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48화>
“스읍! 후우우.”
기괴한 숨소리가 뜨겁게 울리는 방.
SVR 요원들이 창문을 열자 김경후는 마스크를 벗었다.
“바실리 마카로프!”
갑자기 나타나 바이칼호에서 보물 건져 내서 자신들의 계획에 훼방을 놓았던 회사, 아진 소코로비쉬의 대표 바실리 마카로프.
“알아봐 주니 고맙군.”
김경후는 도경수 차장의 목을 틀어쥐었다.
꽈아악!
평생을 충성을 했다가 고작 딱 한 번 실수를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은퇴를 당할 뻔했다.
아내가 죽을 뻔했고, 자식들이 죽을 뻔했다.
그때 그 배신감, 그리고 박탈감.
김경후의 두 눈에 살의가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큭! 크으윽!”
또각또각!
“확인은 끝났어, 바실리? 아니, 킴?”
“……쯧. 오셨습니까.”
손을 놓고 물러선 김경후는 나탈리아에게 고개를 숙였고, 숨통이 겨우 트인 도경수는 괴로워하다 경악했다.
‘이, 이년은?! 킴? 위장된 신분이다! SVR이야!’
“이제 확인만 하면 됩니다.”
“이고르, 의자 좀.”
“예, 지부장님.”
김경후는 의자를 가져왔고, 김경후는 도경수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뭐, 뭐야? 왜?’
도경수는 김경후가 자신의 전신을 꼼꼼히 살피다 못해 소지품까지 확인하자,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를 찾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특수한 방식으로 새긴 회사의 로고는 SVR이라 할지라도 발견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 도경수를 보며 김경후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도경수가 회사의 일원이라는 건 이미 확신하고 있는 상황. 지금 그의 몸을 수색하는 건 그에 대한 확증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없습니다. 이것과 똑같은 문신은.”
김경후가 말을 이어 나가며 소매를 걷어붙인 순간, 그 소매 안쪽에 감추어져 있던 문신을 본 순간 도경수의 두 눈이 크게 치떠졌다.
‘배신자?!’
배신자다. 회사를 배신한 놈이 러시아의 사냥개가 된 것이었다.
회사에서 꽤 심각하게 논의가 됐던 일이 현실이 된 거다.
“흠. 손해가 막심한데 말이야.”
“덕분에 올데가르히의 돈을 빨아 먹었지 않습니까.”
“……후훗.”
김경후에게서 시선을 돌린 나탈리아는 손톱을 갈던 손톱갈이를 내리며 도경수를 응시했다. 그런 그녀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너희 한국인들은 참 간이 커. 어떻게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내 조국을 벗겨 먹을 생각을 할 수 있지? 응?”
콰악!
쇄골에 박히는 손톱갈이. 사포처럼 거친 면이 쇄골을 갉는다.
“끄아아아악……!”
“어머, 아파? 겨우? 감히?”
나탈리아는 끔찍한 분노를 드러냈다.
종혁 때문에 억지로 삼켜야 했던 분노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포식자의 분노를.
“기대해도 좋아. 덕분에 우리도 이제 진심이 되어 볼 생각이니까.”
섬뜩!
‘자, 잠깐……!’
“이고르.”
“예.”
“최에게 연락해. 당신이 그렇게 바라던 선유컴퍼니와 조희구를 찾았다고.”
‘헉!’
“자, 그러면 내 친구가 도착할 때까지 러시아의 돈이 어디로 갔는지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나의 경애하는 사기꾼 친구.”
KGB의 방식으로.
그녀의 눈이 고혹적으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숨겨져 있던 놈들의 몸통을 찢어발길 장대한 한 편의 연극이 막을 올렸다.
* * *
그로부터 3시간 후, 조희구와 부산 지부 사원들이 머무는 빌리지.
내일은 비가 오려는지 달이 구름에 가려지는 완연한 어둠 속을 수십 개의 그림자가 나아간다.
완벽하게 어둠에 동화된 외눈의 괴물들.
