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55화 (55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55화>

주위의 모든 시간이 멈춘다.

툭!

“어…… 아?”

차에 올라타기 위해 마지막 한 모금을 빨던 오택수의 담배가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저기에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는 차는 도대체 뭘까.

“종혁아-!”

“대장님!”

눈이 뒤집어진 그들이 차였던 것을 향해 뛰어갈 때였다.

끼이이익!

도로 위에 끔찍한 소음을 내며 정차하는 차량과 그 안에서 뛰어내리는 외국인, 아니 SVR과 CIA들.

“слезть ублюдок(내려, 이 개자식아)!”

“motherfucker!”

종혁의 호위 팀장인 이고르와 CIA 한국 지부의 지부장 린치는 다급히 종혁에게 달려갔다.

종잇장보다 더 처참하게 구겨져 안이 보이지 않는 차량.

“최! 괜찮습니까! 최-!”

그 밑으로 시뻘건 피가 웅덩이처럼 고인다.

“아악! 종혁아-!”

달려오다 넘어지는 고정숙의 모습에 눈을 질끈 감은 이고르는 몸을 돌렸다.

“최 꺼내고, 119에 연락해.”

“예!”

빠드드드득!

얼굴이 괴물보다 더 흉악하게 일그러진 이고르는 운전석에서 끌어 내려진 놈에게 다가갔다.

“쿨럭! 크크큭.”

그 독약을 삼킨 건지 죽은피를 토하는 육십대의 사내.

“최종혁. 회사의 복수다, 이 개 같은 자식아!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고도…….”

콰악!

“칵?!”

놈의 머리채를 낚아챈 이고르는 그의 머리를 아스팔트에 찍었다.

퍼억! 콰득! 콰지직!

“캬아아악!”

살갗이 벗겨지다 못해 흰 뼈가 드러나고 그 뼈마저 뭉개지는 놈.

이고르는 그의 숨이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에야 다시 머리채를 꺾었다.

“멍청한 놈들. 몸이라도 사렸더라면 일부라도 살았을 텐데…….”

하지만 이젠 그마저 글렀다.

“무…… 슨…….”

숨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온몸을 엄습하는 미지의 공포.

이고르는 눈이 흔들리는 그에게 달콤하게 속삭였다.

“너흰 괴물을 깨운 거다, 병신들아.”

종혁이라는 보물을 만나면서 잔혹함이 줄었던 괴물을.

소련이 패망한 이후 사람이 되고자 했던 괴물을.

이놈들은 그녀를 깨운 것이었다.

*   *   *

주한러시아 대사관의 상황관제센터.

나탈리아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현장을 무감정한 눈으로 응시한다.

뒤이어 피범벅이 된 채 구급차에 실리는 종혁이 영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나탈리아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지, 지부장님.”

“쉿.”

검지를 입에 가져간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나예요, 국장. 상황을 알고 있을 테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각하를 만나고 싶어.”

현 러시아 대통령인 메드베제프가 아니라, KGB의 옛 동료였던 그를.

-……그러지.

“고마워. 날 막지 않아 줘서.”

-아직 자살을 할 나이는 아니라서.

“끊을게.”

탁!

나탈리아는 관제센터의 요원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찾아.”

종혁을 감시했을 놈을.

아날로그건 디지털이건 해킹이건 숍 근처의 도로 교통 상황을 꿰고 있을 놈을.

“그리고 데려와.”

아직 잡히지 않은 놈들을.

안가에, 중계 지점에 숨어 있는 놈들을.

놈들의 가족들을. 그리고 가족의 일가친척, 친구 모두를.

놈들과 눈이 한 번이라도 마주친 모든 연놈들을.

“싹 다 찾아서 끌고 와.”

일단은 중국에 있는 놈들부터.

“예, 예!”

몸을 돌린 그녀는 취조실로 향했다.

또각또각!

싸늘한 복도를 울리는 구둣발 소리.

나탈리아는 맞은편에서 질질 끌려오는, 눈에 독기가 차 있는 제2기획실장에게 다가가 싱긋 웃었다.

“하! 내게서 아무런 말도…….”

촤악!

나탈리아의 날카로운 손톱이 제2기획실장의 눈알을 훑는다.

“크으으으읍……!”

나탈리아는 비명을 억지로 참아 내는 그의 입을 움켜쥐었다.

“지금까지는 그놈의 법 때문에 제대로 대접해 주지 못했지? 그 부분 사과할게.”

그동안은 몸에 큰 상처가 남지 않는 선에서 정보를 캐냈던 그녀.

