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66화 (566/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66화>

-지금 뭐하는 거지?

법무부에서 걸려 온 전화에 장희락 경찰청장의 심장이 내려앉는다.

“가, 갑자기 그러시니 당황스럽군요, 차관님.”

-왜 경찰이 발찌 찬 성범죄자 근처에서 기웃거리냔 말이야.

‘그걸 어떻게?!’

“아, 그거 말입니까? 하하. 곧 여름이기도 하니…….”

-이봐, 장 청장. 하라는 일만 해. 가뜩이나 사회 분위기도 안 좋은데 왜 분란을 일으키려 해? 대통령님 심기가 좋지 못한 거 몰라?

미국에서 발생한 부동산 거품 붕괴로 세계 경제가 크게 흔들렸다. 그 영향은 한국도 피해 갈 수 없었고, 결국 환율 폭등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이 모두 박명후 대통령의 잘못이라며 몰아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터진 조희구와 선유컴퍼니 사기 사건.

빠른 시일 내에 범인들을 잡아들이고, 범죄 자금을 환수해 피해자들에게 되돌려 줬지만 일부의 사람들이 모두 대통령이 부덕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거라는 여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에 배운 것 없고 멍청한 일부 국민들도 동조하는 상황.

덕분에 야당의 쓰레기 같은 국회의원 몇 명의 목을 날리며 여당이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지만…….

-다 너희 경찰이 초동 수사를 잘못해서 그런 거잖아. 사냥개면 사냥개답게 냄새 잘 맡아서 검찰에 알릴 생각을 해야지, 그걸 혼자 처먹으려 하다가 이 사단이 난 거 아니냐고.

개소리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쪽도 할 말이 많다. 검사들이 요직을 맡는 법무부에게도.

‘이놈들 알고 있었군!’

성범죄자 감시에 구멍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터.

-그리고 그걸로 경찰 대가리가 됐으면,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지. 검찰이, 법무부가 우스워?

“…….”

-경찰청장님, 잘합시다. 취임한 지 반년도 안 돼서 내려오면 모양새가 안 좋잖아.

철렁.

장희락의 심장이 다시 내려앉는다.

협박이다. 더 이상 법무부의 일에 개입하면 재미가 없을 거라는 협박.

-우리 찾아서 일하지 맙시다. 그럼 그렇게 알고 끊습니다.

달칵.

전화가 끊기자 장희락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공포와 분노가 혼합된 그의 얼굴.

그는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최 부장 내 방으로 올라오라고 해!”

*   *   *

“훌쩍!”

종혁은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가지 말라는 듯 손가락을 꼭 잡는 정민. 종혁은 그 작고 여린 손을 쓸어내렸다.

“이제 괜찮아?”

토옥…….

울어서 체력이 많이 떨어진 건지 힘이 없는 두드림.

“정민아, 이 경찰 아저씨가 하나만 물을게. 그래도 될까?”

토옥…….

“혹시 원장 선생님이 널 이렇게 만들었니?”

흠칫!

“괜찮아. 전에 경찰 아저씨들이 말했지? 경찰이 어떤 사람을 잡아간다고?”

나쁜 사람.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나쁜 사람을 잡아간다고 했다.

……토옥.

종혁은 작은 혼란이 스며 있는 정민의 얼굴을 빤히 봤다.

“혹시 원장 선생님 말고 다른 사람 중에도 정민이를 아프게 한 사람이 있니?”

톡.

맞다. 아무래도 자신의 예상이 맞는 것 같다.

종혁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또 다른 범인에 이를 악물었다.

“그럼 그 사람…… 원장님 동생이야? 그러니?”

톡. 톡톡톡톡톡!

‘맞아요. 그 나쁜 사람이에요.’

그렇게 외치는 것처럼 다급한 두드림과 파랗게 질리는 얼굴.

“으흑! 흑!”

“여기까집니다! 정민아! 여기 봐야지? 여기 보자?”

정민의 숨이 넘어가자 종혁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정민의 손가락.

