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56화>
띠! 띠! 띠!
“……!”
“……!”
저 하얀빛은 무엇일까.
자신을 데려가려는 하늘의 빛인 걸까.
몽롱한 정신 속, 흐릿한 안개 속을 비추는 빛에 종혁은 씁쓸히 웃는다.
‘이제 다 끝났다는 겁니까?’
이 대한민국에 드리워졌던 암운.
가만 놔뒀으면 이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이끌었을 회사.
그들의 목을 쳤다.
이제 대한민국은 보다 나아지게 될 터.
회귀 전처럼 막장으로 흘러가지 않고 보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이걸로 제 역할은 끝났다는 겁니까?’
그래서 다시 데려가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 힘들 필요 없다는 겁니까?’
솔직히 힘들었다.
어느 누가 남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걸 힘들어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버텼다.
한 번씩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버텼다.
고작 돈을 위해 사람을 서슴없이 죽이는 놈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엄마를 죽인 놈들을 때려눕히기 위해.
다시 얻게 된 삶, 이번에는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버티고 버텼다.
모든 게 끝난 지금, 쉬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됐습니다. 이제 와서 또 당신 마음대로 데려가겠다고?’
세상엔 아직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많았다.
그들을 뒤로한 채 쉴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면 신이라고 해도 가만 안 둘 겁니다.’
지금쯤 울고 있을 어머니 고정숙의 얼굴이 떠오른다. 남편 없는 홀몸으로 냉정한 사회에 던져져 어떻게든 자식새끼 하나 키우겠다고 발버둥을 치신 어머니.
회귀 전에도 대못을 그리 박다 못해 못난 아들 새끼 때문에 비명에 가시게 했는데, 또 대못을 박으랴.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오택수, 재수, 철이, 세라. 소영이, 이리나, 박수호, 권아영, 박태규, 권회수 등 지금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 사람들 다 두곤 저…… 못 갑니다.’
삐삐삐삐삐삐!
종혁은 그 생각을 끝으로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민족의 대명절 구정을 맞이해…….
어느덧 2009년이 됐다.
2008년 미국에서 출발한 경제 한파 때문인지 유난히 추운 겨울.
모두가 추위를 잊고자 몸을 웅크릴 때 발바닥까지 땀이 나도록 뛰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기서!”
“좆까! 비켜! 씨발 비켜!”
“꺄악!”
한낮의 추격전에 비명을 지르며 비켜서는 사람들.
칼을 들고 뛰는 남성의 뒤를 바짝 쫓는 형사가 저 앞에 서 있는 여성을 보며 이를 악문다.
갈등이 서리는 눈. 하지만 곧 그는 그녀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임 경감!”
“으랏챠!”
마치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그대로 뛰어올라 남성의 얼굴을 걷어차는 여성, 임세라.
“커억!”
후다닥 달려온 형사가 바닥을 뒹구는 그를 덮치며 팔을 뒤로 꺾는다.
“고종환. 널 특수폭행, 살인 교사 및 마약류 관리에 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체포한다. 넌…….”
“놔! 안 놔?! 야, 내가 이거 벗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냐?! 1년? 반년? 30분이면 충분해, 새끼들아!”
뻐어억!
“20년 걸린다, 새끼야.”
“커헉! 컥!”
가슴을 얻어맞고 뒹구는 중년인을 일으켜 관용차로 끌고 가 태운 그들.
“리 경사, 상황 종료야.”
-수고하셨습네다, 박 경위님.
“오케이. 그럼 복귀한다. ……수고했어, 임 경감.”
어깨를 두드리는 손을 힐끔 본 임세라도 미소를 짓는다.
“선배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읏챠! 그럼 복귀해 보실까?”
그들은 이틀간의 잠복을 마치고 특별범죄수사대로 복귀를 했다.
“네 상관 나오라고 해! 청장 나오라고 해!”
“아, 내가 안 그랬다니까요!”
잡혀 온 범죄자들로 시끄러운 특별범죄수사대.
범죄자들 숫자만큼 늘어난 형사들 사이를 헤치며 나아간 임세라가 정장을 입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오택수에게 거수경례를 한다.
“경감 임세라, 고종환을 잡고 복귀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수사에 쓴 비용은 영수 처리 꼭 하고.”
손을 저은 오택수는 마저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던 임세라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돌아섰다.
그제야 그런 그녀를 힐끔 본 오택수는 잠시 사무실을 둘러봤다.