사람이 되고자 했기에 다시는 선을 넘지 않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들이 선을 넘었으니 그녀는 기꺼이 옛날로 돌아가기로 했다. 영혼마저 얼어붙던 추울 겨울을 거닐던 그 시기로.

‘무슨?!’

평소와 다르다. 뭔가 아주 많이 다르다.

철렁 내려앉는 심장에 제2기획실장의 눈이 흔들리고, 나탈리아의 미소는 더 고혹적이 된다.

“마카르.”

“예, 지부장님.”

“소금 항아리 가져와.”

“지, 지부장님!”

나탈리아는 의아해하는 제2기획실장의 턱을 손톱으로 쓸어 올렸다.

“수분이 실시간으로 뺏긴다는 게 어떤 고통인지 아니?”

처음 몇 시간은 괜찮다. 작은 항아리에 몸이 구겨져 있기에 불편한 것만 빼면 괜찮다.

하지만 그게 6시간을 넘기는 순간부터 소금이 가득 들어찬 항아리에 갇힌 존재는 갈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8시간이 지나면 목이 타는 듯하고, 12시간이 지나면 칼날로 목을 긁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24시간이 지나면 피부가, 몸 전체가, 심지어 항문까지 애원을 한다.

제발 물을 달라고, 단 한 방울이라도 좋으니 물을 달라고.

찢기고, 갈라지고, 짓물러 썩어 가는 환상 속에서 애원하고 갈구하며 구원을 바라게 된다. 차라리 동료를 죽이겠다고 애원하게 된다.

“그런데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뭔지 아니? 그러면서도 잠을 잘 수 없다는 거란다. 그게 어떤 지옥인지 너희는 모를 거야.”

KGB의 냉철한 인형이었던 그녀를 짐승 이하로 만들었던 지옥.

얼굴로 쏘아지는 오줌이 달콤한 감로수처럼 느껴졌던 지옥.

차라리 손톱이 뽑히고 그 자리에 바늘을 꽂아 전기로 지지는 게 낫겠다 싶었던 지옥.

너무도 잔인하기에, 인간을 짐승 이하로 만들어 버리기에 정보기관들 사이에서도 금지된 수법.

“하지만 이건 고작 시작이란다.”

덜덜덜!

“너희는 앞으로 스스로 죽여 달라고 애원을 하게 될 거야. 차라리 죽여 달라고, 죽여 주면 감사하겠다고.”

없는 기억도, 잊어버린 기억도 모두 떠올리게 될 거다.

묻지 않아도 이쪽에서 원하는 게 아니어도 모든 걸 말하게 될 거다.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고작 4일 만에 개처럼 멍멍 짖었던 것처럼.

‘너흰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하아아. 부디 내 기대를 충족시켜 줘, 친구들.”

싸늘하고도 삭막한 웃음이 깔깔깔 복도를 울린다.

그건 미국의 CIA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   *

종혁이 본사를 치며 본사 건물이 폭파된 그날 새벽의 하이난.

“조희구, 너-!”

“몸조심해. 내 생각하고.”

“네놈-!”

“얼른 타!”

“크윽!”

공안에 인계된 중국 동부 지부장 최달호와 최성현이 차례차례 공안 차량에 태워지는 직원들을 보며 입술을 깨문다.

이윽고 군부대를 떠나는 그들.

차 뒷좌석, 최성현과 위험한 눈빛을 나눈 최달호는 조희구가 쏜 총에 꿰뚫린 상처를 붙잡는다.

“크으윽! 이, 일단 병원으로 갑시다! 나 이러다 죽어요!”

“이봐, 안 들려요?! 우리 아버지가 총에 맞았다고!”

“쯧.”

혀를 찬 보조석에 앉은 장년인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본다.

“박 상무가 그러더군. 사정을 이해하니까 치료부터 받으라고.”

움찔!

“바, 박 상무님이 말입니까?”

“그래, 박 상무가.”

경악했던 최달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들의 고개를 푹 누르며 이내 곧 입가에 미소를 그렸고, 콧방귀를 뀐 장년인은 그들을 병원으로 안내했다.

이윽고 병원에 도착한 그들.

이미 군부대에서 봉합을 마쳤기에 곧바로 병실에 입원한 최달호는 병실에 모인 직원들이 보내는 눈빛에 한숨을 내쉬었다.

“조희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지부장님?”

최달호는 그 질문에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볼륨을 끝까지 올려 시끄러워진 병실.

최달호의 눈빛이 낮아진다.

“본사에서 처리조를 파견하겠지.”

어쩌면 이미 파견했을지도 모른다.

“지부장님!”

“그만.”

조희구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수 있다. 엉덩이를 뭉갰다가는 조희구를 데려간 탕지얀이 총을 들고 쫓아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결론지었으니까 칭다오로 돌아가.”

