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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72화 (572/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72화>

덜컹덜컹!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지하철.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 냉큼 자리에 앉은 김옥수의 딸, 김주희가 그 충격에 마른기침을 뱉는다.

“콜록, 콜록. 후우…….”

불쾌해하며 쳐다보는 옆 사람들에게 미안해한 그녀는 낡은 MP3에 연결된 이어폰을 끼며 눈을 감았다.

‘올해는 특히 심하네.’

허약하게 태어나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잔병을 달고 살았던 그녀. 환절기 감기는 연례행사 중 하나다.

그런데 희한했다.

“이번엔 감기가 아닌 것 같은데…….”

몸이 무겁지만 열이 나진 않는다. 감기가 들면 무조건 열부터 올랐는데 말이다.

뚱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던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기침은 해도 열이 나지 않는 게 어딘가.

한 번 오르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열.

기침만 나오니 지금도 이렇게 일을 하러 갈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퇴직을 당한 이후 급격히 어려워진 집안 사정에 부담이 아니라 보탬이 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마스크 속에서 미소를 그린 그녀는 눈을 감으며 아주 잠시 부족한 잠을 청했다.

그렇게 몇 정거장이나 지났을까.

내려야 할 곳에 도착하자 그녀는 얼른 내려 지하철역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녀가 도착한 곳은 ‘CK용역’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 안이었다.

“어, 주희 왔어?”

그녀가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사장.

20평은 될 법한 제법 큰 사무실 안에는 주희처럼 얼룩이 진 옷을 입은 사람 몇 명이 잔뜩 피로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느라 힘들었지? 커피 마실래?”

“아뇨. 괜찮아요.”

기침을 할 때 커피는 금물.

웃는 낯이 서글서글한 사십대 사장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자 사무실에 훈훈한 공기가 흐른다.

“주희꺼 타 주면서 나도 먹으려고 했는데…… 에이.”

“거 웬만하면 한 잔 타 달라고 해! 커피귀신 사장님 저러다 삐지시겠다!”

“삐지긴 누가! 그리고 누가 커피귀신입니까!”

“와하하!”

“아하하.”

간절히 눈을 빛내는 사장을 외면한 주희는 정수기에서 미지근한 물을 따라 빈자리에 앉았고, 이내 사람 몇 명이 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도 모두 얼룩 진 옷을 입고 있었다.

“아이고, 이제 다 온 거 같네. 자, 그럼 출발합시다. 김 대리, 데려다 드리고 와.”

“예. 따라오세요.”

김 대리라는 사람의 뒤를 따라 승합차에 오른 그들은 서울을 벗어나 평택으로 향했다.

부르릉!

평택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한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차량.

주희는 차창 밖 하늘을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유난히 노란 것 같단 말이지.’

주변에 공장이 많아서 그런 걸까.

‘뭐 무슨 상관이야.’

대기업의 1차 하청 업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주말만 나와서 일하는 것임에도 월급이 무려 70만 원이다. 하늘이 무슨 색이든 이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앞으로 세 달만 더 일하면 돼!’

그럼 내년 학비도 모두 해결이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런 일자리를 소개시켜 준 사장이, 그런 사장을 소개시켜 준 친구가 정말 고마웠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파이팅했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시면 됩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드르륵!

“거기 뭐합니까! 빨리빨리 오세요! 바빠 죽겠구만!”

그들이 내리자마자 공장 입구에서 들리는 외침.

방진복에 방진마스크까지 온몸을 꽁꽁 싸맨 관리자의 외침에 그들의 걸음이 빨라진다.

“예, 예! 지금 갑니다!”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주희는 갑자기 사레가 들린 듯 심해지는 기침에 마스크를 누르며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공장 밖.

택시 한 대가 멈춰 서며 종혁이 내린다.

찰칵! 치이익!

“반도체 공장……. 이거네, 씨발.”

누가 봐도 병에 걸린 것처럼 누렇게 뜬 얼굴로 잔기침을 하던 김주희. 1년 뒤 용역업체 사장과 공장 관계자를 살해한 김옥수.

이것들이 이어지자 하나의 사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검찰이 전담한 사건이었기에 어렴풋이 얼개만 기억하는 사건이.

일명 반도체 공장 여직원 백혈병 사건.

그렇게 세 가지의 단서가 조합되며 하나의 결론에 도달해 버린다.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없다.

하지만 촉이 맞다고 외치고 있다.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응, 나야. 평택의 에이오 반도체에 대해서도 알아봐 줘. 부탁할게. 응.”

* * *

김주희들을 평택에 데려다주고 온 김 대리가 CK용역 안으로 들어간다.

“다녀왔습니다.”

“어, 왔어? 수고했어, 김 대리. 커피 타 줄까?”

사람 좋게 웃으며 다가오는 사장의 모습에 김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는 길에 마셨어요.”

“치사하게 혼자 먹냐?”

