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71화>
김옥수 경사의 단골이었던 치킨집.
터엉!
“크으!”
식도를 차갑게 얼리는 맥주에 김옥수가 고개를 젓는다.
이게 얼마 만의 술이던가.
“그…… 한 잔만 더 마셔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법인카드로 사는 거니까 마음껏 드십시오.”
“이모, 여기 오백 한 잔 더 줘요!”
“알았어!”
김옥수는 곧바로 나온 생맥주를 들이켰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회귀 전 대체 어떻게 틀어막은 건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2010년 9월 수십만 경찰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 김옥수 경사.
경찰이 살인자가 된 것도 모자라 본청 로비에서 자살을 했다.
이 일로 인해 본청에서 모든 경찰들을 대상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으라는 공문을 내려보냈었기에 똑똑히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고, 올해 말부터 알아보고 막으려 했던 사건이었다.
‘위에서 쉬쉬해서 사건의 자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체 뭐가 그렇게 억울했기에 사람을, 그것도 두 명이나 죽이고 자살을 한 걸까.
종혁의 가슴이 생맥주 컵처럼 차가워진다.
“여기 닭다리도 드십시오.”
“어이쿠. 감사합니다.”
이 닭다리도 얼마 만일까. 입안에서 뭉개지는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살에 그는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눈빛이 매서워진다.
“그래서 본청의 홍보부가 제겐 무슨 볼일이십니까?”
만약 인사과에서 왔다면 복직에 관한 문제겠거니 생각하겠지만 홍보부다. 아무리 생각해도 홍보부가 퇴직을 당한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정말 경찰이 맞긴 한 걸까.
앞에 앉은 종혁이야 꽤 잘생기긴 했지만, 아무래도 옷차림이 마음에 걸린다.
제아무리 본청의 사람이지만, 경찰의 것이라 보기엔 고가의 제품. 브랜드는 모르겠지만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인다.
그런 그의 기색을 눈치챈 종혁은 경찰공무원증과 명함을 내밀어 보여 주었고, 명함을 본 김옥수는 기겁을 했다.
‘시, 신분증은 맞는데?’
그런데 총경이다. 이렇게 어려 보이는데 총경.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건이 스쳐 지나간다.
“아, 조희구! 그분이시구나!”
‘그 괴물! 불도저!’
들어 본 적 있다. 본청에 아무나 들이받고 물어뜯는 괴물이 있다고.
“하하. 예.”
“오,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께서 정말 어쩐 일로…….”
“현재 김 경사님처럼 복직을 거부하는 경찰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요?”
그것과 홍보부가 무슨 상관일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씩 웃었다.
“인터뷰 한번 하시죠?”
“제가요?”
“예. 인생극장이란 인터뷰를.”
“……예?”
* * *
“일단 생각해 보겠습니다.”
“강요는 아니지만 빠른 시일 내에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까딱인 김옥수는 양손에 분식과 치킨을 나눠 든 채 집으로 향했고, 종혁은 멀어지는 그를 보며 담배를 물었다.
“왜? 갑자기 뭔 놈의 인생극장이냐고?”
“……예.”
갑자기 김옥수를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 성격 때문인가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극장은 너무 과한 것 같다.
“너 미국에서 군인이나 경찰, 소방관 등을 모집할 때 가장 잘 써먹는 방법이 뭔지 아냐?”
영화다.
심장을 뜨겁게 울리는 고난과 역경의 스토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동경심을 품게 만든다.
이는 FBI의 내부 문건을 통해 직접 확인한 거다.
“하, 하지만 복직을 하겠다고 말한 것도 아니잖아요.”
당황하는 최재수의 모습에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상관없어.”
복직을 한다면 연락을 피하는 퇴직 경찰들에게 희망이 되어 줄 거고, 복직을 안 한다면 나름의 반면교사가 되어 줄 거다.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다가 일용직을 전전하는 전직 경찰. 준비한 노후 자금을 까먹기 시작해야 될 나이임에도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 공사판을 전전하는 가장……. 좆같겠지.”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을 거다.
퇴직 경찰이건 현직 경찰이건 자신들도 저 꼴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을 테니 생각이 많아질 거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종혁이 생각하는, 그동안 상황과 계급에 막혀 하지 못했던 경찰 개혁이 시작된다.
“……할까요?”