톡톡톡톡톡!

‘왜일까.’

종혁은 마치 저 두드림이 살려 달라는 외침처럼 느껴진다.

“간호사!”

“아이고, 정민아!”

혼란에 빠진 중환자실에 종혁은 몸을 돌렸다.

“그래. 아저씨가 그 나쁜 사람들을 치워 줄게.”

영원히.

빠드드드득!

종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아이들 계속 가르쳐야지, 정 선생?

해가 저문 어두운 밤, 정민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쳐다보는 별빛유치원 개나리반의 교사 정유이의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마치 쓰레기를 치운 듯 무덤덤하게 말하던 원장 이미희의 눈.

다급히 신고를 하던 그녀의 핸드폰을 빼앗아 종료 버튼을 누른 그녀는 그런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혹여 누군가에게 보일까 다급히 그 손을 잡아 숨기는 정유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무섭다.

원장이 무섭고, 재무부장이 무섭다.

그녀는 안다. 어린이에게 학대를 가하는 교사들이 더러 있다는 것을.

어디 폭력뿐일까. 음식에도 장난을 치는 나쁜 사람들이 많고, 유치원생 숫자를 속여 보조금을 더 타 먹는 인간들도 많다.

그리고 그걸 못 참아 신고하면 곧바로 전국 유치원 원장들만의 커뮤니티에 블랙리스트로 올라가게 된다.

그러면 끝. 평생 유치원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된다.

오직 예쁘고 사랑스런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일념만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있어서 그건 지옥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었다.

거기다 이미희 원장이 무서운 이유는 또 있었다.

‘원장님의 남편이…….’

“흐윽! 흑! 미안해, 정민아. 선생님이 미안해.”

한 마디만 하면 되는데, 딱 한 마디만 하면 되는데…….

무섭다. 너무 무섭다.

정민을 위해 나서야 하는데 너무 무섭다.

어리디어린 사회 초년생의 작은 심장이 옥죄어지고 찢긴다.

부우웅!

“흡!”

병원으로 들어서는 차량에 다급히 몸을 돌리는 정유이.

곧 병원 입구에 선 차에서 개나리반의 김소아가 내린다.

“아빠, 진짜라니까? 원장 선생님이 정민이 아야 하게 했다니까?”

철렁!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정유이의 심장이 내려앉는다.

“흠,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응! 막 이케이케 하구! 아빠가 혼내죠!”

“그럴까? 아빠가 혼내 줄까?”

“웅! 웅!”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김소아와 소아의 아버지.

털썩!

“소아야…….”

주저앉은 정유이가 눈이 멍해진다.

저렇게 어린 소아도 친구를 위해 나서는데 자신은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뭐가 무서워 경찰서로 가지 못하는 것일까.

정민이 걱정되어 여기까지 와 놓고 왜 한 발 더 내딛지 못하는 걸까.

“나, 난…….”

“무섭죠?”

흠칫!

기겁하며 고개를 돌린 정유이는 어느새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종혁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종혁은 그런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 주었다.

“마끼아또 좋아하세요?”

병원 근처의 카페. 2층에 위치한 카페에 앉은 종혁이 대전 서부경찰서 형사와 통화를 한다.

“예. 본청 홍보부의 최종혁입니다. 유정민 아동 사건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혹시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사고로 종결된다고요.”

-예. 상황이 명명백백하니 어쩔 수가 없죠.

“그럼 학대에 관한 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아, 그거요? 선생님들의 증언을 들어 보니 유정민 학생이 참 산만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친구들과 사이도 썩 좋지 않았다고 하고요.

“그러니까 학대는 없었다는 거군요.”

-그런 거죠.

“알겠습니다.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예, 수고하세요.

콰득!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꺾어 버린 종혁이 허탈하게 웃는다.

“털어 내도, 털어 내도 기생충 새끼들이 남아 있네.”

‘담당의 입은 어떻게 막으려고 이 짓거리를 하는 건지……. 아니지, 어차피 이놈들이 정민이 사건 담당이니까 의사의 의견 따윈 묵살해 버렸겠지.’

