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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78화 (57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78화>

“어? 형?”

툭 치면 떨어질 것 같은 허름한 나무문을 밀고 나오던 재우가 깜짝 놀란다.

“뭐야. 아까 온다고 문자 보냈잖아.”

“아, 우리 촬영 시작하면 핸드폰 모두 수거해 가거든.”

“돈 버느라 애쓴다.”

“아하하.”

어색하게 웃은 김재우가 순간 눈을 빛낸다.

“안 한다. 뭔지 몰라도 안 할 거야.”

“에이. 내가 뭘 시키려고 이러는 거겠어? 따라와. 내가 우리 출연자들 소개시켜 줄게. 홍보대사로 선정할 만한 애들 많아.”

“그래?”

그렇지 않아도 윤아네 그룹이 너무 바빠지기도 하고, 특혜 논란이 나올 수도 있기에 슬슬 경찰 홍보대사에서 제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종혁이 관심을 드러낸다.

“얼굴 터서 나쁠 건 없는 애들이야.”

“흠. 아니, 그 전에 먼저 이장님부터 뵙고 싶은데 어디에 사시냐?”

“이장님은 왜? 무슨 일 있어?”

“그냥 내 오지랖.”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렇게 억울한 것일까. 아무래도 그 할머니의 사정을 알지 못하면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농약을 샀다는 것도 마음에 걸려.’

제초나 병충해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농약은 본격적으로 수확을 시작하는 가을에 많이 쓰이는 물건이 결코 아니었다.

물론 배추처럼 가을에 심는 작물도 있긴 하지만 마음에 걸렸다.

“그래? 그럼 있다가 같이 가. 안 그래도 곧 이장님 댁에 가려고 했거든.”

“아니야. 그냥 가르쳐 주기만 해.”

“음…… 저기 저 끝에 붉은 기와집 보이지?”

“아, 오케이. 땡큐. 이따가 보자.”

재우가 가리키는 붉은 기와집으로 향한 종혁은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안에 사람 있어! 들어와!”

끼이익!

“무슨 일…… 누구?”

“안녕하십니까. 경찰입니다.”

종혁이 경찰공무원증을 보여 주자 육십대 노인, 이장은 깜짝 놀랐다.

“아니, 경찰이 무슨 일로…….”

“일단 이것 좀 받으시죠. 초면에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좀 사 왔습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오는 길에 있는 작은 슈퍼에서 사 온 음료수를 내밀자 이장이 환하게 웃으며 받아 든다.

“어이구. 뭘 이런 걸 다. 여보, 마누라!”

“왜요!”

“커피랑 씹을 것 좀 내와! 손님 오셨어!”

“아,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에헤이. 손님이 오셨는데 대접을 하지 않으면 쓰나. 앉아요, 앉아.”

“그럼…….”

종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마루에 앉았고, 곧 이장의 부인이 따끈한 커피를 내왔다.

“어머. 이 잘생긴 총각은 누구시래? 처음 뵙는 분인데?”

“경찰이시래. 읍내 경찰서에 새로 부임해 오셨나 봐.”

“아이고! 읍내 아줌씨들 애가 닳겠네!”

“아줌씨들만 애가 닳겠어? 시집 안 간 년들 모두 눈이 돌아가겠지. 우체국 애가 올해 31살이던가?”

“에이. 걘 한 번 다녀왔잖아요. 걔보단 건강원 딸내미가 훨씬 예쁘고, 나이도 더 어리죠.”

“그런가?”

어떻게 생각하냐는 눈빛에 종혁은 그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 마셔요. 마셔.”

“하하, 예.”

호록!

‘음?’

종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웬만한 카페보다 맛있는데요? 비결이 뭔가요?”

“아이고, 능청도 좋아라! 호호호호호! 필요하면 말해요. 내 언제든 타 드릴 테니까.”

“감사합니다.”

이장의 아내는 이야기들 나누라고 하며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고, 이장은 음흉하게 웃었다.

