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53화 (553/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53화>

해가 뜨려면 아직 먼 새벽.

종혁 소유의 한 건물에 50여 대의 모니터가 4분할이 된 CCTV 화면들을 빠르게 재생한다.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점선의 사각형들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영상들.

쫓아야 될 인원이 총 11명. 검은색 정장을 입은 십여 명의 남녀들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진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에, CIA와 SVR 요원들과 함께 선 국정원 차장이 그 모습을 차갑게 노려본다.

“이런 게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차장님.”

“아, 고마워.”

부하 직원이 건넨 커피를 홀짝이던 국정원 차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대단하지.”

안면인식(Facial identification)과 차량번호인식(Automatic Vehicle Identification) 프로그램.

SF에서나 봐 왔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있음에 국정원 차장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뿐입니까? 이 컴퓨터들도 정말 끝장납니다.”

“대당 4억이 넘는다더라.”

“힉! 대, 대체 이 예산은 어떻게 타 내신 겁니까?”

국정원 차장은 씁쓸히 웃었다.

‘국정원 거 아냐.’

이 땅에, 이 나라에 거대한 벌레가 있음을 국정원이 인식한 이후 은밀히 종혁의 지원이 있었다.

이 나라의 안보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벗어날 수 없는 감시망을 깔아라.

종혁은 그것을 조건으로 물품이나 자금을 계속해서 지원해 주었고, 국정원 차장은 그걸로 대한민국의 감시망을 보다 더 세밀하게 구성할 수 있었다.

지금은 수도권에만 완성됐을 뿐이지만, 작업은 계속 진행되어 결국 대한민국 전역까지 시스템이 구축될 터였다.

‘그리고 시험을 한 것이기도 하겠지.’

그동안 종혁에 대해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그는 무언가를 진행할 때 그 안에 여러 가지 복안을 숨겨 두곤 했다.

그에 국정원 차장은 종혁이 국정원을 지원하는 이유가 나라의 안보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는 말했으나, 그 안에는 국정원을 시험하고자 하는 의도도 감추어져 있었으리라 여겼다.

돈을 똑바로 쓰는지, 국정원 차장이 본인이 지금 쫓는 이들의 하수인은 아닌지 말이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시험 중일 거다. 그러니 CIA와 SVR의 요원들이 옆에 서 있는 것일 터.

허튼수작을 부리면 이 근처에 대기하고 있을 두 나라의 살인기계들이 자신들의 목줄을 끊어 놓을 거다.

‘역시 최 경정은 국정원 요원이 됐어야 했어.’

그랬다면 아마 국정원은 CIA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보기관이 됐을지도 모른다.

삐!

“한 명 찾았습니다!”

여권에 적힌 이름 김수한.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의 어느 주택에서 출발하는 그의 모습이 모니터에 투영된다.

국정원 차장은 핸드폰을 들었다.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 311 다시 1번지, 체크해.”

-알겠습니다.

이 나라에 벌레가 있다는 걸 인식한 이후 정말 추리고 추린 믿을 만한 요원들.

언제든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이들이고, 이 요원들이 배신을 한다면 자신의 목숨은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었다.

삐!

“여기도 찾았습니다!”

삐! 삐삐삐!

오십여 대의 모니터가 연이어 울리기 시작했다.

“차, 차장님! 여기 좀 봐 주십시오! 뭔가 찾은 것 같습니다!”

고개를 돌린 국정원 차장은 핸드폰을 들었다.

“의정부야, 최 대장.”

*   *   *

-딱 한 명, 딱 한 명이 갑자기 증발했어. 사각은 없는데.

덮어씌워진 거다.

놈들의 둥지를 드디어 찾은 것 같다.

‘진짜 찾을 줄은 몰랐는데.’

이번의 사기극, 아니 작전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본사까지 치고 들어가 다 쓸어버려야겠다고 다짐은 했지만, 한편으로는 회의적이었던 종혁.

그만큼 놈들은 치밀했고, 은밀했다.

다만 종혁 자신이 좀 더 진심이었고, 운이 좋았을 뿐이다.

지금도 순철의 안면인식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찾지 못했을 상황. 도박은 결국 성공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심장이 떨린다.

-우리도 곧 출발하지.

서울 외곽에 세워진 승합차 옆, 전화를 끊은 종혁은 검은색 방탄조끼에 헬멧, 나이트비전 소총 등으로 무장을 한 CIA 요원들 바라봤다. 뒤에 세워진 트레일러트럭에 서 있는 SVR요원들도 바라봤다.

곧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가로등 불빛만이 덩그러니 비추는 인적 없는 도로에서 낄낄거리며 웃는 그들.