밤이라는 침묵의 세상 속에서 바람 소리만 내는 귀신들.
스스스.
수신호에 따라 흩어지고, 곧 그들이 들어간 집에서 약간의 소요가 일어나더니 다시 적막을 휘감는다.
돈 있는 자들을 위한, 어느 한 단체를 위한 빌라들이 가득한 빌리지 전체가 귀신마을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곧 귀신들이 하나의 집 앞으로 모여들며 환기구에 가스통을 설치한다.
그렇게 5분.
집 안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코골이 소리마저 사라지자 귀신들 중 절반이 집 안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잠시 후.
-클리어.
귀신들의 고막을 때리는 사람의 육성.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의 등 뒤에서 들리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
사박, 사박, 사박.
찰칵! 치이익!
어둔 세상에 불꽃이 피어나며 종혁과 오택수, 헨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작전에 참가하지 못해 약간은 불퉁한 얼굴의 종혁.
헛웃음을 터트리는 오택수.
그리고 그런 둘을 보며 희미하게 웃는 헨리.
헨리는 모든 창문들과 함께 열리는 현관문을 정중히 가리켰다.
“그럼 들어가실까요?”
“끙. 예.”
그들은 침묵이 내려앉은 빌라의 복도를 사정없이 짓밟으며 조희구가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불을 켜며 안으로 들어온 종혁은 마치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려고 했던 듯, 아니 침대에서 벗어나려다 정신을 잃은 조희구를 빤히 응시했다.
이 모습을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덫을 놓기 위함이었음에도 조희구와 말을 섞었던 그 순간 귀가 썩고, 눈이 썩는 줄 알았다. JH메디컬에 투자를 하고 나온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살의가 솟구쳤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선유컴퍼니의 등장으로 살의가 더 크게 솟구쳤음에도 참았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말이다.
‘몸 좋네, 새끼.’
종혁은 일단 그의 양팔과 양다리에 수갑을 채웠다.
“흠. 그런데 이 새끼는 혼자 자네?”
“여자도 못 믿는다는 거겠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
“깨우죠. 일단 눈부터 가리고.”
이번 연극, 조희구가 시간을 알아선 곤란했다.
헨리는 뒤에 있는 요원을 향해 손을 까딱였고, 그들 중 한 명은 조희구의 정맥에 주사기를 찔러 넣고는 조희구의 눈에 안대를 씌웠다.
그리고…….
“크읍! 컥?!”
다급히 몸을 일으키던 조희구는 사지가 구속되다 못해 눈이 가려졌다는 걸 깨닫고는 낯빛을 굳혔다.
순간 위기감을 느끼고 눈을 떴다가 다시 정신을 잃었던 아까의 상황.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생각으로 느긋이 인기척이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던 조희구는 귓속에 꽂히는 목소리에 경악했다.
“오랜만입니다, 조 사장님. 아니, 사기꾼 새끼라고 불러야 할까요?”
섬뜩!
‘이, 이 목소리는?’
최종혁이다. 최종혁이 자신을 찾아낸 거다.
어떻게라는 의문이 전신을 채운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형사님. 그동안 잘 계셨…….”
뻐어억!
“커헉?!”
배가 뚫리고 창자가 끊기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조희구.
종혁은 그런 그의 턱과 목을 한 손으로 잡아 비틀며 안대를 반쯤 내렸다.
“우리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죠? 일단 당신 뒤를 봐주는 개새끼들보다 영호의류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거기가 자금 세탁해 주는 곳 맞죠, 조희구 사장님?”
“……!”
영호의류는 중국 동부 지부가 위장한 회사의 이름이었다.
“읍! 읍읍!”
재갈이 물린 채 승합차에 태워지는 조희구와 아직 깨어나지 못해 짐짝처럼 옮겨지는 사원들.
“새끼들. 또 머리 썼네.”
몸에 로고를 새기는 방식이 또 바뀌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육안으로 그냥 확인할 방법이 없는 방식.
문신의 세계는 참 심오했다.
‘이번엔 약물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고 했지?’
