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64화 (564/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64화>

“으흐응.”

서늘한 푸른 하늘에 울려 퍼지는 콧노래.

리어카 뒤편에서 들리는 노랫소리에 김복덕의 입가에도 미소가 핀다.

“우리 강아지, 뭐가 그렇게 좋을까?”

할머니 말이 들리지 않는지 정민은 하늘을 보며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부른다.

“다 왔다.”

집 앞에 리어카가 서자 폴짝 뛰어내린 정민이 ‘할모니, 힘들어?’라는 눈빛으로 김복덕의 허리를 고사리 손으로 두드린다.

“어이구, 시원하다. 우리 강아지 들어갈까?”

서로 손을 맞잡은 둘이 반지하방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곧바로 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가 손부터 씻는 정민.

“으. 으.”

낑낑거리며 유치원복을 벗던 정민이 순간 뻣뻣하게 굳는다.

작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그녀.

몸을 한껏 웅크리고 바들바들 떤다.

‘아픈 거야 날아가라, 날아가라.’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마법의 주문을 속으로 웅얼거리던 정민은 이내 아픔이 어느 정도 가시자 한숨을 뱉으며 몸을 일으킨다.

그런 정민의 몸이 푸르고 까만 멍으로 가득하다.

정민은 다시 낑낑거리며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는 화장실을 나서며 방긋 웃으며 누우려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끈다.

“아, 우.”

“알았다, 알았어. 밖에 나갔다 오면 손부터 씻으라는 거제?”

톡!

맞다는 듯 김복덕의 손바닥을 두들기는 손가락.

“에구구.”

어른이 돼서 모범은 보이지 못할망정 나쁜 버릇이 들게 할 순 없어 힘들게 일어선 김복덕이 화장실로 가자 정민이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낸다.

하모니, 정미이.

삐뚤빼뚤 글자가 적힌 두 개의 플라스틱컵에 차갑고 고소한 보리차 따른 정민이 화장실 앞에 선다.

끼이익!

“할미 마시라고 가져온 겨? 고마워요.”

정민의 머리를 쓰다듬은 그녀는 단숨에 들이켰고, 잘 마셨다며 꼭 끌어안아 엉덩이를 두들겼다.

컵을 싱크대에 넣은 정민은 다시 눕는 김복덕 곁에 앉아 TV를 본다.

-와하하하하!

“호호호.”

무엇이 재밌는지 모르지만, 할머니가 웃기에 따라 웃는 정민.

TV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외손녀의 모습에 김복덕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우리 강아지, 재밌어?”

톡!

“그래?”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정민의 모습에 김복덕의 생각이 깊어진다.

한참 밖을 뛰어다니며 놀아야 할 나이임에도 어미를 두고 먼저 떠나버린 딸 부부 때문에 이렇게 골방에 틀어박혀 TV만 봐야 하는 외손녀.

“우리 강아지. 유치원에서 어땠어? 재밌었어?”

그에 정민은 벌떡 일어나 오늘 유치원에서 배운 율동을 선보인다.

“어이구, 잘한다. 어이구, 잘한다. 또?”

정민은 TV 옆에 놓인 동화책을 가져왔다.

“책 읽었어?”

고개를 끄덕인 정민은 동화책을 펼쳐 친구란 단어를 가리켰다.

“친구? 소아랑?”

톡! 톡! 톡!

소아랑 놀았던 게 좋았던지 빠르게 할머니의 손바닥을 두드리는 정민.

“다른 친구랑은 안 놀았어?”

흠칫!

눈을 데구루루 굴린 정민은 못 들은 척 책을 내려놓고 김복덕의 옆에 앉아 다시 TV를 본다.

그런 잔망스런 외손녀의 모습에 김복덕의 가슴이 찢어진다.

‘다 내 탓이여, 내 탓.’

다 자신이 박복해 딸 내외를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자랄 수만 있었어도 지금보다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놀이터에서 뛰어놀았을 터.

“우리 강아지, 아까 경찰 아저씨가 한 말 어떻게 생각혀? 새 친구들 보고 싶어?”

쫑긋 귀가 솟은 정민이 김복덕을 본다.

노안 때문에 외손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지만, 김복덕은 느낄 수 있었다. 정민이 지금 얼마나 기대를 하고 있는지 말이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더 고민할 게 있을까.

김복덕은 곧장 집전화기를 들어 종혁이 준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예, 슨상님. 저 정민이 할밉니다. 우리 정민이 친구 많이 사귈 수 있는 거 맞지요?”

정민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   *   *

새하얀 인조대리석으로 꾸며진 커다란 아파트.

부엌에 앉은 이미희가 장부를 살피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어우, 배고파. 밥 줘.”