참 고마운 이들.

종혁은 똑같은 복장을 한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최재수와 약간 긴장한 오택수를 훑으며 마지막으로 자신을 봤다.

‘오늘 여기에 피가 얼마나 묻을까.’

앞으로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을까 하는 허튼 생각이 든다.

그러나 꼭 해야 될 일이다.

내가 지독히도 사랑하는 이 나라를 위해서라도, 또 전생부터 수십 년간 이어진 악연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저녁마다 오늘은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하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최, 지부장님께서 2시간 뒤면 도착하신답니다. 그러니 당신은…….”

“출발하죠. 의정부입니다.”

“……옛 썰.”

CIA 요원은 뒤에 있는 요원들을 향해 팔을 크게 휘둘렀고, 승합차와 트레일러트럭은 거친 배기음을 내며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작전의 시작이 가까워지자 지독한 침묵이 내려앉은 승합차 안.

차창 밖에서 깜빡이는 불빛만이 시끄럽게 수다를 떤다.

점점 끝이 가까워지는데 도리어 차분해지는 심장.

“야. 세라랑 철이에겐 말하지 않아도 되겠냐?”

“……이런 건 끝까지 모르는 게 낫죠.”

“그렇긴 하지. 야, 걱정 마. 안 죽어.”

“누, 누가 겁먹은 줄 알아요?!”

“그럼 됐다. 너 이따가 내 다리에 총 쏘면 죽는다.”

“이런 씨. 누굴 바보로 아나.”

“아, 그리고 내가 아는 아가씨가 너 사진 보더니 소개팅 시켜 달래.”

“헉?!”

최재수의 얼굴에 드디어 생기가 돌자 키득키득 웃은 오택수는 다시 종혁을 봤다.

“다 끝나면 어떡할 거냐?”

“삶아야죠.”

조희구도 김경후도 모두.

놈들 회사를 쓸어버리기 위해 참고 있었을 뿐, 쓸모를 다하면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해야 됐다.

회귀 전 종혁 자신과 어머니 고정숙을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최성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 지옥을 보여 줄 거다.

합법적인 선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복수를.

어쩌면 선을 약간 넘는 복수도.

“누가 그거 말하냐, 새꺄?”

오택수의 눈에 걱정이 서린다.

왜인지 모르지만, 지금 잡으러 가는 놈들에게 한없이 진심인 종혁.

일이 모두 끝났을 때 번아웃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세차게 달리다 넘어지면 충격이 큰 것처럼.

“얼씨구? 지금 돈 많은 놈 걱정합니까? 걱정 마십쇼. 전 경찰청장까지 다 해 먹고 그만둘 거니까.”

“……그럼 나 경무인사기획관 시켜 주냐? 내가 진짜 유감 있는 새끼들이 많거든.”

“전 홍보담당관이요!”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고. 너 연예인들 잘 만날 것 같아서 그러지? 그리고 순경으로 들어온 놈이 총경이 되겠다고? 대가리에 총 맞았냐? 뭔 되지도 않는 망상을 하고 지랄이야.”

“왜, 왜요! 대장님 옆에 딱 붙어 있으면 총경, 아니 그 위도 해 먹을 수 있겠구만!”

“큭큭. 봐서요.”

이들을 만난 것도 참 행운이었다.

‘그러니 오늘 죽지 말고 앞으로 계속 함께 갑시다.’

담배를 문 종혁은 오택수와 최재수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어머니 고정숙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렇게 달리고 달린 차는 의정부 외곽 한 건물 보이는 도로에 멈춰 섰다.

새벽이라서 그런지 늦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차를 대신하는 도로.

‘아직 퇴근을 안 하셨네.’

어둠에 숨어 열감지 카메라를 내린 종혁은 한 층에만 불이 들어와 있는 6층짜리 건물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결국 특정해 내고 만 놈들의 본사.

‘1978년…….’

조희구가 말하길 그때가 회사의 시작이라고 했다.

혹여 이름을 가지게 되면 교만해질까 스스로를 그저 회사라 칭하며 시작된 놈들.

‘격동의 시기였지.’

1970년대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격동.

대한민국이 가장 격렬하게 경제 성장을 했던 시기였다.

‘권 이사장님과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다 보면 뭔가 답이 나오겠지. 아니, 그럴 필요 있을까.’

어차피 오늘 해가 뜨기 전 그 어르신이란 놈의 얼굴도 보게 될 거다.

-치익! 최 대장, 어디지? 아, 보이는군.

국정원 차장이 드디어 도착한 것 같다.

종혁은 손목을 입에 가져갔다.

“세 분 중 어느 분께서 오더를 맡으시겠습니까?”