컴퓨터 세 대를 모두 돌리고 있음에도 정신이 없는 순철과 출동을 나간 최재수, 세면도구를 챙겨 들고 일어나는 임세라.
그리고 그런 그들의 눈치를 보거나 혀를 차는 다른 형사들.
그런 모습들에 낯빛이 어두워진 오택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모니터를 쳐다봤다.
“씨발. 예산 진짜…….”
그의 입에서 한숨이 푹푹 쏟아져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형사들이 모두 떠나자 그제야 키보드 위에서 손을 내린 오택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눈가를 어루만졌다.
벌써 저녁 11시. 집에 들어가면 욕먹기 딱 좋은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따로 더 할 일이 있었다.
“쯧. 늦었네.”
외투를 집어 들며 본청 건물을 나선 오택수는 잠시 차 앞에 서서 담배를 물었다.
“이건 뭐 강제 금연도 아니고.”
너무 바쁘다 보니 담배 피울 시간도 없는 요즘.
북적한 사무실을 떠올린 그는 이내 혀를 차며 차에 올랐다.
그런 그가 향한 곳은 종혁이 입원해 있는 병원이었다.
“감사합니다. 이건 간호사 선생님들끼리 나눠 드십시오.”
“어휴, 뭘 이런 걸 다…… 크흠. 다음부턴 이렇게 늦으시면 안 돼요.”
“그럼요. 당연하죠. 수고하십쇼.”
스르륵!
VVIP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오택수는 불이 꺼진 병실의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는 고정숙에게, 다 죽어 가는 듯 초췌한 그녀에게 오택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오셨어요.”
“늦었습니다. 지금부턴 제가 있을 테니 들어가서 쉬고 오세요.”
“정말 미안해서 어떡해요.”
오택수에게만 미안한 게 아니다. 어제는 최재수가 병실을 지켰고, 그제는 임세라가 병실을 지켰다. 순철은 그 전날.
종혁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부터 이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저녁마다 병실을 지켰다.
종혁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찾아와 병실을 지키는 고마운 사람들.
“아닙니다. 그냥 저녁에 잠깐 있는 것뿐인걸요.”
“……부탁드릴게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주시고요.”
그렇게 말하지만 고정숙의 발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혹여 오늘이면 일어날까, 자신이 잠깐 어디 간 사이에 일어나는 건 아닐까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당연하죠. 어서 쉬세요.”
오택수는 매일 아침부터 자신들이 오는 저녁까지 병실을 지키는 고정숙이 쓰러질까 얼른 내보냈고, 고정숙은 VVIP 병실에 딸려 있는 보호자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비척비척 걸어가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는 그녀의 모습에 혀를 찬 오택수는 의자를 끌고 와 종혁의 옆에 앉았다.
이 병상에 누워 있는 세 달 동안 몸이 많이 마른 종혁.
오택수는 손가락을 튕겨 종혁의 볼을 두드렸다.
“수술은 잘 끝났는데 왜 일어나질 못하냐.”
전신 골절에 장기 파열, 머리도 크게 손상을 입은 종혁.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의사들이 달려와 수술을 진행했고, 그 덕분에 종혁은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지금이야 붕대와 깁스를 모두 풀었지만 그땐 사람이 아니라 미라였다.
‘그 차가 아니었다면 즉사였을 테지.’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 대통령 의전차량만큼 튼튼한 놈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늘이 살라고 하는데 왜 일어나질 못하냐고, 인마.”
오늘도 투덜거린 오택수는 들고 온 소주를 까서 입에 들이부었다.
“크으.”
빈속에 술을 들이부으니 금세 술기운이 올라온다.
그럼에도 오택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마시고 또 마셨다.
대원이었을 때는 미처 몰랐던 대장이라는 자리가 주는 무게감. 임시로 잠시 맡았을 뿐이거늘 그 무게감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종혁이 힘들게 만든 특별범죄수사대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거다.
사실 이는 종혁이 자리를 비운 순간부터 예견된 상황이긴 했다. 특별범죄수사대에게 주어진 권한은 지나치다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박종명이 옷을 벗은 이후 새로 임명된 경찰청장은 막강한 권한을 지닌 특별범죄수사대를 어떻게든 자신의 수족으로 삼고 싶어 했고, 그는 여러 이유를 붙여 자신이 눈여겨보는 형사들을 특별범죄수사대에 밀어넣었다.
