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73화 (57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73화>

    슬슬 거리의 은행나무들이 제 존재감을 뿜어내기 시작하는 9월 말. 에이오 반도체 안으로 한 대의 세단이 들어선다.

    커다란 공장의 좌측 사무실 건물 앞에 멈춰 서는 검은색 세단. 그 앞에 도열해 있던 사무직원들이 허리를 숙인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덜컥!

    문을 열고 나온 대머리 노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젊었을 적엔 제법 풍채가 있었는지 볼이 늘어난 노인.

    “음.”

    매서운 눈매가 사원들을 훑으며 잠시 정적이 맴돈다.

    “콜록! 콜록!”

    ‘누구야!’

    ‘누가 기침 소리를!’

    매일 아침의 연례행사.

    이 순간을 즐기는 사장의 기분을 방해하면 오늘 하루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 모르기에 직원들은 몸을 떨었고, 에이오 반도체의 사장 윤일봉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쯧!”

    결국 울리고 만 혀 차는 소리.

    “나 때는 말이야, 한겨울에 반팔만 입고 노가판을 뛰어다녔어도 감기 한 번 안 걸렸는데 요즘 것들은 날 좀 추워지면 감기에 걸리고! 이게 다 정신력이 부족해서야, 정신력이! 그런 정신으로 일들 할 수 있겠어?! 여기가 내 회사야? 너희들 회사야! 어디 주인이 가족들 힘들게 함부로 감기에 걸리고 그래? 아주 주인의식이 없어, 주인의식이! 김 전무, 방금 기침한 직원 월급 삭감시켜!”

    “예, 사장님! 하하. 들어가시죠.”

    “에이잉!”

    마치 병균이라도 붙었을까 옷을 신경질적으로 턴 윤일봉은 그제야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임원들이 그 뒤를 우르르 쫓는다.

    그렇게 남겨진 직원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는 한 직원을 보곤 고개를 저으며 사무실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한편 화려하게 꾸며진 대회의실 안.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마른 수건을 들고 난초부터 껴안은 윤일봉이 자리에 착석한 임직원들을 향해 입을 연다.

    “보고들 해 봐.”

    저번 주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에 대한 보고.

    방금 전 윤일봉을 진정시킨 김 전무가 일어서 저번 주 어떤 일이 생겼는지 브리핑을 하고, 그 뒤로 줄줄이 업무 보고를 한다.

    “발주량이 늘려 달라? 그래, 역시 그래야지. 그래야 내가 세운 회사지.”

    이 회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원청, 대기업의 이야기다.

    그곳 초대 회장의 심복이었던 윤일봉. 드디어 그곳이 오랜 헤맴 속에서 길을 찾았음에 윤일봉은 절로 흡족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생산 및 검수 라인에서 3명이 퇴사했습니다.”

    “뭐야?! 또? 이것들은 왜 이렇게 주인의식이 없어! 이유가 뭐야!”

    “그게 건강 악화라고 하는데…….”

    그 말에 나불거리던 윤일봉의 입이 다물어지고, 임원들의 표정도 살짝 흐려진다.

    ‘이러다 정말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문제 생긴다고 해도 별일 있겠어? 사장님이 누군지 몰라?’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회장 심복이었던 윤일봉.

    수십 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세운 에이오 반도체는 검찰이고, 경찰이고 누구든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러니 우린 돈만 잘 벌자고.’

    ‘그래. 우리가 아픈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진짜 왜 이렇게 정신력들이 나약한지 모르겠어! 나 때는 3년을 내리 모래바람을 마셨어도 멀쩡했는데 말이야! 쯧, 회의는 여기서 끝! 일들 해!”

    우르르!

    허리를 숙인 임직원들이 대회의실을 나서자 한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장이 다가와 손을 내민다.

    “어허.”

    “아, 죄송합니다.”

    적막해진 회의실을 울리는 맑고 고운 울림.

    오십대 여성, 비서실장은 뒤에 선 4명의 여비서 가운데 가장 뒤에 있는 여비서를 향해 눈짓을 했고, 눈빛이 파르르 떨린 비서가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떼서 앞으로 나서며 손을 내밀자 윤일봉은 눈을 붉히며 난초 화분을 안긴다.

    “업무는 힘들지 않나, 미스 최?”

    꾸욱!

    허벅지와 엉덩이 사이를 움켜쥐는 손길.