-내가 맡겠어요. 차장, 이해해 줘요.

나탈리아. 아직까지도 진짜 성을, 예전에 버려야 했던 진짜 이름을 듣지 못한 비밀의 스파이.

회귀라는 반칙으로 만든 거짓된 가치보다 최종혁이라는 인간을 더 사랑해 준 여자.

왜인지 갑자기 소영과 이리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모두 마무리가 되면 이리나에게도 물어봐야겠네.’

가족과 함께 간 스키장에서 인연을 맺은 이리나 샤크. 그때부터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못한 게 있었다.

-……이번만입니다.

-난 아직 비행기 안이니 기꺼이 양보하지, 레이디.

-지금부터 콜 사인을 정하겠어요. SVR, 알파 1팀, 2팀.

-수신.

-CIA 브라보 1팀, 2팀.

-라져.

-최, 오, 최…… 찰리.

“수신.”

-알파 1팀과 2팀 11시 방향으로.

나탈리아는 빠르게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고, 이내 곧 작전이 시작됐다.

-브라보 2팀 이동. 그리고 찰리, 10미터 지점까지 이동. 조심해요, 최.

“수신.”

애써 웃은 종혁은 찬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스으읍. 후우우. 갑시다.”

그들은 빠르게, 그리고 소리 없이 어둠 속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아주 조금만.

종혁은 날뛰려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점점 건물이 가까워지자 종혁의 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그리고 표정도 굳어 간다.

-여기는 알파 1팀!

-브라보 2팀, 이상 현상 발견!

같은 것을 목격한 듯 시끄러운 무전.

종혁도 손목을 손에 가져갔다.

“여기는 찰리. 로비에서 다수 발견.”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불이 훤히 켜진 1층 로비에 모여 있다. 저마다 칼이나 권총을 들고 있는 사람들.

그때 한 사람이 건물 밖으로 나온다.

“최종혁-! 거기 있는 거 다 안다! 나와, 새끼야아-!”

“…….”

-최!

“야, 함정이야!”

“함정은 무슨.”

-최! 최!

“무전기 안 끄니까 너무 내 이름 부르지 마요. 설레니까.”

종혁은 풀썩 웃으며 빽빽 소리를 지르는 중년인을 향해 나아갔다.

“최종혀억……!”

대체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씩씩거리는 중년인, 제2기획실장.

그 모습이 너무 가증스럽고 짜증이 나 이성의 끈이 끊기려 한다.

찰칵! 치이익!

“정보가 샜네.”

아무래도 국정원에서 샌 것 같다. 아니면 달리 샐 곳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도망을 안 치고 남아 계시네?”

조희구에게 듣기로 본사 직원의 숫자가 약 사십여 명. 전국에 퍼져 있는 지원과 처리조를 제외하면 그 정도 숫자라고 했다.

그중 절반이 여기에 있는 거다.

“나머진 퇴근하셨나?”

“대체 어디서부터였지? 네가 부산에서 조희구를 만났을 때부터 우리 회사란 걸 눈치챈 거지? 바이칼호에서도 그랬던 거지? 그치?”

반쯤 미친 것 같은 얼굴.

“중국 새끼한테 뺏긴 조희구가 여기서 왜 나와?”

너무도 간절해 보였지만, 종혁은 그 기대에 부흥하기가 싫었다.

“맞잖아, 이 개자식아!”

종혁은 귀를 후볐다.

“중국에서 국정원으로 뭔 요청이 들어왔는데, 국정원에 있는 지인이 그러더라고. 아무래도 너희인 것 같다고. 너희를 찾은 것 같다고. 그래서 온 거야. 그런데 진짜 너희네?”

“하! 끝까지 말 안 하시겠다?”

“근데 뭔 자신감으로 남아 있는 거냐? 너희 못 살아. 여기서 못 도망쳐.”

“그래! 안다, 알아! 네 그 좆같은 프로그램 때문에 어차피 도망쳐 봐야 다 잡히겠지!”

그래도 20명만 있는 건 나머지는 도망치라는 거다. 조금이라도 더 살라고.

“어우, 눈물겹네. 서로 의리가 아주 좋아. ……진짜 염병하게.”

빠드드드득!

대체 뭐가 그리 당당하기에 저딴 말을 지껄이는 걸까.

뭐가 그리 당당하기에 저렇게 억울한 걸까.

종혁의 눈앞이 흐려진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솟구친 살의가 놈을 찢어발기라 외친다.

“개자식! 네놈 때문에! 네놈 때문에-!”

모든 게 무너졌다.

꿈도, 희망도, 일상도 모두.

“죽어, 이 새끼야-!”