샤워를 한 듯 젖은 머리를 털며 다가오는 재무부장, 아니 이미희의 동생 이준기.

“넌 손이 없니? 꺼내 먹든, 시켜 먹든 알아서 차려 먹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민해? 그날이야?”

“모른다고!”

“예이, 예이. 치킨? 족발?”

“족발.”

“어, 나 누군지 알지? 족발 대자 하나.”

간단하게 주문을 한 이준기는 냉장고를 열어 맥주캔을 꺼낸다.

따악! 치이익!

“캬아!”

역시 목욕 후 마시는 맥주가 최고다.

“딴 데 가서 마시면 안 돼?”

“뭔 일인지 모르지만 일단 좀 쉬어. 그러다 쓰러진다.”

이준기는 놀리듯 이미희의 코앞에서 맥주캔을 흔들었고, 코가 벌렁거린 이미희는 동생을 째려봤다가 몸을 일으켰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하며 코웃음을 치는 이준기.

둘은 잠시 술을 마시며 오늘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다 이미희가 땅콩을 집다 말고 손목을 매만진다.

“뭐야. 왜 그래? 삐었어?”

“아까 그 꼬맹이 집어 던지다 삐었나 봐.”

그 말에 이준기가 눈을 가늘게 뜬다.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그 꼬맹이한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어디 먼 곳에 있다가 얼마 전 누나에게 신세를 지기 위해 대전으로 내려온 이준기.

그때야 누나의 성격이 워낙 지랄 맞은지라 그러려니 했지만, 이게 계속되니 궁금증이 생긴다.

“몰라. 짜증 나잖아. 부모도 없는 벙어리년이 유치원은 무슨 유치원이야?”

작년에 세운 별빛유치원.

구청과 교육청에서 은근슬쩍 장애아동을 받지 않겠냐 압박을 해 온 것도 있지만, 나라가 보조금을 지불해 주는 게 아니었다면 절대 받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받아 줬으면 죽은 듯 있을 것이지 괜히 유치원 물이나 흐리고.”

게다가 정신은 얼마나 산만한지, 오늘은 요거트를 엎고 오줌까지 쌌다.

“걔 때문에 학부모들이 얼마나 클레임을 거는지 알아? 내가 이 유치원을 어떻게 차렸는데!”

“어이구, 폭발하시겠네. 그러다 또 사고 친다. 참아라.”

서울에서 큰 사고를 치고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온 누나 이미희.

“얼씨구? 네가 할 말이니? 그건 어디 있니?”

이미희가 이준기의 전신에서 무언가를 찾자 이준기가 피식 웃으며 맥주를 들이켠다.

“괜찮아. 안 걸려.”

“잘해라. 네 매형이 거길 어떻게 들어갔는지 알지? 너 이번에도 발목 잡았다간 아주 끝이야, 끝! 네 매형이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

“알았다니까! 1절만 합시다, 1절만.”

“네가 1절만 하게 만들어야지! 너 나이가 마흔일곱이야. 그 나이에 누나한테 빌붙어 있는 게 말이 되니? 대체 월급은 벌어서 어디다 쓰니?”

“에이 씨, 진짜!”

“어디 가!”

“술!”

“뭔 놈의 술이야! 또 사고 치려고? 너 또 사고 치면 그땐 정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우리 인연 끊는 거라고! 용돈도!”

“아! 몰라, 몰라! 늦어!”

“카드 가져가!”

쾅 문을 닫은 이준기는 아파트를 빠져나갔고, 이미희는 현관을 보며 혀를 찼다.

“어휴, 진짜. 내가 앓느니 죽지, 앓느니 죽어. 아, 이건 또 왜 이렇게 안 맞는 거야? 여보세요? 정 선생? 지금 당장 내 집으로 와 봐요. 아, 와 보라고!”

까랑까랑한 외침이 아파트를 울렸다.

*   *   *

아파트 근처의 호프집.

쾅!

테이블을 내려친 이준기가 씩씩 거린다.

“씨발, 내가 돈이 없어서 없나! 이게 다 그 개 같은 년 때문이잖아!”

이준기는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만든 여성을 떠올리며 노가리를 잘근잘근 씹었고, 그런 그에게 아르바이트생이 다가선다.

“저…… 손님, 죄송하지만 조금만 조용히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주변 분들에게 피해가 가서요.”

“뭐? 이 새끼가 지금 누구한테…….”

움찔!

잘 걸렸다 눈을 빛내며 고개를 돌린 이준기가 입을 다문다.

떡 벌어진 어깨에 커다란 키.

“씨발. 화장실 갔다 올 거니까 치우지 마!”

테이블을 걷어찬 그는 밖으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빌어먹을. 죄다 거슬리는 놈들뿐이네.”

