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75화>
처음 의혹이 든 건 미군 기지 이전 사태 때였다.
미군 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데모 세력에 의해 종혁이 잡혀간 순간 청와대에 빗발쳤던 각국의 전화들.
그중 미국과 러시아가 강력하게 항의를 했었다.
종혁이 각국의 군인들 피지컬을 최소 20퍼센트 이상 향상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전 세계 수사기관이 탐내는 수사기법을 창시한 천재라는 사실은 안다.
그런 천재를 함부로 굴리고 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일개 개인의 문제로 국가가 국가에게 항의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일까.
과연 그것만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나설까.
‘그 의혹은 날이 갈수록 점점 커졌지.’
여러 사건이 있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자신이 다이닉스를 인수하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사건, 자율주행 전기 자동차를 개발하는 회사를 향한 JU그룹의 주가 조작 사건이다.
이전에도 범상치 않은 식견을 지녔다고 생각은 했으나, 그때 종혁이 보여 준 모습은 개인이 지닌 정보량으로 보일 수 있는 모습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조희구 사태도.’
범인은 놓쳤는데, 사기 피해액 전액을 환수했다. 국정원의 보고에 의하면 CIA, SVR이 도움을 주어 회수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무려 수조 원에 달하는 피해액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수조 원을 되찾는 데 도움을 주고도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움을 줬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종혁에게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닐지 의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확신을 굳히게 된 건, 삼전의 김용재 상무가 다이닉스 사냥에 협조를 한 것이었다.
‘기술 유출을 막아 준 것에 대한 빚을 갚는다?’
아니다. 김용재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젊었을 적의 경영 실패로 인해 언제나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는 김용재.
그런 그가 대현중공업의 다이닉스 인수가 분명 삼전에 위협이 될 일임에도 협조를 한 것이다.
“이는 즉…… 최 부장이 그러한 위협을 감수해서라도 도와야 될 인물이라는 거겠지.”
“예?”
현몽준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운전기사였던 이를 쳐다봤다.
“뭐 하나만 묻지. 자네가 막역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알고 보니 엄청난 부자라면 어떡하겠나?”
“글쎄요……. 약간 화는 나겠지만, 축하해 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운전기사는 미간을 좁혔다.
“음. 앞으로 술은 네가 다 사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혹시 최 부장이 더 부자였던 겁니까?”
“하핫! 아니야. 가지.”
어느덧 9월 말, 제법 쌀쌀해진 밤바람을 향해 피우던 담배를 집어 던진 현몽준은 차에 오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어.’
종혁은 처음 만났던 그때의 그 멋진 청년 경찰일 뿐이다. 돈이 많건 적건 상관없이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멋진 친구.
그는 의자에 등을 묻으며 잠시 마음을 흔들었던 유혹을 완전히 뿌리쳤다.
한편 현몽준를 태운 차가 사라진 자리.
찰칵! 치이익!
담배에 불을 붙이는 종혁의 곁으로 두 사람이 다가선다.
“정말 괜찮으신가요, 보스?”
“너무 성급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종혁은 우려를 나타내는 권아영과 박태규를 힐끔 보곤 별이 많이 뜬 밤하늘을 응시했다.
‘여긴 언제 와도 참 좋아.’
이렇게 별을 많이 볼 수 있어서 말이다.
“보스.”
“괜찮습니다. 일부러 드러낸 거니까요.”
권아영은 종혁의 얼굴에 서린 후련함에 한숨을 내 쉬었다.
“하긴 보스는 그런 사람이죠.”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에겐 다 퍼 줘야 직성이 풀리는 종혁.
종혁은 현몽준과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그에게 진실을 감춘 채 접근하는 것에 죄책감을 꽤 느꼈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 자신들을 부른 것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아 달라는 것일 터.
“보스는 참 쓸데없이 정이 많아요.”
그래서 존경하지만 말이다.
“하핫.”
왜 웃냐는 듯 눈을 흘긴 권아영은 이내 낯빛을 굳혔다.
“저분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건가요?”
“예.”
쿵!
권아영과 박태규가 주먹을 쥘 때, 종혁은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붉은 후미등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그럴 자격을 충분히 갖춘 분이잖습니까.”
자신을 만난 이후 그가 걸어온 행보를 보면 답이 나온다.
국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진창에도 발을 담글 수 있는 인물, 현몽준.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누가 대통령이 되겠는가.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현몽준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
종혁의 손에서 떠나 바닥에 부딪친 담배가 화려한 불꽃을 피워 냈다.
* * *
삐…….
‘내가 뭘 하고 있었지?’
그리고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세상.
몽롱한 정신을 울리는 작은 소리가 그녀를 귀찮게 한다.
삐……
‘시끄러워. 너 죽는다, 진짜.’
옆에서 장난치고 있을 게 분명한 동생을 떠올리며 짜증을 삭힌 그녀는 다시 몽롱한 정신에 몸을 맡긴다.
자고 싶다. 푹 자고 싶었다.
너무 힘들었던 알바.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자고 싶었다.
하지만…….
삐!
‘아, 진짜!’
짜증을 버럭 내며 눈을 뜬 그녀는 잠시 천장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새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높고 따스한 천장.
