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50화>
속은 거다.
모두 눈앞의 종혁에게 속고 있는 거다.
종혁은 처음부터 조희구 자신이 회사 소속이란 걸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놈이 이 모든 판을 짠 거였다니!’
“푸하핫! 아아, 진짜 재밌네. 이봐, 최종혁. 너 회사가…….”
“걱정 마. 내 대역은 지금 일본에 있거든.”
움찔!
표정이 굳는 조희구의 목을 잡은 손을 푼 종혁은 의자를 끌고 와 그의 앞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하나 더 말해 줘? 네가 사기 친 9조 원 있지? 그중 반 이상이 내 돈이야.”
“헛소리! 네놈은……!”
“SVR과 CIA가 왜 날 그렇게 보호하려 드는지, 또 돕는지 생각 안 해 봤어?”
“그, 그거야 네가…….”
“훈련법? 고작 그딴 걸로 두 나라가 날 이렇게까지 돕는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특히나 이미 훈련법을 받아낸 이후에도 이렇게까지 그를 돕는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에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조희구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스쳐 지나간다.
“……권&박 홀딩스?”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맞아. 그거 내 거야.”
오싹!
“지금은 CIA의 협조하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털어먹고 있는 중이고.”
“하! 권&박 홀딩스의 자산은…….”
“야. 내가 17살에 IMF를 털어먹었어. 그런 내가 권력가들의 습성을 예상 못했을까?”
“…….”
“그리고 그런 내가…… 이번 미국의 경제 붕괴를 비롯해 지난 10년간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경제 위기들 속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까?”
괴물이다.
눈앞에 있는 놈은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괴물이었다.
‘그래! 이래야 말이 돼! 미국과 러시아는 이놈의 괴물 같은 능력과 돈이 탐나서 보호하고 있는 거였다고! 이런 미친……!’
이제야 분명 보고 있었으면서도 보이지 않았던 진짜 실체가 드러나자 조희구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다.
“……대체 왜 경찰을 하는 거지?”
“너 같은 새끼들이 싫어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놈의 돈으로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너 같은 새끼들이 싫어서. 그래서 돈을 버는 거야. 너희 같은 새끼들을 잡으려면 나도 돈이 많아야 하니까.”
“미쳤군……. 넌 미쳤어.”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자, 그럼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고. 앞으로 넌 어떻게 될까?”
겉으로 드러나기론 조희구가 선유컴퍼니를 찾았기에 이 사단이 났다. 그들 회사에서 경멸하는 실수를 저지른 거다. 실수는 곧 은퇴.
“회사는 네가 감춰 둔 돈을 전부, 아니 반만 회수해도 널 묻으려 하겠지.”
“…….”
“반론 못하겠지? 뭐, 너도 네 부하가 같은 상황이라면 똑같이 했을 테니까. 그런데 그 전에…….”
찰칵! 치이익!
종혁은 나른하게 웃으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내 정체에 대해 알게 된 널 내가 가만 놔둘까?”
“난 네놈의 성정을 알아! 네놈은 결코 사람을 죽일 만한 놈이 아니야!”
“그래. 사람은 죽이지 않지, 사람은……. 그런데 너희가 사람은 아니잖아.”
감정이 단 한 점도 서리지 않은 눈에 조희구가 뒤로 물러선다.
“그거 알아? 너희의 강원도 연수원, 거기에 나도 있었어. 그때 SVR로 끌려간 애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거기서 몇 명이 죽었을까.”
‘이 자식 진심이다! 진심으로 우릴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거야!’
“네가 굳이 회사와의 의리를 지키겠다고 하면 나도 두 가지 선택권을 줄 수 있어.”
CIA와 SVR.
“어디로 끌려갈래?”
“그렇게까지 일을 벌이면 네가 회사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도 모두 드러날 텐데? 그렇게 되면 너뿐만 아니라 네 가족도……!”
콰악!
“끄으윽!”
조희구의 목을 뜯어 버릴 듯 움켜쥔 종혁이 이를 드러낸다.
“지금 죽을래?”
순간 전신을 난자하는 끔찍한 살의와 광기.
조희구는 그 아득한 악의에 새장에 갇힌 새처럼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그조차도 견딜 수 없는 악의였다.
조희구가 시선을 피하자 싱긋 웃은 종혁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방금 말했잖아. 나 아직 일본에 있다니까?”
종혁이 아직 일본에 있다고 생각하는 회사는, 이번 일이 종혁에 의한 것임을 절대 눈치채지 못할 터였다.
“미친놈…….”
“미쳐야지. 너희들을 잡으려면 미쳐야지.”
“…….”
조희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래도 저래도 죽을 길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면초가였다.
“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지?”
종혁은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너희 회사가 외교부를 움직였더라. 그런데 그거 알아? 중국 애들, 엄청 욕심 많다?”