“커피 맛 죽이죠? 내가 저 솜씨에 반해서 청혼한 거잖아요.”

“캬! 아쉽네요. 제가 30년만 더 일찍 태어났어도!”

“으허허허허!”

종혁의 넉살에 웃음을 터트리던 이장은 이내 아차 했다.

“아차차. 그래서 뭘 묻고 싶어서 오셨소? 단순히 인사하러 온 건 아닐 것 같은데…….”

“아, 저기 위에 16번지 할머님에 대해 여쭙고 싶어서요. 녹색 대문 집이요.”

“아아, 그 일 때문에 오셨구만?”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다. 그것도 꽤 답답한 사연이 말이다.

찰칵! 치이익!

급격히 어두워진 낯빛으로 담배를 무는 이장.

“에휴. 참 지랄 맞지. 지랄 맞아.”

“대체 무슨 일이기에…….”

“사기예요.”

그것도 동네 사람 몇 명이 휘말린 사기.

그리고 이어진 이장의 말에 종혁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끼이익!

“왈! 왈왈!”

키가 작은 81살의 노인, 박옥자가 녹색 문을 열고 들어가자 꼬질꼬질한 말티즈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그에 순간 슬픔과 짜증으로 물드는 그녀의 눈.

박옥자는 다가오지 말라는 듯 강아지를 발로 툭 치며 마루로 향했고, 말티즈는 그런 박옥자를 따라붙으며 계속 반갑다며 만져 달라고 왈왈 짖는다.

“저리 가, 이놈아. 아, 가라고!”

“끄으응!”

한 소리를 듣고 나서야 꼬리를 감추며 물러나는 강아지.

그 모습에 아차 한 박옥자는 복잡한 눈으로 겁을 먹은 강아지를 응시한다. 저 말도 못하는 강아지가 무슨 죄가 있을까.

그러나 차마 예뻐할 수가 없다.

“썩을 놈…….”

등을 돌리고 앉은 박옥자가 저 강아지를 가져다 놓은, 할미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손자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문다.

“에이.”

속에서 천불이 솟은 그녀가 냉장고에서 술병을 꺼내 드는 순간이었다.

끼이익!

“언니, 있어?”

“……없으면 안 들어오게?”

“그건 아니지. 아이고, 아침부터 또 술이야?”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마루에 앉은 78세의 김예옥이 자신도 마시겠다는 듯 박옥자의 손에 들린 술잔을 뺏어 들었고, 얼굴을 구긴 그녀는 새 술잔을 가져왔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안주도 없이 술을 마셔서일까.

낯빛이 금세 달아오른 박옥자의 눈에 물기가 고인다.

“어휴. 내가 죽일 년이지. 내가 죽일 년이야!”

퍽! 퍼억!

예옥이 가슴을 치는 그녀를 말린다.

“이제 그만 잊으라니까.”

“어떻게 잊어!”

손자가, 그것도 직접 기저귀를 갈아 주며 애지중지 키웠던 친손자가 사기를 쳤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네 돈도 홀랑 날렸는데!”

어디 김예옥의 돈뿐일까.

이 신대리에 태어나면서부터 친하게 지내 온 언니, 동생들 돈을 모두 날렸다. 일 년 벌어 일 년 겨우 먹고사는 힘든 사람들의 돈을.

작년 겨울, 설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시 쉬러 왔다고 10년 만에 저 강아지 새끼를 들고 나타난 손자.

무슨 일이기에 이런 시골까지 온 것일까, 무슨 힘든 일이 있기에 할미까지 찾아온 걸까 걱정이 됐지만 혹여 마음을 쓰이게 할까 물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그때부터 이 집에서 살며 깨진 지붕도 고치고, 문풍지도 새로 발라 주는 등 이 집을 고쳐 주며 3개월 정도 살던 손자는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작년 가을 이맘때,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손자였다.

갑자기 일이 생겨 돈이 필요하게 됐다고, 한 달 안에 갚겠다고.