도경수의 앞에선 알아차리지 못한 척했지만, 선유컴퍼니 직원들 전원의 소지품에서 모종의 약물을 확보한 김경후와 나탈리아.
아직 성분 검사가 전부 끝나지 않았지만, 김경후와 나탈리아는 그 특수한 약물들이 그들의 문신을 확인하는 데 쓰이는 것이라 확신했다.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들던 종혁은 다음으로 진행할 동부 지부 일망타진 작전을 생각하자 떠오르는 한 명 때문에 멈칫했다.
“그런데 그 새끼는 누굴까?”
“누구?”
“조희구의 옆에 딱 붙어 있던 놈이요.”
동부 지부에서 파견 나온 젊은 놈.
무슨 일인지 어젯밤 다른 이와 교체하며 칭다오로 돌아간 놈.
‘대체 누구기에 그렇게 눈길이 갔던 걸까.’
“분명 처음 본 놈이었는데 말이야.”
“보통 씹새끼가 아닌가 보지.”
“그럴까요?”
그렇기에 수십 년간 갈고닦은 촉이 그렇게 사납고 거칠게 흔들렸던 걸까.
종혁은 최성현을 떠올리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예, 나탈리아. 여긴 끝났습니다.”
이제 마지막 주연 배우를 무대에 등장시킬 때였다.
* * *
웅성웅성. 와글와글.
오늘도 개미 떼처럼 많은 인파들을 헤치며 지하철역을 나온 왕유춘, 아니 최성현이 이를 간다.
‘이럴 거면 왜 갑자기 부른 거야?’
조희구의 지랄 맞은 비위를 맞추느라 고생하는 아들을 억지로, 그것도 이 밤늦은 시간에 중간보고를 하라며 불러 놓고 정작 본인이 집에 들어오지도 않은 아버지.
결국 다음 날 회사에 직접 찾아가기로 한 최성현은 속으로 아버지를 욕하며 하이난에 남아 있는 직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조희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설명을 해 놓았지만, 마음이 잘 놓이지 않았다.
지이잉! 탁!
알겠다는 문자를 확인한 그는 한숨을 내쉬며 동부 지부로 향했다. 얼른 중간보고를 하고 다시 돌아가야 했기에 그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음?”
오는 길에 사 온 콩물을 들이켜며 로비로 들어서던 그는 잠시 멈춰 서며 미간을 좁혔다.
왜인지 아무도 없는 로비. 아니, 건물 전체가 지독한 침묵에 휩싸여 있다.
“뭐야. 왜…….”
오싹!
위험을 감지한 그가 곧바로 몸을 돌려 건물을 빠져나가려는 순간이었다.
터억!
그의 어깨에 얹어지는 통나무 같은 팔뚝과 귀를 때리는 중국어.
“자, 들어…… 갑시다, 왕유춘 씨.”
‘최종혁?!’
온갖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그의 손이 슬금슬금 허리춤으로 향한다.
‘이 냄새…….’
익숙하다. 잊을 수가 없는 독특한 냄새.
살의가 스멀스멀 머리로 향하지만, 종혁은 애써 나른하게 웃었다.
“아아, 조희구 사장이 세탁을 맡긴 돈만 찾으러 온 거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모르는구나!’
자신들의 정체를 아직 눈치채지 못한 거다.
몸에 힘을 푼 최성현은 종혁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가 검은색 특공대복을 입은 서양인들에 둘러싸인 직원들 사이에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곤 입술을 깨물었다.
‘진정해. 허튼짓하지 마.’
‘예.’
눈으로 대화를 나눈 그는 종혁이 팔을 풀자 아버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콱!
왕유춘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우악스런 손길.
“어딜 가세요. 당신은 나랑 이야기 나눠야지.”
그를 가까이 있는 빈 의자에 앉힌 종혁은 다른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난 다른 거 필요 없습니다. 당신들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도 상관없고. 그러니 조희구 그 새끼가 당신들에게 세탁을 맡긴 계좌만 내놔요.”
진짜일까.
종혁의 눈을 빤히 봤던 최성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움찔!
