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57화 (55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57화>

“흐어어엉!”

울음바다가 된 병실.

친구 박수호가 종혁에게 안겨 울음을 터트린다. 박수호뿐만이 아니다. 소영과 이리나도 종혁을 붙들고 울음을 터트린다.

“난 네가…… 네가……. 이 나쁜 놈아!”

“그래, 인마. 미안해. 내가 미안해.”

“흐어어어엉!”

종혁은 도통 울음을 멈출 생각을 안 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볼을 긁적이려다 멈칫했다.

맘처럼 쉬이 올라가지 않는 손.

팔뚝을 가로지르는 얇고 긴 흉터에 혀를 찬 종혁은 힘주어 팔을 올려 수호의 등을 두드렸다.

그때였다.

드르륵! 쾅!

“종혁아!”

‘에고.’

종혁은 들이닥친 김종두 과장과 최기룡 전 청장, 이택문 전 청장의 모습에 한숨을 내뱉었다.

“아냐, 아냐. 나오지 마.”

친구들은 돌아가기로 했다.

김종두와 최기룡, 이택문이 오니 불편해진 것도 있지만, 이제는 각자 직업이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연예인을 좋아한 박수호는 매니지먼트의 매니저가 됐고, 소영은 회계사가 됐다.

이리나는 언어 능력을 살려 통번역사가 되었다.

그들의 만류에도 휠체어를 끌고 문 앞까지 가 배웅한 종혁은 돌아서는 이리나를 불렀다.

“응? 왜?”

“……아냐. 들어가. 차 조심하고.”

살짝 흔들리는 그녀의 눈.

묻고 싶은 말이 있지만 가슴에 묻는다. 최소한 지금은 꺼낼 말이 아니었다.

“……혁, 또 다치면 그땐 내가 죽일 거야.”

“오우.”

콧방귀를 뀐 이리나는 돌아섰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종혁은 휠체어를 돌려 셋을 향해 다가갔다.

“이것 좀 드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제수씨.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어머니 고정숙이 내온 과일을 입에 무는 김종두과 최기룡, 이택문.

‘안 본 사이에 많이 늙으셨네.’

고작 몇 달 사이 폭삭 늙어 버린 듯한 셋의 모습에 종혁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짜식…… 진짜 살았네. 몸은?”

병원에 누워 있는 석 달 동안 몸이 반쪽이 된 종혁. 셋은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재활해야죠. 한 반년쯤은 해야지 않을까 싶어요.”

그것도 아주 빡세게. 그래야 사람 구실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종혁은 힘주어 다리를 들어 올리며 씁쓸히 웃었다.

그에 셋의 낯빛이 흐려졌지만,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다.”

사고 현장을 직접 본 그들. 거의 완파된 종혁의 차를 본 순간 그들은 눈앞이 아찔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 안 움직이는 곳은 없는 거지?”

기적처럼 살아난다고 해도 최소한 장애는 입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보시다시피요.”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리긴 하지만, 안 움직이는 곳은 없다.

종혁은 ‘다행이다, 다행이야’를 연신 외치는 최기룡을 봤다.

“할머님은요?”

“모르신다. 이번 명절에 못 온 건 사건이 바빠서 그런 거라고 둘러댔어. 전화도 하기 힘든 수사를 하고 있다고.”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이 노쇠하신 종갓집의 할머님.

혹여 사고 소식에 충격을 받아 건강에 문제라도 생기진 않으실까 걱정을 했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종혁은 오택수가 찍어 준 과일을 입에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움찔!

혼수상태일 때 오택수가 혼잣말을 하는 것을 모두 들었던 종혁.

그의 말에 최기룡은 낯빛을 흐렸으며, 이택문은 속내를 감춘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바람 좀 쐴까?”

“그러시죠. 엄마,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외투 가져가.”

이제 막 깨어난 아들이, 아직 안정을 찾아야 하는 아들이 일부터 찾으니 속이 상한 그녀.