의사가 신고를 해도 어차피 이놈들에게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몰랐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 너희들도 죽자.’

종혁의 살생부에 두 명의 이름이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겁에 질리는 정유이를 발견한 종혁은 아차 하며 미소를 지어 줬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많이 놀라셨죠?”

“아, 아니요.”

“커피는 입에 맞으세요?”

정유이의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켜 줄 카라멜마끼아또.

“네, 뭐……. 그런데 저는 왜…… 하, 할 말이 없으시면 전 이만 가 봐도 될까요?”

대체 뭐가 찔리는지, 뭐가 그리도 무서운지 정유이가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최초 신고자가 정유이 선생님이시더라고요. 1초 만에 끊기긴 했지만.”

덜컥!

종혁의 날카로운 눈을 본 정유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119에 기록된 최초 신고자는 이미희였지.’

그런데 그보다 30분 전 걸려온 전화가 있었다.

혹여 누가 목격을 하지 않았을까, 어떤 사람이 이미희보다 먼저 신고하진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다시 알아봤던 신고 내역. 그곳에서 정유이의 핸드폰 번호가 나왔다.

즉, 그녀가 최초 발견자이자 목격자란 뜻이었다.

“가, 갈게요!”

그녀가 다급히 몸을 돌리자 종혁은 그녀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신고를 해 주셔서 이미희가 압박을 받아 신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

만약 정유이가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아는 종혁이기에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정유이의 신고 후 30분 후 다시 걸려온 이미희의 신고 전화가 그 증거다.

아마도 그 시간 동안 CCTV를 비롯한 증거 인멸을 했을 터. 정민이 옆에서 죽어 가고 있는데 그런 짓거리를 한 거다.

이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진짜 최초 신고자인 정유이를 만나러 갈 참이었던 종혁은 정유이가 병원 앞까지 왔단 소리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정유이에게 동정심과 정의감이 있단 소리니까.

‘그런데 겁에 질렸군.’

협박을 받은 게 분명했다.

“아, 안녕히 계세요.”

“30분만 더 지체했더라면 죽었을 거라더군요.”

휘청!

돌아선 정유이의 몸이 크게 흔들린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데요! 전 못 봤어요! 아무것도 못 봤단 말이에요!”

‘원장님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원장과 재무부장도 무서운데, 단 한 번 보지 못한 원장의 남편이 더 무섭다.

경찰을 따위라 치부할 위치에 있는 사람.

종혁은 죄책감과 공포에 무너지려는 그녀의 모습에 입을 열었다.

“혹시 행복의 쉼터 학교에 대해 들어 보셨습니까?”

“…….”

“그 학교를 만든 행복의 쉼터 재단에서 곧 전국적으로 유치원을 설립할 예정입니다.”

“흡?!”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이들.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그 어느 곳에서보다 재밌고 창의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곳의 목표입니다.”

이른바 교육 에스컬레이터.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처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 재단을 만드는 거다.

종혁은 경악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권회수의 명함을 쥐여 주었다.

“이곳으로 가세요. 그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나, 난…….”

“시간을 뺏어서 죄송했습니다. 부디 조심히 들어가시길.”

“네?”

당신의 아픔을 다 안다는 듯 어깨를 토닥인 종혁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태블릿 PC를 들었고, 정유이는 그런 종혁을 멍하니 쳐다봤다.

‘가, 가라고? 정말 가라고? 왜…….’

의아해 하던 정유이는 이내 곧 이해해 버리고 말았다.

지금 저 경찰은 나쁜 선생인 자신마저, 정민의 고통을 외면한 이런 나쁜 사람마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거다.

“왜 이러는데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데…….”

그때였다.

-너무너무 멋져. 눈이 눈이 부셔.

“응. 재수야, 왜? 뭐? 정민이가?! 알았어! 지금 갈게!”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정유이가 다급히 종혁을 붙든다.