“할 거야. 거부하기엔 출연료가 너무 세거든.”
치킨 한 마리에도 망설일 정도로 궁핍한 그가 거부하기엔 상당히 높은 출연료.
김옥수는 결국 승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그와 붙어 있을 명분이 마련될 거다.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말이다.
“가자.”
몸을 돌리는 종혁의 머릿속으로 김옥수가 살해한 두 명이 떠오른다.
이름을 제외한 나이와 성별, 직업만 겨우 알려진 피해자들. 그중 한 명은 김옥수의 현재의 삶과 제법 깊게 연관되어 있다.
‘용역업체 사장…….’
김옥수가 살해한 인물 중 하나.
‘김옥수 경사가 다니는 인력사무소 사장인가?’
아무래도 이 인간부터 파 봐야 할 것 같다.
“호텔 예약해 놨지?”
* * *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김옥수의 걸음이 평소와 다른 의미로 느리다.
“본청에서 직접 사람이 찾아오다니…….”
무려 본청이다.
엘리트 중에 엘리트, 간부가 될 자격을 갖춘 경찰만이 갈 수 있는 본청. 순경으로 시작한 자신 따윈 꿈도 꿀 수 없는 본청.
그의 머릿속에 얼마 전 전화를 해 왔던 동료 형사의 말이 떠오른다.
-반장님! 아니, 형님! 요새 회사 분위기가 다르다니까요? 형님 계실 때와 완전히 달라요!
복직 시 혜택 역시 꽤 솔깃할 수준이었다.
1계급 특진이면 경위. 52세인 그라면 충분히 형사과장, 아니 그 수준을 넘어 계장까지 노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르겠네.”
아직도 배신감이 크다.
어린 나이에 순경이 되어 인생과 청춘을 다 바쳤던 조직이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았을 때의 그 배신감이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한 게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씨발, 너희들도 뭐라고 말 좀 해 봐! 놔? 안 놔?!
동료의 손에, 부하 직원이었던 사람들의 손에 끌려 나올 때의 그 절망, 그 배신감.
아직도 그날의 일이 꿈속에 나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다.
“후우.”
혀를 찬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햇빛이 제대로 들어올까 의심이 될 정도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가.
묘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골목의 가장 안쪽에 있는 집 앞에 선 그가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담배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이내 혀를 차며 2층으로 올라간다.
“다녀왔어.”
-하하하!
웃음이 흘러나오는 TV 앞에서 콩나물을 다듬던 김옥수의 딸 주희가 벌떡 일어난다.
올해 22살, 대학교 3학년인 딸 주희.
“아빠! 콜록, 콜록! 오셨어요?! 으악! 술 냄새! 아빠, 술 마셨어?”
“아는 사람 만나서 쪼금. 이것도 그 친구가 사 준 거야. 엄마랑 종석이는?”
“종석이는 잠깐 친구 만나러 요 앞에 갔고, 엄마는 아직 퇴근 안 했어요.”
저녁 타임 주방 알바를 하는 아내.
그런데 이건 뭐냐는 듯 음식이 든 봉지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김옥수의 전신을 짓누르던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콜록! 콜록!”
‘또 감기에 걸린 건가.’
원체 몸이 약한 딸. 가족들에게 전염시키지 않으려는 건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우리 딸 오늘은 수업 잘 들었어?”
“수업이 아니라 강의라니까.”
“그래그래, 강의. 자, 이건 우리 딸이 좋아하는 떡튀순이랑 치킨!”
“꺄! 역시! 아빠 캡숑 짱! 야, 어디야! 아빠가 분식이랑 치킨 사 왔어! 얼른 튀어와!”
뺏듯 봉지를 낚아챈 주희는 얼른 거실에 상을 차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흐뭇이 바라보던 김옥수는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나왔다.
“뭐야. 왜 기다리고 있어?”
“아빠가 와야 먹지! 얼른 와요!”
‘내가 자식들은 참 잘 키웠다니까.’
다시 흐뭇해진 그는 얼른 빈자리에 앉았고, 곧 식사가 시작됐다.
“야, 이 양심 없는 시꺄! 누가 닭다리 두 개 먹으래!”
“아빠! 얘가 나 때려!”
“허허. 아빠도 네 누나 무섭다.”
오늘도 시끌벅적한 식사.