순간 종혁의 시간이 아득하게 느려진다.
-그러게 덮으랄 때 덮었어야지. 그러면 제 어미도 죽지 않았을 텐데.
“너구나?”
콰악!
“큽?!”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 목소리를! 이 냄새를!
꿈에서라도 잊을까 매일 밤 되새기고 되새겼던 원수를!
“진짜 오랜만이다. 오랜만이야.”
11년 하고도 약 7개월. 참 길고 길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니…….”
죽어.
살의에 눈이 돌아간 종혁은 혹여 사람을 죽일까 그동안 억눌렀던 마지막 리미트를 풀며 최성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최종혁!”
꽈아아아앙!
* * *
쨍!
“어머!”
마지막 아침 손님을 보낸 후 맞이하는 커피 타임.
고정숙은 갑자기 부서진 찻잔 손잡이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세요, 사장님?”
“아, 응. 괜찮아.”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아들이 본차이나(bone china)라고 바닥에 던져도 멀쩡하다고 말했던 찻잔이 부서지자 더 불길해진다.
고정숙은 창밖을 보며 지금쯤 일본에 있을 아들을 떠올렸다.
‘괜찮지, 아들?’
그녀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갈등에 빠졌다.
* * *
지독한 침묵이 내려앉은 사무실.
종혁이 피투성이가 된 주먹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서지는 컴퓨터 책상.
와르르!
모니터와 키보드, 책상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종혁은 낯빛이 파리하게 죽은 최성현을 가만히 응시했다.
찢어발기고 싶다.
지금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 손톱 하나까지 씹어 삼키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아직은…….
아직은 참아야 했다.
빠드득!
“야. 내가 딱 하나만 물을 거야. 너 옛날에 어디 살았어? 예전에 경기도 스키장에 오지 않았어?”
“뭐, 뭐라고요?”
흔들리는 최성현의 눈빛.
맞다.
이놈이다. 그때도 이놈이었다.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제 아들은 계속 중국에서 살았습니다!”
종혁은 발악하듯 외치는 중국 동부 지부장을 보곤 혀를 찼다.
“……죄송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 누가 갑자기 습격을 해 와서 제 팔을 아작을 낼 뻔했거든요. 그때 들었던 목소리와 똑같아서 착각을 했나 봅니다. 그러니까…… 말로 할 때 협조하자. 내가 지금 빡돌았거든. 다른 나라 범죄자 새끼라고 봐줄 여유가 없어졌어.”
“……기다리십시오.”
자신의 자리로 향하려고 몸을 일으키던 최성현이 도로 주저앉는다.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던 끔찍하고도 아득한 살의.
이를 악문 그는 지금도 사라진 듯한 심장을 움켜쥐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자리로 향하여 자료를 가져왔다.
지금은 자료를 넘겨야 했다. 아니면 의심을 받게 될 터.
“여기 있습니다.”
USB를 넘겨받은 종혁은 CIA를 향해 손을 까딱이며 몸을 일으켰다.
“협조 감사합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협조해 주세요. 아직 당신들 입이 열려선 안 되거든요.”
더 이상 마주 볼 자신이 없다.
지금도 용암처럼 전신을 뜨겁게 내달리는 분노.
최성현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서양인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전화…… 전화를 한 통만 하게 해 주십시오.”
회사에 알려야 했다.
“왜? 빽이라도 부르게? 싫어.”
‘이, 개……!’
사무실을 빠져나온 종혁은 엘리베이터를 후려쳤다.
꽈아아앙! 꽝꽝! 꽈아앙!
“으아아아아악!”
진짜 죽이고 싶다.
죽여 버리고 싶다.
‘이 개새끼들! 엄마를! 감히 엄마를-!’
“뭐해, 인마!”
부웅!
오택수는 코앞에서 멈춘 주먹에 그대로 굳어 버렸고,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죄송합니다.”
“대체 왜 그래? 답지 않게.”
“……아까 들었잖아요. 하마터면 선수 생명 끝날 뻔했던 기억 때문에 그래요. 방금은 미안했어요.”