무려 4천만 원이나 되는 거액이었지만, 그녀는 빌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의 돈까지 빌려서.

손자가 빌려 달라는데 안 빌려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약속한 날이 되자 손자에게 연락을 했던 박옥자는 깨닫게 되었다. 손자가 자신에게 사기를 친 거라는 걸 말이다.

없는 번호로 나왔던 손자의 전화번호.

“갚는다며. 이번에 추수하면 내 것도 갚는다며. 이러다 병 걸려.”

“손자 복도 없는 년인데 병 걸리면 어때서!”

자식들 다 먼저 보내고 하나만 남았던 손자.

결국 눈물을 흘린 박옥자는 술을 들이켰고,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김예옥도 답답한 가슴을 풀고자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였다.

끼이익!

“아이고, 아침부터 술이 넘어가나 보네?”

세 명의 노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입술을 삐뚜름하게 비튼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박옥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왜 또 왔어, 왜! 다 갚았잖아!”

대체 얼마나 더 사과해야 직성이 풀릴까.

사기를 당한 이후 매일같이 했던 사과.

어찌어찌해서 겨우 돈을 다 갚았지만, 그래도 부족하다는 듯 매일같이 사과를 재촉하는 사람들.

오늘도 앞이 아득해진 그녀의 눈이 독기를 머금는다.

그에 안으로 들어온 할머니들도 눈을 뾰족하게 떴다.

* * *

“그렇게 된 거예요.”

“하아…….”

종혁이 답답해진 가슴을 누른다.

손자가 할머니에게 사기를 쳤다. 이만큼 답답한 사건이 있을까.

“신고를 하셨습니까?”

“신고는 무슨.”

그래도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낸 동네 사람의 손자다.

심지어 갓난아기 때 함께 예뻐한.

“음? 그런데 신고도 안 했는데 이건 어떻게 아는 거요?”

“오늘 오는 길에 봤는데 많이 억울해하고 계시더라고요.”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이장이 세 번째 담배를 문다.

“하긴 나도 그 이모님들 모습을 보고 놀랐는데, 옥자 이모는 더 그렇겠지.”

박옥자가 처음 사기를 당했다고 사과하며 양해를 구한 그날, 그들의 모습을 이장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셔서인지 다들 성질이 드세긴 했어도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던 그들.

마을에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웃고,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울던, 뭐라도 하나 얻으면 새침한 얼굴로 다른 사람들과 나누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모님들의 표정이 싹 변하는데…… 허어.”

이장은 처음 단체로 귀신이 들린 줄 알았다.

“혹시 이전에도 그분들께서 사기를 당한 적이 있습니까?”

“……그분들뿐일까요. 그땐 동네 사람들, 아니 우리 남면 사람들 전체가 사기를 당했죠.”

대략 13년 전쯤 서울에서 웬 사람들이 내려와 횡성이 관광특구로 정해진다, 큰 도로가 날 테니 자신들에게 논과 밭을 판매하는 걸 위임해 준다면 큰돈을 벌게 해 주겠다고 했다.

물론 정말 대관령 관광특구라는 게 만들어지며 횡성의 일부 지역이 포함되긴 했지만, 자신들 동네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고 그렇게 마을 사람 전체가 사기를 당했었다.

“다행히 범인들을 빨리 잡긴 했지만…….”

몇몇 이들은 자신들의 논밭을 돌려받지 못했다. 범인들이 이미 논밭을 매각한 뒤 그 돈을 다 써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그 충격으로 성덕 이모는 하나뿐인 자식을 잃었고, 자복이 이모는 남편을 잃었죠. 성덕 이모 아들은 술병으로 갔고, 자복이 이모는 화병으로 보냈어요.”

다른 한 명은 그보다 훨씬 예전에 남편과 자식을 잃었다.

“다들 그때부터 독하게 사시긴 하셨지만…… 쯧쯧쯧.”

거기다 하필 그 땅에 골프클럽이 세워졌다.