“빌어먹을!”

“제길!”

원수가 코앞에 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그들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그중 한 사십대 사내가 입을 연다.

“지부 폐쇄를 하지 않는 겁니까?”

조희구가 자신들의 지부를 알고 있다. 수틀리면 쳐들어올 수도 있었다.

아니, 위험 요소를 남겨 두지 않는 것이 그들 조직의 철칙이었다.

최달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해야지. 하지만 일단 본사에 문의해 보고한다. 곧 상황을 보고하면서 문의해 볼 거야.”

“아니…… 후. 알겠습니다.”

상사의 명령은 절대적. 이상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해산. 나도 곧 따라갈 테니까 먼저 가서 대기하고 있어. 그리고 성현아.”

“예? 예, 아버지.”

웬만해선 부르지 않는 본명에 놀랐던 최성현이 또 뭘 시키려는 건가 하며 미간을 좁힌다.

“넌 집에 가서 옷 좀 챙겨 와. 진열장에 로얄 샬루트 52년산 있으니까 그것도 가져오고. 아무래도 이틀은 입원해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최성현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하아, 또 술입니까? 이틀 계실 거면 그냥 참으시죠?”

“아들. 반항이야?”

오싹!

“죄송합니다.”

“나가. 너희들도. 조희구가 일단 살려 두려는 것 같지만,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까 바로 빠져나가.”

“예!”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자 최달호는 아들을 다시 불렀다.

“성현아.”

“또 왜요?”

“……상황 정리되면 결혼해라. 너 닮은, 아니 새아가 닮은 손자도 낳고.”

“총 좀 맞았다고 감성적이 됐습니까? 왜 평소 안 하던 말을 하세요?”

“한 번에 예 하면 어디 덧나냐?”

“……봐서요!”

혀를 찬 최성현은 병실 문을 거칠게 닫았고, 최달호는 몸을 일으켜 창가에 섰다.

결혼하라는 말이 짜증 났는지 쿵쿵거리며 멀어지는 아들.

동부 지부와 서부 지부 직원들과 함께 멀어지는 아들을 가만히 응시하던 최달호는 노크 소리에 혀를 찼다.

“들어와요.”

스르륵 문이 열리며 목발을 짚은 서부 지부장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피울래?”

들어오자마자 담배를 권하는 서부 지부장.

한숨을 내쉰 최달호는 그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그쪽은 몇 명입니까?”

“나는 세 명. 최 지부장은?”

“한 명.”

“그 지랄 맞은 성격 좀 고쳐라, 진짜.”

“남이사. 내버려 두세요.”

“하여튼.”

혀를 찬 서부 지부장은 이내 입을 다문 채 담배를 물었고, 병실엔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시침이 9시를 가리키자 최달호는 핸드폰을 들었다.

“예, 상무님. 본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움찔!

몸을 굳혔다가 씁쓸히 웃는 서부 지부장.

제2기획실장이 아니라 박 상무가 연락을 했다고 했다. 본사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 박 상무가 잠시 입을 다문다.

-……크게 타격을 입었지.

최달호는 이를 악물었다.

“죄송합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조희구가 배신을 했습니다.”

최달호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토대로 상황을 설명했고, 박 상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조희구는 이쪽에서 처리할 테니까 쉬면서 몸 잘 추슬러. 징계는 상황이 정리되면 생각해 보지. 지부는 내일까지 폐쇄하고. 서부 지부장에게도 그렇게 전해.

“예. 그럼 직원들은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안가로 흩어 놓겠습니다.”

-알았어. 수고했어.

“상무님도 고생하셨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최달호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후우. 아무래도 자살 공문이 내려올 것 같습니다.”

여태껏 그 어떤 외부인도 찾지 못한 본사가 타격을 입었는데, 그 원인을 제공한 자신들을 살려 둘까.

쿵!

거대한 충격이 병실을 휩쓸었지만, 서부 지부장은 놀라지 않았다.

방금 전 몇 명이냐 물었던 최달호의 질문에 답한 세 명이란 말의 뜻이 바로 이 자살 공문에서 살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은 피할 수 없을지언정 자식처럼 생각했던 이들만큼은 살리고자 했다.

“결국 최 지부장은 은퇴하겠다는 거군.”

“제가 죽어야 성현이가 살 테니까요.”

“……하긴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지.”

부모와 자식의 사랑은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처음 본 순간 서로를 사랑해 버리기 때문이다.

“지부장님은 왜 은퇴하시려는 겁니까?”

“질렸어.”

모든 게 질렸다.

“우울증인가 봐.”

“그렇군요.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술 좋지. 가자고.”