두 개의 단검을 꺼내는 제2기획실장은 눈을 뒤집으며 달려들었고, 종혁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뱉었다.

“그래, 이제 마무리 짓자.”

길고 길었던 악연의 종지부를.

종혁은 땅을 박차며 손을 빼 들었다.

그리고…….

타아아앙!

침묵이 내려앉은 어둔 밤을 깨트리는 총성.

“……으아아아악! 최종혁-!”

“좆까, 새꺄.”

집에서 어머니가 기다리시는데 다칠 수 있을까.

종혁은 무릎을 붙잡고 구르는 제2기획실장을 향해 중지를 치켜세웠다.

“저 새끼 죽여!”

“최종혁-!”

-진입! 진입!

탕! 타다당!

종혁도 총을 들며, 내일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소탕 작전이 시작됐다.

드디어 길었던 극이 끝을 맺었다.

꽈과과과광!

화려한 폭발과 함께 말이다.

*   *   *

활활활!

종혁은 불꽃에 집어삼켜진 건물을 보며 혀를 찼다.

“그래. 너희답다, 너희다워.”

두 번째 봐서일까. 이젠 그리 놀랍지가 않게 느껴진다.

“그래도 불이 꺼진 후 뒤지다 보면 건질 게 있겠지.”

위이이이잉!

저 멀리서 들리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에 몸을 돌린 종혁은 근처에 세워둔 트레일러트럭으로 향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20명.

종혁은 제2기획실장을 비롯해 사지가 묶인 채 재갈마저 물린 그들을 가만히 훑어봤다.

“어르신이 누구냐?”

“…….”

처절한 원한에 물든 채 죽일 듯 노려보기만 하는 놈들.

몇 명은 자결하고, 또 몇 명은 폭발에 휘말려 타 버린 단백질 덩어리가 되었다.

그 끔찍한 냄새 속에서도 그들은 오직 종혁을 향한 적개심만 불태운다.

종혁의 입술이 비틀린다.

“그래, 천천히 이야기하자.”

어차피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어르신이라는 놈이 도망을 친다고 해도 지구 안에만 있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손발이 다 잘린 그가 뭘 할 수 있을까.

또 몸통이 사라진 손과 발들이 뭘 할 수 있을까.

트레일러의 문을 닫은 종혁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한숨을 뱉었다.

-수고했어요, 최.

-주먹을 쓰지 않은 걸 칭찬하죠.

“아오, 오늘 한바탕 뒤집어 봤을 건데!”

“뒤집어? 뭘? 내 복장을? 야! 최 대장! 뭐하냐! 한잔 빨아야지!”

종혁은 귓가를 간질이는 따뜻한 음성들에 미소를 지었다.

‘돌아가자.’

걱정하고 계실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를 꽉 안은 채 잠들고 싶었다.

“춥네.”

어느덧 12월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한편 그 시각, 의정부 모처의 한 건물 안.

희미한 전등 아래 모인 5명의 사람들이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담배 타들어 가는 소리만 울리는 지독한 침묵.

동이 트고, 사람들이 거리로 나올 때 그들의 앞에 놓인 핸드폰 벨소리가 침묵을 깬다.

“……그래. 알았어. 그래. 살아서 보지.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미안하군. 그래.”

통화를 종료한 오십대 후반의 기골이 장대한 장년인은 한숨을 뱉었다.

“박 상무.”

“중국 지부장들 풀려났다고 합니다, 사장님.”

일본에 있던 최종혁은 대역이었다는 말을 전한 지부장들. 아마 호텔에서 바꿔치기한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 본다.

“최종혁이 처음부터 이 판을 설계했을 가능성은?”

“10퍼센트 미만입니다.”

사장은 담배를 껐다.

즉, 몰랐다고 한들 그들의 회사를 이용한 최종혁.

국정원의 연락이 아니었다면 회사가 뿌리 뽑혔을 상황이니 이젠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었다.

“최종혁…… 이만 정리하지. 박 상무가 맡아.”

“예.”

제2기획실을 아래로 뒀던 박 상무.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손실이 얼마나 발생했지?”

“정보를 워낙 늦게 입수했기에 자료가…….”

“1실장, 2실장, 5실장을 넘겼기에…….”

“일단 실적이 좋지 않은 지부도 두 개를 내놓기로 한…….”

CIA와 SVR에 국정원까지 참여한 대규모 작전이다.

혈육을 베는 고통보다 더 힘든 아픔을 참아 내며 잘라 낸 몸통의 일부분.

팔과 다리마저 많이 잘라져 숨이 헐떡거리지만, 그래도 추슬러야 했다. 그래야 회사가 살 테니 말이다.

그들의 임원 회의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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