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63화>
“아뇨. 제가 간식을 실수로 떨어뜨렸어요. 죄송합니다, 원장 선생님.”
“그런가요? 으음. 정민이 손에 다 묻었네요. 정민아, 이리…….”
“얼른 치우고 씻기겠습니다!”
“…….”
자신의 말을 자른 유치원 교사를 빤히 쳐다보는 원장 이미희.
유치원 교사는 슬그머니 정민을 뒤로 감춘다.
“쯧. 기껏 도와주려고 했더니 싫다니 어쩔 수 없네요. 우리 개나리반 아이들, 간식 맛있게 먹어요?”
“네-!”
이미희는 몸을 돌려 개나리반을 빠져나갔고, 한숨을 길게 내쉰 유치원 교사는 정민을 들어 의자에 앉혔다.
“우리 정민이, 잠깐만 앉아 있을까요?”
유치원 교사를 빤히 쳐다본 정민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싱긋 웃은 유치원 교사는 얼른 요거트를 수습한 후 정민을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이윽고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다시 개나리반에 나타난 정민.
“자, 그럼 우리 아이들 선생님이랑 즐거운 단어 놀이할까요?”
“네-!”
정민이 의자에 앉자 소녀가 작게 읊조린다.
“정민아, 괜찮아?”
톡!
“요거트는 먹었어?”
톡톡!
유일한 친구의 손바닥을 두드리곤 시무룩해지는 정민.
“자! 소아가 좋아하는 간식인데 정민이 먹어.”
놀라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친구 김소아가 정민의 입안에 간식을 밀어 넣는다.
“맛있어?”
헤시시 웃으며 톡! 힘주어 손바닥을 두드리는 정민.
“우리 소아가 이게 뭔지 말해 볼까요?”
“네!”
소아는 얼른 입을 열었고, 정민도 얼른 유치원 교사를 바라봤다.
그렇게 낱말 공부가 시작됐다.
고로롱! 고로롱!
점심을 먹고 난 이후 낮잠 시간.
잠이 들어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정민이 몸을 일으킨다.
점심에 물을 많이 먹어서일까, 아랫배를 붙잡고 유치원 교사를 찾는 정민.
아이들 사이 잠이 들어 있는 교사를 발견한 정민이 안절부절못한다.
깨울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던 정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몸을 일으켜 얼른 교실을 빠져나갔다.
다라락! 탁!
“으음.”
문이 닫히는 소리에 잠시 눈을 뜬 유치원 교사.
“우웅. 선생님…….”
비몽사몽한 눈으로 교실을 둘러보던 교사는 품에 안겨 칭얼거리는 아이를 토닥이며 다시 눈을 감는다.
“그래요. 쉬이, 쉬이.”
이내 둘은 다시 잠들었고, 정민은 고요한 복도를 지나 화장실에 도착해 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들게 참아 가며 화장실 문을 잡는 순간이었다.
“어머, 정민아.”
턱 멈춘 정민이 하얗게 질리며 고개를 돌린다.
그런 정민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는 원장 이미희.
“왜 낮잠 시간에 자지 않고 돌아다니는 걸까? 응?”
쏴아아아!
결국 풀려 버린 방광. 샛노란 물이 정민의 바지를 적시다 못해 복도에 고인다.
“오줌까지 싸는 거야? 못살겠네, 진짜. 넌 대체 왜 이러는 거니? 말을 못하면 말이라도 잘 들어야지. 따라와!”
정민의 머리를 우악스럽게 움켜쥔 이미희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고, 정민은 들어가지 않으려 엉덩이를 뒤로 빼고 버텼지만 성인의 힘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화장실로 들어간 정민.
이윽고…….
퍼억!
화장실에서 무언가 벽에 부딪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 *
부우웅.
대전광역시로 접어드는 차 안, 운전대를 잡은 최재수가 투덜거린다.
“아니, 그냥 아무나 보내시면 될 것을…….”
“시간 남는 사람이 움직이는 거지.”
“부장님이 제일 바쁘시잖아요.”
“결재만 하는 놈이 뭐 바쁘다고.”
