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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47화 (547/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47화>

    부우우우웅!

    바다 위를 가르는 군용기 안.

    띵띵띵!

    검은색 다이빙 슈트를 입은 종혁과 오택수가 번쩍이는 붉은 불빛 사이를 지나쳐 비행기 뒤쪽으로 향한다.

    “야! 다음엔 위조 여권 쓰는 거야! 위조 여권 쓰는 거라고! 알았냐!”

    종혁은 오택수를 어이없다는 듯 봤다.

    “아니, 경찰이 어떻게 위조 여권을 쓰자는 말을 해요?!”

    “이게 더 큰 범죄야, 새꺄!”

    지금 하고 있는 짓은 밀항이다. 그것도 미군을 이용한 밀항. 이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

    “아오! 범죄자 하나 잡자고 이게 뭔 지랄이야, 씨발!”

    하얗게 질려 몸부림치는 오택수의 모습에 종혁과 군인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와 동시에 화물 적재함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한다.

    기이이잉!

    푸화아아아아악!

    엄청난 소리를 내며 그들의 몸을 때리는 바람들.

    ‘그러게요. 진짜 뭔 지랄인지 모르겠네요.’

    그놈의 방해하는 놈들만 아니었으면 편히 왔을 길.

    짜증이 온몸을 뒤흔든다.

    “하지만…….”

    놈들을 잡을 수 있다면 무엇을 마다할까.

    놈들을 잡기 위해 지옥에 가야 한다면 종혁은 기꺼이 갈 수 있었다.

    ‘그러니 이젠 제발 몸통 좀 보자! 이런 짓거리까지 하잖아!’

    “무운을 빕니다, CIA!”

    종혁과 오택수뿐만 아니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그들을 보조하기 위해 따라나선 CIA 요원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드는 군인들.

    “후우우!”

    저 아래 시꺼먼 바다를 힐끔 본 종혁은 엄지를 치켜세웠고, 그에 군인들이 완전히 열린 적재함 바깥을 가리켰다.

    “고고고!”

    “자, 갑시다!”

    “씨발! 이건 미쳤어-!”

    그들은 시꺼먼 바다 위로 몸을 던졌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중국의 어느 선착장.

    부우웅!

    어둠을 가르다 속도를 줄이는 배 위에 선 종혁이 점점 가까워지는 선착장을 보며 눈빛을 가라앉힌다.

    이제 곧이다. 이제 아주 조금이다.

    종혁은 떨리는 심장을 쓸어내리며 담배를 물었다.

    “도착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타악!

    망설임도 없이 배에서 뛰어내린 종혁과 오택수, CIA 요원들은 선착장을 벗어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또각또각!

    종혁과 그들의 귀를 꿰뚫는 구둣발 소리.

    오택수는 선착장 다리 입구에 서 있는 일단의 무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종혁은 하얀 코트를 입은 채 붉은 구두로 땅을 짓이기며 다가오는 나탈리아와 헨리를 발견하곤 입술을 비틀었다.

    찰칵! 치이익!

    불이 붙지 않은 종혁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는 나탈리아.

    그녀는 혹여 추울까 들고 온 흰색 코트를 펼쳐 종혁의 어깨에 걸쳐 주며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어서 와요, 최. 그리고 오.”

    담배 연기를 길게 뿜는 종혁의 전신에서 살의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놈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하이난.”

    “하이난?”

    키득키득 웃는 나탈리아를 보는 종혁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   *   *

    11월 겨울이 코앞임에도 초여름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중국의 최남단 하이난.

    야자수들이 가득 심어져 열대 섬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한 리조트의 로비에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선다.

    오랫동안 씻지 못한 건지 거지꼴이나 다름없는 남녀들. 조희구에 이어 한국을 뒤집어 놓은 선유컴퍼니의 사원들이다.

    “우와!”

    “이야아!”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베트남으로, 또 하이난으로 온 선유 컴퍼니의 사원들.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베트남으로, 또 베트남에서 중국 하이난으로, 밀항을 번갈아 하며 힘들게 도착한 리조트는 그렇게 고생을 한 보람이 있을 만큼 멋지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여정의 끝을 축하하듯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들이 정중히 허리를 숙인다.

    “샹그릴라 리조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모두 거지 몰골임에도 눈살하나 찌푸리지 않고 반기는 종업원들.

    그럴 수밖에 없다. 일주일 동안 이들이 이 리조트를 빌렸기 때문이다.

    “아, 예…….”

    “크으으!”

    ‘이게 고급 리조트구나!’

    “대리님! 여기 수영장 있습니다! 헉! 비키니 입은 여자들 발견!”

    “뭐? 비키니?!”