“주, 주희야?”
고개를 돌린 주희는 자신의 눈을 가득 채우는 아빠 김옥수의 얼굴에, 눈물콧물로 범벅인 아빠의 얼굴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냥도 못생겼는데.”
“아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옥수는 무사히 깨어난 딸에 감사하고 또 고마웠다.
그는 딸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어야 했다.
-삐리리리릴
“쿠흥!”
아침 일찍부터 재방영한 인생극장이 김주희가 깨어나는 걸로 끝나자, 오랜만에 경찰 정복을 꺼내 입은 채 일어서던 김덕출이 기겁하며 돌아본다.
“여보, 울어?”
“울긴 누가…….”
그렇게 말하지만 이미 코끝이 빨간 아내.
그 옆에 앉은 딸마저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그래서 저 김옥수 경사란 분은 어떻게 됐는데? 복귀하시는 거야?”
딸마저 눈을 빛내며 쳐다보자 김덕출은 볼을 긁적였다.
“……글쎄?”
“아, 복귀하시는구나.”
흠칫!
눈치가 빠른 아내에 입맛을 다신 김덕출은 몸을 돌렸다.
“그런데 경찰도 바뀌긴 많이 바뀐 것 같네. 저렇게 해 주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비단 퇴직한 경찰을 위해 대기업과 맞선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이것도 대단하지만, 김덕출의 아내에게는 퇴직한 경찰의 가족을 위해 좋은 병원에 입원시키고 좋은 의사에게 수술을 받게 해 준 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만약 옛날에도 저랬다면 당신도…….”
“헛소리.”
단호하게 말을 끊은 김덕출은 현관을 나섰고, 그의 아내가 빠르게 다가왔다.
“아무튼 오늘 늦어. 시골집이랑 장모님 댁은 당신이 애들 데리고 알아서 다녀와.”
오늘은 민족의 대명절임과 동시에 경찰의 날이기도 한 추석 당일. 아쉽지만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잡는다고 괜히 엉덩이 비비지 말고, 장모님 댁에서도 오래 있지 말고. 뭐 당신이 알아서 잘하겠지만, 헛소리 들리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헹! 걱정 마요! 이번엔 자랑할 거리가 넘쳐 나니까!”
이번에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연예계 및 방송가 뒤집기의 선봉에 자신의 남편이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 사건들로 인해 상여금도 어마어마하게 받아 왔다.
이제 언제 진급하냐고 걱정을 빙자한 잔소리를 듣는 것도 안녕이었다.
“당신 진짜 그 부장님께 잘해요.”
모두 종혁이 자신의 남편에게 기회를 줘서 이렇게 된 거 아니던가.
“아니, 언제 한번 모셔 와요. 내가 아주 찐하게…….”
“됐어. 내가 알아서 해.”
날이 선 남편의 말에 입을 다문 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암튼 오늘 경찰의 날 행사 TV로 방영한다고 했죠?”
“어. 유도 대회나 씨름, 격파 시범, 해킹 대회 등 여러 가지 준비했으니까 볼만할 거야.”
“아빠! 아빠도 TV에 나와?”
“……다녀올게. 아, 그리고 둘째 주에 가족 동반 휴가니까 갈 준비하고.”
어린 딸과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은 김덕출은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며 집을 나섰다.
그렇게 오늘따라 썰렁한 아파트 주차장의 차 앞에 선 김덕출은 눈을 가늘게 떴다.
“최 부장…….”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담배를 물며 종혁을 떠올리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차에 올랐다.
“쯧.”
부르릉!
김덕출을 태운 차가 경찰의 날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 * *
“국기에 대하여 경례!”
척!
한마음, 한뜻이 되어 경례를 한 수천 명의 경찰.
경찰의 날 행사가 시작되자 종혁과 홍보부도 바빠졌다.
“올해의 경찰 명단 어디 있어?”
“강진호 순경! 강진호 순경!”
“방송국에 자료는 잘 넘겼지? 다시 한번 확인해 봐!”
“저흰 유도 경기장으로 향하겠습니다!”
정신이 없어진 홍보부.
그들의 중앙에서 진두지휘를 하던 종혁이 힐끗 노트북을 보곤 주먹을 쥔다.
‘좋았어!’
어젯밤 방영된 경찰과 일반인, 그리고 연예인의 어린 자식들을 모아다 명예 경찰을 만드는 경찰의 날 특집 단편 예능 1화의 시청률이 무려 11퍼센트를 돌파했다.
“여론 조사 관리팀, 아빠 엄마 츙떵의 게시판 체크한 거 있습니까?”
“예! 여기 있습니다!”
게시판 여론을 살핀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다 귀엽다, 사랑스럽다는 말들뿐이었다.
특히 정민의 아픔에 안타까워하고 대견해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말을 하지 못함에도 가장 활발히 뛰어다니고 잘 웃던 정민.
“악플 쓰는 놈들은 신상 따서 각 경찰서에 배포하세요.”
“예!”
그가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을 테지만, 만약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알게 될 거다. 기분이 상한 경찰이 어디까지 더러워질 수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어딜 감히 애들한테.’