“무, 무슨 일인가요! 정민이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건 가요!”

“……글쎄요. 그걸 아실 필요 있으신가요?”

“네? 흡?!”

방금 전과 달리 아무런 감정이 들어 있지 않은 종혁의 눈.

종혁이 자신의 팔을 잡은 정유이의 손을 떼어 낸다.

“선생님, 무서우시면 끝까지 도망치셔야 합니다. 발목이 잡히면 결국 먹혀 버리고 마니까요. 이젠 제자도 아닌 정민이 때문에 선생님 인생이 힘들어져선 안 되잖습니까. 그럼 전 바빠서 이만.”

털썩!

종혁은 주저앉는 그녀를 외면하며 병원으로 달려갔고, 정유이는 그런 종혁을 망연자실 쳐다봤다.

‘제자도 아닌 정민이 때문에’라는 말이 하얗게 변한 그녀의 머릿속을 울린다.

갑자기 지독한 상실감이 그녀의 가슴을 찢어발긴다.

“아, 아니야…….”

제자가 아닌 게 아니다. 정민이는 자신의 제자다.

다른 아이들보다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아이. 그래서 정민이 개나리반에서 사라졌을 때 쫓아 나온 거 아니겠는가.

“정민이는……! 난……!”

봐야 했다. 정민이 어떻게 되는지 봐야 했다.

어느덧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그녀는 다급히 일어서 종혁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카페를 나와 병원으로 달려가는 순간이었다.

“결국 발목을 잡히시겠다는 거군요.”

덜컥!

그녀는 차와 차 사이에서 몸을 드러내는 종혁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저, 정민이는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군요. 그래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네?”

“그럼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   *   *

다시 돌아온 카페.

이번엔 따뜻한 차를 손에 쥔 정유이가 종혁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한숨을 쉰다.

“……유치원 교사는 비정규직이에요.”

달싹이다 결국 떼어진 입.

수첩을 꺼내 든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말이 교사지, 초중고 교사처럼 정년이 정해진 게 아니에요.”

어떤 실수를 저질러도 초중고 교사들처럼 다른 학교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실수를 저지르는 순간 끝. 유치원 원장들만의 커뮤니티에 신상이 올라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른 유치원에 취직하기 힘들어진다.

“어차피 나란 사람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아무것도 아니니까.”

한 해 전국의 유아교육과를 졸업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다. 정유이 자신은 그 수천 명 중 한 명일뿐이었다.

“그리고 유치원 원장님들은 그걸 아주 잘 알죠.”

“그걸 빌미로 협박을 했던 거군요.”

정유이는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걸핏하면 불러 운전을 시키고, 장을 봐 오라 시키는 등 가정부가 따로 없었다.

그럼에도 반항할 수 없는 건 이미희 원장이 고용과 월급이라는 목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정유이.

“재무부장님도 무섭고요.”

맨날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고, 술에 취해 뻗어 있고. 성희롱은 기본이고 말투는 어찌나 험한지 교도소를 다녀왔다는 소문이 유치원에 파다하다.

‘교도소?’

“어쩌다 학부모님이 찾아오시면 단정한 모습을 보이니 저희만 아는 일이죠. 그런데 폭로를 할 수 없어요. 학부모님께도 말을 할 수 없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더 무서운 게 있다는 겁니까?”

“네. 원장님 남편분이 법무부 공무원이시거든요. 그것도 검찰국장이시라는…….”

쿵!

‘그래서……! 씨발!’

이미희가 피해자들과 어떻게 합의를 했나 싶더니 이런 내막이 있었던 것 같다.

뒤통수를 후려 맞은 종혁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차관 바로 아래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정유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그녀의 공포의 원인을 알게 된 종혁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됐네.’

검찰국장. 법무부에서 요직 중 요직인 자리.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사람이다 보니 이제 25살인 정유이로서는 막연한 공포를 느꼈을 거다.

“혹시 이준기가 정민이를 때리는 모습을 직접 보셨습니까?”