    하얗게 질린 올해 22살 어린 여비서가 공포에 몸을 떨고, 여성들로 구성된 비서진은 슬그머니 외면한다.

    역시 똑같이 모른 척한 비서실장은 걱정을 담아 조언을 건넸다.

    “요새 검찰의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안전 설비를 확충하시는 게…….”

    “그게 다 돈인 거 몰라? 안 그래도 환율이 날뛰는 이 어려운 시기에 그런 쓸데없는 지출을 하면 회사가 어떻게 되겠어? 본사에서 신기술을 개발해 다 같이 으쌰으쌰 나아가는 이 시기에 찬물을 뿌려야 되겠냐고.”

    환율이 다시 원상복귀된 지 오래됐지만, 비서실장은 토를 달지 않았다.

    “이러다 사고가 터질 수 있습니다. 예전과 다릅니다, 사장님.”

    “흥! 그렇다고 해도 다 똑같아!”

    어차피 몸종은 몸종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 몰라? 지금 회장님도 내가 가르쳤어, 왜 이래?”

    “……죄송합니다.”

    “흥! 시찰이나 가지.”

    흠칫!

    시찰이란 단어에 반응한 비서진들은 오늘도 더럽게 아침을 시작할 여직원들을 떠올리며 작게 명복을 빌었다.

    ‘누가 날 넘어트릴 수 있는데? 나 윤일봉이야, 윤일봉! 회장님의 마지막 심복!’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을 어떻게 할 순 없었다.

    자신을 건드리는 순간 상대에게 남은 건 파멸뿐.

    그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 * *

    스르륵!

    서울의 어느 한옥 건물 앞, 세단 한 대가 멈춰 선다. 그리고 그런 그의 차 앞뒤로 멈춰 서는 차량들.

    차에서 내린 종혁은 그런 차들을 보며 입맛을 다신다.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너무 과보호다.

    고개를 저은 종혁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끌어올리며 한옥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호?’

    겉으로 봤을 땐 영락없이 한옥의 멋이 매치된 건물이었건만 안으로 들어서니 일본이 펼쳐진다.

    “김용재 씨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을 겁니다. 최종혁입니다.”

    “확인됐습니다. 모시겠습니다.”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간 그는 이윽고 종업원이 열어 주는 문 안으로 들어가며 고개를 숙였다.

    “늦었습니다, 상무님.”

    “하하. 아닙니다. 저도 방금 전에 왔습니다.”

    몸을 일으킨 김용재 상무와 악수를 나눈 종혁은 방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강북에 이런 곳이 있었군요.”

    일본의 역사 깊은 가이세키 요릿집을 그대로 본떠 만든 듯한 인테리어. 한구석에 놓인 화병 하나, 벽에 걸린 산수화 하나, 이 방에 있는 모든 것들이 범상치 않다.

    “옛날 일왕가의 주방을 책임지던 분께서 소수의 손님들을 위해 만든 곳입니다.”

    “그런 분께서 한국엔 왜?”

    “군사정권 때 넘어오셨죠.”

    “아아, 대통령 각하?”

    “하하. 예, 그 각하요. 앉으시죠.”

    “무릎 꿇고 앉아야 하나요?”

    “하하핫! 편히 앉으세요, 편히.”

    농담이었다는 듯 웃으며 자리에 앉자 다시 문이 열리며 개량 한복을 입은 종업원이 들어와 종혁의 컵에 차를 따른다.

    “음식 들여와 주세요.”

    “예.”

    종업원이 나가자 종혁은 찻잔을 들었다.

    후룩!

    “좋네요.”

    구수하면서도 약간의 산미가 있는 게 식전에 마시기엔 딱 좋은 차다.

    “단골이 될 것 같습니다.”

    “하하. 나가시는 길에 멤버십 가입을 하시면 될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다시 차를 즐겼다.

    “미국을 따라잡는 건 할 만하십니까?”

    아직 한국에선 보급화가 완벽히 이루어져 있지 않은 스마트폰.

    이는 공교롭게도 세계를 지배하고 아이애플사의 스마트폰이 국내에는 출시되지 않은 탓이기도 했는데, 2009년 말 드디어 출시가 확정되었다.

    이제부터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스마트폰 열광이 불어닥치며 삼전과 아이애플사의 경쟁이 심화될 터였다.

    움찔!

    “이거 음식이 나오기 전에 타박을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주 잠시 동요를 보이더니 이내 푸근히 웃는 김용재의 모습에 종혁은 눈을 빛냈다.