종혁은 싱긋 웃으며 그녀를 꼭 끌어안고는 병실을 빠져나갔다.

휘이잉!

아직 2월이라 그런지 겨울의 찬바람이 몸을 찌르는 옥상 정원.

그들 모두 담배를 문다.

“후우우. 일단 박종명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군.”

경찰청장이었던 박종명부터 시작해, 거의 300여 명의 중간 간부 및 고위 간부들이 정직 혹은 대기발령을 받게 된 조희구 게이트.

뒤이어 국정원에서 전달된 한 첩보, 본사 직원들에게서 뽑아낸 기생충들의 명단에 의해 말단 순경까지 엄청난 숫자의 경찰이 옷을 벗게 됐다.

그동안 그렇게 칼춤을 추며 피를 봤어도 경찰 내부에 남아 있던 기생충들.

경찰뿐만이 아니다. 검찰도 난리였다.

‘지독하다, 지독해.’

종혁은 담배를 깊게 빨았다.

“아무튼 그건…….”

“청장님들에게 좋은 일이죠.”

“……그렇지. 정 과장의 공이 컸어.”

남몰래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 정용진 과장.

그 덕분에 놈들 조직과 연결된 이들뿐만 아니라, 미처 잘라 내지 못한 해충들도 모두 쳐 낼 수 있었다.

대가성 뇌물을 받고 사건을 덮은 놈, 취객을 겨울의 추운 거리에 버린 놈 등 경찰 얼굴에 먹칠을 하는 놈들 전부.

“흠…… 어느 정도 보여 주기식도 있었군요.”

“그렇지. 조희구가 너무 일을 크게 벌였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정부와 국민들이 납득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걸 듣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만.”

“여기서부턴 제가 이야기 하겠습니다.”

“음.”

고민하던 최기룡이 입을 다물자 종혁은 고개를 돌려 이택문을 바라봤고, 오택수도 원망 어린 눈으로 이택문을 쳐다봤다.

특별범죄수사대를 지키지 못할 상황이 되자 이택문을 만나려 했던 오택수. 하지만 이택문은 ‘모두 종혁을 위한 일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말만 하곤 그를 만나 주지도 않았다.

그에 당연히 원망이 깊을 수밖에 없던 상황.

“이번에 청장이 된 친구는 소심하지만 야망이 있는 친구지.”

“……그런 거였군요.”

이택문은 뭔가 눈치를 챈 듯한 종혁의 모습에 입술을 비틀었다.

“그래. 그 친구에게 경찰청장은 여의도로 입성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해. 아니, 그렇게 되어 버렸지.”

쿵!

뒤통수를 후려치는 충격에 오택수와 김종두가 얼굴을 구긴다.

“그런 사람을 대체 왜…….”

“그럼 치적을 바라겠네요?”

그들의 분노를 꿰뚫는 말에 둘은 다급히 종혁을 봤다가 눈을 껌뻑였다. 종혁이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이택문의 미소도 짙어졌고, 오택수와 김종두는 그제야 종혁과 이택문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일순간 맥이 탁 풀려 버린 둘.

이택문은 그런 둘에게 쐐기를 박았다.

“최 대장이 하고 싶은 걸 많이 할 수 있을 거야.”

경찰 개혁.

보다 나은 경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종혁이 계급에 막혀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거다.

쿠웅!

방금 전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오택수와 김종두를 뒤흔든다.

‘이걸 의도한 저 양반이나 말 몇 마디로 그걸 꿰뚫어 본 종혁이나…….’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둘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아무리 개혁을 위한 일이라지만, 종혁이 힘들게 만든 특별범죄수사대를 너무 쉽게 넘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특수대의 일은 두 분께서 제게 주시는 선물이겠네요. 솔직히 포장지는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요.”

이택문은 콧방귀를 뀌며 담배를 깊게 빨았다.

