이 제시한 금액을 본 박옥자는 곧장 승낙을 했다. 자신이 농사를 지어 버는 돈보다 월등히 많은 액수.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할머니.”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이렇게라도 떨어뜨려 마주칠 일이 없게 만든다면, 그리고 그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그들이 입은 상처도 차차 아물 것이었다.
“아, 당분간 정현수 씨를 보지 못하게 될 텐데 마지막으로 식사라도 한 끼 차려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혀, 형사님!’
“아이고, 마땅한 반찬이 없는데…… 자, 잠시만 있어 봐요!”
농약 치는 기계를 벗은 박옥자는 동네를 향해 부리나케 뛰었고, 종혁은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보는 정현수를 마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용서한 거 아니다. 넌 내가 받게 할 수 있는 최대 형량을 받게 할 거야.”
박옥자가 죽기 전까지 절대 나오지 못할 정현수.
“그러니까 배 터지게 먹어. 아니, 배 터져도 먹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널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분께서 마지막으로 차려 주는 식사니까.”
“……크흑!”
정현수는 끝내 눈물을 흘렸고, 종혁은 잠시 담배를 물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우는 것조차 사치라 느낀 것인지 숨죽여 울던 정현수가 진정을 하자 종혁은 세 번째 담배를 비벼 껐다.
“다 울었냐?”
“예, 감사합니다.”
“그럼 불어.”
“예?”
종혁은 정현수의 멱살을 잡아채며 죽일 듯 노려봤다.
“네 할머니한테 사기 친 놈들, 보이스피싱 세력에 대해 다 불라고, 새끼야!”
“……!”
정현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 * *
“거기서도 밥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몸 아프지 말고.”
“응. 연락할게. 추우니까 그만 들어가요.”
“춥기는 무슨…….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걱정 마세요. 이놈이 출소하면 제가 다신 허튼짓하지 못하도록,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해서 살 수 있게 신경 쓰겠습니다. 심려 놓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뭐해, 이놈아! 선생님께 인사 안 드리고!”
정현수는 얼떨떨 허리를 숙였고, 종혁은 그의 뒷덜미를 잡아 차에 태웠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공사는 모레부터 시작한다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선생님!”
꾸벅 허리를 숙이는 그녀를 뒤로하며 차에 올라 출발시킨 종혁은 잘 가라며 손을 젓는 박옥자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곤 핸드폰을 들었다.
“예, 복덕 할머니. 범인을 잡았습니다.”
쿵!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한 그녀의 경악.
-저, 정말이에유? 참말로?
“예. 지금 가는 중이니까 좀 있다가 뵐게요.”
-아이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슨상님!
씁쓸한 한숨을 내뱉은 종혁은 신대리를 완전히 벗어나자 잠시 차를 세웠다.
“네가 일한 곳의 아지트가 잠실에 있다고?”
“예. 제가 ATM기에서 돈을 뽑는 인출책이었을 땐 잠실에 있었습니다.”
“알았어. 앞으로 물어볼 거 많으니까 거기서 대가리 잡고 생각하고 있어.”
반성도 말이다.
종혁은 이를 악물며 차를 출발시켰다.
‘분명 초창기 보이스피싱은 기관 사칭이었는데 말이야.’
금융감독원이나 은행, 검찰, 경찰 등을 사칭한 초창기의 수법. 지인을 사칭하는 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 했다.
* * *
-할머니.
-……현수냐?
달칵!
박옥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음성 파일을 중지시킨 삼십대 중반의 사내, 장호영이 입술을 비튼다.
이것이었다. 새로운 방식을 떠올리게 된 게.
“크으. 새끼.”
“아하하.”
어색하게 웃는 이십대 사내의 머리를 헤집은 장호준의 눈에 애정이 가득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걸 생각했냐?”
“하하하. 그냥 본능적으로…….”
정말 본능이었다.
인출을 도맡아 하던 놈이 돈을 들고 도망친 이후 한 번 뒤집어졌던 자신들 조직. 그래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출책이 필요해졌고, 그래서 정현수를 다시 찾게 됐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연락이 되지 않아서 그의 신상을 파 봤고, 결국 박옥자의 전화번호까지 알아내게 됐다.
“그렇게 연락을 했는데, 저를 현수 그놈으로 오해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때 머리가 파바박!”
“진짜 대단한 새끼.”
다시 청년의 머리를 헤집은 장호영은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다들 잘 들었지?”
“예!”
우렁차게 대답하지만, 표정은 썩 좋지 못하는 6명의 남녀들.
“그런데 왜 못하는 건데! 벌써 1년이다, 1년!”
그 1년 동안 벌어들인 금액은 겨우 20억도 못 된다.
“씨발, 내가 사기 칠 놈의 뒤까지 파 줘야 해? 그럴까?!”
“그, 그거이…….”
한 여성의 입에서 이북 사투리 억양이 흘러나오자 장호영의 낯빛이 굳는다.
“내가 씨발 사투리 쓰지 말라고 했지!”
한국에 산 지 몇 년인데 아직까지 사투리를 쓰는 걸까. 교정에 교정을 거듭해 사투리를 고치게 했지만, 가끔 이렇게 무심코 나올 때가 있었다.