앞으로 그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길어야 3일.

저승에 가서도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마셔야 했다.

*   *   *

[성현아, 네가 이걸 읽고 있을 때쯤이면 난…….]

정말 힘들게 구한 거라며 손도 못 대게 했던 로얄 샬루트 52년산. 캐리어에 담으려 진열장에서 꺼낸 순간 너무 가볍다는 느낌이 들어 열어 보니, 그 안에는 몇 개의 여권과 통장, 그리고 이 편지가 들어 있었다.

[살아라. 내 몫까지 살아.]

최성현은 이를 악물며 집을 나섰다.

천천히. 그 누구에게도 의심을 받지 않도록.

공항까지 간 그는 하이난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성현아. 못난 아비라서 미안했고, 네가 내 아들이라서 고마웠다.]

지이잉!

“빌어먹을. 빌어먹을.”

출국 게이트가 등 뒤에서 닫히자 결국 최성현의 눈앞이 흐려진다.

그런 그의 눈앞으로 아버지와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이 스쳐 지나간다.

-야, 너 버려진 거면 이 아저씨랑 같이 갈래? 밥은 줄게.

처음부터 멋졌던 아버지.

언제나 잘났던 아버지.

“개 같은……. 왜 끝까지 잘난 척인데…….”

왜. 왜. 아들이라면서, 가족이라면서 왜 잘난 모습만 보였던 걸까.

그런 아버지가 죽는다.

삶을 준 아버지가 자신을 살리려 죽는다.

자신 때문에 죽는 거다.

빠드드드득!

누굴 향한지 모를 분노의 불을 두 눈에 지핀 그는 그렇게 중국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종혁이 사고를 당한 그날 SVR과 CIA가 중국 지부들을 급습했지만 그들이 발견한 건 시체들뿐이었다.

*   *   *

드르르르르!

“비키세요, 비켜요!”

사람일까, 방금 도축한 고깃덩어리일까,

피투성이가 된 종혁을 태운 침대가 병원 복도를 내달린다.

종혁의 배 위에 앉아 가슴을 연신 누르는 의사와 병상을 밀며 간절히 소리치는 오택수와 최재수.

“야! 최종혁! 정신 차려, 이 새끼야!”

“대장님! 정신 차리라고요, 제발!”

너 할 일 많잖아, 새꺄! 경찰청장 되고 싶다며-!”

“형님! 제 목소리 들리십네까?! 들리면 반응 좀 해 보시라요!”

실낱처럼 떠진 눈꺼풀 사이, 초점이 없는 눈이 그들의 심장을 갉아먹는다.

어미의 내장과 영혼을 갉아먹는다.

하느님, 부디 제 목숨을 가져가셔도 되니 제 아들을 살려 주세요.

고정숙은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그렇게 빌고 빌었다.

“더 이상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결국 종혁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그들이 수술실 앞에 남겨진다.

털썩 주저앉는 그들의 얼굴에서 눈물이 죽죽 흘러내린다.

“종혁이는 살 겁니다. 절대 저렇게 죽을 놈이 아니에요. 종혁이가 어머님을 얼마나 위하는지 아시잖아요. 절대 어머님을 먼저 두고 갈 놈이 아닙니다.”

“……알아요.”

어느 순간 부쩍 커 버리더니 커다란 우산이 되어 버린 아들.

그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언제나 제 어미부터 위했던 아들.

그럼에도 자신은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었다. 해 준 거라곤 그저 따뜻한 밥 한 끼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멍청한 어미.

왜 더 말리지 않았을까. 왜 그만두지 않게 했을까.

네가 그러고도 엄마냐. 너 따위가 정말 엄마냐.

‘아니면 남편도 잡아먹은 년이 너무 과분한 행복을 바랐기에 데려가시는 건가요? 그럼 필요 없습니다. 다 가져가세요. 다 가져가도 되니……!’

어두운 감정이 고정숙의 머릿속을 파먹는다.

“어머님, 정신 차리셔야 해요! 그래야 종혁이가 힘을 냅니다!”

고정숙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오택수를 본다.

파랗게 질려 있음에도 애써 울음을 참는 오택수.

“……고마워요, 오 형사님.”

정말 가족처럼 슬퍼하고 걱정하는 오택수 덕분에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나예요, 사모님. 제 아들이 크게 다쳤어요. 그래서 그런데 실력 있는 의사들을 데려오려면 얼마나 들까요? 10억? 100억?”

살릴 거다. 가진 돈을 모두 쓰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을 살릴 거다.

그것이 부족하다면 이 쓸모없는 오장육부를 모두 팔아서라도 살려 낼 거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그동안 쌓은 모든 인맥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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