“자, 잠깐. 야, 최 대장. 그게 무슨 말이야? 선물이라니?”

“특수대로 온 형사들 상태가 어떻던가요?”

“솔직히 나쁘진…… 아, 씨발. 그런 겁니까?”

막강한 권한을 가진 특별범죄수사대. 그렇다 보니 현 경찰청장도 그에 걸맞은 인재들을 보냈다. 고르고 골랐다는 티가 확 느껴졌다.

이걸 뒤집어 말하면 지금 특별범죄수사대에 있는 형사들이 훗날엔 경찰의 중추가 된다는 뜻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특별범죄수사대의 맛을 본 그들이.

그제야 ‘종혁을 위한 일이다’라는 말의 뜻을 완전히 알아들은 오택수는 종혁을 쳐다봤다.

종혁이, 수사 체계에 대해 많은 불만을 품으며 결국 특별범죄수사대를 만들었던 종혁이 무슨 말을 할지 예측이 됐기 때문이다.

“야, 술 사라.”

“재수만 데려갈게요.”

“술부터 사라고, 새끼야.”

“날짜나 잡아요. 풀코스로 쏠 테니까. 우리 대장님 기 살려 드려야지.”

“개새끼……. 대신 이거 하나만 약속해라. 나 그 자리에 오래 있진 않을 거다.”

“당연하죠. 함께 올라가야죠.”

위로. 경찰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정점으로.

그러기 위해선 오택수의 조력이 무척이나 필요했다.

그 말에 마음이 살짝 풀린 오택수는 고개를 휙 돌렸고, 이택문은 종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를 원하지?”

“뭘 물어보고 그러십니까?”

당연히 한 곳뿐이다.

위로 상사가 고작 한 명뿐이면서, 그것도 거의 무시해도 되다시피 할 정도면서도 경찰 개혁에 앞장설 수 있는 부서.

“홍보부 주십쇼.”

“……으하핫!”

종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를 해 버린 최기룡은 웃음을 터트렸고, 이택문도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지, 최 총경. 아니, 홍보담당관 최종혁 총경.”

“……충성.”

종혁이 드디어 경찰의 중추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   *   *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울고 또 웃었다.

특히 최재수와 강철선, 순희는 아예 병원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을 했다.

종혁은 그런 그들을 달래느라 애를 먹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론 뿌듯했다.

그렇게 그들도 안심하고 돌아간 자리.

“정말 괜찮겠어?”

“엄마, 갈비찜. 갈비찜 먹고 싶어. 만들어다줘요.”

“……갈비찜?”

“육전도.”

“……아주 지 아빠랑 똑 닮았지.”

어쩌다 크게 다쳐 정신을 잃고 깨어나면 병원에선 먹을 수 없는 기름진 음식들부터 찾았던 종혁의 부친.

“진짜 어쩜 이리 닮았나 몰라. 보지도 못했을 텐데.”

“그래서 씨도둑질은 못한…….”

짜아악!

“따갑습니다, 어머님. 아 씨, 안 닿아.”

“흥! 아, 전 이만 들어가 볼테니까 적당히들 마시세요.”

“어흠흠.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그동안 종혁이 때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고생하셨죠. 그럼…… 아들, 한 방울이라도 마셨다간 알지?”

작지만 옹골찬 손에서 들리는 뼈 갈리는 소리에 종혁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충성!”

다시 콧방귀를 뀐 고정숙은 짐을 챙겨 병실을 나섰고,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남은 사람들이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다들 어떡하시겠습니까? 나가서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시켜서 드시겠습니까?”

김종두의 말에 최기룡이 몸을 떤다.

“아직 밖이 추워. 시켜 먹지. 여기는 시켜 먹어도 괜찮다며?”

“괜찮다 뿐일까요. 오 경정님, 소파 테이블 밑에 살펴봐요.”

이젠 오 경감이 아닌 오 경정.