“그, 그걸 어떻게?!”

“정민이가 다 말해 줬습니다.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준기가 정민이를 때린 모습을 목격하셨습니까?”

“……아뇨.”

‘빌어먹을!’

“혹여 제가 목격을 했더라도 의미 없을 거예요. CCTV 기록을 삭제하다 못해 저장장치를 빼는 걸 봤거든요.”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상황이 더 어렵게 변해 가고 있었다.

“죄, 죄송해요. 아이들을 계속 가르치려면…….”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 저장장치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셨습니까?”

제발 부숴 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히 일어난다.

“재무부장님이 차에 넣고 나가시는 걸 봤지만, 그 이후로는…….”

종혁의 눈이 반짝인다.

일말의 희망이 생긴다.

“집으로 가져갔을 확률이 높겠군요.”

“네? 아, 아무래도?”

“흠. 그럼 그 집에 들어가는 게 문제인데…….”

법무부 검찰국장이 남편이다. 수색 영장이 발부될 리 만무했다.

‘하, 진짜 골치 아프네.’

고지가 눈앞에 있는데 밟을 수가 없다.

“저…… 혹시 이중장부는 안 될까요? 제가 계산을 도왔는데…….”

종혁의 눈이 번뜩였다가 수그러든다.

‘아냐. 부족해.’

언론에 소스를 흘린다고 한들 사건의 핸들링을 이미희 남편과 친한 검사가 맡게 될 거다.

검찰이 움직여 증거를 인멸하면 이번 사건의 유일한 증인인 정유이마저 위험하게 된다. 어쩌면 그녀가 억울한 누명을 쓸 수도 있었다.

“음. 알겠습니다.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바로 말했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충분히 용기를 내신 겁니다. 그러니 오늘은 집에 들어가서 푹 쉬세요. 그럼.”

함께 나서는 그녀를 배웅한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쯧. 결국 내 방식대로 풀어나가야겠네.”

정미희의 유치원 옆에 행복의 쉼터의 이름으로 초호화 유치원을 세워 그녀의 실수를 끌어낸다.

그러면 검찰국장이고 나발이고 개입하기 힘들어진다.

‘안 되면 카드를 하나 더 써야지.’

조희구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썼던 한 장의 카드.

어떤 사람이든 꼭 법정에 세워 적합한 처벌을 받게 하겠다는 박노형 전 대통령과의 거래.

비록 조희구가 이쪽으로 돌아서면서 날려 버리게 됐지만, 아직 두 장의 카드가 더 남아 있다.

“후. 정민이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해야겠네.”

혀를 찬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응? 뭐야, 이건 언제 왔어?”

-얼른 연락 바람. 법무부에서 걸려 온 전화 때문에 청장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어.

나형재 대변인의 문자.

법무부란 단어에 종혁의 미간이 좁혀진다.

왜인지 성범죄자 감시 시스템이 불발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엄습해 온다.

입술을 깨문 종혁은 일단 순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철아. 차량 하나만 추적…….”

-왜 전화가 안 됩네까!

“어? 방금까지 무음으로 해 놔서.”

정유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선 방해를 받으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속된 시간에 잠시 무음으로 바꿔 뒀다.

-그랬습네까? 아무튼 이준기 조회 결과 떴습네다!

“이준기? 어, 그래. 말해 봐.”

-이 새끼 성범죄자입네다! 그것도 발찌를 찬!

움찔!

종혁의 눈이 크게 떠진다.

“발…… 찌? 아! 아아아!”

그제야 떠오른다. 이준기의 이상했던 발목이. 한 부분만 마치 가린 채 탄 듯 그 부분만 미묘하게 하얗던 발목이.

“알았어! 끊어! 청장님! 저 최 부장입니다!”

-왜 이렇게 전화가 안 되는 거야! 지금 어디야!

“총알을 찾았습니다!”

법무부의 입을 다물게 할 총알을.

그러면서도 이미희와 이준기를 지옥에 빠트릴 총알을.

종혁의 눈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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