“그래서…….”

이러면 돈에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아.”

골치가 아프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 사건.

“그럼 박옥자 씨께선 그분들에게 빌린 돈은 갚으신 겁니까?”

“갚았죠. 사정을 안타까워한 마을 사람들이 한 푼, 두 푼 빌려줘서 바로 갚았어요.”

하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상처 입은 마음은 치유되지 않았다. 그들의 폭언은 멈추지 않았고, 장장 1년여 동안 이어졌다.

그 말에 종혁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돌겠네.’

아무리 성격 좋은 사람이라도 1년 동안 매일같이 폭언을 들었다면, 돌아 버리지 않곤 견딜 수 없을 거다.

일단 그들과 박옥자를 떨어트려 놔야 했다.

‘아니면 큰일 나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봐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겠지만, 박옥자는 지금 궁지에 몰려 있는 상태다.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어떡해야 하려나…….’

“이장님! 저희 왔어요-!”

“어이구, 왔어?”

“어? 형!”

종혁은 몸빼 바지를 입은 채 제작진들과 함께 우르르 들어오는 재우들과 그들을 진심으로 반기는 이장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이장님, 혹시 이곳에 집을 짓는 데 특별한 조건 같은 게 있습니까?”

“응?”

“별장이나 하나 지을까 해서요.”

이장과 재우들은 종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눈을 껌뻑였다.

* * *

촤악! 촤악!

알이 제법 영근 배추와 무에 농약이 뿌려진다.

“후우.”

잠시 허리를 펴며 어깨를 돌린 박옥자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무와 배추들을 응시하다 고개를 저었다.

“부지런히 벌어야지. 부지런히.”

그래야 빚진 걸 갚지 않겠는가.

다 좋은 사람들이라 재촉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얼른 갚아 버려야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 빚만 다 갚으면…….”

눈빛이 일렁인 그녀는 이내 입술을 깨물며 다시 농약을 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아이고, 아직도 여기 있으면 어떡해.”

굽은 허리를 힘겹게 움직여 다가온 김예옥의 모습에, 오늘따라 화사하게 꽃단장한 그녀의 모습에 박옥자는 씁쓸히 웃었다.

오늘은 이 마을에 별장을 짓겠다는 서울 양반이 허락해 줘서 고맙다는 선물로 5박 6일 단체 관광 여행을 보내 주는 날.

원하는 사람은 모두 보내 준다는 말에 신대리 마을 사람들 전부가 신청했지만, 박옥자만큼은 신청하지 않았다. 단 하루라도 맘 편히 있고 싶어서다.

“됐어. 약 쳐야 해. 소 새끼 여물도 줘야 하고. 다녀와.”

“사료는 젊은 애들이 해 준다고 했잖아. 거기다 그 가수 한다는 애들도 올 텐데…….”

“어여 가.”

“……에휴. 알았어요. 나 없다고 술만 마시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가라니까.”

박옥자는 힘없이 손을 저었고, 김예옥은 떼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며 마을 밭을 벗어났다.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박옥자는 주먹을 꽉 쥐며 다시 농약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가 뜰 때 시작해서 해가 저물어 갈 때쯤 결국 다 농약을 다 친 박옥자는 지친 몸을 잠시 쉬고자 바닥에 앉아 농약이 3분의 1쯤 남은 농약병을 가만히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녀의 눈이 다시 일렁인다.

휘이잉!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할미의 가슴에 칼을 찔렀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생각이 난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부디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다.

왜 그랬는지. 정말 왜 그랬는지.

그러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휘이잉!

“쯧.”

다시금 불어와 온몸을 차갑게 식히는 바람에 그녀는 허리를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그래. 너도 안녕…….”

누군지도 모른 채 반사적으로 인사부터 받으며 몸을 돌린 박옥자는 종혁의 옆에 서 있는 손자를 발견하곤 눈을 부릅떴다.

“……야, 이 썩을 놈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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