    “이미 구골과 이야기가 잘 끝나신 모양이군요.”

    구골의 운영체제를 도입하여 만들어진 삼전의 스마트폰 시리즈, 스페이스.

    그것을 이미 준비 중에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평온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김용재의 눈이 부릅떠진다.

    “……권&박에서 들으신 겁니까?”

    종혁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보유 자산이 얼마인지 가늠조차 안 되는 은막 뒤의 투자회사 권&박 홀딩스.

    ‘아무리 친분이 깊다지만 그런 이야기까지 한다고? 그걸 왜…….’

    그 순간 김용재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아니, 권&박의 진짜 주인이 이 친구구나!’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껏 의문이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말이 들어맞는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종혁이 아무리 천재라고는 하지만, 많은 자산을 지니고 있다지만 그뿐이라면 권&박에서,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에서 종혁을 그토록 도울 이유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종혁이 권&박의 주인이라면, 많은 자산을 지니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추정조차 불가능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투자회사를 설립할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김용재의 전신에 전율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걸 지금 깨닫다니, 정말 바보였군요.”

    “글쎄요. 무슨 말이신지 모르겠군요.”

    “예. 그, 그렇다고 치죠. 하하.”

    “아무튼 삼전전자의 주주로서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너무 급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쿵!

    눈앞의 괴물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는 걸까.

    “국민들은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 줄 겁니다. 이 나라 국민들은 한국 기업을 참 좋아하니까요.”

    아니, 눈앞의 이들이 그렇게 만든 거다.

    국산이 최고다. 애국을 하려면 국산을 써야 한다.

    옛날부터 눈앞의 이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그렇게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뭐 그거야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한 시장의 논리. 물건을 팔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카피 따윈 하지 마십시오.”

    삼선전자의 대표적인 스마트폰 시리즈, 스페이스가 세계를 향해 날개를 펼치자 아이애플사가 그 날개를 꺾기 위해 소송을 건다.

    이로 인해 삼선전자는 움직임에 적잖은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성급하실 필요 없습니다. 삼전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까요.”

    “이거 참…… 귀중한 조언을 들은 것 같습니다.”

    벌렁거리는 심장에 손을 올린 김용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종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고를 당하기 전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 했기에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런데 이 이야기 때문에 보자고 하셨던 건지…….”

    “아, 오늘 뵙자고 한 건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일단 술부터 한잔하시죠.”

    냉큼 종혁의 잔에 술을 따른 김용재는 자신의 잔에도 다급히 술을 따라 들이켰다.

    지금 이 이야기도 놀라워 죽겠는데, 다른 이야기가 있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이 타는 속을 가라앉힐 수 없을 것 같았다.

    “후우! 준비됐습니다.”

    “평택의 에이오 반도체라는 곳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이 유출됐습니다. 정확히는 거기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이 화학물질에 노출이 되고 있고, 그로 인해 병에 걸린 상태입니다.”

    뜬금없이 왜 화학물질을 이야기 하나 의아해했던 김용재는 이내 곧 깜짝 놀랐다.

    “에이오라면 설마……?”

    “예, 그곳입니다. 다이닉스.”

    에이오 반도체의 원청, 다이닉스.

    대현 일렉트로닉스의 앞글자와 뒷글자를 따서 다이닉스.

    대현전자를 전신으로 삼는 대현그룹의 전자 분야 기업.

    김용재의 몸이 다시 떨린다.

    본래 LK그룹의 LK반도체에서 시작된 다이닉스.

    LK그룹의 전대 회장이 사활을 걸고 몇 십조 원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했지만, 결국 IMF에 허덕이던 정부에 의해 대현에 흡수되어 버리며 사명을 변경하게 됐다.

    그동안 대현가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로 인해 빌빌거리고 있긴 하지만, 다이닉스는 분명 삼전의 반도체 사업에 위협적인 존재였다.

    불량품, 수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반도체 업계에서는 금기 중의 금기였던 기존에 팔거나 버리려고 했던 반도체 생산 기계를 재사용 할 수 있도록 하여 생산 수율을 올린다는 판도를 뒤엎는 전략을 세우다 못해 활용화 시킨 기술을 지닌 위협적인 존재.

    이외에도 참 많은 기술들이 있었다.