역시나 입에 잘 달라붙지 않는다.

“여기 밑에? 와, 이건 뭐야?”

“근처 맛집 리스트일 거예요.”

소위 있는 자들이 입원을 하는 게 VIP 병동이다.

VIP 병동을 위한 병원식을 따로 만든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 맛대가리 없는 병원식.

당연히 근처 맛집들을 쫙 꿰고 있을 수밖에 없다.

“오케이. 그럼 이건 김 과장님이 시켜 주시고, 전 술 좀 사 오겠습니다.”

“오 대장은 뭐 먹을 건데?”

“아무거나, 양 많이면 됩니다. 아, 맞아. 최 대장, 그놈들 잡았다.”

갑작스런 말에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종혁은 눈을 부릅떴다.

“잡았어요?!”

종혁이 진급식 때 박명후 대통령에게 따로 말하려고 했던 성범죄자들. 정확히는 성범죄자에 대한 감시 시스템.

예기치 못한 사고 탓에 종혁이 움직일 수 없게 된 와중, 오택수는 종혁이 말했던 걸 떠올리곤 미리 그가 정리해 놓았던 리스트에 있는 이들을 몇몇 미수에 검거해 냈다.

“조두영, 강상구…….”

불끈!

‘잡았구나!’

2008년 12월, 대한민국을 뒤집었던 아동 성범죄 사건. 일명 조두영 사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고작 12년 형밖에 살지 않아서 온 국민을 분노케 했던 사건이다.

“이 중 조두영은 취한 상태였지만 검사가 말하길 심신미약은 적용시키지 않을 거란다.”

“어? 왜요?”

“왜긴 왜야. 그쪽 동네도 복잡해서 그렇지.”

“아, 맞아. 그랬지, 참.”

검찰도 비껴가지 못한 조희구 게이트.

국민들에게 온갖 쌍욕을 먹은 검찰은 당연히 날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고, 모든 사건을 엄중히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이 펜대를 날카롭게 세우며 감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봐주기식 수사나 허술한 수사를 했다가는 그대로 목이 날아갈 상황.

강철선이 말하길 앞으로 1년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거라고 했다.

‘흠. 조만간 검사님과도 식사를 해야겠네.’

현 중앙지검의 검사장까지도 함께 말이다.

종혁은 그동안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만든 장소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다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아차 했다.

종혁은 얼른 상황을 설명했고, 김종두와 최기룡, 이택문과 정용진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종혁아. 차라리 규제개혁법무담당관이 낫지 않겠냐?”

최기룡의 말에 종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위로 시어머니를 두 분이나 둘 자신 없습니다.”

최소 치안감이 아니면 맡을 수 없는 기획조정관에 치안정감인 차장까지.

“그리고 실적을 빼앗기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하긴 네가 알아서 하겠지.”

“그래야죠. 아! 늦었지만 진급 축하드립니다, 과장님.”

경찰의 암덩어리를 걷어 내는 데 혁혁한 공을 올린 공로로 경무관으로 진급을 한 정용진 과장. 그는 이제 어엿한 고위 간부였다.

“지방청으로 가신다고요?”

“일단은 생각 중입니다.”

본청에 잔류를 할지, 아니면 위로 올라가기 위해 지방으로 돌지.

“흠. 만약 잔류를 하시겠다면 치안상황관리관을 도전해 보셔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생각은 하고 계실 테지만요.”

현재 북한과의 관계가 나날이 나빠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내 치안 전체를 관할하는 치안 상황관리관은 요직일 수밖에 없었다.

“최 총경을 도와 달라는 거군요.”

씨익!

종혁의 입가에 의뭉스런 미소가 피어난다.

“슈퍼컴퓨터 놓아 드리겠습니다. 미국 기상청에서 쓸법한 놈으로. 모니터까지 풀세트로다가.”

“두 세트 가능합니까?”

“저랑 평생 가시겠다면.”