“오택수 씨 죽어 나가는 거 다 봤습니다.”
그 결재가 제일 어렵다는 걸 오택수를 보고 깨달은 최재수.
“됐고, 그보다 여론 조사 관리팀과 연결은 잘 시켜 줬어?”
“옙!”
이미 종혁이 만들어 놓은 인맥의 파이프. 거기에 이전 조주영 성인사이트 사건에 전국의 112 상황센터를 돌아다니며 쌓은 최재수 본인의 인맥을 더해 여론 조사 관리팀과 연결시켰다.
“연결시켰다고 손 놓지 말고 관리 잘해. 그거 네 재산이야.”
“부장님이 하시는 걸 옆에서 지켜본 전데 그걸 모르겠어요?”
“아주 한 마디를 안 지지.”
“헤헤. 아, 그런데 조주영 그년은 어떻게 될까요?”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아직 판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검찰도 애가 닳을 건데…….”
부산지검장을 필두로 꽤 많은 검사의 목을 날려 버린 검찰.
그런 인적 쇄신을 통해 여론을 돌리려 했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안 좋은 여론을 돌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충격적인 일을 터트리는 거잖아요.”
“법원이 거부하는 거겠지.”
‘아니면 정부가.’
올해 3월 환율이 IMF 이후 최고치까지 상승하며, 국민들은 또다시 IMF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지 공포에 떨었다.
이제는 환율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지만, 언제 또 치솟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 불안감은 자연스레 정부로 향했고, 정부는 그 화살을 검찰로 돌려 화살받이를 시키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간간이 검찰을 성토하는 기사가 나오는 걸 보니 딱 그래 보였다.
“그쪽도 참……. 아, 그런데 부장님.”
“또 뭐?”
“청장님은 언제 터트리려는 걸까요?”
아직 고위 간부들과 회의도 하지 않은 상황.
“이러다 놈들이 사고라도 치면…….”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미 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들을 면밀히 감시하라는 공문이 전국 지청과 지서에 내려갔다.
“그리고 나도 사람을 써서 밀착 감시 중이고.”
“천 명이 넘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1172명.”
“……진짜 대한민국은 부장님이 다 지키십니다.”
피식 웃은 종혁이 생각에 잠긴다.
‘아직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거겠지.’
어쩌면 그림을 크게 그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날 배려하는 것일 수 있고.’
“그런데…….”
“왜요?”
“아니다.”
‘많이 컸네, 최재수.’
이런 정치적인 생각도 할 정도로 커 버린 최재수를 보자니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이거 언제 사람 만드나 싶었는데…….’
피식 웃은 종혁은 다시 서류 결재를 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태운 차는 곧 대전의 한 주택가에 들어섰다.
“도착했어요, 부장님.”
“수고했으.”
탁! 탁!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켠 종혁이 주택가를 둘러본다.
‘동네가 좀 허름하네.’
건물의 노후 상태나 여기저기 쓰레기가 쌓여 있는 걸 보면 썩 잘사는 동네는 아닌 것 같다.
“주소가 어디랬지?”
“음. 저쪽이요. 한 대 피우고 가시죠?”
“그러자.”
그들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이었다.
부우웅!
이쪽을 향해 느릿하게 달려오는 샛노란 승합차, 아니 유치원 버스.
눈을 빛낸 그들은 얼른 담배를 수습했고, 이내 근처에 멈춰 선 유치원 버스에서 정민이 내린다.
“정민아, 안녕. 내일 보자.”
손을 흔드는 교사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인 정민.
유치원 버스가 떠나자 한숨을 폭 내쉰 정민이 밝게 웃으며 근처의 슈퍼로 달려가 평상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몸을 웅크리는 그녀.
그런 정민의 눈이 슬그머니 밖에 놓인 아이스크림 냉장고로 향했다가 다시 얼른 돌아온다.
누굴 기다리는 걸까. 그 기이한 모습에 눈을 빛낸 종혁이 다가선다.
“정민아, 안녕? 아저씨 기억해?”
“…….”