사장이 눈을 흘기자 김 대리가 어색하게 웃는다.

혀를 찬 사장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보다 데려다준 사람들은 좀 어땠어?”

“불만 같은 건 딱히 없어 보였습니다.”

“몸 상태는?”

김 대리는 뜬금없는 걸 묻는 그의 모습에 의아해하면서도 대답했다.

“기침이 많다는 것 말고는 딱히?”

“그래?”

사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지자 김 대리의 낯빛도 굳는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문제는 무슨. 환절기니까 그러는 거지. 잘 관리해. 그분들이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리는 돈줄이니까.”

그것도 한 달에 인당 30만 원이나 남겨 먹는 돈줄.

“하. 사장님은 사람이 너무 좋아도 탈입니다, 진짜.”

“그렇게 아부해 봤자 아무것도 안 나온다.”

손을 저은 그는 창가로 걸어가 종이컵을 입에 가져갔다.

호록!

‘바꿀 때가 된 건가?’

띠리링!

“네, CK용역입니다. 아, 사장님이요? 잠시만요? 사장님. 전화요!”

“알았어! 예, 사장님! 어이구, 인력을 두 명이나 더요?”

그의 입이 좌우로 찢어졌다.

* * *

-뭐가 안 나옵네다.

CK용역과 에이오 반도체, 두 곳 모두 깨끗했다.

사장부터 직원까지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정황도 없고, 이들을 고발한 사람도 없었다.

“……알았어. 고마워.”

-아닙네다. 더 알아봐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네다.

“아니야. 수고했어. 끊는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것도 안 나온다라…….’

“불치병 정도의 병에 걸리거나 사망을 했으니 김 경사의 눈이 돌아간 것일 텐데 말이야.”

종혁은 천천히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 한국을 제법 뒤집었던 반도체 공장 여직원 백혈병 사건.

정직원으로 일하던 여직원이 일한 지 5년째 되던 해에 백혈병에 걸렸고, 기나긴 법정 공방 끝에 결국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김주희라는 이름이 아니었던 건 분명한데.’

하지만 그 외에 또 다른 피해자가 보도된 기억은 없었다. 김주희 또한 같은 사건의 피해자였다면 기자들이 그냥 지나쳤을 리가 없을 텐데도.

“막은 거지. 기를 쓰고.”

이 대한민국에서 그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대기업. 에이오 반도체가 대기업과 얽혀 있단 소리다.

종혁은 이번엔 권&박 홀딩스의 권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납니다. 평택의 에이오 반도체가 어느 기업에 반도체를 납입하는지 알아봐 줄 수 있을까요? 최대한…….”

종혁은 저 앞에서 걸어오는 김주희를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최대한 빨리요. 예, 부탁드릴게요.”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김주희에게 걸어갔다.

“쿨룩! 쿨룩! 쿨룩!”

지하철역을 나서자마자 몸을 웅크리며 기침을 뱉은 김주희는 아침보다 더 심해진 기침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월요일에는 병원을 가야겠네.”

아무래도 주사를 맞고 기침약을 처방받아야 할 것 같다. 이러다 자칫 열이 오르면 한 주를 통으로 날릴 수 있기에 돈이 아까워도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저은 그녀가 집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김주희 양. 저 누군지 기억하시죠?”

갑작스럽게 나타난 종혁에 깜짝 놀랐던 김주희는 얼떨떨 고개를 끄덕였다.

“본청에서 오셨다고…….”

“정확히는 본청 홍보부죠.”

“그런데 제게 무슨 일로……?”

“지금 주희 양 아버님 상황에 대해 알고 계시죠?”

그 말에 김주희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는다.

“아빠를 설득해 달라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뇨, 아뇨. 싫으시다는 것을 계속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저희가 이번에 나온 건 어디까지나 퇴직하신 경찰분들을 돕기 위해서니까요. 일평생 국민을 위해 일하셨으니 마땅한 보상과 명예를 챙겨 드리자, 뭐 그런? 그런데 오히려 곤란하시게 만든다면 안 되는 일이죠.”

“……듣던 것과 많이 다르네요.”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저희 경찰은 이번 촬영이 좀 더 극적이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주희 양의 협조가 필요하고요.”

“……?”

종혁은 어리둥절해하는 그녀에게 종합검진 예약증을 내밀었다.

“이걸 왜 제게…….”

“주희 양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예약한 거라고 해 주세요.”

“네?!”

“그러면 굉장히 극적일 것 같으니까.”

‘뭐든 일단 검사부터 하자.’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일단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

종혁은 놀라서 종합검진 예약증을 살피는 주희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 * *

“엄마, 아빠! 빨리요. 야! 너도 빨리 와!”

“어이구. 왜 그렇게 급해?”

오늘은 기쁜 날이라서 그런지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한 김옥수 경사의 가족들.