“그런 거군. 그런 거였어. 하하! 이 미친 새끼!”
“이래서 대가리 똑똑한 놈은 편하다니까.”
종혁은 씩 웃었고, 그 순간 조희구에게 살길이 보였다.
“……너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지?”
“아니? 원래는 그냥 널 순순히 넘기고 교도소에서 네게 접근하는 놈들을 더듬어 올라가려고 했어.”
어떻게든 조희구가 감춰 둔 돈을 되찾기 위해 접근할 것이 분명했다. 설령 조희구는 그냥 포기하더라도 9조 원은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중엔 본사로 안내할 놈도 있겠지. 그러면서 작성될 살생부는 덤이고.”
조희구는 그 말에 아연실색했다. 종혁의 손바닥 위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외교부를 움직인 건 덫일 거야. 내 충성과 중국에 깔아 놓은 하수인들의 욕심을 확인하기 위한 함정.”
“너희 진짜 잘도 그런 곳에 충성하는구나.”
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외교부를 움직인 것에 대체 몇 개의 수가 숨어 있단 말인가.
“그래서 대답은?”
“얼마나 줄 수 있지?”
종혁은 찢어지려는 입을 겨우 다스렸다.
“많이 못 주지. 말했잖아. 너 같은 새끼들이 싫다고. 굶어 죽지 않게는 해 줄게.”
조희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이냐, 억압된 궁핍한 자유냐.
“난…….”
말을 잠시 멈춘 조희구는 한숨을 내뱉었다.
“본사 위치에 대해 몰라.”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닌데.”
“일정 주기마다 본사의 위치가 바뀌는 탓에 어쩔 수 없어. 본사 직원들 말고는 아무도 본사 위치를 모른다고.”
몰랐던 정보다.
종혁의 눈이 빛났다.
“그런데?”
“대신 본사로 향할 방법은 알지.”
“누구야?”
“동부 지부의 최 지부장. 그놈을 쳐. 나랑 최 지부장이 사라지면 무조건 본사가 접근할 거야.”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말이다.
“지부장이 되려면 무조건 본사를 거쳐야 하거든.”
즉, 본사가 여태껏 진행한 수많은 프로젝트와 본사 직원들의 얼굴을 아는 게 바로 지부장이란 소리다.
종혁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래서 내부자가 변절하면 무서운 거다.
김경후보다 더 흉악한 칼이 쥐어졌다.
‘최 지부장. 최 지부장이라…….’
왕유춘, 아니 최성현을 두고 아들이라 외쳤던 지부장. 하늘이 이 악연을 이용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종혁은 들끓기 시작한 심장을 애써 가라앉혔다. 지금부터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종혁은 사납게 웃었다.
“그래서…….”
“음?”
“어르신이 누구야?”
쾅!
김경후가 말하길 지부장 정도면 알 거라고 한 어르신.
이놈들의 대가리. 진정한 배후.
뒤통수가 폭발하는 듯한 충격에 입을 떡 벌렸던 조희구는 이를 악물었다.
“……몰라.”
“실망이네. 잘 가라고, 조희구…… 아니, 이름 모를 개새끼 씨.”
“저, 정말이야! 나도 딱 한 번밖에 본 적 없다고! 그것도 등을 보이고 서 계시는 모습만! 애초에 어르신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건 회사 창립 때 함께한 초창기 멤버들, 본사 임원이나 지부장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뿐이란 말이야!”
“……어디서 봤었는데?”
종혁의 몸에서 다시금 끔찍한 살의가 뿜어져 나왔다.
“어디서-!”
“어, 어떤 저택이긴 했는데! 그, 그게…… 눈을 가린 채 이동해서 어딘지는…….”
조희구를 빤히 응시하던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릴 수 있어! 거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분의 뒷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그릴 수 있다고!”
“……미국? 러시아?”
“러, 러시아! 도시! 춥지 않고 미녀 많은 곳으로 보내 줘!”
“계좌들 적어놔. 200억까진 봐줄 테니까.”
몸을 돌린 종혁은 혀를 차며 방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를 나탈리아와 헨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조희구에게 그런 정보를 오픈할 가치가 있는지 묻는 듯한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들.
종혁은 결과를 보라는 듯 피식 웃었다가 눈빛을 가라앉혔다.
“쪽대본 나왔습니다. 촬영 들어갑시다.”
* * *
그날 오후, 일본.
“으하하하핫!”
“하하핫!”
지이잉! 지이잉!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무로이 코헤이와 어깨동무를 한 채 술을 마시던 종혁의 대역이 핸드폰을 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오택수의 대역과 이야기를 나눴고, 무로이 코헤이에게 양해를 구한 둘은 곧 술집을 빠져나갔다.
그에 깜짝 놀라며 그 뒤를 쫓는 감시자들.
‘뭐야, 뭔데!’