냉큼 주저앉아 눈을 마주치는 최재수의 모습에 눈이 동그래지는 정민.
종혁은 서둘러 최재수의 엉덩이를 밀어 찼다.
“야, 이……! 갑자기 그 험한 면상을 들이밀면 애가 놀래, 안 놀래?”
“제 얼굴이 어때서요! 그래도 부장님보단 낫거든요?”
“다섯 살 이후로 거울 안 봤냐?”
최재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자 킬킬 웃은 종혁이 정민의 앞에 쪼그려 앉는다.
“안녕? 이 아저씨는 기억하니? 3일 전에 유치원에서 만났는데.”
방금 전과 다른 의미로 눈이 동그래지는 정민.
종혁의 눈이 푸근한 미소를 짓는 순간이었다.
“누군겨? 정민이가 예쁜겨?”
슈퍼 안에서 흘흘 웃으며 나오며 걸어 나온 할머니의 눈이 서늘하다.
한 손에 들린 빗자루에 입맛을 다신 종혁은 경찰신분증을 보여 줬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경찰입니다.”
“아이고! 드디어 잡은 겁니까, 슨상님?”
“예?”
“……아닌겨?”
종혁의 눈이 데구루루 돌아가다 어색하게 웃는다.
“아, 예. 죄송합니다. 오늘은 다른 용무 때문에 온 거라서요. 그래서 정민이 보호자분과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복덕이는 1시간 뒤에나 올 건디…….”
“아, 그래요. 그럼 여기서 기다려도 될까요?”
종혁은 바로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열어 아이스크림을 한 움큼 집어 들었고, 슈퍼 할머니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평상 닦아 드릴까?”
190cm가 넘는 어른 둘 사이에 작은 꼬마 하나.
저마다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쥐고 있는 그 이상한 조합은 사람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런디 몇 살인 겨? 결혼은 한 겨? 경찰이면 위험한 일 하는 겨?”
누가 충청도 사람이 느리다고 했던가.
“하하. 29살인데, 아직 결혼은 안 했어요.”
“……아픈 겨?”
“멀쩡합니다.”
슬그머니 아래로 내려가는 할머니의 시선에 발끈한 종혁.
“그려. 잘 생각혔어. 가도 혼자 가야 하는 거여.”
뭔가 말이 이상하다.
슬그머니 물어보려던 종혁은 할머니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가자 입을 다물었다.
“어이구? 복덕아!”
그와 동시에 평상에서 뛰어내린 정민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할머니에게 달려가 안긴다.
“어이구, 냄새나. 절루 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더 복덕에게 파고드는 정민.
종혁과 최재수가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정민이 보호자 되시죠?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잡은 거여유, 선상님?”
‘눈이 안 좋으시구나.’
이쪽을 보는 눈을 한껏 좁힌다. 아무래도 노안이 온 것 같았다.
“아뇨, 아직요. 다른 일 때문에 잠깐 이야기 좀 나눌까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정민이와 할머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에요.”
“집에 마실 거 없는디…….”
그런데 왠지 대접할 게 없어 어려워하는 게 아니라 꺼려 하는 느낌이다.
‘충청도 사람 말은 몇 번 생각해 봐야 한다더니…….’
“근처에 다방 있던데 쌍화차 괜찮으세요? 저희가 살게요.”
“거긴 율무차가 맛있어요.”
“율무차도 좋죠.”
“따라와요.”
그렇게 다방에 가자 새초롬한 인상의 육십대 여성이 눈을 흘긴다.
“많이 벌었음 고기 사 먹제 왜 왔슈?”
“석 잔 줘. 코코아도.”
“있어 봐유.”
다방 주인이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들은 빈자리에 앉았다.
“와. 이건 뭐지?”
운세뽑기통을 보며 신기해하는 재수를 일견한 종혁은 거칠지만 따뜻하게 정민을 어루만지는 김복덕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래서 먼 일이래요?”
“아.”
종혁은 얼른 방송에 대해 설명했다.
호록!
“그게 도움이 되남?”