껄껄 웃으며 식사를 마친 김옥수는 뒷정리를 하는 딸과 아들을 바라보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후우.”
끄그극!
현관문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열리자 김옥수는 다급히 담배를 껐다.
“왜 나왔어?”
“아빠, 무슨 일 있어요?”
“일은 무슨 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니, 아까 표정이 이상하시길래…….”
거기다 생전 집 근처에선 피우지 않던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엄마에게 듣기론 김주희 자신이 어릴 때 담배 연기 맡고 기침을 한 이후, 집 안뿐만 아니라 집 근처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됐다는 아빠.
딸의 얼굴에 진한 걱정이 서리자 김옥수의 턱이 파르르 떨린다.
“아무것도 아냐. 들어가. 춥다.”
“알았…… 콜록, 콜록!”
“올해는 더 심해진 것 같네. 병원은 가 봤어?”
얼굴이 누렇게 뜬 게 심상치가 않다.
“콜록! 됐어요. 약 먹으면 나아요. 아무튼, 아빠.”
“응?”
“흥신소 같은 거 할 생각 마세요.”
흠칫!
“네, 네가 그걸 어떻게…….”
몇 주 전, 지인에게 함께 흥신소를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떻게냐며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딸아이가 알고 있는 것인지 김옥수는 놀라 눈을 크게 치떴다.
“전에 엄마랑 하는 말 들었어요.”
아빠 김옥수 형사 생활을 한 기간이 무려 30년이다. 30년 동안 쌓은 인맥과 경험이라면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일 터였다.
그러나 흥신소의 업무 특성상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기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의 죄책감을 견딜 수 없을 것 같기에 거절했다던 아버지.
혹시 그때의 결정이 자신들 때문에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김주희의 두 눈에 걱정이 서렸다.
“우린 괜찮아요. 하지 마요.”
“하지만…….”
김옥수의 시선이 딸을 지나쳐 칠이 다 벗겨지다 못해 녹이 슨 현관문을 응시한다.
지난 삼십여 년의 세월 동안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그에게 남은 결과물, 전세 보증금 4천만 원.
고작 전세 보증금 4천만 원이 전부인 거다.
“아빠, 날 봐요. 우리가 언제 돈 때문에 투정 부린 적 있나요?”
없다. 그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나도 주말에 알바하고, 엄마도 버니까 돈 때문에 그런 일 안 했으면 좋겠어요.”
가족을 위해 형사로서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버리진 말았으면 했다.
자신의 손을 꼭 잡는 딸의 온기에 달싹이던 입술이 결국 열린다.
“딸, 아빠 복귀할까?”
“……?!”
“본청에서 높으신 분이 와서 복직해 달라고 하더라.”
“그, 그럼 아까 만났다는 지인이…….”
고개를 끄덕인 김옥수가 한숨을 길게 내뱉고, 김주희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뒀다.
아빠가 복직을 한다면 집안 사정은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퇴직을 당한 이후 아빠가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아빠에게 그런 아픔을 주었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라고, 다시 한번 가족을 희생해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까 우린 괜찮다고 말했죠? 그거 진심이에요. 저도 내년에 졸업하면 바로 취업할 테고요.”
“하지만 우리 딸 결혼도 시켜야 하고…….”
“괜찮아요! 결혼이야 없는 대로 하면 되지!”
가난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좋아해 줄 사람과.
하지만 이 말을 꺼냈다간 아빠가 슬퍼할 걸 알기에 김주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
“헉! 정말 결혼하려고?”
“응. 아빠 같은 남자랑. 적당히 피우고 들어오세요. 콜록, 콜록!”
끄그극! 쿵!
문이 닫히자 김옥수가 이를 악문다.
대체 언제 이렇게 자라 버린 걸까.
이제 고작 22살인데 왜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
이게 모두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아 결국 뜨거운 숨이 쏟아져 나온 그는 눈가를 만지며 핸드폰을 들었다.
“인생극장 찍으면 천만 원인 거 맞지요?”
종혁이 말한 출연료 천만 원.
아직 복직에 대한 결정은 내리지 못했지만, 이건 해야 될 것 같았다.
* * *
촬영 준비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북적북적해진 김옥수의 집.
무심히 집 안을 살피는 종혁의 곁으로 인생극장의 PD가 다가온다.
“저 좀 보시죠, 부장님.”