    눈이 동그래진 그들이 어떻게 된 거냐는 듯 선유컴퍼니의 사장과 도경수 차장을 본다.

    “이제 알겠냐? 이게 본사 프로젝트의 위엄이다, 이 자식들아!”

    “우와아아악……!”

    “으아아악! 최고십니다, 최고!”

    사원들은 넓고 커다란 풀을 향해 몰려갔고, 도경수와 사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또 미행도 당하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 대견할 수밖에 없었다.

    도경수는 바로 풀에 뛰어들려거나 미리 준비해 놓은 술병을 따는 사원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자! 다들 진정하고 모여 봐!”

    왜 방해하냐며 불만 서린 얼굴들.

    도경수는 미간을 좁혔다.

    “씁. 보너스 받기 싫습니까?”

    “아, 아뇨!”

    “갑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또 지옥의 아귀처럼 눈을 빛내는 남녀들의 모습에 도경수는 하이난 항구에서 이곳 리조트까지 데려다준 중국 서부 지부 직원에게 손을 내밀었고, 직원은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열어 도경수에게 보여 줬다.

    “김 부장.”

    “예!”

    “여기.”

    “감사합니다! 으아앗! 4억이다! 4억-!”

    “서 부장.”

    “예! 으아앗!”

    통장을 열어 보고 환호를 지르는 사원들.

    고작 1년여 만에 억대의 인센티브다. 그들은 미쳐 날 뛸 수밖에 없었다.

    이 모두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누군가의 바람이지만, 알게 뭐란 말인가. 그들의 머릿속에는 현재 인센티브의 숫자만 떠오를 뿐이었다.

    도경수는 흥분한 그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뭐해? 놀아.”

    “……씨발! 돌격!”

    “돌겨억!”

    풍덩!

    “으아아아!”

    “꺄아아아!”

    “좋다!”

    “박 대리, 그거 맛있냐?”

    “한번 먹어 볼래?”

    벌써 이 리조트에 도착한 지 이틀째가 됐는데도 지치지도 않는지 풀에 뛰어드는 사원들.

    비키니, 아니 알몸인 미남미녀들이 그들의 옆으로 다가서고, 눈이 돌아간 사원들은 그런 그들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거친 숨을 토해 낸다.

    원초적인 쾌락과 향락의 현장.

    하와이안 셔츠에 하얀색 바지를 입은 채 비치 체어에 누운 도경수는 허벅지 안쪽을 긁으며 그 모습을 흐뭇한 눈길로 응시했다.

    “새끼들. 그래. 놀아라, 놀아.”

    거의 1년을 외줄 위에서 버텼다. 이 정도 유흥을 즐길 자격은 충분했다.

    ‘씁! 이놈의 문신은 진짜.’

    미국 지부의 일이 어그러지자 다시 한번 회사의 로고를 몸에 새기는 방식을 바꾼 그들. 기존에 있던 문신을 급하게 지운 후유증 때문에 이렇게 시시때때로 가려움이 올라왔다.

    그래도 이젠 특수한 약물로 검사하지 않는 이상, 결코 로고가 드러날 일은 없을 터.

    “아잉. 또?”

    “하하.”

    도경수는 거의 안기다시피 한 붉은색 비키니를 입은 중국 여성의 가슴을 주무르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실장님. 도 차장입니다. 아! 수영장입니다, 수영장.”

    -내가 바로 연락하라고 했을 텐데요?

    “푸하핫, 부러우면 실장님도 프로젝트 참여하셨어야죠!”

    -아씨, 진짜 부럽네!

    “으하하하핫!”

    -쯧. 아무튼 알겠습니다. 중국 서부 지부랑 돈세탁 잘하시고, 수술 잘 받으시고. 그 동네에 한국인과 러시아인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도 조심하시고.

    “걱정 마십시오! 몸 잘 숨기고 있다가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면 1년 뒤에 뵙겠습니다.

    “옙! 1년 뒤 연수원에서 뵙겠습니다!”

    -아, 맞아. 부산의 조 지부장이 지금 하이난에 있을 겁니다.

    “예?! 조 지부장도 서부 지부에서 맡기로 한 겁니까?”

    ‘왜?’

    몸을 일으킨 도경수가 미간을 좁힌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니듯 웬만해선 같은 공간에 있지 않는 그들.

    그런 그들이 다른 지부와 안면을 틀 때는 연수원에 연수를 갈 때나 합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아니면 타 지부로 인사이동을 할 때뿐이다.

    -원래는 동부 지부가 있는 곳에 있기로 했는데, 일이 좀 어그러져서 그쪽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설마 누가 추적을? 최종혁입니까?”