임시라지만 대장이라는 역할을 맡았음에도 그저 그걸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던 오택수는 종혁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동시에 종혁의 능력이 얼마나 좋았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넌 난놈이야, 정말. 들리냐? 넌 난놈이라고, 새꺄.”
“스으읍, 후우우우.”
“……씨발놈. 존나 잘 자네. 에이.”
이 무책임한 놈을 한 대 쥐어박으면 얼마나 좋을까.
콱!
“그래. 자라, 자. 씨발놈아.”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대 쥐어박은 오택수는 남은 술을 모두 들이켜곤 소파로 걸어가 노트북을 펼쳤다.
이내 곧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울리는 어둡고 조용한 병실.
움찔!
종혁의 손가락이 작게 움직였다.
* * *
이르다면 이른 아침 8시 30분이 되면 VIP 병동의 아침 회진이 시작된다.
소위 있는 자들이 입원을 하는 VIP 병동.
그렇기에 아침 8시 30분, 아니 아침 7시부터 병동 전체에 날이 서기 시작한다.
의사들뿐만 아니라 간호사들까지 모두 말이다.
“어제 회장님들 어땠어?”
“그게…….”
한쪽에서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의견을 나누는 VIP 병동 담당 레지던트 의사들.
아침 회진에 필요한 의료 기구들을 챙긴 간호사들도 서로 의견을 나눈다.
“김 간, 어제 어땠어?”
“3호실 회장님께서…….”
거의 한 시간마다 한 번씩 병실을 들여다보며 상황을 체크하는 간호사들. 그렇기에 그들이 나누는 정보도 많을 수밖에 없다.
“좋은 아침!”
“오셨습니까!”
상쾌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나타난 통통한 중년인을 향해 허리를 숙이는 의사와 간호사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가 이 VIP 병동의 담당 전문의이기 때문이다.
“밤사이 별일 없었지?”
“없었습니다.”
“오케이. 차트 줘 봐.”
차트를 쭉 훑어 내린 담당 전문의는 냉정한 눈으로 간호사들이 준비해 놓은 것들을 살핀다.
여차하면 담당 전문의의 목을 스스럼없이 날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VIP 병동. 그러나 일단 담당의로서 호평만 들으면 개천에서 난 지렁이라도 위로 향하는 길이 열리는 VIP 병동.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 자리를 차지한 그로서는 눈빛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내 차트 확인을 끝마치고는 몸을 돌리던 그의 눈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카트를 점검하는 간호사가 비춰진다.
긴 생머리를 깔끔하게 틀어 올려 뽀얀 목덜미를 드러낸 간호사.
눈매가 휘어진 그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움찔!
“유 간, VVIP 병실에 입원한 회장님은 어땠어요?”
“보, 보호자분께서 술을 드신 것 빼고는…… 트, 특이 사항은 없었습니다.”
“제대로 살펴본 거 맞습니까?”
“네, 네!”
어깨를 주무르며 목덜미를 훑는 손길에 더 파랗게 질려 가는 유희연 간호사.
“흠. 이번 주말 저녁에 시간 어때요?”
“네? 아, 그 그게…….”
“흠…… 내가 특별히 신경 써서 VVIP 병실을 맡겼는데, 인간적으로 밥 한 끼는 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큰 병원에도 딱 하나만 있는 VVIP 병실. 그 병실에 입원한 환자는 현재 의식이 없는 혼수상태다.
덕분에 유희연은 다른 간호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그게…….”
점점 얼굴이 일그러지는 그녀.
싱긋 웃은 담당 전문의는 그녀의 귀에 입술을 가져갔다.
“연락해요. 기다릴 테니까.”
오싹!
담당 전문의는 그 말을 끝으로 물러나 다시 레지던트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녀는 비척비척 물러나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그녀의 등을 토닥이는 작지만 억센 손길.
수간호사와 눈이 마주치는 유희연이 눈으로 말한다.
‘저 하기 싫어요. 일반 병동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미안. 내가 미안해.’
VIP 병동 간호사의 인사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담당 전문의.
울컥한 그녀는 혹여 울음이 터질까 입술을 깨물며 간호사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이윽고 아침 회진이 시작되었다.
“이거 아침부터 몸이 으슬으슬한 게 영양제나 하나 맞았으면 하는데 말이야.”
“아이고, 당연하죠. 그럴 때 즉효인 놈으로 오더해 놓겠습니다.”
“하하. 역시 김 선생은 말이 편해서 좋다니까.”
“하하하.”
고개를 숙이며 병동을 나선 담당 전문의는 여전히 웃음을 그린 얼굴로 레지던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들었지?”