“일단 전국에 계신 마음씨 좋은 분들께서 후원금이나 생필품을 보내 주시는 것도 있을 테지만, 행복의 쉼터 학교라고 아시죠?”
몇 년 전 설화학교 사건 이후 권회수가 세운 장애인들을 위한 학교, 행복의 쉼터 학교. 벌써 세 번째 학교가 지어지는 중이다.
“그런 곳이 있었슈?!”
얼마나 놀랐는지 김복덕의 사투리가 격해진다.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왜 모르지?’
행복의 쉼터 학교가 지어진 이후 전국의 구청과 주민자치센터 등 지방자치단체에 행복의 쉼터 학교에 관한 교육부의 공문이 전달됐다. 장애아동가정에 행복의 쉼터 학교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라는 공문이.
‘직무 유기네, 씨발.’
“하하. 아무튼 그런 곳이 있어요. 할머님께서 원하신다면 정민이를 그 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고요.”
유치부 과정까지 다 하는 학교이기에 정민이 적응하긴 편할 거다.
“게다가 보호자들도 함께 들어가 살 수 있는 기숙사도 제공하고, 학비도 전액 무료예요.”
학교에서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도 모두 무료.
“원한다면 할머님을 위한 일자리도 제공해 주고요.”
많은 돈은 아니지만, 최저 시급은 나온다.
“근디…… 방송을 꼭 해야만 하남유?”
“아뇨. 방송이랑 상관없이 입학하실 수 있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선상님, 감사혀유.”
“아닙니다. 제게 감사하실 건 없으세요.”
손을 저은 종혁은 울먹이는 김복덕에 안절부절못하는 정민을 응시했다.
“정민이는 새 친구들을 만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새 친구란 말에 정민의 눈이 동그래졌다.
* *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허리를 숙인 김복덕은 정민을 리어카에 태워 돌아갔고, 종혁과 최재수는 담배를 물었다.
“그렇게도 좋을까요.”
새 친구란 말에 만난 이후 지금까지 중 최고로 격한 반응을 보인 정민이.
“저 나이 때는 친구가 최고지.”
“그런데 정민이를 출연시키시려는 거 아니었어요?”
“억지로 출연시켜서 뭐하게.”
그거야말로 폭력이다.
어쩌면 평생 따라다닐 증거가 남을 폭력.
‘그런데 원래부터 말을 하지 못했던 건가…….’
너무 예민한 문제기에 쉬이 물어보지 못한 질문.
‘그래도 할머니 앞에서는 잘 웃네.’
인상도 찌푸리지 않고, 방긋방긋 잘 웃었다. 아무래도 유치원이 그냥 싫어서 그런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본능적으로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멀리하는 것. 그런 경우일 수도 있다.
뭐든 종혁으로 하여금 이곳까지 오게 만든 불안이 한결 가신다.
“하긴 억지로 출연시키면 서로에게 안 좋죠. 에이.”
종혁은 종이 쪼가리를 구기는 최재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건 또 언제 뽑았냐?”
“아니, 신기해서……. 그런데 순 엉터리예요.”
“왜?”
“제가 오늘 인연을 놓치면 평생 결혼을 못한다잖아요! 나한테 인연이 어디 있……. 아닙니다. 임 경감님은 절대 제 스타일 아니에요!”
“응. 잘 때 꼭 문 잠그고 자고.”
“씨이. 그러는 부장님도 좋은 점괘는 아니거든요?”
대흉.
후회할 일이 생긴다. 주변을 살펴라.
“……이놈의 다방 운세뽑기는 들어맞은 적이 없어요.”
그래도 왜 이리 불안해지는지 모르겠다.
“너, 일단 김복덕 씨에 대해 신원 조회 좀 해 봐.”
“아까 그거 말이죠?”
“어.”
잡았냐는 슈퍼 할머니와 김복덕의 말.
정민의 곁에 부모가 없는 것에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멀어지는 정민을 보며 핸드폰을 들었다.
“응, 엄마. 별일 없어? 아, 난 지금 출장 나왔지.”
그들은 그렇게 다시 본청으로 복귀했다.
멀리 떨어진 정민이 흔들리는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