손을 잡아끄는 딸 김주희의 행동에 김옥수 경사와 아내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동시에 대견하면서도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린 딸에 서운해진다.

그들은 복잡한 심경을 감추며 병원 안 검진센터로 향했고, 인생극장의 제작진들이 그런 그들을 찍으며 따라붙었다.

“어떻습니까?”

“좋네요.”

좋다. 김옥수의 사정을 알고 나니 이들 가족이 하는 모든 말, 모든 행동이 아름답게 보인다.

각박한 현대 사회에선 보기 드물 정도로 서로를 위하는 가족. 누가 보면 대본이 아니냐 말할 정도다.

그래서 김옥수가 더 안타깝다.

PD는 눈을 붉히며 종혁을 봤다.

“김옥수 씨는 대체 어떤 누명을 쓰신 겁니까?”

그동안 몇 번이나 물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던 김옥수.

종혁은 그런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 절로 씁쓸해졌다.

‘그렇게 배신을 당했어도 경찰의 명예를 떨어트리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참 감사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민중의 지팡이로 거듭나기 위해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 됐다.

“뇌물을 받고 증거를 조작한 혐의입니다.”

그것도 연쇄 강간 사건의 증거를 조작한 혐의.

범인은 김옥수가 근무하던 경찰서의 관할에서 상가 몇 채를 운영하는 부자의 아들.

놈을 수사하던 김옥수는 어느 날 갑자기 통장에 거액의 돈이 들어왔다는 걸 알아차렸고, 그로부터 며칠 후 감찰에 의해 옷을 벗게 됐다.

“지, 진짜는 아니죠?”

“당연히 아니죠. 이 부분은 철저히 검증을 거쳤고, 진범 역시 잡아넣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거 내보내도 되겠습니까?”

“내보내셔도 됩니다. 대신 진범이 얼마나 악독했는지에 대한 것까지 내보낼 수 있다면요.”

“그런 걸 겁내면 이 짓거리 못하죠. 아, 그리고 이번만 봐 드리는 겁니다.”

코웃음을 친 PD는 언제 내보내야 될까 고민을 하며 김옥수의 뒤를 쫓았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다 피식 웃었다.

“눈치가 빠르시네.”

고개를 저은 종혁은 검진 센터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곧 놀라는 김주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 아줌마? 아저씨?!”

“어? 주희야!”

“아는 분이니?”

“응. 나, 나랑 같이 일하는 분들인데…….”

이 기가 막힌 우연에 제작진 또한 놀랄 때, 최재수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부장님, 저분들 부장님이 모으셨죠? 저거 일반 종합검진 아니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거야 당연히…….”

뭔가 냄새를 맡았기에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니겠냐고 말하려던 최재수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그동안 보아 온 종혁은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맞지. 그냥 종합검진이 아니지.’

이 병원에서 최고로 비싼 종합검진에다가 몇 가지 항목을 더 추가했다.

‘부디 아무것도 나오지 않기를…….’

그러면서도 나오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에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 * *

며칠 후.

다시 병원을 찾은 김옥수 가족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초조히 차례를 기다린다.

아픈 곳이 없으니 무슨 별일이야 있겠냐마는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가 못했다.

“김옥수 환자분?”

“아, 예!”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유정애 씨, 김주희 씨, 김종석 씨도 함께 들어가 주세요.”

“예? 아, 예…….”

‘촬영 때문인가?’

의아해하면서 들어간 김옥수는 의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경직된 의사의 얼굴.

형사로서의 육감이 외치고 있다.

지금 등 뒤에서 찍고 있는 카메라 때문이 아니라고. 큰일이 났다고 말이다.

“아, 김옥수 씨. 앉으세요. 어디 보자, 김옥수 씨는 지방간이 좀 있으시네요. 간 수치와 혈압, 당 수치도 어느 정도 있으시고요.”

“그, 그렇습니까?”

“네. 그런데 걱정 마세요. 김옥수 씨 연령대에선 흔히 나타나는 증상들이거든요. 이걸 제외하면…… 네, 정상이십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셨나 보네요.”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모두 김옥수 씨께서 평소 몸 관리를 잘하신 덕분이죠. 그리고 그다음은 김주희 씨?”

“아, 네!”

김주희가 김옥수의 옆에 앉자 종혁의 표정이 굳고, 의사의 표정도 굳는다.

“후우…….”

진료실을 무겁게 울리는 한숨.

다시 그 한숨을 내 뱉은 의사는 어렵사리 입을 뗐다.

“김주희 씨, 놀라지 말고 들으십시오.”

이어진 의사의 말에 진료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경악에 빠졌다.

“……예? 제 딸이 어, 어디가 안 좋다고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묻는 김옥수.

‘결국!’

입 밖으로 비명조차 내지 못할 만큼 질려 버린 김주희의 모습을 뒤로하며 진료실을 빠져나온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상무님. 지금 시간 되십니까? 아무래도 삼전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발견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지금 만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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