이런 놈들은 아주 혼쭐이 나야 했다.
콧방귀를 뀐 종혁은 오늘 경찰의 날 행사를 촬영하는 방송국의 PD에게 다가간다.
“아, 부장님.”
“저희가 드린 자료들은 확인하셨죠?”
전국 체포왕이나 작년 경찰의 날부터 올 한 해 선행을 가장 많이 베푼 경찰의 상세한 프로필이 적힌 자료.
곧 있으면 시작될 행사에서 시청자 국민들의 이해를 돕기 편하게 만들 자료로, 김옥수 등 복직을 희망한 경찰관들의 상세 프로필도 있다.
이들은 오늘 환영 및 진급식을 통해 다시 경찰에 복직을 하게 될 것이다.
“아이고, 걱정 마십쇼. 그런 건 눈 감고도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 김 경정은 특히 잘 찍어 주시고요. 저희 홍보부의 식구거든요.”
“……하하, 예.”
종혁의 당부에 놀라는 김덕출을 힐끔 본 PD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신이 일하는 방송국을 엎어 버리는 데 앞장을 선 게 저 김덕출 경정이기 때문이다.
방송국의 암 덩어리들을 제거해 줬으니 감사해야 되지만, 마냥 그럴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마음.
그런 PD의 기색을 무시한 종혁은 잘하라며 김덕출을 두드려 준 뒤 몸을 돌렸다.
“응, 정민아. 어디야? 할머니 바꿔 봐.”
오늘 정식으로 위촉을 받아 각 주소지 관할의 명예 경찰관이 될 아빠 엄마 츙떵의 아이들. 장호돈이나 김재선 등 MC들도 참여하기로 되어 있다.
김덕출은 그렇게 멀어지는 종혁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 체포왕 수상식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어느덧 오후 7시. 특설 무대에서 연예인들이 공연을 하고, 또 경찰들이 광란의 응원을 벌이며 경찰의 날 행사가 마무리되자 홍보부 사람들이 다시 모인다.
“순간 최고 시청률 12.8퍼센트, 평균 시청률 6.1퍼센트입니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아무래도 명예 경찰관 위촉식이었다.
“다른 지상파 방송국 추석 특집 방송 평균 시청률은?”
“어…… 5.8퍼센트입니다.”
“뭐야? 진짜?”
“예. 이게 왜…….”
‘됐어!’
“와아!”
“아자!”
홍보부 사람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리 시간대를 잘 골랐다지만 아이돌이나 배우, 외국인들이 넘쳐 나는 다른 추석 특집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역사적인 기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빌드업을 잘 쌓은 덕분이네.’
아빠 엄마 츙떵부터 인생극장까지.
이 프로그램들 덕분에 울고 웃은 국민들이 추석임에도 TV 앞에 앉아 주었기에 이런 시청률이 나올 수 있었다.
종혁은 놀라는 그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들 수고했고, 다음 주 월요일까지만 더 수고합시다.”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으니 어느 정도 사후 관리를 해야 됐다.
그리고 그 이후엔 휴가다. 그것도 무려 2주짜리 휴가.
올 한 해 홍보부가 해 놓은 일들 덕분에 휴가를 포상으로 받은 것도 있지만, 여름 시즌에 휴가를 가지 못한 것도 있기에 이번에 싹 다 붙여서 가는 거다.
“부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끝이다!”
“와아아!”
환호성을 터트리는 경찰들.
종혁은 그동안의 노고의 달콤한 열매를 마음껏 즐기는 그들을 흐뭇히 바라봤다.
그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예, 대한민국 경찰청 홍보부 최종혁 총경입니다.”
-보스, 모든 준비가 끝났어요.
순간 종혁의 눈이 흔들린다. 드디어 이번에 행할 경찰 개혁의 마지막 피스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전화를 끊은 종혁은 어느새 흥분을 가라앉힌 채 자신을 바라보는 홍보부 사람들을 향해 싱긋 웃었다.
“그럼 갑시다.”
오늘 경찰의 날 행사의 피날레를 위해.
저 무대 앞에서 한 해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마음껏 발산하는 경찰들을 위해.
낯빛이 굳은 그들은 안쪽에 위치한 건물로 향했다.
“후우.”
“푸후.”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장희락 경찰청장을 비롯한 본청의 고위 간부들, 그리고 각 지방청의 청장들이 공간을 너구리굴로 만들고 있다.
“충성. 본청 홍보부 최종혁 총경입니다.”
종혁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는 경찰의 고위 간부들.
그럴 수밖에 없다. 오늘이 바로 경찰이 다시 한번 변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홍보부가 취합해서 준 자료는 모두 확인했으니 바로 시작하지.”
“예.”
장희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최재수를 봤고, 그는 얼른 스크린에 오늘 브리핑할 자료를 띄웠다.
[경찰 전용 보험]
[지방 전근시 사택 제공]
[자녀 케어]
[경찰관 자녀 채용시 가산점 부여]
쿵!
예민하고도 예민한 문제들.
그동안 예산 부족과 여론 탓에 하지 못했던 문제들.
장희락 경찰청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이가 꽉 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