애써 웃은 종혁은 낯빛을 굳혔다.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주연 배우들이 모두 등장했으니 이제 2막을 열어야 했다.
“부산지검과 광수대로 연락해 주세요. 조희구와 선유컴퍼니를 목격했다고.”
“……오케이.”
놈들에게 협조하고 있는, 각계각층에 숨어 있는 개새끼들을 끌어낼 차례였다.
“예, 정 과장님. 시작하시면 됩니다.”
일단은 경찰에 숨어 있는 개새끼들부터.
종혁의 눈빛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 *
방금 전 부산 광수대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은 박종명이 핸드폰을 든 채 다리를 떤다.
뚜르르! 뚜르르! 달칵!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야!”
핸드폰을 거칠게 내린 박종명은 부산 광수대가 보내온 사진을 보곤 이를 악물었다.
멀리서 찍은 거지만 누가 봐도 조희구의 얼굴.
그는 숨을 고르며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그때였다.
따르릉! 따르릉!
먼저 울리는 전화. 혹시 조희구일까 생각했던 박종명은 입술을 깨물었다.
“예, 지검장님. 박종명입니다.”
-지금 이거 맞는 겁니까, 박 청장? 정말 조 회장 찾은 거예요? 조 회장은 왜 연락이 안 되는 겁니까!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봐요, 박 청장! 박 청장!
전화를 끊은 박종명은 다시 조희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달칵!
-예, 청장님.
“이……! 왜 연락이 안 되는 겁니까!”
-아이고, 죄송합니다. 어젯밤 과음을 하는 바람에…….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지금 하이난에 있는 것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그럼 지금 당장 다른 곳으로 가세요. 당신하고 선유컴퍼니가 함께 걸렸으니까!”
-……알겠습니다. 옮기고 연락드리죠. 언제나 내부 정보 감사합니다, 박종명 청장님.
“흥. 잘합시다, 진짜. 나 혼자 좋자고 하는 일입니까?”
통화를 종료한 박종명은 그제야 안심하며 담배를 물었다.
“……아니야. 최 대장은 아니야.”
이 모두 종혁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쯧. 일단 출장을 보내긴 해야겠군.”
또 언론사들에 연락해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해야 됐다.
“어, 광수대장. 나야. 요새 일이 바빴던 놈으로 두 명만 뽑아서 하이난으로 휴가 보내도록 해. 그래.”
탁하고 더러운 담배 연기가 경찰청장실에 물들여 갔다.
-나 혼자 좋자고 하는 일입니까?
달칵!
조희구는 통화가 종료된 핸드폰을 종혁에게 건네며 됐냐는 듯 응시했고, 종혁은 입술을 기괴하게 비틀었다.
빠드득!
“수고했어.”
“…….”
“왜? 너 뒤 봐주던 놈들이 엿될 것 같아서 싱숭생숭해? 꺼림칙하면 SVR 친구들과 함께 놀고 있는 도경수 차장 옆으로 갈래? 그 친구들, 도경수 차장하고 네가 만나서 벼르고 있던데. 일단 지금은 바쁘니까 서로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는 나중에 이야기해 보자고.”
“……언제까지고 안 받을 순 없습니다.”
“걱정 마. 이제부터 귀에 불이 나도록 받아야 할 테니까. 예, 정 과장님. 청장실 녹음됐습니까?”
조희구는 몸을 일으켜 멀어지는 종혁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일단 회사가 노출된 것 같지 않기에 협조를 하기로 하긴 했는데…….’
조희구는 자신 한 명 검거하자고 SVR과 CIA까지 동원한 미친놈을 어이없다는 듯 응시했다.
‘쯧. 깜빵에는 가야겠군.’
그래야 자신이 산다. 그래야 은퇴를 당하지 않고, 회사까지도 산다.
‘그럼 이제 문제는 현 상황을 어떻게든 회사에 알려야 한다는 건데…….’
과연 종혁이 그걸 허락할까.
조희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력한 현실에 이를 악물며 침대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