    -그건 아니고. 아무튼 그러니까…… 잠시만요? 어, 뭐? 왜? 뭐?! 아니, 그놈이 왜 거기로 가! 뭐? 얼굴을 보러…… 하, 이 새끼가 진짜. 후. 알았어. 가 봐.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도경수의 미간이 더욱 좁혀진다.

    -도 차장, 조 지부장이 지금 거기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빠득!

    “……조희구가 정신이 나갔군요.”

    ‘자랑을 하러 오는가 보네.’

    사람을 깔보고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조희구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거 아무래도 제어가 안 되는 것 같은데…….”

    도경수의 눈이 위험하게 빛난다.

    동시에 제2기획실장은 혀를 찼다.

    -조희구 지부장의 본사 진급이 확정됐습니다.

    거기다 아직 조희구의 머릿속엔 9조 원에 달하는 돈이 든 계좌들이 들어 있다.

    “전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프로젝트가 모두 끝났는데 왜 수익을 모두 토해 내지 않는다는 말인가.

    물론 회사 역사상 최고의 매출이라 조심스러운 것은 안다.

    혹여 팽을 당할까, 은퇴를 당할까. 분명 나름의 자구책일 테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아마 자신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거다.

    “본사에서도 분명 이걸로 논란이 많을…… 아, 설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기싸움이군.’

    이번 바이칼호 프로젝트 성공 덕분에 이제 본사 고위 임원이 확정된 제2기획실장.

    그리고 제2기획실 산하에서 프로젝트를 성공해 본사 실장급이 될 조희구.

    조희구가 후처리에 협조를 하지 않거나 다른 임원에게 붙어 버리는 순간, 제2기획실장의 리더십이 의심을 받으며 그의 영향력은 확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즉, 제2기획실장이 고위 임원이 되어 제대로 영향을 발휘하냐 마느냐가 조희구의 결정에 달려 있는 거다.

    ‘그러니 알아서 대우해 주라는 거냐, 조희구.’

    도경수는 그런 잔머리를 굴리는 조희구에게 짜증이 나는 한편, 스스로에게도 짜증이 났다.

    ‘나도 이럴 걸 그랬나.’

    중국에 도착을 하자마자 수익이 든 모든 계좌를 모두 중국 서부 지부에 넘겨 버린 도경수 차장.

    ‘그랬다면 1퍼센트라도 더 인센티브를…….’

    -도 차장.

    오싹!

    -난 도 차장도 잃기 싫습니다.

    조희구가 돈을 모두 토해 내면 은퇴를 시키겠다는 말.

    심장이 서늘해지는 말에 도경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럼 1년 뒤에 뵙겠습니다.”

    -그때 봅시다.

    전화를 끊은 도경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미련했네.”

    조희구처럼 굴었다면, 제2기획실장의 몫으로 배정된 인센티브 중 일부를 양보받았을 수도 있었을 상황.

    가슴이 쓰렸지만, 그는 이내 담배를 무는 것으로 미련을 날려 보냈다.

    “에휴. 됐다, 됐어. 실장님이 고위 임원이 되면 더 좋은 프로젝트들에 참여할 수 있겠지.”

    그거면 된 거다.

    그때였다.

    “오! 도 차장!”

    “……조 지부장님!”

    도경수는 활짝 웃으며 들어오는 조희구를 향해 환하게 웃어 주었다.

    가슴에 칼을 숨긴 둘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최성현은 그런 둘을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   *   *

    한편 리조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어느 산 위.

    흔히 길리 슈트라 부르는 위장복을 입은 채 망원경을 들고 있는 종혁의 입이 좌우로 찢어진다.

    “어휴. 뭘 또 이렇게 모여 주고 계신데? 사람 설레게.”

    “풉!”

    “호호.”

    조희구에 선유컴퍼니, 쫓던 사냥감 두 곳이 모두 모여 있다.

    심장이 떨려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개새끼들.”

    대체 뭐가 좋아서 저렇게 웃고 있을까.

    대체 얼마나 행복하기에 저렇게 미쳐 날뛰는 걸까.

    저놈들은 언제나 그랬듯 일말의 양심조차 기대할 수 없는 개새끼들이었다.

    꾸기긱!

    손아귀에서 비명을 지르는 망원경을 내린 종혁이 담배를 물며 나탈리아와 헨리를 봤다.

    마찬가지로 표정이 굳어 있는 그들.

    “동부 지부를 제외하면 약 40명이에요, 최.”

    조희구와 선유컴퍼니 34명에 서부 지부 6명.

    소규모 여행사로 위장한 서부 지부와 달리, 동부 지부는 몇 명인지 현재까지도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다.