“대가리에 똥만 차 있어? 지나다니는 개새끼를 데려다 가르쳤어도 너희보단 잘하겠다! 너희 돈 벌기 싫어?! 벌기 싫으면 얼른 말해! 다른 놈들 구할 테니까!”
“죄, 죄송합니다!”
“잘하겠습니다!”
여기서 쫓겨나면 또다시 힘들게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버는 돈은 여기서 버는 것에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에서 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간절히 애원하는 조선족 남녀들의 모습을 차갑게 응시하던 장호영은 혀를 찼다.
“뭐해? 일들 해!”
“……!”
“예, 옙!”
그들은 다급히 다닥다닥 붙여진 책상들을 향해 달려갔고, 곧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응! 엄마!”
“할아버지, 전데요.”
금세 시끄러워지는 작은 사무실.
청년이 장호영을 보며 작은 우려를 나타낸다.
“정말 괜찮을까요?”
이 짓을 한 게 벌써 2년이 넘어간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돈도 적당히 모았으니 잠시 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일본에서도 그렇게 했잖아요, 형.”
일본에 잠시 유학을 갔을 때, 대학에서 사귄 지인이 소개해 줘 알게 된 피싱 사기.
이건 돈이 되겠다 싶어 한국에 와서 시작을 했다.
“꼬리가 밟히기는…….”
경찰은 이 사기가 뭔지조차 모르고 있을 거다. 그러니 아직 뉴스에 나오지 않는 것일 터.
“야, 일본 사장님 말 못 들었어?”
일본에서 이 보이스피싱 사기가 처음 발생한 이후 대중들에게 알려지기까지 거의 6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것도 너도나도 보이스피싱을 하기에 피해자들이 겹쳐서 그런 거라고 했다.
“걱정 마. 이 나라에선 우리가 처음이야.”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그럴 거다.
“하지만 슬슬 저희 따라 은행이나 경찰을 사칭하는 놈들이 나타는 것 같아서……. 거기다 요새 짭새들도 꽤 열심히 일하는 것 같고…….”
“아, 걱정하지 말라니까? 안 걸린다고. 안 걸려.”
일본에서도 그랬다. 보이스피싱이 절정에 달했을 때조차도 검거율이 30퍼센트가 채 못 됐던 일본.
그런데 보이스피싱이 뭔지도 모르는 한국 경찰이 자신들을 찾아낸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헛소리 말고 너도 가서 일해.”
“끄응. 알겠습니다.”
청년이 머리를 긁으며 자리로 가자 장호영은 코웃음을 쳤다.
“걸리기는 무슨.”
감조차 잡지 못한 경찰은 신경 쓸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예, 사장님. 주민등록번호 좀 더 사고 싶은데요.”
그는 킬킬 웃으며 담배를 물었다.
* * *
한편 그 시각, 경찰 본청의 대회의실.
장희락 경찰청장을 비롯해 본청의 고위 간부들과 지방경찰청장들, 각 지방경찰서의 서장들, 그리고 본청을 비롯한 각 지청, 지서의 수사과 과장들에 경찰대와 중앙경찰학교 교수들까지 전부 모여 종혁을 쳐다본다.
그동안 한 번 회의를 건의했다 하면 대형 사고를 쳤던 종혁. 그런데 이번엔 이렇게 많은 간부들을 소집했다.
이번엔 무슨 일일까. 기대감이 그들의 전신을 채운다.
톡톡!
마이크를 두드리는 소리가 스피커를 울리는 것과 동시에 단상 옆으로 나와 거수경례를 올리는 종혁.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홍보부의 최종혁 총경입니다. 충성.”
“최 부장의 말처럼 다들 바쁜 사람들이니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지.”
“예.”
장희락 경찰청장의 말에 종혁은 최재수를 봤고, 그는 얼른 스크린에 하나의 글귀를 띄웠다.
[위험한 목소리, 보이스피싱. 그 위험성에 대하여]
‘보이스피싱?’
‘저게 뭐야?’
‘글쎄?’
“흠. 그거 혹시 최 부장이 우리 지청에서 긁어 간 기관 사칭, 지인 사칭 사기와 연관이 있는 건가?”
“어? 그거 우리한테서도 긁어 갔는데?”
“저희 서에서도 긁어 갔습니다만?”
“뭐야?”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그들.
대회의실의 공기가 차갑게 식자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됐군.’
“올 한 해 전화를 통한 기관 사칭, 지인 사칭 사기로 인해 발생한 피해액이 총 104억 7천만 원.”
작년 한 해 발생한 피해액이 약 30억 4천만 원.
쿵!
“예, 큽니다. 크죠.”
또 고작 1년 만에 피해액이 3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전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일본을 뒤흔들었던 이 사칭 사기, 아니 보이스피싱 사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란 걸 말입니다.”
한 해 발생되는 피해액이 수천억, 어쩌면 조를 돌파했을지 모르던 가까운 미래.
그럼에도 제대로 된 검거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했던 미래.
‘그러니 지금 시스템을 구축해야 돼!’
앞으로 절망과 도탄에 빠질 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해.
종혁의 눈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