    에이오 반도체는 그런 다이닉스에 기술을 온전히 전해 받은 하청 회사, 아니 어쩌면 대현과 한 몸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다.

    ‘대현의 치부다!’

    이거라면 다이닉스에게, 오랫동안 삼전을 귀찮게 해 왔던 대현전자에 한 방 먹일 수 있었다.

    확실히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김용재는 환희에 차올랐지만, 그것도 잠시다.

    그의 낯빛이 곧 흐려진다.

    “에이오 반도체면 윤일봉 전무군요…….”

    누군지 안다.

    한때 고 현주영 왕 회장의 3번째 통장을 관리하던 인물로, 1차 왕자의 난 때 대현자동차의 일도 그 사람이 관여를 했을 만큼 왕 회장의 심복이자 대현그룹의 중추에 있었던 존재.

    그만큼 대현의 치부에 아는 것이 많은 인간이었다.

    “후우.”

    “버거우신가 보군요.”

    “솔직히 저 혼자서는 건드리기 힘든 존재입니다.”

    대현그룹이 기를 쓰고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2차 왕자의 난 때문에 그룹이 조각나 위상이 꺾였다지만, 그래도 대현은 대현.

    “차라리 다이닉스를 치는 게 쉬울 겁니다.”

    에이오 반도체의 윤일봉을 치려면 김희건 회장이 나서야 했다.

    하지만 김희건 회장의 성격이라면 차라리 있는 사업에 더 집중해 감히 따라올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앞서라고 혼을 낼 터.

    이런 김용재의 말에 종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권아영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와주실 분을 모실까 합니다.”

    “서, 설마?”

    “모셔도 되겠습니까? 공사가 다망하셔서 전화로밖에 모실 수 없지만 말입니다.”

    종혁이 말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린 김용재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종혁은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예, 당대표님. 김용재 상무와 만났습니다.”

    ‘역시!’

    다시금 김용재의 몸에서 일어나는 소름.

    종혁은 핸드폰을 스피커폰 모드로 돌린 후 내려놨고, 이내 현몽준 당대표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입니다, 김 상무. 김 회장께선 평안하십니까?

    “아버님이야 저보다 더 건강하시죠. 저 역시 오랜만입니다, 당 대표님.”

    -대략적인 이야기는 앞에 있는 최 부장에게 들었을 겁니다.

    “……다이닉스를 가지시려는 겁니까?”

    경영 전략의 실패로 인해 매각의 이야기가 나오는 다이닉스.

    -필요하게 돼서 말입니다.

    김용재는 그 말의 뜻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자율주행 전기 자동차…….”

    -허허. 내 빚을 하나 지는 것으로 합시다.

    김용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현재 차기 대통령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되는 정치인이, 대현중공업이라는 거대 기업을 소유한 기업가가 빚을 진다고 말하는 거다.

    기쁘지 않을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현몽준의 손에 들어간 다이닉스가 어떻게 변모할지 예측이 가지 않아서다.

    그런데…….

    “아, 굳이 빚을 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이닉스에도 아주 커다란 폭탄이 있거든요.”

    종혁의 말에 김용재와 현몽준이 기겁을 한다.

    “설마 다이닉스에도?”

    “예. 이게 하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서요.”

    내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는 반도체 공장 여직원 백혈병 사건. 그건 바로 다이닉스의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기를 쓰고 막은 거겠지.’

    하청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기에 어떻게든 막았을 것이고, 결국 김주희의 피해는 묻히게 됐을 거다.

    “그리고 그건…….”

    종혁의 차가운 눈이 김용재에게로 향한다.

    다이닉스에서도 이런 일이 터졌는데, 같은 대기업인 삼전이라고 안전할까. 다이닉스의 일을 반면교사 삼았을 확률이 높다.

    종혁의 시선에 담긴 뜻을 눈치챈 김용재는 이를 악물었고, 현몽준은 웃음을 터트렸다.

    -검찰이나 언론사에 있는 친구들이 들으면 좋아할 이야기군요. 어떡하시겠습니까, 김 상무? 내 그 재활용 기술을 일부 공유하죠.

    “……언론은 저희 쪽이 더 나을 겁니다. 법원 쪽도 저희가 손을 써 보겠습니다.”

    종혁은 손뼉을 쳤다.

    짜악!

    “자, 그럼 시작하시죠.”

    합의가 끝났으면 실행에 옮겨야 했다.

    종혁은 어이없어하는 김용재를 향해 씩 웃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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