“아, 예.”
김옥수의 집을 빠져나와 골목 끝으로 향한 PD가 담배를 물며 종혁을 노려본다.
“위에서 하라고 하니 하겠는데…… 아니, 탁 까놓고 말하겠습니다. 아무리 위에서 하라고 했다지만, 이건…….”
너무 흔하다. 새벽부터 일어나 공사판으로 나가서 일하는 가장의 이야기는.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퇴직을 한 경찰이라는 점이 조금 특별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그의 말에 종혁도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피디님, 경찰로 30년을 일하신 분이 왜 저런 전셋집에 사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경찰을 두고 박봉, 박봉 하지만 그것은 업무 강도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렇게까지 적은 편은 아니다.
심지어 경사 30년 차라면 총경인 종혁과도 봉급이 비슷할 정도. 사치를 부리면서 산 게 아니라면 전세 아파트에서는 살 수 있을 만큼 모으기엔 충분했다.
“저희 경찰이란 족속은 말입니다. 억울하고 힘든 사람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합니다.”
개중 견찰도 분명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조직이 바로 경찰이다.
집에 쌀이 없어 라면을 훔치는 어린아이.
삶이 너무 고달파 아기와 자살하려는 엄마.
배고프다고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이미는 독거노인.
경찰 중에서도 더 타인의 아픔을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는 이들은, 이런 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자신의 얇디얇은 지갑을 꺼내 들곤 한다.
어디 그뿐인가.
정보원들에게서 정보도 사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자신의 사비까지 털어 넣는다.
“그러다 보니 정작 집에 들고 가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 경찰들이 많죠.”
겨우 가족끼리 먹고살 만한 정도, 미래나 노후는 꿈도 못 꾸는 딱 그 정도만 집에 가져간다.
“정말이지 빵점짜리 남편이고, 나쁜 아빠죠. 그래서 이혼율도 꽤 높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찰이 있기에, 그리고 그걸 지탱해 주는 경찰의 가족들이 있기에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음을 모두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종혁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PD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눈빛이 달라진 PD가 몸을 돌리자 종혁은 집 밖에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옥수를 보며 혀를 찼다.
“거 적당히 좀 하시지.”
이래서 경찰 아내, 경찰의 자식을 보고 보살이라고 부르는 거다.
고개를 저은 종혁은 돌아섰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오늘도 어김없이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집을 나서는 김옥수를 제작진이 따라붙는다.
카메라가 어색한지 딱딱하게 걷는 그.
느긋이 뒤를 따르던 종혁은 인력사무소 안으로 들어간 그가 몇시간 후 사람들에게 떠밀려 승합차에 올라타자 최재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따라가.”
“부장님은요?”
“난 일해야지. 결재해야 될 거 많다.”
“아, 예. 알겠습니다.”
최재수가 제작진을 따라가자 종혁은 인력사무소를 가만히 응시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어, 철아. 어제 부탁한 건 어떻게 됐어? 아, 그래? 메일로 보냈다고?”
종혁은 차로 향했다.
* * *
“딱히 걸리는 건 없는데…….”
이른 아침, 메일을 모두 살핀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돈의 팔촌까지 금융 기록과 자산 내역을 모두 뒤져 봤지만 인력사무소 사장이 어떤 부정을 저지른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건 김옥수 경사도 마찬가지다. 딱히 돈과 얽힌 문제는 없어 보였다.
“돈 문제는 아니라는 건데…….”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살인까지 저지른 것일까.
종혁의 머릿속에 또 다른 피해자의 직업이 떠오른다.
‘공장 관계자.’
무슨 공장인지, 직급이 뭔지 자세한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 번째 피해자는 어떤 공장의 관계자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다.
“인력사무소가 공장 일도 알선을 하지만, 그걸로 끝일 텐데?”
불법 체류자라면 몰라도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는 첫 달에 알선 수수료를 내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얽힐 일이 없다.
“머리 아프네, 진짜.”
종혁이 바람이라도 쐬며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차를 나선 그때였다.
“콜록! 콜록!”
‘응? 쟤는?’
김옥수의 딸이다.
락스를 잘못 쓴 듯 여기저기 얼룩이 진 옷을 입은 채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그녀.
‘냄새.’
묘하게 싸한 냄새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종혁은 멀어지는 그녀를 응시하며 코를 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