그들은 종혁과 오택수의 대역이 호텔에 들른 뒤 어딘가로 다시 향하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길은?’
“최종혁이 공항으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흠…… 알았어. 일단 가만 놔둬.
“예?”
-만약 SVR이 부른 거라면 분명 조 지부장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걸 테니까. 뒤만 계속 쫓아.
위험을 무릅쓴 중국 서부 지부의 연락을 통해, 그들이 샹그릴라 리조트에 갇혀 있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조희구와 중국 동부 지부의 직원들은 어디에 감금되어 있느냐였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는 다급히 옆을 봤다.
“공항으로! 최대한 빨리!”
“예!”
회사 일본 지부의 직원들은 다급히 엑셀을 밟았다.
부아아아앙!
* * *
어느새 해가 완전히 저물고 밤이 찾아온 하이난의 리조트.
종혁이 조용한 핸드폰을 보며 입술을 비튼다.
“조용하네요.”
분명 종혁이 비행기를 탔다는 걸, 하이난행 비행기를 탔다는 것까지 확인했을 텐데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질 않는다.
아마 은밀히 미행하여 조희구와 중국 동부 지구의 직원들이 잡혀 있는 곳을 확인하기 위함일 터.
“예, 정 과장님. 청장실 동태는 어떻습니까?”
-오늘 뉴스가 터지면서 굉장히 놀라긴 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온 전화를 받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거칠게 묻더군요. 뭐 곧 진정하는 듯했지만…….
‘조희구가 말하길 박종명도 회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했지. 하긴,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만 당할 양반은 아니지.’
종혁의 갑작스런 미국 연수. 바이칼호의 보물을 한국 국과수에 의뢰한 이후 미국 연수가 결정됐다. 그것도 박종명의 지시하에.
덕분에 특별범죄수사대가 창설되긴 했지만, 그때의 일은 여러모로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박종명은 회사의 일원이 아니고, 그저 조희구와 금전적으로 엮여 있을 뿐인 관계에 불과했다. 즉, 박종명을 통해 더 윗선까지 타고 올라가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종혁은 실망하지 않았다.
조희구를 통해 박종명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좀 먹는 기생충들을 여럿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살생부는 보다 풍성해지고, 완벽해졌다. 대한민국에 이렇게나 많은 개새끼들이 있다는 것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부우웅!
“도착했군요.”
종혁과 오택수의 대역을 태운 차가 리조트 안으로 들어선다.
“후훗. 그러면 시작할까요?”
나탈리아의 물음에 종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강 검사님. 조희구와 선유컴퍼니 찾았습니다.”
-뭐, 뭐라꼬-?!
옥상에 선 종혁과 사람들은 입술을 비틀었다.
* * *
-샤, 샹그릴라 리조트입니다! 최종혁이 샹그릴라 리조트로 들어갑니다!
제2기획실장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샹그릴라 리조트는 중국 서부 지부가 바이칼호 프로젝트를 완료한 직원들을 위해 준비한 장소, 그리고 지금 갇혀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조희구 지부장이 보입니다!
움찔!
“……알았어. 대기해.”
전화기를 잠시 내려놓은 제2기획실장은 혀를 찼다.
‘조희구도 여기 있었단 말이지…….’
제2기획실장은 그제야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SVR이 선유컴퍼니의 바이칼호 보물선 인양 사기를 진작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래서 선유컴퍼니를 감시하고 있었다면 조희구가 샹그릴라 리조트에 방문했을 때 그를 알아봤을 테니까.
종혁에게 가져다 바칠 선물이 알아서 굴러 들어온 셈이었으니, SVR로서는 횡재한 기분이었을 터.
‘쯧. 조희구 한 놈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는군.’
미간을 좁힌 그는 이쪽을 주목하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종혁이 희희낙락하며 데려올 조희구와 직원들을 빼앗을 준비를 하라는 뜻.
그에 직원들은 다급히 전화기를 들어 저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예, 경찰청장님. 조 회장님의 비서…….”
“하하. 잘 계셨습니까, 지검장님.”
오늘 아침과 대조될 만큼 온화한 분위기.
제2기획실장도 다른 전화기를 들어 중국 쪽 라인에 전화를 걸었다.
“하하. 납니다, 공안 부장. 아까 부탁드렸던 일을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능숙한 중국어.
“예. 위치는 하이난의 샹그릴라 리조트입니다. 예, 예. 그럼 부탁드리겠…….”
-……님! 실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제2기획실장은 종혁의 뒤를 쫓은 직원들과 통화를 하던 전화기를 다시 들어 올렸다.
“무슨 일이야?”
-시, 실장님! 이거 실장님이 보내신 거 맞습니까? 구, 군대 말입니다!
오싸악!
“그게 뭔 개소리야-!”
벌떡 일어난 제2기획실장의 얼굴이 퍼렇게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