    정확히는 위장을 한 회사에 일반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지만, 일단 놈들은 6명 이상으로 추정이 된다.

    종혁은 헨리를 봤고, 헨리는 노트북을 든 요원을 응시했다

    그에 요원은 대답 대신 노트북 화면을 보여 줬다.

    “한국 경기도 성남시까지 추적이 됐군요.”

    콰악!

    찾았다. 놈들의 본사인지, 아니면 다른 지부인지는 모르지만 또 다른 꼬리를 찾은 거다.

    종혁은 부디 이곳이 놈들의 본사이길 바랐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최. 지금 다 쓸어버리시겠습니까, 아니면…….”

    헨리는 어떻게 할 거냐는 듯 종혁을 봤고, 종혁은 답을 바라는 헨리와 나탈리아를 보며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이번에 진 빚이 크긴 크죠?”

    “하하.”

    헨리의 웃음과 함께 나탈리아의 표정도 변한다.

    배부른 맹수처럼 나른하게 웃는 그녀.

    “하여튼 정보국 출신은 믿을 수가 없다니까.”

    그랬다. 하나의 방법이 더 있었다. 놈들의 본사까지 확실하게 치고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저런. 말할 타이밍이 늦었을 뿐이랍니다, 최. 믿어 주세요.”

    “퍽이나.”

    “호호. 그럼 서로가 떠올린 방법을 말해 볼까요?”

    셋은 동시에 입을 열었고, 맥락없는 대화에 어리둥절해하던 오택수는 눈을 부릅떴다.

    만족스럽게 웃은 종혁은 담배를 끄며 몸을 일으켰다.

    “김경후 씨를 불러와야겠네요.”

    드디어 사냥 시작이었다.

    *   *   *

    “헉헉!”

    “하응! 흐응!”

    새벽 1시의 뜨거운 열락이 가득한 커다란 방.

    “으흐읍!”

    커다란 침대 위, 도경수 차장이 알몸인 여성의 몸 위에서 절정을 맞이하며 몸을 부르르 떤다.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의 쾌락.

    힘이 빠진 도경수는 여성의 몸 위로 무너졌고, 여성은 그런 도경수의 등을 느릿하게 쓸어내린다.

    쪼옵, 쫍!

    마무리 키스를 한 도경수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찝찝하네.”

    그동안 프로젝트 때문에 참고 참았던 걸 모두 토해 내서 그런지 사타구니가 불쾌하게 끈적인다.

    혀를 찬 그는 씻기 위해 담배를 물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때였다.

    휘청!

    “……어우.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조희구, 족히 조 단위의 인센티브가 예약된 그가 속을 뒤집고 간 후 짜증이 나서 폭음을 해서일까.

    정신이 먹먹하고,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혀를 찬 그가 벽을 짚으며 화장실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철푸덕!

    두 발을 채 내딛지 못하고 주저앉은 그의 풀린 눈이 흔들린다.

    그는 다급히 침대 쪽을 돌아봤다가 경악했다.

    그 짧은 사이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있는 여성. 침대 밖으로 빠져나온 손이 힘없이 쳐져 있다.

    섬뜩한 위기감이 엄습한 도경수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이, 이건 뭐…… 야…….”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게 아니다.

    이건 약물이다. 누군가 약물을 쓴 것이었다.

    ‘내가 은퇴를 당한다고? 왜?’

    당연한 의문.

    “대체 왜…….”

    ‘고작 그 정도로?’

    아주 잠시 욕심을 드러냈을 뿐인데 은퇴를 결정한다?

    ‘그것도 모두를?’

    아니다. 사원의 숫자가 많이 부족해진 회사.

    이건 뭔가 잘못된 거다.

    방 한구석에 달린 환풍구에서 시선을 힘겹게 돌린 도경수가 핸드폰을 향해 힘겹게 기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달칵!

    문이 열리며 방독면을 쓴 채 안으로 들어오는 김경후와 소총을 어깨에 견착한 채 그 뒤를 조용히 서양인들의 모습에 도경수는 눈을 부릅떴다.

    ‘처리조가 아니다!’

    “너희 뭐야……. 뭐냐고 새끼야-!”

    마지막 힘까지 짜낸 덕인지 복도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

    “저런. 그렇게 외치셔도 다른 방에 있는 사원들은 듣지 못할 겁니다. 당신과 같은 처지일 테니까.”

    ‘한국어?!’

    김경후가 도경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쳐다본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겁니다.’

    너희가 삶은 개새끼가 지옥에서 돌아왔다.

    너희를 물어뜯기 위해!

    “우리 러시아를 벗겨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나?”

    김경후는 경악하는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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