이게 다 갑자기 신경질을 부린 누나 이미희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의 아픈 부분을 사정없이 헤집는 누나 이미희.

“개 같은 년. 내가 그놈의 돈만 있어 봐라. 무조건 독립한다, 독립해!”

하지만 그러려면 그 거지 같은 유치원에 계속 출근을 해야 하는 게 이준기로서는 더 짜증이 났다.

“에이, 씨부럴.”

“저 혹시, 준기? 갈마국민학교 나온 이준기 아니세요?”

움찔!

놀란 이준기가 고개를 돌린다.

“……누구?”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외모에, 비싼 양복을 차려입은 남성.

“맞구나! 나야! 성택이! 기억 안나?”

“성택이? 이성택? 그 코찔찔이?”

“그래, 그거 나야! 이야, 이게 얼마 만이야? 계속 대전에 살았던 거야?”

“어, 어. 그래. 오랜만이네.”

“여긴 어쩐 일이야? 여기 아파트 살아?”

“그, 그렇지. 넌?”

“나도 여기서 살아! 저기 108동 2102호.”

이준기의 눈이 흔들렸다. 이 아파트 단지의 최상층은 최소 평수가 50평이기 때문이다.

“우와, 인연이 닿으려니 이렇게 닿네. 요새 뭐하고 지내?”

“나야 뭐…… 그냥 소, 소소하게 유치원 하나 운영하고 있어. 넌?”

“나도 사업체 몇 개 운영하고 있어. 이야, 그 툭하면 애들 들이받고 다니던 네가 유치원이라니……. 세상 어떻게 될지 참 모른다. 그치? 아, 유치원 이름이 뭔데? 안 그래도 내 막내딸이 유치원 다니잖아.”

“막내딸 나이가 그렇게 어리다고?”

“아, 나 재혼했어. 근데 와이프가 좀 어려. 올해 서른이야.”

“뭐?!”

지이잉! 지이잉!

“에고, 와이프 전화네. 아무튼 만나서 반가웠고, 다음에 또 보자. 이제 대전에서 살면 동창회도 나오고. 간다. 응, 여보. 치킨? 소아가 치킨 먹고 싶대?”

손을 흔든 그가 멀어지자 이준기가 이를 악문다.

명품 양복을 입고서 어린 여자와 재혼을 한 국민학교 동창.

“씨발이네, 진짜!”

거칠게 몸을 돌린 그는 다시 호프집 안으로 들어가 벨을 신경질적으로 눌렀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가져와!”

아무래도 오늘은 취해야 할 것 같았다.

*   *   *

다음 날, 평소보다 늦은 아침에 유치원으로 향하는 차 안.

이미희가 다급히 창문을 연다.

“어우, 술 냄새! 그냥 자라니까!”

어제 새벽 6시에 들어와 눈조차 붙이지 않은 동생 이준기. 신경질적으로 떠진 그녀의 눈에 걱정이 서린다.

“자면? 자면 누나가 월급 줄 거야?”

“넌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니?”

“어, 보여. 나 하루라도 안 나가면 월급에서 깔 거잖아.”

“……됐다. 자라. 괜히 아침부터 신경 건드리지 말고.”

“하! 그래, 돈 많아서 좋겠수다!”

“말을 말자, 말아. 말 시키지 마. 운전해야 되니까!”

몸을 돌린 이준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씨발. 씨발.’

어제 치솟은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패배감이 사라지질 않는다.

이준기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고, 그사이 차는 유치원에 도착했다.

“일단 사무실 가서 좀 자고 있어.”

“예, 예. 알겠습니다.”

원장실로 향하는 누나 이미희를 한참 동안 쳐다보던 이준기는 이를 악물며 돌아섰다.

그때였다.

폭!

다리에 부딪치는 무언가.

“아.”

굳어 버린 채 빤히 이쪽을 보는 정민을 발견한 이준기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   *

“우리 강아지 일어나야지?”

언제나 같은 말로 시작하는 아침.

뽀로로 화장실로 달려가 씻고 옷을 갈아입은 정민이 할머니를 쫓아다니며 빤히 쳐다본다.

“어이구, 야가 오늘따라 왜 이러실까? 새 친구 때문에 그러는 겨? 그려, 그려. 다섯 밤만 자고 새 친구 만나러 가자.”

“……!”

톡!

고개를 끄덕이려다 아차 하며 할머니의 손을 강하게 두드린 정민이 반찬을 꺼내 상에 올려놓으며 밥을 차리는 걸 돕는다.

하지만 진정이 안 돼서일까.

정민은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고, 김복덕은 처음 보는 것 같은 외손녀의 흥분한 모습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아프게 웃는다.