정용진 과장은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고, 종혁은 그 손을 맞잡았다.

“택문아, 앞에서 뇌물을 주고받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

“저희 이제 경찰 아닙니다.”

“재미없는 놈.”

피식 웃은 종혁은 휠체어를 돌렸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도와줘?”

“아뇨. 괜찮습니다.”

그렇게 종혁이 화장실로 향하자 남겨진 네 명 모두 입을 다문다.

“다행이군요.”

그동안 이놈들을 잡기 위해 참 많이 애를 썼던 종혁.

혹시나 번아웃이 오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것 같다.

한시름 놓은 그들은 이내 메뉴판을 살피기 시작했다.

“일단 카테고리부터 통일시키시죠. 그래야 빨리 올 테니까.”

“중식이 낫지 않겠습니까?”

“나이가 드니 중식은 영……. 일식으로 가는 건 어떤가?”

한편 화장실.

문을 닫은 종혁이 담배를 물며 한숨을 내쉰다.

방금 전 밝았던 표정은 어디로 간 건지 맥이 빠진 얼굴을 한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그.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종혁의 입술이 달싹인다.

“아직 구해야 할 사람이, 구원을 바라는 피해자가 수없이 많지만…….”

솔직히 예전만큼 힘이 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신이 이런 꼴을 당했는데, 나탈리아와 헨리가 가만히 있었을까. 아마 이젠 잔당들마저 모두 소탕됐을 거다.

“후우. 그래도 힘내야지.”

방금 전 읊조렸듯 구해야 할 피해자가 너무도 많다.

거울을 보며 볼을 두드린 종혁은 싱긋 웃으며 화장실을 나섰다.

“뭐야. 똥을 만들어서 쌌냐?”

“하하.”

생각보다 화장실에 오래 있었는지 테이블에 한가득 깔려 있는 기름진 음식들. 하지만 그보다 술병들이 종혁으로 하여금 군침을 삼키게 한다.

“어휴. 이게 얼마 만의 술이야.”

“씁. 넌 이거 먹어, 인마.”

“에이.”

“씁?!”

종혁은 툴툴거리며 콜라가 든 컵을 받아 들었고, 최기룡은 풀썩 웃으며 잔을 들었다.

“자자, 건배들 하지. 종혁이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의미로. 위하여!”

“위하여!”

꿀꺽꿀꺽!

“크으으!”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던 걱정이 내려져서일까 그들 모두 술이 달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얼굴이 불콰해질 때쯤 최기룡이 흘리듯 입을 연다.

“그래서 그놈들은 어떻게 됐지?”

분명 종혁의 친구들이 움직인 건 확실한데, 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답답한 그들.

종혁은 씩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고 계시죠, 나탈리아? 그만 애태우시고 들어오세요.”

움찔!

“무슨…….”

똑똑똑! 드르륵!

최기룡들은 정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탈리아를 보곤 눈을 부릅떴다.

“후후. 역시 최는 속일 수가 없네요.”

“믿은 거죠.”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놈들이라면 또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믿어 줘서 고마워요, 최. 그런데 썩 유쾌하지 않은 말을 전해야 할 것 같네요.”

의아해하며 쳐다봤던 종혁은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진 그녀의 모습에 미간을 좁혔고, 나탈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물었다.

뿌드득!

그녀의 잇 사이에서 찢어질 듯 뭉개지는 담배 필터.

“놈들의 본사가 아직 건재해요.”

콰앙!

온몸을 터트릴 듯한 충격에 사람들이 말을 잃는다.

그 순간이었다.

“하핫! 푸하하하핫!”

병실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려는 듯 종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끔찍한 살의.

종혁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 역시도 살의가 폭발한다.

“하아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은 종혁은 나탈리아를 보며 사납게 웃었다.

“그거…… 참 좆같은 말이네요.”

그런데 왜인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힘이 솟는 것 같다.

종혁의 두 눈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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