“예.”
“내일은 병원장님 회진이니까 적당한 놈으로 투여해.”
“알겠습니다.”
“다음은 어디지?”
“VVIP 병실입니다.”
잠시 입을 다문 담당 전문의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흠. 밤사이 별일 없었다고 했지? 나랑 유 간만 들어갈 테니까 너흰 커피나 사 와. 아이스로 찐하게.”
“예!”
잠시 유희연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얼른 돌아섰고, 담당 전문의는 입술을 비틀며 발을 뗐다.
“가지.”
“네…….”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이 이런 심정일까.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담당 전문의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병실 안으로 들어가니 코 고는 소리가 그들을 반긴다. 소파에 앉아 졸고 있는 오택수.
“아, 선생님. 오셨어요?”
“아, 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머리칼에 물기가 가득한 고정숙은 씁쓸히 웃을 뿐이었고, 담당 전문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말씀드렸죠, 어머님? 이건 체력 싸움입니다. 어머님께서 건강하셔야 회장님도 힘내서 이겨 내실 수 있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자신이 건강해서 종혁이 깨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어미의 가슴은 찢어졌고, 그 모습에 혀를 찬 담당 전문의는 몸을 돌려 종혁에게 다가갔다.
“이쪽으로 와서 바이탈 체크해 줘요.”
“네.”
그녀를 옆에 두고 펜라이트를 꺼내 드는 담당 전문의.
종혁의 눈꺼풀을 열어 동공 반응을 체크한 그는 오택수를 깨우는 고정숙을 보며 손을 움직인다.
스으윽!
유희연의 엉덩이를 슬그머니 움켜쥐는 그의 손.
그에 유희연의 낯빛이 검게 죽는다.
이래서 둘이서 들어오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유희연은 이 손을 쳐 낼 수가 없다.
이 손을 쳐 낸 순간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국의 그 어떤 병원에서도 일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제발.’
누구라도 제발 자신을 구원해 줬으면.
오늘도 찾아든 고통과 절망에 가슴의 귀퉁이가 부서져 내린 그녀가 간절히 바라는 순간이었다.
“야. 그 손 치우지?”
쿠웅!
막대한 충격이 휩쓸며 병실 안의 시간이 멈춘다.
끼기긱 녹이 슨 기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목을 돌려 병상을 바라보는 그들.
눈을 뜨다 못해 상체를 일으킨 종혁이 담당 전문의를 죽일 듯 노려본다.
“손 치우라고, 새끼야.”
“……야, 이 개새끼야-!”
종혁은 눈물을 터트리며 안겨드는 오택수를 끌어안으며 씩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단 이 새끼 수갑부터 채워요. 성추행.”
“……오케이. 의사 선생님? 요리 컴.”
“뭐, 뭡니까?”
“에헤이. 반항하시면 다칩니다.”
종혁은 놀라는 유희연에게 싱긋 웃어 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 정신이 까맣게 물들어 있는 동안 지독히도, 간절히도 보고 싶었던 어머니.
그렇게 어머니 고정숙을 본 종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점점 울음이 번져 가는 경악한 얼굴에, 못 본 사이에 너무 말라 버린 어머니 모습에.
좋은 것만 발라도 모자랄 얼굴이 너무 망가져 버린 어머니의 모습에 숨통이 옥죄어진다.
온몸이 구겨지고 찢겼던 그때보다 더 지독한 고통이 심장을 찢는다.
“……엄마.”
“아, 아들……. 아들 맞아? 이, 이거 꿈 아니지?”
죄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볼을 꼬집는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휘청 몸이 흔들린 고정숙이 종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한 발, 또 한 발.
꿈일까, 신기루일까. 그렇다면 깨지 않게 해 달라고 빌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종혁에게 다가갔고, 종혁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결국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고정숙은 종혁의 볼을 쓸어내렸다.
“일어났네. 정말 일어났어…….”
“응. 일어났어요. 걱정 많이 했죠? 죄송해요.”
짜아악!
“악?! 어, 엄마?”
짝! 짝짝짝!
“아, 따가! 아파! 아프다고!”
“그걸 아는 놈이 이렇게 다쳐?! 누가 그렇게 다치래! 누가! 누가-! 흐윽! 누가……!”
입술을 깨문 종혁은 고정숙을 꼭 끌어안았다.
너무도 작고 왜소한 어머니.
이젠 이 품에서 놓지 않으리.
종혁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