그런 할머니의 심정을 모르는 정민은 다시 할머니를 재촉한다. 이렇게 재촉하면 하루가 빨리 가 버릴 줄 알고.

“슨상님 말 잘 듣고. 알았지?”

“우리 정민이도 할머니에게 인사해야지?”

꾸벅 허리를 숙인 정민은 유치원 버스에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그러나 좀처럼 진정 못하고 들썩이는 엉덩이.

‘새 친구. 새 친구.’

‘오늘 정민이에게 좋은 일이 있었나 보네.’

눈이 갈 수밖에 없는 아이인 정민.

유치원 교사는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유치원 버스는 달려 별빛유치원에 도착했다.

“와아아아!”

“이야압!”

“백터 파워!”

오늘도 시끄럽기 그지없는 개나리반.

조용히 구석에 자리 잡은 정민이 책을 펼쳐 들지만 집중을 하지 못한다.

“오늘 정민이 좋아?”

톡!

다가온 소아를 잡아당긴 정민이 장난감 바구니에서 인형 두 개를 꺼내 든다.

“진짜? 오늘은 인형놀이 하는 거야?”

파닥파닥!

고개를 끄덕이는 정민의 모습에 소아가 활짝 웃는다.

“응! 엄마아빠 놀이 하자! 정민이가 아빠 해!”

톡!

“여보, 다녀오셨어요?”

인형의 손을 잡고 흔들며 인사를 하는 정민.

그때였다. 후다닥 달려온 한 남자아이가 오늘따라 예쁘게 꾸민 소아의 머리를 잡아당긴다.

“만두 머리!”

“너어!”

“메롱!”

아빠랑 엄마가 해 준 예쁜 머리를 망가트린 친구의 행동에 단단히 화가 난 소아는 눈을 붉히며 남자아이를 쫓았고, 순식간에 친구를 뺏긴 정민은 멍하니 쳐다보다 입술을 삐죽이며 일어섰다.

맨날 소아랑 놀려고 하면 방해를 하는 친구들.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인형을 정리하러 움직이던 정민은 잠시 멈춰 서서 입을 막고 선생님을 찾는다. 목이 말랐기 때문이다.

오늘 평소보다 더 움직여서 그런지 목이 많이 마른 정민.

“으아아앙!”

“왜 그래요? 우리 소민이 무슨 일 있어요?”

“……푸후.”

선생님이 바쁜 것 같자 정민은 자연스럽게 개나리반을 나선다.

드르륵, 탁!

문을 닫고 근처의 정수기를 향해 움직이려던 정민이 뻣뻣이 굳는다.

“……!”

원장님 동생. 무서운 사람. 자신을 아프게 하는 원장님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한곳을 쳐다보는 얼굴이 오늘따라 더 무섭다.

잠깐 교실에 숨었다가 나올까.

하지만 너무 목이 마르다.

한참을 갈등하던 정민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슬금슬금 이준기를 피해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폭!

갑자기 나타나 버린 다리.

피하지 못하고 부딪친 정민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무서운 눈. 눈이 너무 무섭다.

화가 난 원장 선생님과 똑같은 얼굴, 똑같은 눈이다.

정민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야, 사과 안 하냐?

“아, 아…….”

허둥지둥 사과를 하려는 정민.

“하. 이젠 벙어리년마저 사람을 무시하네. 이 씨발년이 진짜-!”

뻐어억! 쿠당탕!

발에 걷어차여 바닥을 뒹군 정민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

뭘까.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몸이 붕 떠서 날아가더니 바닥을 누워 있다. 땅바닥에 누우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떠올린 정민은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쿨럭!”

다시 바닥을 뒹구는 정민.

아프다. 배가 찢어질 듯 아프다.

“쿨럭! 쿨럭!”

“어? 피, 피? 야! 괜찮아? 야!”

드르륵!

“네. 선생님이 물 떠올…… 꺄아아아아악!”

*   *   *

“디데이는 해수욕장 개장일로 잡지.”

경찰청장실. 장희락 경찰청장의 통보에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시기. 사람들의 옷이 짧아지는 계절.

이런 여름철이 되면 성범죄가 증가한다.

타이밍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언론에 배포할 기사 전문을 짜 보겠습니다.”

“그래, 나가 봐.”

“충성.”

‘제법 머리를 굴렸네.’

그래도 이제 실행일이 정해졌으니 홍보부도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추석 전까지 집에 들어가면 다행인 이번 계획.

한숨을 내쉰 종혁이 경찰청장실의 문을 닫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예, 최종혁…….”

-슨상님-!

너무도 애절한 부름.

종혁의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며 다급히 외친다.

“무슨 일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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